어째 전화를 한 통 안 하시나?
아이고. 그래서 못하셨어요?
엄마 술 안 마셨어요~
아빠 목소리 들리네. 아빠 집에 있어?
기침을 왜 이렇게 해.
감기 걸린 건 아니고? 요즘 독감이 유행인데.
조재야. 네가 여자니까 아빠한테 잘 해. 네 아빠만큼 좋은 사람 없어.
알았어요. 딸. 근데 조재야. 엄마가 딸 그림을 찬이랑 연이한테 보여주니까 너무 잘 그렸다고 그러는 거야. 웹, 뭐? 뭐를 하라고 그러던데.
왜 못해. 한 번 해보는 거지! 요즘도 그림 학원 다니시나?
딸. 엄마가 돈이 없어서. 딸내미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고 싶어 하는 거 알았는데. 엄마랑 아빠가 돈이 없어서. 못해줘서 미안해.
우리 딸이 어렸을 때부터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그게 미안해.
그래도 딸이 지금 하고 싶은 거 하니까. 엄마는 그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치. 너는 다른 사람들 신경 안 쓰고 너밖에 모르지. 엄마는 평생 남들만 신경 쓰다가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살았어. 그래서 딸이 부럽고 그래.
엄마는~ 운동이 하고 싶었지. 엄마가 중학생 때 정구 선수였는데. 알다시피 그때 삼촌이랑 할머니는 맨날 술만 마시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그래서 엄마가 운동을 계속 하고 싶었는데. 고등학교를 못 갔어. 처음 듣는 얘기지?
그래서 딸이 엄마 닮아서 운동도 잘 하고, 아빠 닮아서 그림도 잘 그리는 거야. 아무튼, 엄마는 우리 조재 보면서 대리만족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그니까 딸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
그래. 연락 좀 자주하고. 람이(동생)는 오늘도 연락해서 엄마 어떻게 지내냐고 안부 묻던데. 너는 엄마 걱정도 안 되냐. 엄마는 세상에서 람이가 제일 좋아. 두 번째는~ 우리 딸.
너는 엄마 생각 하나도 안 하잖아. 엄마는 늘 우리 아들이 최고야.
엄마 생각 좀 많이 하라고.
그래 조재야. 엄마 이야기를 써.
가시내가! 알았어. 딸 잘 자요.
엄마와 나, 서로 애증의 관계다. 한때는 밤늦게 걸려오는 전화는 절대 받지 않았다. 분명 술에 이만큼 취해 울고불고 할게 뻔하다. 십년 넘게 겪은 일이라 핸드폰에 ‘엄마’ 두 글자만 떠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 생애 최우선 과제는 엄마와의 분리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엄마는 최근 한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엄마가 변했기 때문인지, 내가 변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도 모르겠지만. 요즘은 엄마라는 사람을 조금씩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여전히 나는 엄마에게 퉁명스럽기만 하고 친절한 딸이 아니지만. 그래도 앞으로 남은 평생, 지난날보다 조금씩 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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