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다>는 여성들의 새로운 성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여성들의 몸과 성과 관계에 대한 가치관과 경험을 담은 “Let's Talk about Sexuality”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나는 여성인가?
나는 여고를 다녔다. 여름이면 속옷을 입지 않으면 피부가 그대로 비치는 흰 블라우스 하복을 입었다. 또래 친구들은 브래지어 위로 나시를 하나 더 겹쳐서 입곤했다. 그때의 나는 어땠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흰 티셔츠를 정말 싫어하는데, ‘남자’와는 달리 몸의 굴곡이 드러나는 것도 꺼려졌고 또 속옷을 받쳐 입은 게 보이는 것도 싫었다. 그나마 체육복은 20수로 만들었는지 덜 비치기에, 등교를 하고 나면 (그날 체육 시간이 있든 없든) 체육복으로 갈아입곤 했다.
그때도 내 안에서 느껴지는 이 ‘불편함들’을 알고 있었지만, 그당시엔 이름 붙일만한 언어가 없었다. 가장 가깝게 느껴지고 거부감이 없었던 건 ‘레즈비언’이란 말이었다. 실제로도 여자와 교제하고 있었기에 “나는 레즈비언인가 보다” 했다. 트랜스젠더라고 하기엔 난 나를 남자로 느끼지도 않았고, 수술을 원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늘 걸리는 사실이 있었다. ‘레즈비언’이라면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 텐데, 늘 그 수식어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일단 ‘내가 여성인가?’ 의문이었다. 내가 여성이라는 단서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생리를 하니까? 그럼 완경기의 여성은 여성이 아닌가? 아니면 가슴이 볼록 나와있으니까? 남성 중에도 여유증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럼 ‘여성으로 패싱’(passing,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게끔 외모와 행동을 위장하는 것)이 되니까? 여성/남성으로 패싱되기는 여성성/남성성의 젠더규범이 강하게 작용되는 곳일수록 더 뚜렷하게 나뉘어졌다.
가령,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남성’은 그 사람의 젠더 정체성에 상관없이 때로 계집애 취급을 받는다. 반면 ‘굵고 낮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남성스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사람이 어떠한 젠더 표현을 하는지에 따라서, 성염색체, 성호르몬, 성기변형 등 신체적 특징에 따라서 어떠한 내부기관을 가졌냐에 따라서 한 ‘개인’이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고정화된 젠더 체계 안에서 “여성과 남성은 어떠하다”라는 카테고리화로 사람이 분류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몸과 삶에서의 경험만으로는 내가 어떤 젠더인지를 확정할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레즈비언 관계를 맺는 데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목소리, 체형, 성기 등이 나를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속해있던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소속감을 느끼기가 어려워졌다. 그 곳은 ‘여성’과 ‘여성’만 있어야 하는데, 일단 나는 스스로를 여성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으니 내가 있어선 안 되는 곳이라는 불안감도 들었다. 마침, 그 커뮤니티의 공지글에는 트랜스젠더의 가입을 불허한다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아마도 한참을 그렇게 내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지냈던 것 같다. 내가 머무를 수 있는 커뮤니티를 찾기 어려웠다는 점도 있었지만, 지정성별 여성인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는 어디 가서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서기도 했다. 스스로가 어디에도 오롯이 속할 수 없이 어정쩡하단 생각도 들었다. 트랜스젠더라는 건 이제 좀 알겠는데, 외과적 트랜지션을 하지 않고서 어떠한 것을 두고 트랜스젠더라고 할 수 있는걸까? 내가 원하지는 않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여성적인’ 신호들을 모두 무시하고 나를 무엇이라고 이름 지으면 좋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젠더퀴어’ 개념이 가져다 준 해방감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젠더퀴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젠더 체계에서 벗어난 사람들” 쯤으로 정의했던 기억이 나는데, 꼭 나를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경험한 대로라면 퀴어 안에서도 그 사람이 게이이든 레즈비언이든 자신의 ‘지정성별’에 맞는 젠더 역할을 수행하는 게 가장 보편적이었고 내부적으로도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나처럼 젠더 확정과 표현이 모호한 사람은 비교적 덜 선호받는다고 생각했다. 인기가 있더라도, 비규범성에 속한다는 점이 장점으로 읽혀진단 인상이었다.
스스로의 젠더 정체성을 여성/남성으로 구분 짓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이를 한 명이라도 만났었더라면, 어쩌면 좀 더 정체화를 빠르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야 좀 더 안심이 되고 확신도 더 가질 수 있었을 테니까.
내 주변에 게이와 레즈비언은 많았지만, 젠더퀴어는 몇 없던 시절. 그게 아마도 2013년 말 쯤이었던 것 같다. 정보력도 부족했지만, 그땐 트랜스 관련 단체도, 책자도 찾아볼 수 없었는데, 그해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에서 LGBT 상담 컨퍼런스 <젠더의 프레임을 깨다>를 열었다. 이때 젠더 다양성 상담 가이드라인, 트랜스젠더 사람책 등을 들었던 것이 생애 첫 트랜스 관련 행사였다. 나의 내면적 인식과 현실 세계가 조금은 맞닿을 수 있다는 경험을 해본 것이었다.
되돌이켜 생각하면, 섹슈얼리티적인 면에서 레즈비언 관계는 내가 ‘부치’인지 ‘팸’인지를 구분지을 필요가 없었다. 같은 ‘여자’라고 생각해서 누가 더 우위를 가진다 라는 개념도 없었다. (개개인 성격에 따라서는 경우가 다를 수 있겠다.) 그렇게 여성들과의 사이에서는 느끼지 못했고 생각지도 못하던 감정을, ‘남성’과의 교제를 통해서 다른 점을 느끼게 되었다.
상대가 ‘이성애자’라는 단서 때문인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나를 ‘여성’으로 위치시키곤 했다. (사실 ‘여성적’이란 것도 사회적 구성들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내가 너무 ‘남성적’이면 상대가 나에게 매력을 덜 느낄 것 같다는 불안감이 항상 있었고, ‘여성스럽게’ 행동해야 날 좀 더 좋아해줄 거란 판단도 있었다. 또 성관계를 늘 응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같이 작용하고 있었다. 흥분한 상대를 보는 건 재밌는 경험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몸과 몸의 접촉만이 아니라 더 다양한 친밀함을 느낄 만한 걸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간의 수많은 소통 방법 중에, 육체적인 관계가 더 중점시 되고 또 스스로도 몰입되는 것이 다소 의아했다.
욕망의 대상이 되고, 욕망되기를 자처하고, 욕망되지 않으면 내 자신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단 생각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나를 향한 가장 열성적인 반응이 섹스 경험이었으므로, 섹스를 ‘수행’하지 않는 날이면 서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기저엔 육체적 반응을 애정의 하나로 해석하는 방식에 있었던 것 같다. 또 단순히 이 ‘이성애적 관계’가 특별해서만이 아니라, 이전의 레즈비언 관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어색하기도 하고 연기하는 듯한, 그러면서도 내가 수행해야만 할 것 같은 역할이 계속 내 위치에 놓여져 있단 생각이 들었다.
몸의 양 가슴 조직을 잘라내는 제거 수술 얘기는 상대방 앞에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가슴이 ‘없어진’ 나는 상대에게서 매력이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성애자’였던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가슴이 존재하지 않는 나는 사랑받지 못할 것만 같다고 내내 느꼈다. 가슴은 내 디스포리아의 근원이었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성애적 대상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납작하지 않고 볼록하게 솟아오른 가슴은 나를 여성으로 패싱되게 하는 신체적 조건이었지만, 또 외과적 수술을 해야할 만큼 젠더화된 신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술 여부에 대한 양가적인 마음을 지닌채로 몇 년이 흐르고 있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더라도 기존의 의미로는 해석할 수 없는 양 가슴.
내 몸이 (원하든 원치않든) 여남의 하나로 읽혀지는 젠더화된 특징을 보이듯이, 수많은 비-트랜스젠더들은 젠더 체계에서 큰 무리없이 살아간다. 화장실을 가든, 면접을 보든, 소개팅을 하든, 결혼을 하든,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여성과 남성으로 나누어진 시스템 속에서 나 혼자만 그 체계를 거부하고 있으니 때로는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이 생각나곤 한다. 아무도 믿지 않고 아무도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만이 느끼는 감각과 세상 속에서 비-젠더이분법 적으로 현실을 해석해내어 내가 설 곳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느낌. 내가 누군지를 알아갈수록 여성 혹은 남성 ‘시스젠더’라는 일치감이 과연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사람들의 이해와 상상력은 빈곤하고 제한적이다
세상에 트랜스젠더들만 살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경험들을 종종 하곤 한다. 예를 들어, 예전에 일하던 일터에서 동료 남성에게 트랜스젠더라고 커밍아웃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사람은 나에게 세 가지 질문을 했는데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1) “근데 누나, 주민등록번호 2로 시작하지 않아요?”
트랜스여성이 성별정정을 거쳐서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2번을 가지게 될 수도 있고, 지정성별 여성이지만 스스로는 남성이기에 트랜지션을 준비하는 중에 어쩔 수 없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2번으로 살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세상에 비해,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상상력은 대단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니까, 그들 앞에서는 여성/남성의 체계를 뒤흔드는 “젠더퀴어”라는 말 자체는 꺼내볼 수가 없었던 거였다. 만약 젠더 체계 자체를 의심하고 불편해하고, 또 기존의 이데올로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던 이가 있다면, 내 이야기와 내 삶의 맥락이 무엇인지 이해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스스로를 젠더퀴어라고 설명하는 이들과 주기적으로 만나게 되었을 때는, 어떠한 젠더 표현이나 생각들도 함께 소통할 수 있었다.
보통의 퀴어 모임에서는 언제나 날 ‘여성’으로 패싱하거나, 패싱되는 경험을 하곤 했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 편안했다. 당장 이 모임 밖에서는 내가 누군가의 딸, 여직원, 아가씨, 여학생 등 수많은 변주로 불려질 텐데도, 상대의 젠더를 함부로 패싱하지 않는 공간에서 있었던 한시적인 경험은 어디서도 제대로 이해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내 젠더 정체성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만한 경험이었다. (그들과 ‘지정성별 의류’ 처분 바자회를 했던 경험도 무척 좋았다.)
몇 년 전부터는 임신에 대한 상상을 해보곤 했다. (지금 자신의 삶도 힘들어 하면서!) 내 아이가 자라는 세상이라면 좀더 성중립적인 환경에서 좀 더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서포트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러한 갈망은, 내가 스스로 젠더 정체성을 확립하기까지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던- 성별이분법적인 세상에서 생존해온 나를 위한 반작용 같단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생각이 누군가에겐 기만적일 거란 생각도 같이 들었다. 여성의 임신중단이 죄가 되는 현실에서, 그리고 트랜스여성의 경우 아주 소수만이 자궁이식 수술을 할 수 있는 현실에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해선 안 될 것 같았다. 트랜스젠더인데 아이를 낳는 건 해외토픽에나 나오는 일 같기도 했다. 그만큼, 주변에서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미국 게이 커플의 파트너(트랜스남성)가 출산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https://edition.cnn.com/2017/06/08/health/trans-man-pregnant-trnd/index.html) 그 소식을 접하면서도, 한국이라면 아마 가능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성별정정과 관련된 특별법이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대법원 예규 상으로 (성별정정을 하려면) 재생산의 ‘여지가 있는’ 기관을 제거한 수술 확인서를 제출하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모든 트랜스젠더가 재생산에 관련한 기관의 제거 수술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이후 출산 계획이 있다”고 말하는 트랜스는 몇 보지 못했으므로, 내 미래 모습을 상상하고 준비해나가는데엔 좀 더 많은 용기와 시각이 생겨야 할 것 같다. 내가 ‘엄마’가 되어도 되는 세상이라면, 여성도 엄마로서 살아도 좋을 세상이 되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출산과 결혼은 여성의 디폴트가 아니다.)
지금 내 모습 그대로의 서사
퀴어문화축제 시즌이다. 6월 23일 대구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축제가 열린다. 작년 서울 축제에 참여했을때 꽤 인상적인 모습을 보았다. 퍼레이드에서 상반신을 노출한 여성 참여자의 사진을 본 것이다. 그동안 남성들의 상반신 노출에는 익숙해져 있었으나, 여성들의 상반신 노출은 나로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내 안에서도 뭔가 꿈틀대는걸 느꼈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벗으면 안 되나?”
비수술 트랜스젠더인 나의 몸은 아마도 “경범죄” 대상이겠지만, 내 가슴이 여성의 것이 아니라면 누가 나를 외설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니, 나부터가 스스로를 감춰야 하는 몸으로, 조심해야 한다고, 내재화된 사회성으로 늘 가려온 건 아니었을까? 이미 사회적으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가 존재하는 한, 여성인 그들도 나도 다 함께 자유로운 젠더 표현에 있어서 억압의 구조 안에 놓여진 건 아닐까? 대체 어느 몸은 보여도 제재받지 않고, 어느 몸은 제재받거나 삭제되는 걸까? 그 중점이 되는 판단을 하는 건 누굴까? 내가 퀴어문화축제에서 상반신 탈의를 하면 그건 여성의 몸일까, 남성의 몸일까, 아니 그 무엇도 아닌 몸일까?
아마도 고민은 계속될 것 같다. ‘레즈비언으로 보이는 삶’을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혼인조차 할 수 없건, ‘이성애자’와 살면서 이성애 중심주의 서사를 강화시키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건, 비수술 트랜스젠더로 살면서 페미니스트들의 자유롭고 멋진 표출들을 보며 부러움을 삼키건, 지금 모습 그대로의 서사가 더 필요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내 앞세대 트랜스젠더는 한 명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영화 <불온한 당신>(이영 감독)의 故 이묵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바꿨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활발하게 사는 사람이지, 숨어 사는 사람이 아니야. 우리 후배들도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내가 마치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내가 트랜스 활동가로서 살아가며 하는 활동들이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고, 도움이 되고, ‘(트랜스젠더로 사는) 이 길을 가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오래 고민하며 살아가고 싶다.
퀴어와 비-퀴어들이 섞인 세상에서 몰이해로 상처받았고, 시간이 지나서 다시 단단해져서 계속 나대로 살겠다는 이 감정이, 직접 만나보지 못한 많은 퀴어들이 스스로를 긍정하는데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 또한 선택의 기로에서 수많은 고민을 하며 어떠한 결정을 내리며 살아온 것처럼, 나 또한 비슷한 문제로 고민해왔다는 이 경험의 공유로 어떤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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