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접어든 여성의 ‘사랑과 섹스 예찬’[Let's Talk about Sexuality] 두려움 없는 관계 맺기※ <일다>는 여성들의 새로운 성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여성들의 몸과 성과 관계에 대한 가치관과 경험을 담은 “Let's Talk about Sexuality”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젊을 때는 누려보지 못했던 ‘멋진 섹스’
독서활동에도 적령기가 있다는 것을, 등산에 꼭 필요한 것이 튼튼한 무릎관절이라는 것을, 임플란트도 잇몸뼈가 성해야 심을 수 있다는 말을 내 몸을 통해서 체험하고 있다. 조카가 안고 온 어린 것이 할머니라고 부를 때, 내가 아닌 줄 알고 뒤를 돌아다 본 것도 이미 몇 년 전일이다. 지팡이를 짚고 가는 노인을 더 이상 측은하게 바라볼 수 없고, 거울 속의 얼굴을 보고 난감해 하는 일도 더는 없다.
나는 긴 시간을(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가 뿌려댄 말들과 웃음들, 눈물들, 분노들, 번 돈과 잃은 돈, 의미 있음과 부질없음, 출산과 유산, 효도와 불효, 가난과 더 지독했던 가난, 연애들과 섹스들, 한 번의 결혼과 한 번의 이혼, 아이들의 독립…) 순식간에(과거라는 찰라에) 걸어 여기에 와 있다.
여기에는 매우 단순한 삶만이 남아 있다. 돋보기를 쓰고 우편물을 들여다보고, 턱이 진 곳을 내려 설 때는 왼쪽 다리를 딛자마자 오른쪽 다리로 무게중심을 옮기며, 음식은 대충 우물거려서 삼킨다.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한 가지다-독서 금지) ‘그러나!!!!’ 젊을 때는 누려보지 못했던 멋진 섹스가 있다.
섹스가 멋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한가지다. 그것은 멋진 남자와의 멋진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자유다.(임신을 하는 것은 아닐까, 상대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내가 그의 마음에 드나, 충분히 느꼈나…하고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 빌어먹을 시대의 폐습(정절을 지켜야 한다)과 돼먹지 않은 정보(오르가즘에 도달해야 한다)에 구속당한 내 청춘이 원통하다.
20대, 어리석은 첫 경험의 기억
그는 사회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대학에 온 탓에 또래들과 확연히 달랐다. 대학생이 되었으니 연애를 하고 싶었던 나는 그 다름을 특별함으로 포장해서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시작을 어려워하는 또래들과 달리, 그는 발단과 동시에 대단원에 진입했다. 나의 시선은 언제나 한 사람에게 꽂혀있었고 그럴 때의 내 입술은 멍청하게 벌어져 있었으므로 나는 사랑에 빠졌다는 광고를 필사적으로 해 댄 셈이었다.
만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어느 날, 그는 문득 자신의 자취방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자취방에 가는 것’보다 드디어 ‘함께 걸을 수 있으리란 생각’에 설레었다. 내게 연애는 ‘산책’ 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시내를 걷고, 들길을 걷고, 다리 위를, 공원을, 바람에 머릿결을 날리며 함께 천천히 걷는 것-. 그러나 그는 늘 나를 어딘가에서 기다리게 하거나 함께 차를 탔다. 그의 자취방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들었기에 함께 걸어서 가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도 그는 교문을 나서 바로 버스정류장으로 갔던 것이고, 나는 차창 밖으로 또래의 남녀가 하얀 운동화 끝을 맞추며 나란히 걷는 풍경을 눈부신 듯 바라보았다. 나는 첫 키스에 대비하여 지니고 다니던 아카시아 껌을 살그머니 입에 넣었다. 첫 키스는 달콤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는 포옹이나 키스에는 관심도 없었고 내 바지를 벗기는 일에만 열중하였다. 내가 그토록 완강히 저항했던 것은 키스나 포옹을 먼저 하지 않는데 대한 무언의 웅변이었을지 모른다. 하여튼 그는, ‘여자들이 이렇게 거부하는 것은 처녀가 아니어서 라더라’ 라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가버렸다. 처녀인 것을 증명하고 싶었으므로 나는 그와 자는 걸로 마음을 돌려먹었지만 어둠이 완전히 까매진 뒤에도, 까만 밤이 다시 밝아져 온 후에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 내가 먹은 것이라곤 라면 하나와 반쯤 말라버린 귤 하나, 그리고 관심을 끌 요량으로 홀짝홀짝 마신 소주 반병이었다. 다시 어둠이 밀려들고 있었다. 어쩌면 있을 키스에 대비하기 위해 양치질을 하면서 문득,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가 돌아오지 않음에 안도하며 서둘러 일어서는데 인기척이 났다. 그가 방문을 열었다.
그건 그저 막대기 하나를 몸에 꽂는 일이었다. 몸이 뜨거워지기는커녕 서늘한 기운이 들었고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나는 울지 않았다. 이제 내가 처녀인 것을 믿게 하고 말았다는 멍청한 승리감이 들었고, 얼른 집에 가서 이 비린내를 씻어내고 싶었다. 그는 처녀를 망가뜨린 것에 상심하는 눈치더니 곧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진지함이라곤 없는 그 천연하고 편안한 얼굴이라니-. 나는 무거운 아랫도리를 겨우 세워 엉거주춤 일어났다.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여명 속을 걸어 버스정류장으로 왔지만 첫차는 아직 먼 시간이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고 그 곳은 내게 낮선 동네여서 어느 방향으로 걸어야 우리 집이 나오는 지 알 수도 없었다. 우연히 지나가는 택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추웠다. 아랫도리가 파들파들 떨려왔고 속은 허했다. 밀려오는 뇨의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볼일을 보다가 헤드라이트 불빛이 다가오는 느낌에 허겁지겁 바지를 끌어올렸다. 택시는 그대로 지나가버렸다. 속옷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첫 차를 타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문득 내려다 본 옆 사람의 구두아래 검게 변해버린 핏자국이 보였다. 소변을 볼 때 흘린 것이었다. 내 첫 경험의 실체를 보자 비로소 눈물이 났다.
일기장은 나의 허술함에 대한 자책과 자학으로 뒤덮였고 자존감은 바닥이 났다. 깨어있는 모든 시간에 식욕을 멈추지 못해 걷잡을 수 없이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런 멍청한 짓(!)을 이해할 수 있는 이는 지금 ‘노년에 접어든 우리 또래와 그 이전을 살아온 이들’뿐이리라.
그렇게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고도 그 행위를 성찰하지 않고, 또 다시 상처를 덧내며 감정과 감각의 불구를 강화시켜 온 어리석음에 대해 해명하자면, 그건 풍부한 시간이라는 자원을 가진 젊음의 특권이고 힘이었다고(지금의 나에겐 그렇게 낭비할 시간도 힘도 없다고) 말하련다. 또 어쨌거나 그 어리석은 경험을 거름으로 내 지혜의 씨앗에 싹은 돋았으리라.
사랑과 섹스는 젊은이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행히도 사랑과 섹스는 젊은이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나이의 신이 아니라 인연과 운명의 신이 관장한다. 그래서 예기치 않은 순간에 뜻밖의 모습으로 찾아온다. 오십에도 육십에도 칠십에도-.
우린 달빛을 조명삼아 둑길에 올라섰다.
겨우 눈썹을 그린 달이었다. 덕분에 수십 년 만의(질적인 것으로 따졌을 때) 데이트에 걸맞게 별들은 많고 선명했으며 바람은 선선했다. 여린 달빛에도 만개해 준 달맞이꽃 길, 떨어져서 걷기엔 (다행스럽게도) 너무 좁은 그 둑길 덕에 그의 팔과 나의 팔은 두 걸음마다 스쳐야 했다. 그리고 그 구두, 질 좋은 가죽이지만 무척이나 낡은 그 밤색 구두를 바라보며 걷는 것도 좋았다.
한 달 전, 그가 나의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우리의 시선은 0.00000…1초 동안 “The time stop”의 순간을 공유했다. 그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았고 나는 태연하게 차를 건넸다. 그는 차를 마셨고 나는 현관에 벗어 둔 그(손님)의 신발을 집어서 돌려놓았다. 그 낡은 신발이 어찌나 기품이 있던지(알고 보니 그저 금강제화의 보통 구두였다) 나는 그가 분명히 엄청난(뭐가 엄청날 거라는 건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이 신발과 함께 그가 온 그 어딘가로 돌아갈 것이라는 서운함으로 안타까이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는 다음날 피부가 백합처럼 희고 입술이 붉은(립스틱을 짙게 바른) 다른 여자와 함께 차를 마시러 왔다. 그 때의 실망감은 그가 먼 곳에서 온 과객이 아니라는 안도감에 희석되었다. 얼핏(귀 기울여) 들은 그들의 대화에서 그가 나와 같은 소재지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 후 그는 보조개가 귀여운 여자와 함께 왔다. 그 여자는 수다스러웠으므로 더 많은 정보를 흘려놓았다. 야호~! 그는 가족이 없이 혼자 살고 있다. 그 한 달여 동안 다리가 잘 빠진 여자와 한 번, 긴 머리가 우아한 여자와 한 번 더 왔다. 그는 그녀들과 어떤 모임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야호~! 그렇다면 그는 누구의 연인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의 눈빛은 스위치를 누를 기회를 찾고 있었다. 야호, 야호~!
그리하여 우리(!)는 스위치를 누르고 눈에 불을 켰으며 ‘아유 오케이?’라고 외쳤고(소리는 내지 않았다) 첫 데이트를 하는 참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가 손을 잡는 것은 물론, 키스를 하는 것은 물론, 가슴에 손을 대는 것은 물론, 그 이상의 상황에도 대비(?)하고 있었다.(부드럽고 신축성 좋은 티셔츠를 입었고 혹시 진도가 더 나갈 때를 대비하여 향 좋은 비누로 샤워도 했다.) 그러나 그는 예의가 발랐고(선수였고?) 우리 곁에 함께 있는 달과 별과 달맞이꽃을 매개로(아마도 그게 해와 구름과 장미꽃 이었다 해도) 그의 인생관을 짐작케 하는 이야기를 풀어놓을 줄을 알았다. 그와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모텔에 가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이제 나를 완전히 다른(어느 여자가 달라지기를 꿈꾸지 않겠는가) 삶으로 데려가리라는 확신이 들었으니까.
표현하지 못할 몸짓도, 해서는 안될 말도 없다
여러 날들이 갔다. 한 주, 한 달, 일 년, 이년… 그렇게 칠년이 흘렀다.
우리는 손을 잡았고 키스를 했고 모텔에도 갔고 서로의 집에도 갔고 몸에 대해서는 세밀화를 그릴 수도 있을 만큼이 됐다. 나의 어수선하고 산만한 기질이 드러났고 그의 신경질적인 기질로 인해 힘들기도 했다. 그리고 훨씬 더 서로를 실망시킨 많은 사건과 사연도 차고 넘친다. 싸웠고 헤어졌고 울었고 분노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굳히는데 꼭 필요한 통과의례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같이 있어서 좋지만, 같이 있지 않을 때도 좋다. 아마도 우리가 젊지 않아서(좋지 않은데도 함께 할만큼 남아도는 시간은 없으므로) 이 모든 것은 좋을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질 좋은 가죽으로 된 낡은 구두처럼 품위(순전히 내 개인적 기대와 취향을 반영한 품위)는 있으나 돈은 없었다. 우리가 처음 서로를 알아보았을 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는 내가 여기서 카페를 하고 있는 여자라는 것을, 나는 그가 굉장히 발이 크고, 낡았지만 질 좋아 보이는 구두를 신은 사람이라는 것만을 알았다.(혹, 그 짧은 순간에 그는 내가 건물주라고 생각했을까? 혹, 나는 그가 맞춤구두를 신는 검소한 재벌이라고 생각했을까?) 어쨌든 우리는 억겁의 인연에 의해 만났음에 틀림없다.
그 질 좋고 낡은 구두를 신은 남자와 나는 지금까지 함께 있다. 나는 그가 있어서 그는 내가 있어서 언제나 뒤주에 쌀이 그득한 삶인 것이다. 허기질 때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되고 멋지게 마무리를 못해도 초조해 할 필요가 없다. 내일도 다음 주에도 기회는 있으니까.
나는 두려움 없이(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젊은이들의 그것과 그다지 다를 것도 없지 뭔가) 환갑을 맞는다. 사랑과 섹스라는 두 뿌리는 하나가 되었고, 표현하지 못 할 몸짓도 없고, 표현하지 말아야 할 말도 없다. 훌륭하고 많은 정보보다 내 감정과 감각과 표현을 더 믿기 때문이다. 이제 나의 섹슈얼리티를 ‘한 노년의 섹슈얼리티’라 이름 붙여 본다.
이 기사 좋아요 3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Lets Talk about Sexuality 관련기사목록
|
일다의 방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