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의 건강(생명)에 위험이 있을 경우만을 제외하고 근친상간이나 강간으로 인한 임신도 임신중단이 불가능’한, 사실상 임신중단 금지법안이 미국 앨라배마주 의회를 통과했고 케이 이비(Kay Ivey) 주지사가 서명을 완료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2019년 5월 14일에 일어난 일이다. 심지어 이 법안에 의하면 임신중단 시술을 한 의사는 최대 99년형 혹은 무기징역형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나게 보수적이고 엄격한 내용의 임신중단 금지법안이 주지사의 서명까지 받아냈다는 사실은 미국 사회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을 뿐 아니라, 재생산권 운동을 해 온 세계 각국의 여성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이 1973년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 이후 임신중단이 합법화된 국가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더욱 의아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임신중지가 자유로운 나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왜 지금 이런 법안이 만들어지는 거지? 앨라배마주만 특이한 건가? 대통령이 ‘낙태 반대’를 연신 외치더니만 저렇게 되었나? 도대체 미국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병원 폐쇄, 심장박동법까지…‘낙태’ 반대론자들은 멈춘 적 없다
사실 앨라배마주의 법안은 1973년과 2019년 사이에 별일이 없다가 갑자기 뚝 하고 떨어진 건 아니다. 임신중단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지금까지, 이 판결을 뒤집으려는 노력은 기독교 보수 복음주의자들을 기반으로 공화당에서 쉬지 않고 벌여온 일이다.
이 과정은 다큐멘터리 <제인 로 케이스 뒤집기>(Reversing Roe, Ricky Stern & Anne Sunberg 감독, 2018년)를 보면 그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다. 보수 복음주의자들은 더이상 유색인종과의 ‘인종 분리’가 불가능해지고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법적 제재를 받게 되자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권한을 나누기 싫었던 그들은 자신들을 더 똘똘 뭉치게 할 수 있는 ‘이슈’를 찾아 나선다. 그렇게 발견한 게 ‘임신중지’다.
원래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며 임신중지는 여성과 의사가 결정할 문제라고 여겼던 다수의 공화당원들은 어느 날부터 ‘프로 라이프’(Pro-Life, 생명 우선)라는 목소리를 내며 임신중지를 격렬히 반대하는 리더들을 따라 ‘임신중단 반대’ 정당이 된다.
특히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이 판결을 뒤집으려는 시도는 집요하게 이루어졌다. 임신중지를 금지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까지 여러 단계의 벽을 세우는 거다. 임신중지를 하기 전에 반드시 초음파 검사를 해서 여성에게 태아의 모습과 심장박동 소리를 들려줘야 한다는 법을 만들거나, 임신중지를 하는 단체/병원의 지원금을 삭감하거나, 임신중지로 인한 합병증을 근거로 하여 시술에 제한 요소를 만드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구조대’(Operation Rescue)라는 이름의 단체를 조직해 임신중지 시술을 하는 병원 앞에서 시위를 하고 의사들을 협박하는 방식으로 병원을 폐쇄해버리는 행동도 하고 있다. 심지어 의사들이 살해당한 사건도 있었다.
‘프로 라이프’ 진영은 임신중지를 쉽게 할 수 없도록 제한 규정을 만드는 입법 활동, 보수 정권을 세우고 ‘낙태 반대’ 목소리를 내는 판사를 연방법원 자리에 앉히는 일까지 아주 계획적이고 집요하게 움직여왔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성폭력 피해자가 나서서 미투(#MeToo) 고발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냈음에도 보수 성향의 판사 브렛 캐버너를 대법관으로 지명한 바 있다. ‘임신중단’에 반대하는 대법관을 전체 9명 중 과반수로 만들 수 있도록, 5명으로 맞추는데 안간힘을 쓴 이유도 그 계획 중 일부다.
조지아주와 켄터키주, 미시시피주, 오하이오주는 ‘심장박동법’(Heartbeat law) 즉 태아의 심장박동이 들리는 순간(임신 6주부터 가능)부터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됐다. 임신 6주라는 건, 보통 한 달에 한번 돌아오는 월경 기간을 감안할 때 고작 약 2주만에 임신 유무를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심장박동법’은 ‘낙태 금지법안’이나 다름없다.
‘프로-라이프’(생명 우선) 진영의 진짜 목적은 뭘까
‘심장박동법’이라는 이름의 법을 만들어 ‘살아있는 생명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고, 아주 희박하게 일어나는 후기 임신중지 사례를 거론하며 자극적으로 임신중지를 묘사하는 ‘낙태’ 반대론자들은 정말 ‘프로 라이프’(Pro-Life, 생명 우선)일까?
정말 그렇다면 앨라배마에서 이번 ‘임신중단 금지법안’을 통과시킬 때, 이 법으로 인해 임신중지를 하지 못하는 여성과 태아에게 무료 의료보험 및 의료 지원을 하는 수정안(임신중단 금지법안에 반대표를 던진 민주당 린다 콜맨 상원의원이 발의)을 거부했을 리 없다.
“나에게 죄라는 건,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도 돌보지 않는 것이며 지자체가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지 않는 거고 교육을 제공하지 않는 거다. 그리고 가난한 여성이 아이들을 돌보지 못할 때 우리가 아무런 지원 체계를 마련하지 않는 것이다.” 린다 콜맨(Linda Coleman) 의원의 지적처럼, 정말 생명을 위하는 사람들이라면 ‘임신중지’만 반대할 리 없다. 소중한 생명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는 그들의 명목이 위선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앨라배마주는 미국에서 여성과 남성의 임금 차이가 4번째로 큰 주다. 25세~64세 여성 중 61%만 풀타임 노동을 하고 있으며 여성 실업률과 비정규 일자리 비율 또한 높다. 절반에 가까운 싱글맘들이 가난에 직면해 있다고 보아야 할 정도다. 많은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가정폭력을 겪는 비율도 높아서, 이 부분 순위도 미국 내에서 한 손가락 안에 든다.(Huffpost 2019년 5월 15일자, In Economic Terms, Alabama Was Already A Terrible Place For Women 참고)
‘생명’을 중시한다고 내세우면서, 여성이 강간을 당해도 임신중지는 할 수 없다는 강력한 법안을 만든 사람들이 정작 여성들과 태어날 아이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상황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낙태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의 성향과 주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은 그 목적이 ‘자연의(또는 신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여성과 남성이 각각에게 적합한 역할을 수행하며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는 정상적인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가부장제 사회의 ‘정상성’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 여성에게 자유와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고 분석하는 편이 더 타당해 보인다.
‘반대의 반대’, ‘섹스 파업’ 넘어선 재생산권 운동 필요해
물론 ‘프로 라이프’ 진영과 보수 정권에 맞서서, 임신중단권을 요구하는 사람들(Pro-Choice)도 꾸준히 운동을 해왔다. 이들은 임신중지를 가로막는 법안 통과를 막고, 임신중단권을 지지하는 이들을 입법부와 사법부로 진입시키고 대법관의 숫자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이 보여주듯 ‘진보와 보수’의 돌고 도는 쳇바퀴가 되지 않으려면, 그 쳇바퀴가 어느 순간은 더 굴러가지 않도록 균열을 낼 필요가 있다.
일단 법을 만드는 의회 구성은 중요하다. 앨라배마주는 전체 인구 중 여성 비율이 51.6%임에도 의회에는 35명 중 단 4명만이 여성이었다. 그 4명의 여성은 모두 민주당원이었고 임신중단 금지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27명의 공화당원 중 25명이 법안에 찬성했으며 그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의회가 성별 안배를 비롯해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의료 영역도 중요하다. 임신중지가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시술이나 처방을 할 의료진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다큐멘터리 <제인 로 케이스 뒤집기>에서 한 산부인과 의사는 자신을 ‘임신중지 케어’(Abortion Care) 전문이라고 언급한다. 그 말은 임신중지가 전후로 케어가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임신중지와 관련한 정보를 갖춘 의료인을 육성하는 일도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임신중지 케어를 하는 의료인이 제재를 받지 않고 반대세력의 위협으로부터도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대중적인 실천으로 여성의 ‘섹스 파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섹스 파업은 ‘이성애중심적이고 성기삽입 중심적인 섹스’의 이미지를 고정하는 데다가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정상성’에서 벗어난 논의까지 이끌어낼 수는 없다는 한계를 지적받고 있다. 또한 여전히 ‘동의를 얻지 않는 섹스’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 인종과 계급, 빈부, 젠더에 따라 ‘섹스 파업/섹스를 하지 않겠다’는 얘기조차 꺼내기 어려운 여성들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중산층/백인 중심’ 페미니즘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보다는 임신중지가 허용된 주에서조차 임신중지 시술을 하는 병원/클리닉이 멀어서, 직장에서 쉴 수가 없어서,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임신중지와 관련된 많은 사례와 논의들을 끌어내고 논의하면서 대안을 마련해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태어난’ 아이와 여성 혹은 그의 파트너, 그 가족 구성이 어떤 형태든 간에 이들이 사회로부터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임신중지가 아닌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미국에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건 한국에서도 드디어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이로써 ‘낙태죄’의 위헌성이 확인됐다. ‘낙태죄’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대해 비로소 제도적인 응답이 시작됐다고도 볼 수 있다.
분명히 엄청난 성과이지만,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위헌이 아니라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는 점부터 새로운 과제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낙태죄’는 일단 멈췄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임신중단’을 둘러싼 많은 쟁점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공방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임신중지를 둘러싼 재생산권 논의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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