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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인권 신장을 주제로 내걸고 있는 한 방송코너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로 ‘존댓말 수업’ 캠페인을 시작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교실 붕괴'의 하나의 해결책으로 ‘존댓말 수업’을 내놓은 것인데, 이에 대한 반응이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특히 교사들에 대한 ‘교권 침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며 논쟁이 불거졌다.
존댓말 수업은 교권침해? “어디 함부로 수업하는 교사들에게 존댓말로 하라는 걸까?” (출처: 하자하자 의견게시판의 어느 네티즌의 글) 교권침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존댓말을 하는 것 자체보다는 그것을 하라 마라 ‘간섭’하는 데 더 반발한다. 수업진행은 교사의 '고유한 권한'이라는 것이다. 존댓말 수업에 찬성하는 이들은 이런 반응에 대해 “학생들을 수업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교직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김한선혜씨(대학생, 23세)는 “대학에서, 교사가 더 많이 알고 있어서 학생을 끌어당긴다고 교육이 되는 게 아니라 학생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고 배웠다”고 밝혔다. 교육학 수업에서도 “교육의 주체인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에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기본 예의라고 가르친다”는 것. 김한선혜씨는 “존댓말 사용은 단순히 ‘-입니다’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학생을 존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자세”라고 말했다. 나이 ·성 ·직급 따른 권력 차, 언어에 반영 학생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교사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 사회의 위계문화와 관련이 깊다. 교사가 학생에게, 사장이 직원에게, 장교가 사병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반말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는 문화, 반대의 경우엔 존댓말을 사용해야 하는 문화, 이는 나이와 성, 직급에 따른 권력 차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은 다른 어느 사회보다도 ‘말’의 위계가 강한 사회다. 상대와의 관계에 따라 말의 높임과 낮춤이 정해지고 그 안에도 극존칭, 존칭 등 ‘높임’의 체계 또한 복잡하다. 사람들의 대화만 잠시 들어도 그들이 어떤 관계이며, 누가 권력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한국에선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무조건’ 반말을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것이 암묵적인 전제로 깔려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건, 공적인 관계로 만나는 사람이건 상관없이 말이다. 학교에서 교사가 수업시간에 반말을 사용하는 것이 그 한 예다. 심지어 우리 사회는 나이에 따른 위계를 ‘예의’라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교사에게, 직장 선배에게 ‘존대해줄 것’을 요구하는 학생이나 후배는 도리어 “예의가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평등한 관계위해 상호 존대 필요 일방적으로 한 쪽이 반말을 사용할 경우 ‘이 자식’, ‘야’ 등의 무례한 말을 사용하기가 더 쉽고 욕설이나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도 그만큼 쉽다. 상대를 나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 내가 무시해도 좋은 사람으로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체벌하면서 존댓말을 사용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해봐도 존대하는 문화의 필요성을 알 수 있다. 서울시 대안교육센터의 하자작업장 학교 담임을 맡고 있는 변형석씨는 “회의든 수업이든 공적인 자리에서 나이의 많고 적음, 권력의 우위에 상관없이 서로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라고 주장했다. 초등학교 교사 김민주(가명, 24세)씨도 "아이들을 혼낼 때 반말을 사용하면 나도 모르게 더 심한 말이나 학생들을 무시하는 말을 내뱉게 되는 걸 발견한다”며 “그래서 가능하면 존댓말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교사가 ‘-해라’체 대신 ‘-ㅂ니다’체로 수업을 진행할 때 학생들은 존중 받는 느낌을 받게 된다. 고등학교 3학년인 이혜림 학생은 "아무리 선생님과 학생이라지만, 수업 시간에는 존대해주면 좋죠. 반면에 함부로 말하는 선생님들 보면 반발심이 생겨요"라고 말했다. 또 올해 대학생이 된 효진씨는 "고3과 대학교 1학년은 1년 차이 밖에 나지 않는데 학교에서 받는 대접은 너무 다르다"며 학생을 인격체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중등교육에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반드시 반말을 쓰면 존중하지 않는 것이고 존댓말을 쓰면 존중하는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또 모든 관계에서 존대를 하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과 위계에 따른 차별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상호존중’의 방법으로서의 ‘상호존대’는 강조할 만 하다. 특히 ‘배움의 장’인 교실에서는 더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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