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이혼서류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몽골 여성들의 ‘끝나지 않은 이혼’몽골을 방문해서 한국인 남편과의 결혼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귀환한 일곱 명의 귀환 이주여성들과 한 명의 자녀를 인터뷰하였다. 이 여성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에게는 ‘법률상으로 이혼’ 문제를 깨끗이 정리하는 게 시급한 문제였다. 몽골에 다시 돌아와 산 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이 몽골 여성들은 ‘법적으로 아직도 한국 남편과 이혼이 끝나지 않아서, 법적으로 이혼이 종료’되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서류상으로 이혼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몽골에서 살아가는 데 곤란을 겪고 있는 N씨의 사례를 중심으로 귀환 이주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N씨는 2005년에 한국인 남편과 결혼을 해 한국에 입국해서 살았다. 그러나 남편 가족의 감시와 통제에 시달리다가 결혼 1년 만에 몽골로 귀환하였다.
N씨는 몽골에서 한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 친구가 “너 대학 졸업하는데 지금 할 일도 없고 하니까, 내 남자친구(한국인) 친구가 이번에 여기 오는데 한번 만나보고 결혼도 생각해봐. 한국에 가면 그 사람이 학교도 보내주고 다 해준다”고 이야기했다. 친구는 당시 결혼중개업소를 하는 한국인 남성과 사귀던 중이었다.
N씨는 친구가 주선한 자리에서 한 남자를 소개받았다. 그때 나이가 22살이었다. 학업을 더 계속하고 싶었던 N씨는 ‘정말 공부시켜주고 학교 다니게 해주면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그 남자는 ‘오케이’했다. 그 말만 믿고 결혼을 했다.
당시엔 남편이 될 사람의 나이도 물어보지 못했다. 막상 결혼하고 보니 22살인 본인보다 22살 많은 44살이었다. 결혼 후 5개월 있다가 비자가 나왔고 한국에 입국했다.
N씨는 자신의 결혼에 대해 한마디로 “사기 결혼”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와보니 처음에 얘기했던 것과 달랐어요. 원래는 화물차 운영 사업을 한다고 했어요. 자기가 사장이고 직원 몇 명 있다고 했는데. 그냥 자기 화물차를 운전하는 사람이었어요. 집도 없이 원룸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어요. 나한테 핸드폰도 안 주고. 엄마에게 연락을 해드려야 하는데 전화도 못 하게 했어요. 2주 지나서 내가 집에 전화해야 한다고, 엄마랑 통화해야 한다고 조르니까 한번 하게 해주고. 또 2주 동안 연락을 못 하게 해서 내가 울고불고…”
N씨의 시집 식구들은 수시로 N씨가 사는 곳에 와서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했다. 결혼생활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임신 독촉”이었다.
“한국에 온 지 이틀 만에 한국말도 모르는데 시어머니가 산부인과에 데리고 가서 검사를 받게 했어요. 그러더니 (남편과 만난 지) 한 달 지났는데 왜 임신이 안 됐냐고 계속 물었어요. 얼마 안 돼서 또 산부인과에 가야 했어요. 집을 뒤지면서 내가 피임약을 먹는지 확인하고요.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몽골에서 대학을 나온 N씨에게 계속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남편은 학업은커녕 N씨가 한국말을 배우러 “어학당에 다니는 문제로 말다툼”이 잦았다. 처음에는 남편이 N씨를 모 대학교 어학당에 보냈는데, 어머니와 여동생들이 왜 그렇게 잘 해주냐며 반대했다고 한다. 밖에 돌아다니게 한다면서. 결국, 중단되었다.
아침 6시에 남편이 밖으로 나가면 시어머니는 집에 와서 돌리고 있던 세탁기를 끄고 통에 든 옷들을 빼서 당신이 손빨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손으로 세탁을 하라’고 시켰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N씨의 옷과 바지 각각 한 벌씩, 신발 한 켤레만 남기고 다른 옷들은 몽땅 가져가버렸다.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결국 N씨는 집에서 못 나가고, 텔레비전을 보며 한국어를 배워갔다. 한국말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할 무렵, 어학당 문제로 남편과 어머니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돈 많이 들였잖아. 천오백만 원 주고 애를 샀잖아. 이천만 원 정도 돈 들였는데 애가 왜 저러냐?”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N씨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렇게 살기는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결혼이주여성들의 한국인 남편들은 N씨의 사례처럼 경제상태가 취약한 경우가 많은 편이다. 시댁이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경우에는 부부에게 간섭하면서 이주여성이 도망갈까 봐 외출이나 전화 연락을 통제하기도 한다. 이주여성들은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한국어를 배워야 하는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가지 못하게 하는 등 한국어를 배울 기회를 차단하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등록증조차 없이, 여권도 남편 손에
“너무 힘이 들어서 서울에서 살고 있는 친구네 집으로 도망갔어요. 그런데 남편이 계속 전화해서 다시 집에 들어갔어요. 근데 싸우면 ‘나가라’면서 나한테 물건 집어 던지니까 또 도망쳤어요. 남편이 다시 안 그런다고 해서 세 번째 돌아갔는데. 안 고쳐졌어요. 마지막에 집을 나왔을 땐 몽골에 귀국하려고, 돈 벌려고 수원에서 일하다가 단속에 걸려서 왔죠. 단속 걸리기 전에 식당 설거지, 이삿짐센터에서 청소, 짐 싸는 것도 하고 주방 정리도 하며 살았어요.”
N씨가 미등록자 신분으로 단속에 걸린 것은 남편이 그녀의 체류 연장 신청을 안 해주었기 때문이다. 체류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출입국관리소에 갔을 때, 담당 직원은 남편이 작성한 가출신고서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처음에 집을 나갔을 때 남편이 가출 신고를 했고, N씨가 다시 집에 들어왔지만 이를 시정을 하지 않아서 계속 가출 신고 상태였다.
결국 N씨는 수원 외국인보호소에 2주 있다가 몽골로 강제 출국당했다. 여권도 없는 상태였다. N씨는 남편과 다시 살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인터뷰하면서 N씨의 사례가 정말 황당했던 것은, 결혼해서 한국에 입국했을 때 외국인등록증조차 신청하지 않아 아예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혼생활을 하는 중에는 한 번도 출입국관리소에 간 일이 없었다. 여권도 남편이 갖고 있었다. 몽골로 돌아갈 때 주한몽골대사관에서 임시 여권을 만들어주어 출국할 수 있었다.
원래는 입국 3개월 안에 의무적으로 발급을 받아야 할 외국인등록증인데, 한국인 남편이 신청해주지 않아서 본인이 결혼 초기부터 귀국할 때까지 미등록상태인 것을 모르고 있는 여성들도 종종 보았다.
N씨의 얘길 들으며 더욱 안타까웠던 점은, 말도 안 통하는 한국에 와서 홀로 어려움을 겪을 적에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나 기관 등을 소개받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정보도 없었고, 남편 가족들의 통제가 심해서 그런 곳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유일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건 같은 동네에 살았던 몽골 여성들뿐이었다. 이들은 한국말을 하나도 못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남편 가족의 통제 때문에 같은 동네 살면서도 자주 만나거나 가깝게 지낼 수는 없었다. 집을 나온 후에도 역시나 한국에 유학을 온 몽골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받거나 숙소를 제공받았다. 한국 사람과는 접촉해 본 적이 없다.
몽골로 돌아온 후에도, 남편은 N씨를 다시 한국에 데리고 가고 싶어 했다. N씨는 “몽골에 한 번 와, 다시 잘 해보자” 했고, 남편이 몽골에 와서 한국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N씨는 “한국에서 미등록상태로 단속에 걸려온 기록이 남아 있어서” 비자를 발급받지 못했다. 그 후 남편은 연락이 끊어졌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났다. 몽골로 귀환한 N씨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N씨는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잊기 위해 노력했고 몽골에서 열심히 살았다. 그녀는 몽골주재 한 한국 회사에 다니면서 한국말을 배웠고, 6년 전부터는 중국에 있는 한국 무역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남자친구(한국인)를 만났다. N씨는 지금 임신 4주째이고 두 사람은 결혼하길 원한다. 한국 남자친구와 결혼해서 또다시 한국에서 결혼이주여성으로 살아가는 게 걱정되지는 않은지 묻자, “지금은 사랑해서 결혼하는 거니까 (상황이) 달라요”라고 말했다.
“남자친구는 내가 원한다면 중국에서 살던가, 아니면 몽골에서 살아도 자기는 좋다고 해요. 저는 결혼하면 한국으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다시 중국에 있는 일터로 가고 싶어요.”
문제는 N씨가 법적으로 이혼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몽골에서 재혼을 하려면 남편과 이혼한 서류, 한국에서 이혼했다는 법원 판결문이나 이혼신고서가 있어야 한다.
“제가 이혼이 되어야 그 사람과 재혼을 할 수 있어요. 한국에서 이혼서류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N씨처럼 이혼을 하지 않고 미등록 신분으로 있다가 잡혀 추방되거나, 이혼한 후 체류권 없이 미등록상태로 있다가 몽골로 귀환한 경우 한국에서 비자가 발급되지 않는다. 이혼하지 못한 채 추방된 여성들은 다시 한국으로 가서 이혼 문제를 해결하고 올 수가 없는 것이다. 남편의 현재 상태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고, 남편과 통화해 이혼서류를 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도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또 남편이 응해줄지 어떨지 몰라 연락하기 겁난다고 하는 여성도 있다.
한국의 법률상으로는 배우자가 부재할 경우, 공시송달로 이혼소송장을 보내서 배우자의 부재를 증명하고 혼자서도 이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몽골의 법률은 다르다. 배우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도 혼자서는 이혼을 할 수 없다. N씨는 남편이 자신과 이혼했는지 여전히 혼인 상태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N씨는 한국에서 있을 때 알게 된 몽골 친구들과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도 처지가 비슷하다. 사실상 이혼한 상태지만, 서류상으로 이혼이 정리된 것은 아니다.
“친구들한테 ‘너희들 어떻게 됐냐, 난 이혼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 그러면 ‘아직 우리도 그대로 있잖아. 네가 알면 우리한테도 방법을 알려줘’라고 말해요.”
한국인과의 결혼생활이 힘들어 자의든 타의든 본국으로 귀환을 했으나, 그녀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혼 때문에 새 출발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몽골로 돌아온 여성들이 그곳에 재정착해 살 수 있도록
몽골에서 만난 귀환 이주여성들은 전부 다 한국에서보다 몽골에서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몽골에 돌아온 후 취업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자녀가 있는 경우 혼자 힘으로 키우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친정 부모나 형제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들은 대부분이 고향에 돌아와 부모, 형제를 만나 같이 살고 있고, 무엇보다 한국의 결혼생활에서와 같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행복하다고 했다.
한국에서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경우엔 아이 출생신고도 엄마 앞으로 되어 있어 몽골의 복지 시스템에서 적은 지원이나마 받고 있다. 물론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것은 벅찬 일이고 본인과 자식의 건강문제 때문에 늘 걱정이다.
이주여성의 귀환은 자발적 귀환과 강제적 귀환이 있다. 몽골에서 만난 이주여성들의 경우 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강제적 귀환 성격이 강했다. 형식이 자발적인 경우라도 실제로는 몽골에서 살고 싶어서라기보다 한국에서 도저히 살 수 없게 되어 떠밀리다시피 귀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사회는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와서 살았던 이주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귀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한편으로, 결혼이주여성을 되돌려 보낸 한국 사회는 귀환한 여성들이 본국에서 다시 정착해 살아갈 방안을 함께 모색할 책임이 있다. 몽골에서 확인한 바로는, 이를 위해 가장 선행되어야 할 과제가 귀환 이주여성들의 ‘아직 끝나지 않은 이혼’을 마무리 짓는 일이다. (통역: 나랑토야)
*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가 본국으로 되돌아간 <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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