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병역, ‘거부’와 ‘복무’ 사이

페미니즘과 군대 그리고 여군의 위치를 고민하다

심아정 | 기사입력 2020/06/08 [10:28]

여성들의 병역, ‘거부’와 ‘복무’ 사이

페미니즘과 군대 그리고 여군의 위치를 고민하다

심아정 | 입력 : 2020/06/08 [10:28]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발굴한 여성의 역사: 가시화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자취와 기억을 공적 담론의 장으로 건져 올리는 여성사 쓰기. 이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페미니스트 평화운동가이자 연구자인 신시아 코번(Cynthia Cockburn)은 여성들 사이의 ‘위치성’이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여성이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전쟁과 민족주의, 평화에 대한 사유가 다르고 활동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민족주의를 평화운동의 자원으로 여기는 여성도 있지만, 민족주의는 전쟁을 자극하는 광기라며 비판하는 여성도 있다. 남성과 동등한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해 군대에 가는 여성도 있고, 군대 없는 세상을 위해 활동하는 여성도 있다.(신시아 코번 지음, 김엘리 옮김 『여성, 총 앞에 서다』 삼인, 2009) 만약 이분화된 두 극단의 확고한 입장만을 대비시켜 언급한다면, 모순적인 현실을 떠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이 그 사이를 무한 왕복하며 머뭇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지우게 된다.

 

▲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지음, 여지우/최정민 옮김, 전쟁없는세상 엮음 『병역거부: 변화를 위한 안내서』(경계, 2018) 출간 북콘서트 중에서.   ©전쟁없는세상

 

변희수 하사의 눈물과 여군의 위치

 

필자는 페미니스트로서 병역거부 운동을 지지하며, 군대가 없어져야 한다고 외쳐온 사람이다. 그래서 트랜스젠더 여성 변희수 하사가 여군으로서 복무를 이어갈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군인이 될 기회를 달라”며 눈물의 거수경례를 하던 날, 순간적으로 당혹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가 군대 내에서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고 성소수자의 자리를 확보하는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곧 납득이 되었다. 무엇보다 변 하사가 휴가 중에 성확정 수술을 받고 돌아오도록 대대장이 허락했다는 것, 그리고 동료 군인들이 그녀를 지지해 주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진심으로 기뻤다.

 

하지만 결국 육군은 변 하사를 상대로 의무심사를 진행했고, ‘심신장애 3급’으로 현역복무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하여 강제 전역을 명령했다. 한국의 군대는 견고한 성별 이분법과 ‘정상적 신체’라는 편견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존립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그러나 변희수 하사의 주장은 한국의 군대로 하여금 성소수자와의 공존을 고민하게 만들었고,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을 둘러싼 논쟁과 함께 우리 사회에 ‘여성’의 범주를 되묻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각각 여군의 일상을, 여대생의 안전을 위협하는 ‘침입자’라는 낙인을 찍으려는 움직임도 포착되었다.

 

변 하사의 강제 전역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군들의 거부를 그 이유로 들었다. 과연 그럴까? 이와 관련해 군인권센터 소장은 tbs 교통방송 라디오 ‘김지윤의 이브닝쇼’와의 인터뷰(1월 22일)에서 현역 여군들의 반응을 이렇게 전했다. ‘언제부터 우리 인권을 그렇게 걱정해줬냐, 남군하고 생활하는 게 불편하면 우리를 위해서 남군들 다 전역시킬 거 아니잖나. 소수자끼리 싸움 붙이는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는 것.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일단 숙소는 영외 숙소이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 그리고 화장실을 같이 쓰는 건, 어차피 다 칸막이가 돼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진 순간, 변 하사를 받아들이는 데는 ‘영외’와 ‘칸막이’라는 조건이 붙는구나 싶었다.

 

그날, 여군의 ‘위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위치성’은 권력 관계를 암시하는 말이다. 한 개인이 어떤 계급, (인)종, 젠더, 장애의 차원에 위치한다는 것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다른 위치를 가지면서, 권력이 상대적으로 강하거나 약하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 신시아 코번 지음, 김엘리 옮김 『여성, 총 앞에 서다』(From where we stand) 표지 이미지. 삼인, 2009


신시아 코번이 쓴 『여성, 총 앞에 서다』의 원제목은 From where we stand(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이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서 있는 곳’(where we stand)은 변화가 가능하고 고정되지 않은 자리에서 동시에 여러 질문을 향해 열려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여기에 서 있다고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어떤 곳으로부터’(from where)라는 표현은 여러 일들이 일어나는 변화의 지평을 바라볼 새로운 해석이 필요함을 환기한다. ‘서다’(stand)라는 표현은 요지부동의 태도가 아니라, 불확실하고 임시적인 거점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서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사유는 다른 자리에 서 있는 여성들이 어떻게 서로의 자리를 비추며 당면한 공동의 문제를 함께, 그러나 다르게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페미니즘이 모든 차별적 구조와 권력에 저항한다고 할 때, 페미니즘과 병역거부 운동 그리고 여군은 어디까지 함께 갈 수 있고, 어느 지점에서 어긋나는가. 병역을 거부하는 여성들과 군에 복무하는 여성들이 다른 위치성에서 함께 도모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예비역 여군이 군대를 반대하는 여성에게 건넨 말 ‘동지적 관점’

 

여성들의 병역거부 운동 사례를 발굴하는 기사를 쓰면서 예비역 여군 두 사람과 인터뷰했다. 병역거부 운동을 지지하더라도 징병제와 모병제는 다르게 다뤄져야 하고, 여군 또한 하나의 직업군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편집자의 조언을 듣고 여군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상사에 의한 성폭력 피해나 ‘최초로 ~이 된 여군 아무개’라는 뉴스 이외에, 여군의 일상과 그들이 마주한 문제들에 관한 이야기는 좀처럼 들을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 육군부사관 모집 포스터.  (출처: 대한민국육군)


여군에 대한 논의는 모병제, 즉 여성을 직업군인으로 선발하는 문제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김은경 씨는 말문을 열었다. 군대를 ‘노동’의 문제로 접근하니 다른 이야기들이 들렸다. 여군의 70~80%가 조기 퇴출된다는 점에서 직업성이 보장되지 않는 문제, 사관학교 중심의 인사관리가 갖는 편향성, 국방부가 정당한 근거 없이 여군의 숫자를 통제하는 문제 등 젠더 불평등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기혼 여군의 70%가 남군과 결혼한다는 통계를 말하던 중, 육아휴직은 ‘여군’의 문제가 아니라 ‘군’의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었다. 김 씨는 “육아휴직이 마치 여군만의 문제인 양 질문하면 여군이 독박을 쓰는 거죠”라고 말했다. 여군이 군대에서 소수라는 사실을 당연한 전제로 던지는 질문 대신에, 여군의 수를 전체 군의 몇 퍼센트로 제한한다는 것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녀들은 군대가 생산하는 성별 이분법에서 기인하는 부당한 노동조건에 맞서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의 군대는 이러한 성별 이분법에 의해 유지되고 강화된다는 사실이 그 이면에 버티고 있다.

 

또 다른 예비역 여군 C도 자신의 경험을 나누어 주었다.

 

“일찍 결혼한 친구(여군)들은 일과 가정, 양육을 위해서 굉장히 애를 써요. 양립하는 것 자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양립을 강요하는 것은 나를 상실하게 만들더라고요. 그런데 오히려 군에서는 그런 여성들을 홍보의 대상으로 삼아요. 군대에서 진급하면서 자녀도 세 명이나 키운다고. 그러면 그 속에서 또 다른 여성들이 희생되잖아요? 친정엄마, 시엄마, 자녀까지도 희생시켜가면서 군 생활을 하고 있고, 그것을 평화롭고 행복한 것으로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물론 시대가 바뀌면서 많이 보완되었지만, 여전히 슈퍼우먼을 강요하고. 또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남성화되지 않으면 안 되고. 조직의 틀에 나를 맞추지 않으면 생존이 곤란해지기 때문에….”

 

C의 이야기가 맞벌이 부부로 아이를 키우는 내 친구의 고민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새롭게 다가왔다. 반군사주의라는 거대 담론에 함몰되어 정작 무엇을 못 보고 있었는가. 수많은 일화(逸話)도 자료가 될 수 있다면, 이제 통계 바깥에서 여군들의 이야기를 듣고 쓰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 감사 인사를 전하고 여성들의 병역거부 운동에 대해 쓴 글을 보냈다. 이튿날 새벽에 김은경 씨에게서 답신이 왔다. “하는 일이 달라도 ‘동지적 관점’으로 보내준 글을 읽었다”며 여군 관련 자료들을 공유해 주었다. 그녀가 내게 건넨 마음, ‘동지적 관점’은 무엇일까. 이 물음을 안고서 각기 다른 ‘위치성’을 가진 여성들이 저마다 다른 곳에서 다른 시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군사화와 전쟁을 접한 경험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헌혈 캠페인으로 한국전쟁에 동원된 미스 재팬

 

패전 후, 점령주둔군에게 살던 집을 접수(接收)가옥으로 몰수되는 경험을 한 야마모토 후지코(山本富士子)는 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년 당시 18세였다. 전쟁 발발 3개월 후 제1회 미스 재팬으로 뽑히자마자, 일본적십자는 유엔군 진료소에서 그녀의 헌혈을 시작으로 적극적인 ‘전시 헌혈 캠페인’을 벌였다. 이후 ‘유엔군 부상병과 한국 난민구조를 위한 모금’을 실시하고, 아사히신문에는 헌혈을 호소하는 광고가 실렸다.(『적십자가정신문』 1950년 10월 12일자) 미스 재팬 대회는 애초에 구호물자에 대한 감사를 전달하기 위해 미국에 보낼 친선대사 선발을 목표로 시작되었다.

 

이웃 나라의 전쟁을 위한 헌혈은 국경을 넘어선 인도적 행위로 비추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시기에 연합국최고사령부(GHQ, General Headquarters) 점령하에서 한국전쟁을 지탱하는 병참기지로써 일본이 ‘참전’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헌혈 캠페인은 당사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일련의 전쟁 개입 행위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한국전쟁 시기에 수송함에 실려 바다를 건넌 젊은 일본 여성들의 피는 병사들의 사기를 높인다는 식의 이야기가 회자되기도 했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야마모토 후지코의 경험은 전시에 국가가 여성을 동원하는 방식의 한 사례로 다뤄질 수 있다. 그런데, 후일담에 귀를 기울여 보자.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그녀는 1963년에 대형 영화사 다이에이(大映)와의 계약 변경을 앞두고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프리를 선언했다. 기자회견장에서 그녀는 “이번 일로 영화에 나올 수 없게 되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 입장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그게 더 살맛 나고 인간적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격노한 사장은 야마모토 후지코를 타사의 영화나 무대에서도 완전히 배제하려 들었고, 이 사건은 당시 일본 국회에서도 거론될 정도로 인권 침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계기가 됐다.(별책 보물섬 2551 「일본의 여배우 100명⌟ p.39 참조)

 

미인대회 출신으로 헌혈 캠페인에 동원된 야마모토 후지코의 수동성에만 주목하면, 그녀의 삶에서 어떤 사건 ‘이후’의 경험 혹은 그 사건이 일어난 순간에 드러나지 못하는 ‘이면’을 놓치고 만다. 소여(所與)된 자리 혹은 수동성 속에서도 길어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정체성을 어느 한 시기에 국한해서도 안 되고 하나로만 단정 지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후일담은 계속되어야 한다.

 

일본적십자 간호사들의 병역거부

 

전후 일본적십자는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 국가의 봉사구호기관으로서, 또 문민을 위한 활동을 하는 공공기관의 보조기관으로서’ 인정되어 국제적십자의 재가입이 승인되었다. 그러나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연합국최고사령부의 동원 명령을 받은 일본적십자사는 ‘아카가미’(赤紙)를 보내 간호사들을 소집했다.

 

▲ 일본적십자 간호사에게 사용된 소집영장, 아카가미. (출처: 일본 시사닷컴뉴스)


아카가미는 1927년의 병역법 성립 후에 사용된 붉은색 소집영장으로, 일본적십자의 간호사들에게도 사용되었다. 일본적십자 간호사학교를 졸업하면 10년에서 15년간 의무적으로 봉사하게 되어 있는데, 일본적십자는 이 제도를 이용해 간호사들을 한국전쟁에 동원했다. 1946년에 제정된 일본 헌법 제9조에는 군대를 보유하지 않으며 전쟁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더이상 사용될 리 없는 아카가미의 귀환은 그 자체로 국가가 앞장선 명백한 위헌 행위에 다름 아니다.

 

사가현(佐賀県)에 있는 국립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 다섯 명은 아카가미를 받아들고 다른 나라의 전쟁에 동원되기는 싫다며 울었고, 결국 병역을 거부했다. 특히 과달카날섬에서 종군했던 한 간호사는 “이제 막 돌아왔는데 더이상 전쟁에 나가기 싫다”며 그 자리에서 아카가미를 찢어버렸다. 일본적십자 관리는 “나라를 위해 기꺼이 일해 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일본적십자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며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니시무라 히데키 지음, 김정은 김수지 강민아 심아정 옮김,『‘일본’에서 싸운 한국전쟁의 날들』 논형, 2020년 근간)

 

그러나 병역을 거부하지 못했던 열여섯 명은 후쿠오카시(福岡市) 중심부에서 약 30km 떨어진 유엔군 제141 병참병원에서 복무하게 되었다. 유엔군은 일본에 14개의 야전병원을 개설했는데, 한국전쟁의 격화로 개설된 제141 병참병원은 환자 수가 약 1,500명 정도 되는 대규모 병원이었다.

 

마키코 지에코(牧子知恵子, 당시 25세)의 기억에 의하면, 야전병원에는 간호사가 1,000명 정도 있었고 의사는 모두 미국인이었다. 환자 중에 한국인 병사는 없었으며, 미군 환자의 대부분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게이트를 통과할 때 남성 경비병이 몸수색하는 것이 제일 싫었다고 한다. 일본 영토에 세워진 야전병원이었음에도, 간호사들은 출입할 때 반드시 여권을 제시하고 몸수색을 받아야 했다.

 

▲ 1931년 만주사변 당시 동원된 일본적십자사 간호사들.  ©the German Federal Archive


간호사들이 경험했던 ‘야전병원의 딜레마’에 대해 현재 전(全)일본적십자노조연합회 중앙 부집행위원장 이가라시 마리코(五十嵐真理子)는 “전쟁의 협력자가 되어 나의 간호로 건강을 되찾은 환자를 다시 전장(戰場)으로 돌려보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험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종군간호사의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경험이 어떤 연속선 상에 놓여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 현재 일본 각지에서 적십자병원이 자위대와 합동훈련을 하는 것을 문제 삼는다. 명목상 재난대비훈련이라고는 하지만, 유사시(有事時)를 가정한 무기체계와 설비 속에서 받는 군사 훈련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녀는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여 동맹 관계에 있는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가담하게 된다면, 문민 통제(civic control)가 불가능한 제도상의 한계로 간호사들은 선배들이 겪은 무참한 경험을 다시 겪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가라시 마리코, 「백의를 다시 전장의 피로 더럽히지 않기 위해 - 종군간호사의 역사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생각한다」, 『月刊保団連』 No.1183, 2015년 3월)

 

이가라시 마키코는 ‘안전’을 내세운 재난대비훈련 혹은 국가가 말하는 ‘안보’가 결코 자신들의 ‘안녕’과 직결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안전이 무엇인지 되물어야 할 때다. 변희수 하사의 여군 복무 또한 여군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건으로 회자되었다. 과연 안전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트랜스젠더 여성의 수용을 거부한 군은 여성에게 정말 안전한가?

 

징집 대상이 아닌 여성들이 병역거부 선언을 한 이유

 

병역 의무가 없는 한국 여성들이 병역거부 선언을 한다는 것, 젠더화된 사회에서 여성들이 ‘지지자’ 혹은 ‘조력자’가 아닌 ‘당사자’로서 병역거부를 선언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2004년에 터키 최초로 병역거부 선언을 한 페르다 울체시는 “지금까지의 병역거부는 의무 당사자인 남성들과 직결된 문제였으며, 그 문제를 정의 내리고 틀을 만든 것도 그들이었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그녀는 군대와 병역 의무를 넘어서는 확장된 의미의 병역거부를 주장했다. 또한 여성들의 병역거부 선언은 “이러한 투쟁에 참여하는 이유를 우리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지음, 여지우/최정민 옮김, 전쟁없는세상 엮음 『병역거부: 변화를 위한 안내서』 경계, 2018)

 

“군대의 담장 안에만 머물지 않고 일상을 지배하는 군사적 세계”를 거부했던 그녀의 목소리는 2018년 8월 30일, 서울의 작은 책방에서 ‘숲이아’의 병역거부 선언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 군대는 (…) 비틀린 남성성을 재생산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것 같아요. 상명하복이라는 위계적 체제에 순응하도록 훈련을 하고 위계질서에 정상성을 부여하지요. 여성, 장애인, 이주민… 비남성은 비정상으로 취급받고요. 또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1인 사람만 징병 대상자로 삼는다는 점에서 성별 이분법을 강화하는 시스템으로 작동을 해요. 성별 이분법적 주민등록시스템에 기반해서 군대가 돌아가지만, 한편으로 성별 이분법 구조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고 봐요. (…) 네팔에 갔을 때 안나푸르나 트래킹 신청서의 성별 표기란에 ‘Third’라는 제3의 성이 적혀 있어서 놀란 적이 있어요. 몇몇 나라는 법적으로 제3의 성을 인정하기도 하죠. 하지만 한국 사회는 군대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쉽게 제3의 성을 인정해 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숲이아는 성별 이분법과 군대가 서로를 강화하고 유지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일상에서 강요되는 지정 성별을 거절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뿐 아니라 징병제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긋기를 통해 끊임없이 1등 시민과 2등 시민 혹은 국민과 비국민을 양산하는 방식으로 이분법적 사회 위계를 견고히 해온 것까지 문제 삼았다. 숲이아의 선언에는 병역거부가 왜 자신에게 고유한 싸움인지, 자기가 겪고 있는 사회적 부조리가 군사주의의 어떤 측면들에 얽혀 있는지에 대해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려는 분투가 녹아 있다.

 

▲ 한국에서 여성 병역거부 선언이 왜 아직 안 나왔을까? 의문을 던지며 병역거부 선언문을 낭독하는 ‘숲이아’와 이에 귀 기울이는 행사 참가자들. 평화살롱 레드북스. 2018년 8월 30일.  (출처: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


“남성이고 싶지도, 여성이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 제가 어떤 존재이든 저 자신을 사랑하고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포착해 가고 있어요. 저는 여성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저의 신체와 제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범주에서 트랜스젠더인 거죠. 너무 쉽게 우리는 타인을 여성으로, 혹은 남성으로 규정해요.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고 편하고 쉽기 때문이죠.”(숲이아의 병역거부 선언문 전문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다. https://bit.ly/3cwwds9)

 

이분법적 세계와 남성화된 사회에 익숙해진 말들을 거절하기. 편하고 쉬운 말들을 버리고 ‘다른’ 말들을 모색하겠다는 숲이아의 선언은 “어떤 존재든 자신을 사랑하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포착”하려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가능했을 것이다.

 

다시, 여성들의 ‘동지적 관점’을 묻다

 

헌혈에 동원되었던 미스 재팬이 추후 노동현장에서 권력적 관계를 거부했던 힘은 일본적십자사의 간호사들이 종군을 거부하거나 군사 훈련을 거부하는 힘과 무관하지 않다. 숲이아가 일상에서 강요된 지정 성별을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를 확보하는 것이 확장된 병역거부 운동의 하나의 사례인 것처럼, 생활 속에 만연한 권력적 관계를 알아차리게 하는 힘은 반군사주의를 견인하는 동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페미니즘과 반군사주의의 동행이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예비역 여군 김은경 씨는 페미니즘 덕분에 여군의 위상도 높아졌다고 말한다. 사실, 성별에 의한 차별이 철폐된 세계는 여군, 변 하사, 그리고 숲이아 모두가 자기다운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세계라는 점에서 공통의 지향점이다. 하지만 군대의 존립 그 자체에 대해서 이들은 상충하는 양극단의 위치에 있다. 그렇다면 병역 ‘거부’와 ‘복무’ 사이에 깊게 패인 협곡(峽谷)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어떤 가능성을 말해볼 수 있을까?

 

서로가 후일담의 청자(聽者)가 되어 준다면, 요지부동으로 서 있던 각자의 자리에선 보이지 않았을 풍경이 아주 조금은 보이게 될 것 같다. ‘듣는다’는 행위 혹은 ‘듣기’의 과정은 서로를 변형(trans)시키기 때문이다. 헤어지면서 예비역 여군들은 필자에게 함께 공부모임을 꾸려보자고 제안했다. 아직은 또렷이 보이지 않는 ‘동지적 관점’은 이렇듯 ‘서로-듣기’의 공통장(場)을 만드는 과정에서 비로소 생성되는 것 아닐까. 불확실하고 임시적인 거점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서 있는 서로를 바라봐 주는 과정 속에서.

 

[필자 소개] 심아정. 독립연구활동가. 동물, 여성, 폭력을 키워드로 공부와 활동을 이어가면서 동두천과 부평을 오가며 미군이 떠난 자리와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난민×현장>, <수요평화모임>, 동물권공부모임 <ALiM:>(Animal Lights Me:), 번역공동체 <잇다>를 통해 대학 바깥에서 새로운 앎과 삶을 시도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상영과 토론의 여정을 기록 중이다. 최근에 쓴 글로는 「어떤 ‘야생화' 돼지의 삶과 죽음-퀴어의 관점으로 침략종 레토릭을 재전유하기」 『문학3』 11호, 2020년, 「‘다른’ 이야기들의 가능성-가해자들의 말하기(김효순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서평)」 『창작과 비평』 2020년 봄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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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y 2022/05/30 [14:22] 수정 | 삭제
  • 젠더를 초월하자면서, 자신은 이주민 장애인 반열의 2등 시민 여성이다? 여성이 울 사회에서 소수자이고 그것도 이주민 장애인 수준의 취급을.받는다는.근거는? 남성은 병역을 독점하여 1등 시민이 된다..?. 그래서 여성도 1등시민 되려고 너도나도 여군지원했나, 아니면 고기방패 ㅋㅋㅋ 군바리새퀴들이라고 조롱했나.
  • asss 2022/05/21 [18:07] 수정 | 삭제
  • 헌법적 관점에서 국방의 의무는 남자의 의무가 아니라 남자 여자 모두의 의무이다. 남자만 의무병으로 징병되는 이 현실에 대한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한 글이라서 전혀 애미가 없다. 소위 페미니즘을 주창하는 자들은. 자신에게 불편한 평등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 adsfa 2020/11/14 [23:48] 수정 | 삭제
  • 비틀린 남성성이 가장 잘 나타는 집단 중 하나가 여초인 간호사 아닌지? 위 아래 할거 없이 인성수준이 뒤섞여 똥물이 된 집단중에 그 비틀린 남성성, 아니 그냥 능력없이 경력대우 받고싶어 아랫사람 하대하고 윗사람에게 살살 기는 비틀린 멍부 인성 쓰래기들은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는 것을 똑바로 직시해야지. '나는 능력있어, 인성좋아'같은 낙관주의로 착각하고 그걸 여자라는 집단으로 확대해석해서 일방적인 남탓 하는 멍청함으로밖에 안보인다.
  • ㅎㅎ 2020/10/07 [15:11] 수정 | 삭제
  •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ㅎㅎ
  • redfjj 2020/08/26 [13:07] 수정 | 삭제
  • 씨발 이게 뭔 개소리야
  • 재모 2020/07/23 [15:28] 수정 | 삭제
  •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 ㅇㅇ 2020/07/18 [02:28] 수정 | 삭제
  • 미드 오픈이요~
  • 굿아티클 2020/07/06 [14:13] 수정 | 삭제
  • 차별과 폭력은 ‘다름 아님’이며, 군대 조직이 이를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반전운동과 병역거부운동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명확한’ 메세지가 읽힙니다. 잘 읽었습니다~!
  • ㅇㅇ 2020/06/25 [15:31] 수정 | 삭제
  • 사회에 도태된 여자들이 이런거 보면서 정신적 자위를 하는구나
  • ㄷㄷ 2020/06/23 [09:19] 수정 | 삭제
  • 어휴 밑에 뭔 화가 저렇게 많이 났대 ㄷㄷ 기사나 꼼꼼히 읽어보셔요~
  • 어이없네 2020/06/14 [17:49] 수정 | 삭제
  • 개소리로 꽉채워놨네. 군바리라 무시하고 그나마 있던 군가산점도 빼앗았으며 스타벅스에서 쿠폰 하나 준다는 것조차 허용안하며 결정적으로 군대에 대해 당연한 차별이라 생각하는 쓰레기 페미들이 무슨 낯짝으로 군대 얘기를 하는건지? 역겹기 짝이 없네. 조두순이 여아복지정책 얘기하는 소리하고 앉았어
  • 바로 2020/06/12 [18:43] 수정 | 삭제
  • 프린트해서 몇번을 다시 읽어보았어요. 너무 좋은 기사네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어서 세미나 자료로도 쓰려고 합니다.
  • 나그네 2020/06/12 [08:33] 수정 | 삭제
  • 페미니즘과 군대거부가 무슨 상관? 수학와 영어가 무슨 상관? 페미니즘은 하고싶은 데 군대는 절대 가기 싫지? 하고싶은 것만 하고 사는 게 정의 ?
  • laystall 2020/06/11 [04:26] 수정 | 삭제
  •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 ㅇㅇ 2020/06/10 [20:30] 수정 | 삭제
  • 조용히 하고 여성 징병제 무조건 시행해야합니다. 장교는 가능한데 사병은 불가능하다? 개소리죠 지금 키공익 158미만이 기준입니다. 평균이상 여성들 전부 현역 가능해요 지금당장 여성도 신검 1급 ~ 7급 받고 여성 징병제 시행해야합니다. 아니면 여성한테 주어지는 참정권 투표권 징병제 국가에선 박탈해야합니다. 병역의무를 안 진다는것은 국민이 아니라는 소리니까요
  • 우와 2020/06/10 [17:27] 수정 | 삭제
  • 최근에 본 기사 중에서 최고의 기사다. 전쟁에 동원되는 여성과 반군사주의 행동에 나서는 여성, 시민권의 영역에서 군에 복무하는 여성 직업군인, 군이 배제한 트랜스젠더 여성. 페미니즘이 이야기하는 여성의 위치성과 운동의 다양한 지향에 대해, 그것도 동지적 관점에서 다루는 글 진짜 멋지고 잘 봤습니다.
  • ^^ 2020/06/10 [11:32] 수정 | 삭제
  • 숲이아라는 분의 병역거부 선언이 있었다는 거 왜 몰랐을까. 세상에는 앞서나가는 여성들이 많구나!
  • 다미 2020/06/10 [11:08] 수정 | 삭제
  • 멋진 논고 잘 읽었습니다.
  • 하하하 2020/06/10 [00:45] 수정 | 삭제
  • 여군과 예비역 여군, 여러나라에서 "이미" 여군병역을 실시하고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한국 여성병역을 "사회환경이 마땅치 않으며 여성의 신체가 근무에 부적합하므로" 위헌이라 판결하였습니다. 참 희한하죠? 부사관과 장교들을 모두 얼굴마담으로 치부한 꼴인데 여전히 어느 여성단체도 이에 대한 항의를 하지 않더군요. 헌재가 참 페미니즘을 꿰뚫어보았다는 생각은 합니다. 전부 사회탓, 신체탓.
  • woo g y 2020/06/09 [10:30] 수정 | 삭제
  • 이 기사 쓰신 분 정말 존경합니다. 반군사주의나 페미니즘 운동에서 이만큼 정리된 내용은 접한 적이 없습니다. 운동 내에서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jQuery17209879369134481621_159 2020/06/09 [02:40] 수정 | 삭제
  • 웃긴데 뭐가 웃긴진 말 못하는 그분들 ㅎㅎ
  • 밀리 2020/06/08 [18:21] 수정 | 삭제
  • 납작한 댓글 읽다가 웃음이 빵터져서... ㅋㅋ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을 깜박했는데요. 기사에 나오는 여군들과 예비역 여군들 참 멋지네요. 군의 문을 두드린 여성과 군대를 반대하는 여성 간의 동지적이라는 표현이 너무 깊이 와닿았고 반가운 말이 아닐 수 없네요. 요즘 같은 때에 특히나요.
  • jQuery17205869224371592425_159 2020/06/08 [18:04] 수정 | 삭제
  • 나의 신체는 여성이지만 내면은 군대에서 살아남느라 남성화되었기때문에 트렌스젠더나 마찬가지다? 참 뇌절하는 방법도 여러가지네요 ㅋㅋㅋㅋ 이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는 페미니즘의 대전제가 공격받으니 어떻게든 성소수자랑 엮어서 '우리는 아직도 약자다!' 라고 주장하는 사고회로가 역겹습니다. 제생각엔 100년 뒤에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고 하고있을 것 같네요. 페미니스트 여성은 자신들이 '약자' 라는 사실로부터 힘을 얻으니까 ㅋㅋㅋㅋ 약자라는 타이틀이 참 포근하고 폭신폭신하죠? 본인들의 잘못을 모두 거기다 돌리면 되잖아요?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때문에 잠재성을 발휘하지 못했고, 억눌렸고, 온갖 나쁜일이 일어났다... 이게 전부 다 유리천장때문이고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이다.. 그게 피해의식이라는거에요. 본인이 자신의 여성성을 당당하게 여기지 못하는데 남들보고 추켜세워달라구요? 너부터 스스로 자신의 성을 긍정하고 자신감을 가져야하지 않을까요? 남성들은 기득권이라서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사회에 살고있나요? 남성성의 구조를 가진 사회가 남성에게 호의적일거라는 순진해빠진 생각좀 버리세요. 오히려 남성의 사고방식을 잘 알고있기때문에 더욱 악의적이고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사회와 구조에 문제가있다면 그것을 보편적인 성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바꾸고자 노력해야지, 모든 문제를 '남성 중심의 사회' 탓으로 돌리는 것 만큼 멍청한 일도 없습니다. 이런 행보때문에 페미니즘이 여성우월적 이념이라는 비판을 받는겁니다. 다르게 말하면 니들 안에 있는 반-남성적 사고방식을 감추지 못한거죠. 제발 사회과학자가 되어주세요. 우월주의자가 되지 마시구요.
  • jQuery17209413619930398984_159 2020/06/08 [17:39] 수정 | 삭제
  • 비틀린 남성성? 군대 최 말단에 위치한 병사들의 100%가 징병된 남성들이니 남성성이 기초가 되고, 끌려와서 ㅈ같으니 비틀린거죠. 그게 불편하시면 니들이 입대해서 바꾸던가. 고작 씨부린다는게 병역거부? 속편한소리 하고 자빠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군의 반 이상이 장교라는건 아십니까? 전체 보직 수를 따지면 장교는 10만, 부사관은 15만이구요. 이래서 페미니스트들이 욕을 먹는겁니다. 인형놀이, 가족놀이 수준의 사고방식으로부터 한점도 발전하질 못했어요. 1등시민과 2등시민을 나누는건 니들이죠. 뭐가 비틀린 남성성이고 뭐가 올바른 남성성입니까? 군 전체에서 남성에 비해 월등히 높은 계급을 차지하고있는게 여성입니다. 남성이 피라미드 형태라면 여성은 역피라미드 형태로 장교 수가 가장 많아요. 그렇게 유리바닥 딛고일어서서 70%이상의 남성보다 우위에 있는데 뭘 그리 더 갖고싶어요? 아직도 징징거릴게 남았나요? 니들이 징징거릴수록 남성이 여성을 위해 깔아줘야하는 유리바닥은 점차 두꺼워지고, 그만큼 남성은 여성에게 악의를 갖기 시작하는겁니다. 제발 남성을 여성과 동등하게 바라봐주세요. 여성의 노력이 남성의 그것과 동등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유리바닥을 없애주세요.
  • jQuery17206635267232356428_159 2020/06/08 [17:15] 수정 | 삭제
  • 말만 거창하게 써놨지 그냥 '남자싫어' 를 돌려말할뿐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조화롭게 사고하는게 중요하지만 군대의 남초화는 남성은 징병되고, 여성은 지원하지 않는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부터 계속되는겁니다. 본인이 써놓고도 웃기지 않으세요? 여성의 병역거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성이 지는 병역의 의무가 무거워야 공감을 해주기라도 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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