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국적도 못 바꾸게 하고, 양육비도 안 줘요<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이주 배경을 가진 자녀들이 겪는 문제*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가 본국으로 되돌아간 <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편집자 주
몽골 모계 문화 영향으로 여성들은 자녀 데리고 귀환
이번에는 한국 남성과 귀환 이주여성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이 겪는 문제를 둘러보려 한다. 몽골에 가서 만난 7명의 귀환 이주여성들의 경우, 한국에 자녀를 두고 온 경우는 한 명뿐이었다. 대부분 임신한 상태에서 몽골로 귀환했거나, 한국에서 출생한 자녀를 동반해 귀환하였다.
몽골 여성들이 자녀를 데리고 귀환한 것은 엄마가 자녀를 책임지고 키우는 것이 당연한 몽골의 모계 문화의 영향이다. 귀환 이주여성들은 몽골에서 자녀를 양육하며 부모나 형제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 취업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며 동시에 자녀를 키우고 있었다.
귀환 이주여성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이혼이 완결되는 것’(관련 기사: “한국에서 이혼서류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http://ildaro.com/8749)이었고, 또한 ‘자녀들이 몽골에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가 마련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동이 외국 국적을 가진 경우에는, 공공 교육기관에서 무상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는 있지만 육아 수당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양육자가 키우는 데 어려움이 많다. 몽골 정부에서 제공하는 복지 혜택은 아동이 몽골 국적일 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국적의 자녀, 몽골의 복지 혜택 못 받아
몽골에서 태어난 아이는 엄마가 몽골 국적일 경우, 엄마의 국적을 따라 몽골 국적을 취득하고 몽골의 교육 제도나 복지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갖고 있는 자녀의 경우, 몽골 정부의 지원 시스템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귀환 여성들은 혼자서 자녀를 양육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몽골의 복지 제도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자녀가 몽골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 관건이다. 전에는 미성년자이면 이중국적이 허용되었는데, 2012년부터는 이중국적이 허용되지 않게 되었다. 아이가 몽골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한국 국적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아이 아빠의 동의가 필요하다. 문제는 한국에 있는 아이의 아버지가 이에 동의해주지 않거나, 아예 아버지와 연락할 길이 끊겨 국적을 갱신하기도 어려운 경우다.
자녀의 한국 국적이 국가(몽골)의 지원을 받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자녀 이름이 한국식인 것도, 아이들이 자라며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친구 등 주변인들과 거리감을 갖게 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여성들은 자녀가 몽골에 계속 살고 싶어하는 경우, 몽골 국적을 취득하고 몽골식 이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귀환 이주여성이 몽골에서 한국 국적의 자녀를 양육한다고 해서, 한국의 아이 아빠로부터 양육비 지원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 중에서 한국의 아이 아빠에게서 양육비를 받고 있는 경우는 한 명도 없었다. 한국 국적의 아이를 몽골에서 양육하는 여성들은,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 한국에 있는 아이 아빠에게 양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몽골에서 자란 한국 국적의 자녀가 성인이 되면…
한편, 한국 국적을 가진 자녀가 성년이 되면 귀환 여성들은 또 다른 고민에 직면한다.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 한국에 보내야 하는지, 한국 국적을 가진 채 몽골에서 계속 살게 해야 하는 건지, 혹시 자녀를 한국에 보내고 엄마가 자녀를 따라 한국에 가서 일하면서 가족이 헤어지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은 없는지.
엄마와 함께 몽골에 와서, 이제 성년이 된 영이(가명)가 이에 해당하는 경우다.
몽골 엄마와 한국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영이는 8살 때 엄마를 따라 몽골에 왔다. 엄마가 영이를 데리고 몽골로 귀환한 이유는 영이 아빠가 영이에게 폭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영이 엄마는 스물여섯 살이었던 1999년에 몽골에서 한 중개업체의 소개로 한국 남자와 결혼했고 한국에 왔다. 2001년에 임신을 하고서 입덧이 심해 몽골에 와서 딸 영이를 낳았다고 한다. 아기가 태어날 때 남편이 몽골에 왔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아이 여권 등 필요한 서류를 만들었다. 남편이 먼저 한국에 들어가고 3개월 후, 영이 엄마가 딸을 데리고 한국에 들어갔다.
영이가 두 살 될 무렵부터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그조차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영이 엄마는 공장에 다니며 일을 해 돈을 벌었고, 번 돈으로 어린이집 비용을 내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충당했다.
영이 엄마는 남편이 결혼 초기부터 ‘남편 말에 순종해야 한다’, ‘내 말을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며 툭 하면 소리를 질러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몽골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이유는 남편이 딸에게 가하는 폭력 때문이었다.
한국 남편의 폭력적인 훈육에 충격받은 몽골 아내
영이는 한국에서 8년 사는 동안 아빠한테 많이 맞았다. 남편은 아내가 영이에게 1년 동안 젖을 먹이자, 왜 그렇게 오랫동안 젖을 먹이냐며 화를 냈다. 영이가 서너 살이 되었을 땐 울면 운다고 딸의 뺨을 때렸다. 남편은 자녀에 대한 공부 욕심도 많아서 취학 전인 어린 영이에게 한국어를 공부하라며 또 때렸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아빠가 수학을 가르치면서 공부를 못한다고 많이 때렸다. 뺨과 손바닥, 머리를 맞아 상처도 났다.
영이 아빠는 공사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는데 손에 굳은살이 많고 거칠어서 아이를 때리면 영이는 코피가 나고 멍도 들기도 했다. 영이는 아빠 폭력에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탈모 현상까지 생겼다.
영이 엄마는 부모에게 한 번도 맞은 적이 없고, 몽골에서 살면서 아동 학대를 목격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남편은 영이 엄마가 딸을 때리지 말라고 말리면 “(나랑) 살기 싫으면 너 가라. 딸은 두고.”라고 말하며 윽박질렀다. 딸을 두고 가라는 말에 참고 또 참고 살았지만,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된 2008년에 엄마는 영이를 데리고 몽골에 왔다.
영이 엄마는 몽골의 가족들에게도 남편이 딸을 학대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부모님이 충격을 받고 너무 속상해하실까 봐, 그녀는 몽골에 와서도 한국에서 결혼생활을 하며 겪은 일들을 다 얘기하지 못했다.
한국 국적의 딸, 몽골에서 미등록으로 거주 중
영이는 지금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그리고 엄마, 이렇게 네 식구와 함께 살고 있다. 영이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사업을 도우며 생활비를 받고 있다.
지금 영이의 국적은 한국 국적이지만, 영이 엄마가 몽골 사람이고 영이는 몽골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몽골 영주권은 갖고 있다. 다행히도 영이가 몽골에서 태어나 몽골에서 출생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영주권으로 사회복지 혜택은 받을 수 있었다.
몽골에서는 16세가 되면 한국 국적과 몽골 국적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영이 아빠는 딸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몽골 국적을 갖는 것을 동의해주지 않았다. 몽골 국적을 가져야 주민등록증이 나오는데, 아빠가 동의를 안 해 줘서 지난 2년 동안 몽골에서 미등록 상태로 거주하고 있다.
가끔 영이 아빠한테 전화가 오기도 한다. 영이 아빠는 딸과 통화하면서 스무 살이 되면 한국에 돌아오라고 했다. 이번에도 방학 때 한국에 와서 알바를 하고 가라고 했단다. 영이는 어릴 적에 몽골에 온 이후로 한 번도 한국에 간 적이 없다.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하지만 아빠한테는 가고 싶지 않다. 어릴 적 맞은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영이는 엄마에게 가끔 물어본다.
“어떻게 하다가 이런 사람하고 결혼했냐고, 왜 결혼했냐고, 어떻게 만났냐고.”
영이 엄마가 원하는 것은 남편과 법적으로 이혼하고 영이와 함께 사는 것이다. 몽골이든, 한국이든 상관없이 아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만약 영이가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할 경우, 영이 엄마는 비자 걱정 없이 몽골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딸을 보면서 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영이 아빠의 간섭 없이, 한국에서 딸과 함께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제가 한국에 가서, 엄마랑 살 수 있을까요?
영이가 원하는 바도 엄마와 마찬가지이다. “몽골이 됐든, 한국이 됐든 엄마랑 살고 싶어요. 아빠하고는 부모자식 간이긴 하지만 관계를 끊고 싶어요. 물론 그러기가 쉽지 않겠죠, 아빠도 관계를 끊는 것은 안 된다고 할 것 같아요.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하면 끊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의 법제도 상으로 봤을 때 영이의 기대처럼 되기는 쉽지 않다. 부모가 이혼하더라도, 영이가 성인이니까 양육권 문제는 없겠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친권을 가질 것이다. 아버지가 범죄로 기소돼 법원에서 자식들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판결문을 받기 전에는, 아무리 나쁜 아빠라도 자식하고 연결이 되어 있어서 영이의 희망처럼 아빠와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
이제 영이는 몽골에서 산 지 10년 정도 되어 친구들하고 몽골 말로 얘기하고 같이 다니는 것이 재미있고, 경제적으로도 그렇게 힘든 편이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와의 관계 문제만 아니라면, 영이는 “한국 문화와 네일아트 등에 관심”이 많고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고 있다. 한국에서 살아보고 싶은데, 엄마랑 떨어져서 혼자 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영이가 바라는 미래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어떤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지 살펴보자.
첫째, 영이 엄마 아빠는 법적으로 이혼해야 한다.
둘째, 한국 국적의 영이가 한국에서 살기를 선택하고 또 엄마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면, 성년이 된 영이의 초청으로 영이 엄마가 한국에서 3개월 단기체류 비자로 몽골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며 살 수는 있으나 장기 체류는 불가능하다. 만약에 영이가 한국에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경우, 아이를 돌보는 조건으로 장기 체류할 수 있긴 한데, 그건 먼 이야기다.
초국적 자녀 양육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영이가 바라는 것처럼 성년이 된 한국 국적의 자녀가 한국에 올 경우, 이주자인 엄마와 같이 살 수 있는 법적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가족동반 비자로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유엔 이주노동자 협약에는 ‘가족결합권’이 있다. 한국은 이 협약을 비준하기 않고 있기 때문에 이주자의 가족결합권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다. 그러나, 최소한 영이처럼 한국 국적을 가진 귀환 이주여성의 자녀가 한국에 돌아올 경우, 한국에서 엄마와 같이 살 수 있는 가족결합권은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귀환 이주여성들의 초국적 자녀 양육 문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영이처럼 몽골에서 태어난 경우 영주권을 받아 살아갈 수 있지만, 대부분의 한국 국적의 자녀는 몽골 사회보장 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해 자라는데 어려움이 많다.
무엇보다 귀환 여성의 자녀가 그 사회에서 성장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한국 아빠로부터 양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보장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이혼해서 엄마가 자녀를 기르고 있는 경우는 아빠로부터 법적으로 양육비를 받을 수 있으나, 실제로 양육비 이행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물며 타국에 있는 자녀에 대한 양육비 지원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자녀의 국적 변경조차 허락하지 않고, 양육비도 지원하지 않고…. 귀환 이주여성들의 초국적 자녀 양육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이 사회에서 마련될 수 없는 걸까? (통역: 나랑토야)
이 기사 좋아요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국경너머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