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이주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책임은?<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의 역할*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가 본국으로 되돌아간 <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를 짚어보는 이번 기사의 필자는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입니다. -편집자 주
잊혀진 존재들의 ‘귀환’
지난 2018년 1월 25일 베트남의 껀터시에서는 ‘한-베 함께 돌봄센터’의 개관식이 열렸다. 결혼이주 여성의 안전한 이주와 본국 귀환 후의 재통합을 지원해 온 유엔인권정책센터가 설립한 민간지원 기관이다.
이 센터는 한국으로 이주했다가 베트남으로 귀환한 여성들에게 법률 상담, 직업 교육, 자녀 양육 등에 관한 사회적 돌봄을 제공한다. 또한, 한국 국적을 가지고 베트남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체류를 지원한다. 소위 ‘한-베’ 아이들은 이곳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고, 주말에는 베트남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와 한국음식을 함께 만들고 먹으며 한국과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몽골, 필리핀, 태국과 마찬가지로 베트남 결혼이민자 여성의 본국 귀환이 급증하고 있다. 이 여성들과 아이들의 삶은 더 이상 개인적 차원에서 다룰 수 있는 문제를 넘어서고 있다.
귀환한 여성과 아이들은 한국과 본국 모두에서 ‘잊혀진 존재’다. 여성 결혼이주자는 한국 사회의 저출산 위기 해결, 결혼 시장의 성비 불균형과 돌봄 노동의 부족을 메우는 존재로 한국 정부의 동화와 통합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을 떠나는 순간, 한국 영토 안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이유로 관심에서 멀어진다.
그러나 이들은 저기 경계 밖의 존재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경제 제일주의, 성불평등, 인종주의에 의해 지속되고 있는 ‘미완의 민주화’ 상태를 지속적으로 환기하는 우리의 일부이다.
<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기획 연재 글을 관통하며 제기된 피할 수 없는 질문은 귀환한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책임와 책무는 어디까지인가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 질문에 응답해야 하는가?
국민-외국인 배우자 관계를 불평등하게 만드는 신원보증제도
대부분의 귀환 여성과 아이들은 '법적으로 모호한 상태'에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여성들이 독립적인 법적 주체로서 권리의 행사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이를테면 한국인 배우자)이 외국인의 신원을 보증하는 ‘신원보증제도’의 존속과, 여성을 ‘상품’으로 간주하는 국제결혼 중개시스템은 여성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
출입국관리법 제90조 신원보증인의 조항은 국민과 외국인 배우자의 관계를 매우 불평등하고 불균형한 형태로 고정시킴으로써, 한국 국민에게 막강한 준 사법적 권력을 부여해왔다.
외국인 여성이 한국에서 체류 자격을 획득하고 국적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한국 국적의 배우자’가 행사하는 권력은 막강하다. 배우자와의 관계가 순탄하지 못할 때 보증을 철회함으로써 이주여성을 미등록자로 전락시키거나, 결혼 관계 내에서 이주여성의 종속적인 상황을 야기한다.
이는 이혼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기획 연재에서 많이 다뤘듯이 귀환 후 이혼 서류를 받지 못해 본국에서 정식으로 이혼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남편과 연락이 끊겨 자신의 이혼 여부도 알 길이 없는 경우가 많다.(관련 기사: “한국에서 이혼서류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http://ildaro.com/8749) 이혼 서류를 대신 발급받아 여성에게 전달하는 것조차 남편의 대단한 ‘의지’나 ‘배려’를 통해서다.
남편의 신원보증 ‘취소’로 공항에서 되돌아간 몽골여성
내가 2014년 몽골에서 만난 호르초크씨는 한국에 입국해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여전히 한국인과 결혼 상태로 있었다.
호르초크씨는 교사 생활을 하던 중 한국 남성과 맞선을 보고 결혼을 결정했다. 2011년 몽골과 한국에서 혼인 신고를 했고, 2012년 4월 결혼 생활을 위해 한국에 입국하려 했으나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했다. 남편의 신원보증 ‘취소’로 공항에서 몽골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연락처를 바꿔버렸다.
남편이 호르초크씨를 만나러 몽골에 왔을 때, 둘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다. 이후 귀국한 남편이 신원보증을 철회하여 입국을 못하게 한 것이다. 법정 이혼이 되었음을 알았지만, 남편이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이혼을 등록하지 않아 여전히 혼인 상태였다. 남편이 전화번호를 바꿔 이후 연락조차 되지 않기 때문에, 필자는 한국민의 자격으로 그녀의 위임을 받아 이혼 서류를 접수시켜야 했다.
그런 충격적인 일을 겪은 후유증으로 호르초크씨는 수년간 우울증 등 트라우마가 극심해 제대로 일하고 생활하기 어려웠다. 이혼이 확정된 서류를 받아보고 ‘몇 년만에 깊은 덫에서 풀려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주여성이 행사할 수 있는 ‘법으로 명시된 권리’가 없기 때문에 여성들은 출입국, 체류, 이혼 등 이주와 귀환의 전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주여성을 권리의 담보자로
이처럼 외국인과의 관계에서 한국 국민에게 주어지는 준 사법적 권력은 귀환한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귀환한 한국 국적의 아이들이 비자와 여권 연장 등에 있어서 부모의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해 미등록자나 ‘불법’ 체류 상태가 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 있는 아버지가 연락을 끊거나, 연락이 되더라도 관련 서류를 보내주거나 비용을 제공하지 않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각국의 한국 영사관이 귀환 여성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아이의 여권 연장 등에 필요한 ‘법정대리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성년 자녀의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부모 중 한 명이 법정대리인이 될 수 있고, 한국에 체류하는 이주여성 또한 법정대리인으로서 아이의 여권을 발급할 수 있지만, 정작 귀환 여성은 법적 자격을 가질 수 없다.
신원보증제도와 외국인 어머니에 대한 불신은 국민과 비국민의 권력 격차를 강화할 뿐 아니라, 근거 없는 자민족 우월주의를 부추긴다. 이주여성이 법적 자격을 가지고 이에 따른 권리의 행사자가 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는 관련 법과 관행을 개정해야 한다.
귀환 이후에도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나는 엄마
어떤 여성들은 ‘누군가의 부인으로는 고생을 했지만, 귀환은 엄마로서는 잘한 결정이다’라고 말한다. 폭력적이고 무관심한 한국 아버지 밑에서 자라기보다는, 어머니 가족의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귀환 아동을 만나본 나를 포함한 연구자나 활동가들은 이 아이들이 한국과 어머니 나라 모두에서 차별받지 않고 귀속감을 갖는 복합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바람은 아이들이 당면하는 여러 층위의 문제들을 간과하게 만든다. 내가 만나 본 아이들은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지만, 아빠에 대한 그리움, 버려졌다는 상실감,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빈곤, 외국 국적자로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으로 인해 불안정한 정서 발달과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했다.(김현미, 정진성, 서선영, 이은혜, 이수현(2019), 『베트남 거주(체류) 한-베 다문화가정 자녀 실태조사』. 재외동포재단)
귀환 이후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아이 양육은 쉽지 않다. 아이의 최선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체류 자격, 학교 입학, 의료보험 등의 문제는 구체적이라 오히려 해결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과 아이의 심리적인 문제는 ‘묻어둔다’. 여성들은 한국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누구에게도 말 해본 적이 없다. 아이들은 왜 ‘한국 아빠는 연락을 하지 않는가’를 묻지 않는다.
게다가 놀랍게도 많은 수의 아이들이 어머니와 장기간 떨어져 살거나 간헐적으로만 만난다. 귀환 이후 어머니가 돈을 벌기 위해 다른 도시로 떠나거나 한국 혹는 제 3국으로 이주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자신의 ‘실패한’ 이주를 만회하고 그 상처에서 회복하기 위해 니콜 콘스타블이 “보상과 회복의 이주 사이클”(the migratory cycle of atonement, 2014)이라 부른 경로를 선택하기도 한다.(Constable, Nicole. 2014. Born out of place: migrant mothers and the politics of international labor. Oaklan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자신과 타인에게 여전히 가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돈을 벌어 이전의 실패나 실망감을 보상하기를 바라면서, 집을 떠나기도 한다. 여성은 돈을 벌어 아이 양육과 교육비를 대지만, 아이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쉽게 해소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귀환 이후에도 종종 함께 살지 못한다.
양육의 부담, 관계의 상처들, 경제적 결핍 등을 함께 해결해주고 지원해주는 가족이나 공공 혹은 민간단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성 혼자서는 귀환 이후의 삶을 감당하기 어렵다. 필자가 참여한 『베트남 거주(체류) 한-베 다문화가정 자녀 실태조사』(재외동포재단, 2019)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을 “어머니의 경제적 능력 향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97.9%였다. 민간은 더 많은 여성이 귀환 이후 집을 떠나지 않고, 경제적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
한국에는 만7세 미만의 한국 국적 아동에게 매월 10만 원을 지급하는 “아동수당법”이 있다. 이 법을 해외에 체류하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귀환 아동에게도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을 해야 한다. 귀환 여성과 아이가 ‘함께’ 살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함께 살 권리, 초국적 양육을 향하여
아버지의 부재 또는 심각한 역할 방기는 귀환 여성과 아이가 겪고 있는 어려움 중 하나다. 베트남의 한국계 자녀인 ‘라이따이한’과 필리핀의 ‘코피노’ 등 초국적으로 존재하는 한국계 아이들의 문제는 역사적 ‘상흔’이며, 현재에 존재하고, 미래에 도래할 우리의 책임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본국으로 귀환한 여성의 동반 자녀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조차 갖고 있지 않다. 이혼이나 별거 이후 귀환한 여성과 자녀에 대한 위자료나 양육비 지원을 하지 않는 한국 남성이 대부분인 점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는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이행을 촉구하고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는 아버지에게 양육비 지급 명령을 집행하거나 ‘양육비 국가 대지급제’의 적용을 통해 아버지가 일차적 책임을 지고, 국가가 보조하는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 아버지의 윤리적 자각이 필요하다. 부부관계는 종식되었지만, 여전히 부모로서의 책임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와 같은 국가나 영토에 살지는 않지만, 주기적인 상호방문과 연락, 양육비 지원을 통해 ‘초국가적’ 양육과 돌봄을 함께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글로벌 여성 인권을 향한 시민사회의 연대
한국 남편의 비협조와 ‘국가’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은 각 국가에 존재하는 민간지원 단체들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와 유엔인권정책센터 등과 몽골양성평등센터, 태국의 ‘젠더 평등과 여성발전연구소’, 필리핀의 가브리엘라, 베트남 여성동맹 등의 해외 여성단체와 기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귀환 여성의 이혼과 양육 관련 민원을 수집하여 소송을 대리해준다거나 ‘한-베 함께 돌봄센터’처럼 베트남 현지에서 여성과 아이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힘을 쓰고 있다.
적극적인 개입과 연대를 통해, 이들은 이제까지 잊혀졌던 귀환 여성와 아이들의 고통을 함께 해결해가야 할 사회적 의제로 만들었다. 이런 단체들의 초국적인 연대는 송출국과 유입국의 시민으로서 윤리적 의무를 수행한 결과이다.
국제결혼은 ‘하나의 시장이 된 세계’에서 국가 간의 경제 격차의 심화, 이주여성에 대한 차별과 결혼을 상품화하는 중개업체들의 전략 등에 의해 급증했고, 귀환 여성과 아이는 이런 시스템의 반인권적 성격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 결혼 이주는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초국적인 연대와 법적 지원, 돌봄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절실히 요청하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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