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2일부터 제46차 유엔인권이사회(2006년에 인권위원회에서 인권이사회로 격상됨)가 개최되었다. 오~ 바로 그 유엔 인권위원회의 소위원회에서 게이 맥두걸Gay McDougall)을 특별보고관으로 임명했었지! 올해는 세계의 여성인권과 관련된 어떤 보고를 채택하게 될까? 하는 궁금증도 가지는 ‘법알못’이 되었다.
‘위안부’ 제도에 대해 일본의 법적 책임 권고한 맥두걸 보고서
‘맥두걸 보고서 읽기’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지난 기사에서는 맥두걸 보고서보다 국제법이 무엇인지, 유엔은 어떤 곳인지, 그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여성인권 관련 국제법은 무엇이고 어떻게 찾아볼 수 있는지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사실, 위안부X국제법 세미나도 본격적으로 맥두걸 보고서 첫 장을 마주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1993년 유엔 총회의 ‘여성에 대한 폭력 철폐 선언’ 이후, 쿠마라스와미 특별보고관이 「전쟁 중 군대 성노예제 문제에 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한민국 및 일본 조사 보고」(1994)를 제출했다.
그리고 인권위원회 산하 인권소위원회의 특별보고관 맥두걸은 일본군‘위안부’ 제도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권고하는 「무력충돌 중의 체계적 강간, 성노예제와 다름없는 관행」(1998)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한다. 이 유엔 보고서를 우리는 ‘맥두걸 보고서’라고 부르는 것이다.
난생처음으로 유엔 인권보고서인 맥두걸 보고서를 마주했을 때, 무슨 말인지 모르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는데, 의외로 ‘법알못’에게도 잘 읽히는 명확한 글이었다. 나 같은 많은 사람들이 맥두걸 보고서를 찾아 읽어보면 좋겠다. 맥두걸 보고서를 읽어가면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이 보고서를 분석하고 의미화한 논문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건 아쉬운 부분이다.
맥두걸 보고서의 서지사항(논문이나 보고서에서 인용한 자료에 대한 정보를 밝힌 것)은 “UN Doc. E/CN.4/Sub.2/1998/13”이다. 암호처럼 보이는 이 서지사항은 차례대로 “유엔 문서. 경제사회이사회/4번째 위원회/소위원회/1998년/13번째 문서”이다. (세상에! 이제 나는 유엔 보고서의 서지도 무슨 뜻인지 알고 보게 되었다!)
이제 맥두걸 보고서의 목차를 살펴보자. 보고서는 무력충돌 시에 강간을 비롯한 성폭력과, 성노예를 비롯한 노예행위라는 범죄를 어떠한 법적 틀로 소추할 수 있는지의 순서로 되어 있다. 그리고 부록에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설치된 ‘위안소’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분석을 제시한다. 이 보고서는 어떤 죄가 있는지, 그 죄를 어떤 국제형사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의 순서로 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보고서가 제출된 1998년 즈음에는 상설 국제형사재판소(ICC)를 설립하기 위한 규정이 만들어졌을 때였다. 이렇게 보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자 및 전범 처벌을 위한 형법적 책임을 요구하는 재판을 할 수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맥두걸 보고서의 권고에 대해 숙고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위해 한국 정부의 노력이나 움직임이 어떠했는지 질문이 생긴다. 국제형사재판소가 2002년 설립되고 한국은 2003년에 가입했는데, 한국 정부는 맥두걸 보고서의 권고에 따라 범죄국 소추에 대해서 생각이나 해 봤는지 의문이다.
맥두걸은 이 보고서의 목적을 첫째, 무력충돌 시 성폭력과 성노예의 사용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고 둘째, 무력충돌 시 여성에게 가해지는 강간과 성적 학대, 노예화의 해악을 강조하고, 셋째, 무력충돌 동안 여성에게 가해진 국제범죄를 처벌하고 방지하기 위한 소추 전략을 검토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맥두걸은 이 보고서를 작성할 당시에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보고서의 목적을 읽다 보면 엄청 믿음직한 변호사를 만났다는 든든한 느낌이 든다.
보고서의 ‘맥락’ 부분을 보면, “국제법의 발달이 남성의 삶, 특히 공적 영역에서의 남자의 삶이라는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의 경험을 고려하지 않았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형태를 국제적인 국가책임 문제로 다룰 가치가 있다고 인식하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때문에 “무력충돌 동안 저질러진 성폭력 행위에 대한 소추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드물”었다. 이는 “처벌을 할 수 있는 법적 틀이 없었다기보다 성폭력을 중대한 범죄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맥두걸 보고서는 또한 성폭력과 관련해 종종 여성의 ‘명예’ 보호라는 규정을 담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성폭력 생존자들을 불명예스러운 존재로 만들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강간이나 성폭력이 자행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명예롭지 않은 유일한 당사자는 생존자가 아니라 바로 가해자이기 때문에 그 규정은 틀렸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보고서에서는 강간은 인간의 존엄성과 신체의 완전성에 대한 공격이며. 폭력 범죄임을 명확히 한다.
‘자율성, 이동 자유, 성적 자기결정권 제한’…성노예 범죄
맥두걸 보고서에서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는 성노예 개념이다. 우리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자주 사용하는 성노예(sexual slavery)는 노예행위의 한 형태이다. 맥두걸은 “노예행위는 종종 성적인 접근과 강요된 성활동까지 포함하여 인간을 동산(動産)처럼 다루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는 노예범죄로 기소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성을 사고팔게 하는 것 자체가 노예제도일 수 있고, “자율성, 이동의 자유, 성활동에 관한 자기결정권에 대한 제한”을 가했던 일본군‘위안부’ 제도는 노예범죄라는 것이다. 노예제도 금지에 관해서는 이미 1926년에 만들어진 노예협약이 있고 이는 국제관습법상 강행법규범(강제적으로 적용되는 규정)이다.
실제로 일본군‘위안부’들의 증언에는 감금, 폭행, 이동의 제한 등이 잘 드러나 있다. 이렇게 보면 일본군‘위안부’ 제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새로운 국제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져 있는 국제법의 틀 안에서도 일본군‘위안부’ 제도는 충분히 범죄행위를 입증하고 소추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맥두걸 보고서에는 여성 성폭력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중대한 범죄로 대응하지 않았고, 여성 폭력, 특히 성폭력에 대해 수사, 소추하고 최대한 배상하도록 하지 않았던 역사에 대한 비판도 들어가 있다. 이는 거대한 국가 간의 문제, 국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국내법, 그리고 우리 사회 속의 인간관계들에도 적용되는 비판일 터이다.
아직, 맥두걸 보고서의 본문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분량을 다 써버렸다. 인도에 반한 죄와 식민지 범죄 관련 다른 더 중요한 내용들은 다음 필자에게 넘긴다.
*일본군‘위안부’문제 연구소 아카이브814 홈페이지에서 ‘맥두걸 보고서’ 영문과 한글번역문을 모두 제공하고 있다. https://archive814.or.kr/Archives/Type/view/13681
[필자 소개: 장수희. 바람의 연구자. 일본군‘위안부’ 서사가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해 왔는지 그 역사적 계보를 추적 중이다. 연구자생활정보지 『바람의 연구자』 편집위원이었다. 관련 논문으로는 「정동적 전회와 증언의 쓰기」, 「중첩되는 전쟁과 망각되는 일본군‘위안부’ 서사」 등이 있다. 번역으로는 「제국의 성관리 정책과 인신매매」(송연옥), 「오키나와현 평화기념자료관 전시조작 사건 재고」(타마시로 후쿠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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