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빈곤’으로 인해 죽지 않는 사회를일본 ‘신종코로나 재난 긴급액션’ 아마미야 카린에게 듣다코로나19 상황이 계속되면서 빈곤 문제가 심각해지고, 특히 여성 자살율이 급증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일본 사회도 응축된 모순과 빈부격차 등이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공적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에, 일본에서 ‘중년 반빈곤 운동’을 해오고 있는 작가 아마미야 카린 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아래는 그 내용이다. [편집자 주]
코로나19의 타격, 거주지에서 쫓겨난 사람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되면서, 날마다 상담 신청을 하는 메일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가진 돈이 0엔”, “넷카페(밤새 영업하는 피씨방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숙박처 역할을 한다)에서 쫓겨났다” 등의 긴급한 상황이 다수입니다.
일본에서는 빈곤 문제에 집중해왔던 단체들을 중심으로, 2020년 3월 ‘신종 코로나 재난 긴급액션’(이하 긴급액션)이 결성됐습니다. 같은 시기 ‘긴급 서로돕기 기금’도 생겼습니다.
그때에는 ‘해 넘기기 파견마을’을 통해 긴급 지원한 사람들의 99%가 남성이었고, 제조업에서 일했던 노동자가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여성들의 상담 신청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연령대는 20대, 그리고 거품경제 붕괴 후 취업 빙하기에 회사를 나온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인 30-40대 등으로 당시보다 연령도 낮아졌습니다.
코로나19는 직종을 가리지 않고 영향을 미쳤습니다. 요식업, 관광업, 행사업 같은 서비스업도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직종에서 일하는 대다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입니다.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점점 일자리를 잃고 “숙소에서 쫓겨난다”며 도움을 요청해왔습니다.
여성은 1인 생활자가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초기에는 셰어하우스에 사는 여성들의 상담 신청이 많았습니다. 셰어하우스는 초기비용과 월세가 저렴해서 연 수입이 200만 엔 이하인 젊은 여성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곳은 통상적인 임대차계약과 달리, 월세를 1개월만 밀려도 퇴거당할 수 있습니다. 퇴거 시 10만 엔을 내라는 곳도 있습니다. 셰어하우스는 세련된 이미지이지만, 임차인으로서 주거보호를 받을 수 없는 곳들도 많습니다.
고소득층에 비해 저소득층의 수입이 ‘더’ 줄고 있다
‘긴급액션’에 상담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낸 사람들 대부분은 간신히 생존하고 있는 상태이며, 20-30%가 여성입니다. 연락을 받으면, 지원자들이 달려가서 그날 묵을 수 있는 호텔 등을 찾고 생활보호 신청 등으로 연결해줍니다.
주택 담보 대출금과 자녀 교육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전화 상담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영업, 어머니와 자녀는 파견직으로 일하던 터에 일이 끊겨서, 세대 수입이 급격히 줄었다는 사례도 듣습니다. 반빈곤 운동을 하면서, 저는 지금까지 주택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던 중산층으로부터 상담 신청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빈곤연구회가 작년 4월부터 ‘코로나19 재난을 극복하는 생명과 생활을 지키는 무엇이든 전화상담회’에 접수된 상담을 분석한 내용이 최근 나왔습니다. 파견직의 경우, 2020년 8월 수입이 2월과 비교해 9만2천 엔 감소했습니다. 비정규직의 연 수입은 179만 엔(2018년 국세청). 월로 나누면 약 15만 엔입니다. 도저히 생활을 할 수 없는 액수죠.
한편, 다른 조사에서는 자녀가 있고 연 수입이 600만 엔 이상인 세대의 60%는 수입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답한 데 비해, 400만 엔 이하인 세대의 70%는 “수입이 줄었다”고 답했습니다. 소득이 적었던 사람일수록 수입이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실태조사는 원래 국가가 해야 할 일이죠.
이처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그 어느 때보다 빈곤이 확대되고 있는데, 2008년 ‘파견마을’ 때보다 사회적으로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때에 비해서 빈곤이 너무도 일상화되고, 일본 사회가 빈곤 문제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칙적으로는 반려동물이 있어도 생활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반려동물을 동반한 경우에 제약이 큽니다. 생활보호 신청은 가능하지만, 아파트로 옮길 때까지 공적 시설이나 호텔, 쉼터, 넷카페를 이용할 수가 없죠. 우리는 반려동물을 동반한 경우에 특화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6월에 ‘반빈곤 개고양이부’를 설립했습니다. 그랬더니 순식간에 400만 엔 정도의 기부금이 모였습니다. 지금까지 빈곤 문제에 관심이 적고 우리 활동과도 접점이 없었던 개,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결된 점이 반가웠습니다.
생활보호를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문제
여성의 자살률이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2020년 10월 기준 자살자는 2,153명으로 그 중 여성의 비율을 보면, 전년도 같은 달 대비 82%가 늘어난 851명입니다. 외출을 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가정폭력을 당하거나, 가족관계가 악화되어도 달리 도피처가 없다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있게 연결한 상담자 거의 대부분이 “이렇게 해서도 안 되면 자살할 생각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당사자들 중엔 자신의 상황이 그렇게 곤궁함에도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생활보호를 받는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커서 곤란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에는 2012년부터 자민당이 생활보호제도를 강력히 비난해온 것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생활보호를 받을 바에야 죽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입니다.
‘젊고 건강한 자신은 생활보호 대상자가 될 수 없다’, ‘생활보호 대상이 되면 일을 할 수 없다’, ‘반드시 자가용을 처분해야 한다’ 등의 오해가 확산되어 있는 것도 원인 중 하나입니다. 생활보호 제도를 이용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권리’라는 인식이 부족하고, 생활보호가 어떤 제도인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데서 오는 폐해입니다. 지낼 곳을 잃고 거리로 나앉기 전에 우선 생활보호 제도를 이용하도록 교육과 광고로 알려야 할 때입니다.
생활보호 신청을 주저하는 원인 중 또 하나는 친척에 대한 부양조회입니다. 정부는 생활보호 신청자의 가족에게 그 사람을 원조할 수 있는지 확인하며, 가족이나 친척이 부양할 수 있는 경우 그것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친척이 부양하는 비율은 1% 이하입니다. 이 부양조회 제도 역시 폐지해야 합니다.
일본 사회에 만연한 ‘재원론’과 ‘자기책임론’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재원을 제시하라, 그렇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분위기도 있습니다.
‘파견마을’ 당시 이야기를 더 해보죠. 그때는 많은 사람이 그 광경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몇 년 후 제2차 아베 정권이 생활보호 제도를 축소했을 때 “사람의 목숨을 재원으로 말하지 말라”며 항의 집회가 열렸습니다. 그 때는 이러한 주장이 여론에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었죠. 하지만 언젠가부터 일본 사회에는 “사람의 목숨은 소중하다”라고 말하면 비웃음을 당하는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른바 ‘자기책임론’(가난은 자기책임) 혹은 ‘재원론’입니다. 생활보호 제도나 그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 홈리스들을 차별하는 언동도 보입니다. 2020년 11월, 도쿄 시부야에서 여성 노숙인이 살해당했습니다. 가해자는 ‘잃어버린 세대’의 남성이었습니다. ‘자기책임론’을 각인 당한 세대죠. 폐지줍기를 하던 그는 ‘이물’인 노숙인을 제거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사회가 놓쳐왔던 문제가 응축된 사건입니다.
“장애인이 제한된 국가 재원을 빼앗는다”며 집단살인을 저질렀던 야마유리원 사건(2016년 7월 26일, 일본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 시에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 츠쿠이 야마유리원에서 일어난 집단살인. 전 직원이었던 우에마쓰 사토시가 새벽에 시설에 무단 침입해 장애인 40명 이상을 칼로 찌름)의 충격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세가와 유타카 전 후지텔레비전 아나운서는 “인공투석은 자기부담으로 하게 하라”라고 블로그에 적었습니다. 그런 의견이 합리적이고, 재원과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요구만 하는 것은 한심하다는 분위기가 사회에 퍼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 놓인 사람 본인조차 “일본은 빚이 많으니 생활보호를 받기 송구하다”고 말하는 실정입니다.
또 한 가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생명의 선별”이라는 화두가 현실화되었습니다. 미국과 이탈리아에서는 코로나19 치료를 위한 호흡기 장착 우선순위 매기기(triage)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죠.
‘죽지 않는 법’을 알리고 싶다
지금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죽지 않는 법’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곤궁한 것 같아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경우에 따라서는 몇 번이고 찾아가고, 인터넷으로 다운받을 수 있는 [노상탈출·생활SOS가이드](빅이슈)를 건네 공적 제도를 설명하고 연결해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말을 거는 데는 물론 용기가 필요하지만, 자신의 두세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쓰는 것만으로도 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의 인생을 극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곤궁한 친구는 이미 공황 상태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긴급액션 상담 신청 서식이나 전화번호를 알려주기보다는 직접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고 대행하거나 동행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이런 방법을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알고 있는 사회는 강합니다. 우리는 세이프티 네트워크나 공적지원을 신청하고 사용하는 방법을 모두가 알길 바랍니다. 지식이 있는 만큼 인생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고, 살아가기도 편해지고, 타인에게도 친절해질 수 있습니다. 저 자신도 반빈곤 운동을 하며 삶에 대한 공포가 없어졌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이 ‘자기책임론’을 무기로 들면서 다른 사람에게 관용적이지 않은 것은, 불안감의 이면이거나 죽지 않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빈곤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지원금이나 특별지원금은 이미 작년 여름에 바닥났다는 한탄도 많이 들려오고, 버텨오던 직장이 폐업하거나 실업한다는 상담도 들어옵니다.
‘서로돕기 기금’에는 지금까지 9천만 엔 이상이 모였고, 긴급액션에서는 1천명 이상에게 약 4천만 엔의 지원금을 배부했으며 연말연시 지원도 진행했습니다. 정부가 해야 할 ‘공적 지원’을 민간이 대신하고 있다는 딜레마도 있지만, ‘자기책임론’을 넘어 ‘살아남기 위해 서로 돕는 구조를 만들자’는 움직임은 희망입니다. 과연 사회가 그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분기점은 바로 지금입니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가시와라 토키코 님이 인터뷰하고 시미즈 사츠키 님이 정리한 기사를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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