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여성 향한 혐오범죄, ‘우연한’ 사건 아니다

성별, 인종, 계층…교차적인 차별과 혐오가 맞물린 폭력 #StopAsianHate

김현숙(애니) | 기사입력 2021/04/06 [20:44]

아시안 여성 향한 혐오범죄, ‘우연한’ 사건 아니다

성별, 인종, 계층…교차적인 차별과 혐오가 맞물린 폭력 #StopAsianHate

김현숙(애니) | 입력 : 2021/04/06 [20:44]

3월 어느 화요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한 백인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여덟 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 중 여섯 명은 아시아계 여성이었다. 가해자는 마사지업소 중에서 업주와 종사자 여성이 아시아인으로 알려진 세 곳을 의도적으로 노린 것으로 밝혀졌다. 21세의 백인 남성인 그가 경찰에 진술한 바에 따르면, 이 총기 난사 사건은 스스로의 ‘성중독’을 악화시키는 “유혹을 없애기 위해” 벌어진 일이었다.

 

지난 해부터 아시아인을 표적으로 한(anti-Asian) 혐오 폭력이 빈번했던 와중, 이 애틀란타 총기 난사 사건은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로 하여금 재차 현실을 마주하게 했다. 아시아인,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혐오 폭력이 미국 내에서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잇따른 반아시아적 언행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반-아시안 정서와 고정관념에 불을 붙였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을 향한 혐오 폭력은 그 방식과 정도가 다양하고, 심각하다. 보고된 것만 하더라도 인종차별적 언어폭력뿐 아니라 신체적 폭력으로 인한 입원 혹은 사망, 침 뱉기, 서비스 거부, 반달리즘(문화유산이나 공공예술 파괴), 사람을 대상으로 한 방뇨와 방화 등이다. 이 같은 폭력의 피해자는 여성이 남성보다 2.3배 가량 더 많다. 그리고 노인들 또한 폭력에 빈번히 노출되고 있다.

 

▲ Asian Americans and Pacific Islanders(AAPI) 커뮤니티에선 애틀란타 마사지 업소 총격 사건 피해자와 유족을 돕기 위한 후원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Gofundme의 Stop AAPI Hate 사이트 https://www.gofundme.com/c/act/stop-aapi-hate)


피해자는 ‘무작위로’ 선정되지 않았다

 

애틀란타의 마사지업소 총기 난사 사건은 가슴 아프면서도 분노스럽고, 어떤 말을 꺼내기에도 복잡한 마음이 들게 한다. 이 사건은 우리가 아시안 혐오와 인종차별, 여성혐오와 계급의 교차성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가해자가 마사지업소에서 일하는 아시안 여성을 겨냥한 것은 분명 인종차별적 여성혐오(misogyny), 아시안 여성의 과잉성애화(hypersexualization), 성적 대상화와 섞여 이루어진 인종차별적 폭력과 범죄화의 결과이다. 낙인의 피해자인 마사지업소 노동자들에 대한 멸시와 증오 역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가해자는 단지 “일진이 사나운 날(having a bad day)”이었다는 이유로 이 사건을 저질렀다. 누구를 피해자로 삼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은 결코 무작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인종, 젠더, 계급은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우리가 이 일에 대해 고민하고 논의할 때 절대로 지워져선 안 되는 부분이다.

 

그 자체로 인종차별적인, ‘과잉성애화된 아시안 여성’이라는 표상은 총격범이 누구를 살해할지 결정하는데 직접적으로 작용했다. 또한 피해자 여성들은 아시안,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 안에서도 다양한 이유들(젠더, 계급, 이민자라는 지위, 언어 접근성 그리고 마사지업소에서 일한다는 낙인)로 인해 소외된 이들이었다. 

 

‘차이나 인형아, 날 만족시켜줘’ 아시안 여성에 대한 페티쉬

 

미국에서 아시안에 대한 타자화와 혐오와 폭력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계 미국인들에 대한 학살과 린치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계 미국인들에 대한 격리 수용에 이르기까지, 아시안을 대상으로 한 혐오 폭력은 늘 반복되어 온 일이었다. 이러한 관행은 미국 정부의 정책 및 제도화, 그리고 문화적 실천을 통해 유지될 수 있었다.

 

아시안 여성들을 과잉성애화하는 관습은 미국 정부가 만든 최초의 제한이민법(restrictive immigration law)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75년의 페이지법(Page Act)은 백인들이 중국 여성들을 성노동자, 즉 ‘부도덕한 여자’로 여겼기 때문에 제정된 법이었다. 당시 모든 아시안 여성들의 이주는 백인의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을 해치고, 백인의 몸에 성병을 옮기는 성노동자들의 ‘침투’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근거로 페이지법은 아시안 여성의 미국 이민을 금지시키는 동시에, 아시안 여성에 대한 과잉성애화와 고정관념을 강화시켰다. 페이지법이 발효된 지 7년 후, 미국 정부는 중국 남성 노동자의 이민을 금지시키는 중국인 배제법(Chinese Exclusion Act)을 통과시켰다.

 

▲ 미국 PBS방송의 PBS News hour에선 미국 내 아시안 혐오와 배제의 역사를 언급했다. (출처: PBS NewsHour https://youtu.be/e5UuX-vFGm8 ©1996-2021 NewsHour Productions LLC. All Rights Reserved.)


오늘날까지 여전히 아시안 여성들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러한 고정관념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미국의 대중매체에서 묘사되고, 정책을 통해 강화되는 아시안 여성의 모습은 ‘이국적인’ ‘과잉성욕자’, 동시에 성적으로 순종적인 “연꽃(lotus blossom)” 또는 “차이나 인형(China dolls)”과 다름없다. 아시안 여성은 늘 성적으로 흥분되어 있으며,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순종적으로 복종하는 존재, ‘백합꽃(lily flower)’이거나, 혹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공격적이고 미스터리하며 교활하면서 섹슈얼한 ‘꽃뱀’이나 ‘용녀(dragon woman)’ 둘 중 하나로 상상된다.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고정관념을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있고, 이것이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여성혐오적이며 아시아 여성에 대한 혐오임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오늘날 아시안 여성들은 ‘가로로 찢어진 보지'(아시안 여성의 몸은 이국적이고 체험해봐야 할 새로운 성적인 모험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농담, ‘5달러에 빨아줄게, 몇 번이고 박아도 돼’(Sucky sucky five dollar, me love you long time), ‘나 꼴려’(Me so horny, 아시안 여성은 늘 성적으로 흥분되어 있으며 “이국적”이라는 의미)와 같은 말들이 펀치라인으로 TV, 영화, 일상에서 자주 언급되곤 한다. ‘옐로우 피버’(yellow fever, 동양여성에게 성적으로 집착하는 것)처럼 특정 인종에게 페티쉬가 있다는 말은 별 문제가 없이 통용되거나, 심지어 아시안 여성이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찬사로 이해된다.

 

아시안 여성을 선호하거나, 아시안 여성들하고만 사귀는 백인 남성들은 단순히 그런 '선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그 선호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결코 설명되지 않는다. 인종적인 범주로서 '아시안'은 수십 개가 넘는 국가, 문화, 역사, 언어, 외모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두 명의 아시안 여성은 아무렇게나 뽑힌 두 명의 사람만큼이나 공통점이 없는데도 말이다.

 

또한 아시아인과 아시아계 미국인은 ‘영원한 외국인들'로 정형화되어 있다. 오랜 세월, 많은 세대를 거쳐 미국에서 살아왔더라도 아시아인은 언제나 외국인으로 타자화된다. 과잉 성애화된 아시안 여성의 이미지와 영원한 외국인이라는 고정관념은 백인 남성이 이런 질문을 던질 때 서로 만난다. ‘너 어디서 왔어? 텍사스라고? 아니, 그니까 넌 무슨 아시안이냐고…’, ‘나 작년에 일본 가봤어. 나 일본 문화에 관심 많거든. 일본 여자들이 너처럼 아름답고 날씬하고 여성스럽더라’, ‘너 진짜 예뻐. 섹시해. 니 보지는 꽉 쪼여줄 것 같아’, ‘차이나 인형아. 날 기쁘게 만들어줘/날 만족시켜줘/날 싸게 해줘.(Give me a happy ending)’

 

온라인 은어를 다루는 ‘도시용어 사전’(Urban Dictionary)에 실린 다음 정의를 보면, 이러한 고정관념이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아시안 여성

1.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2. 믿을 수 없을 만큼 섹시하며, 늙은 여자들도 썩 나쁘지 않다. 살아오면서 본 1,000명의 아시안 여자 중에 못생긴 여자는 한 10명 정도밖에 없었다. 

단어 사용의 예) ‘아시안 여성들은 미국 여성들의 외모 수준을 수치스럽게 만든다.’

3. 도시용어 사전의 웹마스터들의 페티쉬. 

단어 사용의 예) 도시용어 사전은 완전 옐로우피버야! 그게 뭐 나쁘다는 건 아니고.

 

인종, 젠더, 계급이 맞물린 명백한 혐오범죄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가 의도적으로 아시안 여성을 살해한 배경에는, 이처럼 아시아 여성에 대한 과잉성애화와 대상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는 군-섹스 산업, 섹스관광 산업, '우편 주문 신부’(mail-order brides)와도 뗄 수 없는 문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지의 미군 기지촌을 비롯해 아시아 여성을 비인간화하는 이러한 실천들은 여성에 대한 신체적, 성적 폭력, 고정관념, 인신매매 등을 영속화, 정상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영화 배우 산드라 오는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하여 아시안 혐오를 멈추라며 발언을 했다. (출처: NowThis News 유튜브 https://youtu.be/11PQ6FWEtOU)


우리는 이번에 살해된 여성들이 성노동자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미디어가 아시아인의 마사지업소를 곧바로 성매매 업소로 언급한 것은, 아시안 여성들을 향한 성차별이고 인종차별적인 행위임이 분명하다. 아시안 마사지업소와 그에 속한 아시안 여성 또한 성적 서비스의 일부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가해자 역시 비슷하게 떠올린 이 생각은, 인종차별적이고 과잉성애화된 아시안 여성의 이미지에 기반하고 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 여성들은 결코 성노동자가 아니었다’고 강하게 부정하거나, 이 여성들의 사회적 계층과 노동 현실을 가리려고 하는 것 역시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과 증오를 드러낸다.

 

따라서 애틀란타의 총기 난사 사건은 개인의 독단적인 ‘묻지마 살인’이었다기보다 아시안 여성, 특히 노동자 계층 여성과 성노동자들을 겨냥한 인종차별적, 성적 폭력으로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피해 여성들이 실제로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가해자는 그들을 성적 대상으로 판단했기에 “유혹을 없애기” 위해 살해한 것이다.

 

이 사건은 여성혐오, 인종차별, 아시안 여성의 비인간화와 페티시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마사지업소 노동자들과 성노동자들이 견뎌내고 있는 소외, 범죄화, 폭력과 연관되어 있다. 마사지업소나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성적 폭력과 낙인, 열악한 근무환경, 임금착취, 범죄화, 경찰 탄압 등을 감수해야 한다. 이들이 맞닥뜨린 폭력은 아시안 여성, 이주민, 노동자 계층, 성노동자에 대한 인종화된 폭력이다.

 

이 사건을 인종적 동기나 성적인 동기, 둘 중 하나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가해자가 특별히 아시아 여성이라는 집단을 피해자로 ‘결정’했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놓쳐버리고 만다. 아시안 여성의 성적 대상화와 아시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차별적 폭력은 그저 우연의 일치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국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성적 폭력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맥락들과 맞물려 있다. 인종, 젠더, 계급이 교차하는 차별과 폭력은 절대 하나라도 눈감을 수 없는 요소들이다.

 

▲ StopAAPIHate 사이트에서 ‘혐오범죄에 대한 안전 조언’을 안내하고 있다.  (출처: https://stopaapihate.org)


애도에 그칠 것인가? 우리 주위의 취약한 사람들과 연대하자

 

우리는 이 총기 난사 사건에서 희생된 여덟 명의 사람들과 인종적, 성차별적 폭력에 의해 희생된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을 애도하는 동시에, 생존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연대의 실마리들을 떠올려야 한다.

 

아시아인, 아시안계 미국인들은 혐오와 차별에 저항하는 활동을 조직하고 폭력에 맞서온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필자는 이번 사건의 희생자들을 비롯해 수많은 죽음들을 추모하면서, 여기 한국에서도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계급, 이민 여부, 언어 접근성 등이 교차하면서 폭력과 상해에 특히 더 취약한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연대’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상황과 문제에 부닥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이때의 연대는 함께 힘을 합쳐, 사회에서 취약한 계층을 ‘나중에’로 남겨두지 않는 해결 방법을 찾아나간다는 뜻이다. 여성,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 성노동자, 아동/청소년, 노인 그 누구라도 말이다.

 

언급한 이들은 다수의 교차성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죽은 후에야 주목을 받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우리 중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뒤에 내버려두지 않으면서 안전과 변화를 찾아나가는 것. 그이들이 살아있는 지금 바로 당장, 노동자의 권리 보호를 통해, 성적 폭력과 인신매매의 종식을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성노동자 비범죄화를 통해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우리는 떠나 보낸 이들의 증인이 되어 싸워나가고, 생존한 이들을 지켜나가야 한다.

 

[필자 소개: 김현숙(애니). 미국에서 자랐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퀴어 한국입양인 활동가.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석사과정 중에 있다. 인종, 이주, 퀴어, 풍물, 먹거리에 관심 있다. “늘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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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21/04/10 [10:29] 수정 | 삭제
  • 이번 사건에 대하여 가장 정확한 진단이 아닌가 싶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 pitch 2021/04/07 [20:37] 수정 | 삭제
  •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는 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안의 인종주의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차별에 대해 더 생각해봐야 겠습니다.
  • 2021/04/07 [12:24] 수정 | 삭제
  • 애도하고 연대하겠습니다..
  • 2021/04/07 [10:03] 수정 | 삭제
  • 과잉성애화... 서구권에서 아시안여성이 스테레오타입으로 묘사되는 게 대부분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별로 없어서 불편했는데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사는 건 오죽할까요. 기사 너무 잘 봤습니다. 같은 한국계라 하더라도 이주민 신분과 미국인 신분이 다르고 1세, 2세가 또 다르다는 걸 처음 생각하게 되었어요.
  • 져니 2021/04/07 [09:22] 수정 | 삭제
  • 죽은후에야 주목을 받는 소외된 계층이 죽기전에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연대가 무엇일지 김현숙님의 글을 통해 많이 배우고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 에디 2021/04/06 [23:27] 수정 | 삭제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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