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행위에서 YES or NO를 넘어 ‘적극적 합의’로!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① 릴레이 토크쇼를 시작하며

박아름 | 기사입력 2021/05/27 [19:03]

성적 행위에서 YES or NO를 넘어 ‘적극적 합의’로!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① 릴레이 토크쇼를 시작하며

박아름 | 입력 : 2021/05/27 [19:03]

※성적 행위에서 ‘적극적 합의’에 대한 개념을 확산하고, 새로운 성문화의 이정표를 만드는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 기사를 연재합니다.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는 반성폭력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진행하는 릴레이 토크쇼로, 6월~9월까지 세 개의 주제로 열립니다. 첫 기사의 필자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박아름 활동가입니다. -편집자 주

 

사람들은 성적 행위를 할 때 어떻게 합의하고 있을까?

 

“당신은 다른 사람과 스킨십이나 섹스를 할 때 어떻게 동의를 받고, 또 동의를 하고 있나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19년 <나의 적극적 합의 점수는 몇 점?>이라는 캠페인 부스에서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 참여자 대부분은 즉시 대답하지 못했다. 평소 의식하지 않았던 주제라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 2019년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한 <나의 적극적 합의 점수는 몇 점> 캠페인 부스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포스트잇에 응답을 써 붙이면 다른 참여자들도 읽고 0점부터 5점까지 매길 수 있는 캠페인 부스였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물론 “섹스할래?”, “스킨십 해도 돼?”라고 직접적으로 물어본다는 응답이었다. 구체적인 말은 밝히지 않고 “물어본다”라고만 쓴 응답이나, 목적어 없이 “해도 돼?”라고 에둘러 물어본다는 응답도 많았다. 파트너와 미리 신호를 정해둔다는 재미있는 응답도 있었다.

 

그중 일부 참여자는 실제 자신의 경험과 상관없이 당위적으로 답변을 작성한 것 같았다. 한 참여자는 “이론적으로는 이래야 한다는 걸 알지만 솔직히 이러면 분위기 깰 것 같아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떤 참여자는 한참 고민하다가 답변을 썼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일행이 “확실해? 너 나한테 그랬어?”라고 물어보자 동공이 흔들렸다.

 

사실상 답이 정해져 있는 캠페인 부스였음에도 “눈치껏”, “분위기 타서”, “서로 눈 맞으면”이라는 응답도 심심찮게 보였다. 이런 응답은 상대가 정말 동의하는지 확인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추측한다는 점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어서 “모텔 갈래?”, “쉬었다 갈래?”라고 간접적으로 물어본다는 응답도 높지 않은 점수를 받았다.

 

주로 동의를 받기보다 동의를 하는 편으로 보이는 참여자들은 “(나는) 거부 의사를 잘 표현하지 못한다”라는 응답을 남기며 스스로 0점을 주기도 했다. 한편, “상대의 신체를 슬쩍 만져본다”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는데, 다른 많은 참여자가 이것은 부적절한 방법이며 그 자체로 동의 없는 성적 행위라고 평가했다.

 

단지 “YES” OR “NO”의 문제만이 아니다

 

캠페인 부스를 통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참여자 중 대다수는 성적 동의를 이야기할 때 단순히 성적 행위를 할지 말지 한쪽이 동의를 구하고 다른 쪽이 “YES” 또는 “NO”라고 대답하는 단편적인 구도를 떠올렸다. 안전한 공간에 간다든지, 피임 기구를 준비한다든지, 서로 술에 취해있지 않은 맨정신으로 대화한다든지, 성적 동의가 이루어지는 다양한 결을 이야기하는 참여자는 극소수였다.

 

▲ 2019년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한 <나의 적극적 합의 점수는 몇 점> 캠페인 부스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그동안 성적 동의를 <적극적 합의>라는 개념을 통해 이야기해왔다. 적극적 합의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포괄적인 개념이다. 적극적 합의를 하려면 다른 사람과 성적 행위를 할 때 누구와, 어떤 관계로,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떤 조건과 한계로, 어떻게, 할 것인지 또는 하지 않을 것인지 상호 의사소통을 통해 구체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제안하고 동의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먼저 나와 상대가 자유롭게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적극적 합의는 나를 포함해 성적 행위에 참여하는 모든 당사자가 서로 동의 여부를 존중한다는 보장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예를 들어 캠페인 부스에서 “싫다고 하면 하지 않는다”라는 응답은 상대가 동의하지 않을 때 존중한다는 뜻이다. 반면 “싫다고 하면 눈에 띄게 시무룩해져서 그만둔다”라는 응답은 미묘하다. 일단은 그만뒀으니까 상대의 의사를 존중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눈에 띄게 시무룩해지는 것은 상대에게 죄책감과 부담감을 주는 태도로 볼 수도 있다.

 

겉으로는 동의 여부를 물어봤지만, 상대가 동의할 때만 존중하고, 동의하지 않을 때는 무시하거나 보복하거나 동의할 때까지 설득하거나 부정적인 태도로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합의가 아니라 강요다.

 

①명시적으로 ②의식이 있을 때 ③충분한 정보와 이해를 바탕으로

 

적극적 합의를 하려면 어떤 점들을 유의해야 할까?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적극적 합의는 “명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서로 합의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말 또는 행동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뜻이다. 내 느낌과 생각만으로 상대의 의사를 섣불리 추측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상대가 나를 집에 초대하는 것은 나와 섹스하고 싶다는 유혹인가? 앞서 나가지 말자. 상대는 말 그대로 나를 집에 초대했을 뿐이다. 만약 상대가 나에게 “섹스하고 싶어.”라고 말한다면 그때는 섹스할지 말지 서로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적극적 합의는 “의식이 있을 때” 이루어져야 한다. 누군가가 잠들었거나 술이나 약물에 취해있다면 성적 동의를 할 수 없는 상태로 보아야 한다.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를 만큼 정신을 잃은 상태뿐 아니라, 부르면 대답은 하는데 주변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 말은 곧잘 하지만 제 뜻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이런 상태일 때 부동산 계약을 체결하려는 사람은 날강도나 사기꾼밖에 없을 것이다. 의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굳이 성적 동의를 받으려고 물어보지도 말아야 하며, 그냥 성적 행위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적극적 합의는 “충분한 정보와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당사자는 자신이 동의한 성적 행위가 어떤 성격인지, 사회적으로 어떻게 인식되는지, 자신 또는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서로 지켜야 할 권리와 의무는 무엇인지, 다른 선택도 가능한지 등을 충분히 알고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④평등하게 ⑤모든 과정에서, 항상

 

넷째, 적극적 합의는 “평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당사자는 서로 동등한 관계여야 하며, 성적 행위와 관련된 대화를 대등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한쪽이 콘돔을 사용해달라고 요구했는데 다른 쪽이 못 들은 척하면서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발언권과 결정권에 차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도 완벽하게 평등한 관계는 존재하기 어렵다. 따라서 힘 또는 권력이 더 큰 사람은 상대의 언어적‧비언어적 의사 표현을 훨씬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상대가 자발적으로 합의하는 것인지 어쩔 수 없이 양보하는 것인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힘 또는 권력 차이가 명백한 관계에서는 상대에게 성적 동의를 구하려는 시도 자체가 폭력적일 수 있다.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의사를 솔직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직간접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했을 때 존중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심지어는 더 큰 위험에 처하거나 보복성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

 

권력자는 말할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순수하게 동의를 구한 것뿐이고 상대의 의사를 존중할 것이다.” 그러나 약자로서는 권력자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 자체가 이미 부담이다. 평등하지 않은 관계라면 애초부터 성적 동의를 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다.

 

▲ 상호 성적 행위를 해야 할 때, 지켜야 할 원칙들.   (한국성폭력상담소 제작)


마지막으로, 적극적 합의는 “모든 과정에서 항상” 이루어져야 한다. 평소 성적 행위를 함께하는 연인 또는 부부 관계라는 이유로 섣불리 합의 과정을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상대가 어제는 성적 행위를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하고 싶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가 키스에 동의했다는 이유로 당연히 섹스도 동의할 것이라고 넘겨짚어서도 안 된다. 상대는 키스는 좋은데 섹스는 싫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섹스하자”라는 말에 동의하는 것은 섹스할 때 상대가 원하지 않는 체위를 하거나, 청결하지 않은 손으로 성기를 만지거나, 피임을 하지 않는 것까지 동의한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보다 모든 당사자는 언제든지 성적 동의를 취소, 철회, 번복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서로 합의하고 성적 행위를 시작했다 하더라도 누군가 도중에 그만하길 원하면 즉시 중단해야 한다. 처음에 동의했다고 해서 무조건 상대의 욕구를 채워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아까 합의했잖아”라고 억지로 성적 행위를 이어갈 권리는 없다.

 

‘적극적 합의’ 새로운 성문화의 이정표를 세우자

 

올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라는 주제로 릴레이 토크쇼를 연다. 사람들은 적극적 합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다양한 성적 주체들의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적극적 합의와 연결할 수 있을까? 적극적 합의는 각자의 구체적인 삶과 경험 속에서 어떻게 실천되고 있을까? 함께 질문하고 이야기 나누며 ‘적극적 합의’를 찾아가는 이정표를 세우고자 한다. 앞으로 세 차례 이어질 토크쇼의 주제와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적극적 합의는 단순히 성적 행위를 하는 순간뿐 아니라, 서로 관계를 맺고 의사소통하는 모든 과정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모르는 사람과 클럽에서 만나 ‘원나잇’을 할 때와 결혼한 지 수십 년이 지난 노인 부부가 섹스를 할 때, 갓 사귄 연인끼리 첫 키스를 할 때 적극적 합의의 내용과 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저마다 다른 관계의 맥락을 고려하면서 적극적 합의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미디어에서는 각각의 합의 과정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 릴레이 토크쇼의 물꼬를 여는 1회 <관계 편>은 적극적 합의가 당사자들의 관계에 따라 어떻게 인식되고 실천되고 상상되고 있는지 이야기 나눈다.

 

당사자의 성별, 나이, 장애, 병력, 출신 국가, 인종, 혼인 여부,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경제력, 종교 등도 적극적 합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으로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남성의 성욕은 참을 수 없는 본능이다’, ‘여성은 성에 수동적이고 방어적이(어야 한)다’라는 성차별적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로 인해 여성은 성적 행위를 거절하면 남성이 ‘참지 못할’ 것이고 자신이 구체적인 성적 요구를 하면 ‘문란해 보일’ 것이라는 두려움을 이중으로 느낀다.

 

반면 남성은 스스로 원치 않는 상황이라도 성적 행위를 해서 ‘남성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기도 하며, 여성이 거부 의사를 표현했을 때 ‘내숭’으로 치부하기 쉽다. 한편, 장애 여성은 성적 욕망이 없는 ’무성적 존재‘로 여겨지며, 적극적 합의를 할 수 있는 환경이나 성교육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회 <다양한 성적 주체 편>(가제)은 적극적 합의 과정에서 당사자의 위치와 조건, 환경과 상황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보고, 다양한 성적 주체가 적극적 합의를 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변화와 대안을 이야기 나눌 것이다.

 

마지막으로 3회 <다양한 실천 가능성 편>(가제)은 어쩌면 낯설기도 하지만 의미 있는 섹슈얼리티 경험들을 이야기 나누며, 적극적 합의를 더 잘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 가능성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섹스하기 전에 성매개감염병 검사지를 교환하는 것은 유난스러울까? 동의 없는 성적 행위는 성폭력이라고 말하면 “계약서라도 쓰라는 말이냐”라고 빈정거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로 계약서를 써본다면 어떨까? 토크쇼에서 이야기 나누는 내용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참여자들에게 새로운 통찰과 상상을 불어넣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 릴레이 토크쇼는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2021년 양성평등 및 여성사회참여확대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각각 다른 주제로 6월부터 9월까지 총 3회 진행될 예정이며, 참여 신청은 매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sisters.or.kr)를 통해서 할 수 있다. 첫 토크쇼 <관계 편>은 6월 3일(목) 저녁 7시 30분 한국성폭력상담소 유튜브(youtube.com/user/ksvrc91)를 통해 실시간 중계된다. 문의 02-338-2890, f.culture@sisters.or.kr

  • 도배방지 이미지

  • 한명 2021/06/05 [14:34] 수정 | 삭제
  • 왜 이런 것도 못배우고 그 오랜 학창시절을 났을까 참 화난다
  • 수성 2021/06/04 [19:08] 수정 | 삭제
  • 이거 아이디어가 좋네요
  • 2021/05/30 [11:01] 수정 | 삭제
  • 너무 당연한 상대에 대한, 몸에 대한 존중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 2021년에 이런 캠페인이 시작된다는 게 참 슬프면서도 희망을 걸게 된다.
  • 뭉게구름 2021/05/30 [10:49] 수정 | 삭제
  • 우리 이런 복잡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자는 그걸 짤라버리고, 여자는 그 곳을 아예 막아버립시다.
  • 미유 2021/05/27 [21:15] 수정 | 삭제
  • 솔직히 말하면 성적인 행위에 대한 동의나 합의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더 많이 다른 사람들 사례를 듣는다면 좀 도움이 될 거 같기도 하네요..
  • Aneh 2021/05/27 [19:46] 수정 | 삭제
  • “계약서라도 쓰라는 말이냐”라고 빈정거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로 계약서를 써본다면 어떨까? ㅋㅋ 토크쇼 기대되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