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숨기고 싶었던 비밀이 하나 있다. 어릴 적 나와 친구들의 소꿉놀이는 엄마아빠 놀이도, 병원 놀이도 아닌 사장님과 비서 놀이였다. 왕자와 공주도 아니고 사장님과 비서라니!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히지만, 나는 심지어 비서 역할을 선호했다. 사랑받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놀이의 스토리는 늘 비슷했다. 착하고 가난한 비서는 나뭇잎 같은 재료로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한다. 그때 누군가 비서를 시기 질투하고 괴롭힌다. 그러면 어디선가 멋있고 힘이 센 사장님이 나타나서 비서를 도와주고, 비서를 괴롭히는 이를 물리친다. 그리고 난데없이 사랑한다면서 비서의 한쪽 어깨 옷을 내린다. 이러시면 안 돼요, 같은 말을 하면서 비서는 소극적으로 행동한다. 그 놀이에서 사장님의 강제추행은 열렬한 사랑 고백으로 여겨졌고, 그때의 나는 그런 극적 연극에서 약간의 희열을 느꼈던 걸로 기억한다.
어쩐지 어른들한테 들키면 안 될 것 같은 그 놀이를 두세 번 했는지, 열 번쯤 했는지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또래 여자아이들하고 비밀리에 했던 그 놀이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내 안에 깊은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자리하고 있다. 초등학생이던 나와 친구들은 어떻게 그런 놀이를 개발했을까? 우리는 조숙했던 것일까? 위험했던 것일까? 나는 되바라진 아이였을까?
리베카 솔닛이 새로 쓴 신데렐라 이야기 『해방자 신데렐라』(아서 래컴 그림, 홍한별 옮김, 반비)를 보면서, 누구보다 어릴 적 그 놀이를 하던 나와 내 친구들에게 읽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겠지만, 솔닛의 『해방자 신데렐라』는 조금 다르다. 재와 검댕을 뒤집어쓰며 부엌에서 일만 하던 신데렐라가 대모 요정의 도움으로 드레스를 입고 호박 마차를 타고 무도회에 갔다가 유리 구두 한 짝을 놓고 오는 전개는 같지만, 신데렐라는 왕자와 결혼하지 않는다. 왕자도 신데렐라를 신부로 삼겠다는 억지를 부리지 않고, 언니들도 신데렐라를 시기 질투하는 걸로 자신들의 삶을 허비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신데렐라의 파티에 말과 마차꾼, 말구종으로 변신했던 동물들도 신데렐라가 행복해지기 위한 도구로만 머물지 않는다. “도마뱀들이 말구종이 되고 싶었을까?” 질문하고 질문받으며, 모두 가장 자기다운 모습이 될 수 있게 스스로 선택한다. 이 책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선과 악의 이분법적 캐릭터에서 머물지 않고, 수동적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거나, 사랑을 얻으려고 기다리지 않는다.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도전하고, 성장한다.
리베카 솔닛은 헌책방에서 찢어진 신데렐라 그림 한 장을 발견하면서 이 책을 구상하게 됐다고 작가의 말에 적었다. 솔닛이 발견한 헌책 속 신데렐라는 활달했고 “큰 쥐덫을 가져올게요.”라며 변신에 적극적이었다. 솔닛은 신데렐라 이야기가 ‘단순히 왕자와 결혼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변신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산과 파괴의 수단을 손에 쥐고 암사자처럼 세상을 헤쳐나가는 강력한 여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따듯한 이야기, 모든 존재의 해방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기에 신데렐라를 ‘해방자’로 다시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던 즈음,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몸의 심리학> 워크숍에 참여했다. 정신분석 연구자가 이끄는 그룹 워크숍인데, 참가자들은 각자 스스로의 몸을 어떻게 지각하고 있는지 돌아보면서, 그 지각과 시선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지를 몸에 관한 여러 가지 담론과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살펴본다. 워크숍에서 ‘아동기 초기와 후기, 청소년기 초기와 후기, 성인기까지 각 시기별 내 몸에 대한 이미지와 느낌은 각각 어떠했나?’ ‘각 시기마다 영향 받은 대인관계나 개인적, 문화적 사건은 무엇인가?’ ‘그때 경험은 내가 느끼는 내 몸의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거울을 볼 때 나는 내 모습을 주로 누구의 눈으로 보는가?’ 등의 질문지를 받았다. 답을 적어 나가면서 잊고 있던 여러 기억이 떠올랐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어릴 적 비밀리에 했던 사장님과 비서 놀이였다.
그런데 사실 그건 우리만의 판타지가 아니었다. 그 당시 배우 김혜수와 노주현이 출연했던 텔레비전 주말드라마 <꽃 피고 새울면>에서도 그려졌다. 정확하지 않지만, 내 기억에 남은 이미지에서 김혜수가 맡은 역할은 가난하고 착하고 예쁜 시골 소녀다. 그 소녀는 가족을 위해 상경해서 부잣집에서 신데렐라처럼 일을 하는데, 어느 날 부잣집 사장님이 부리부리하고 느끼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성폭행을 한다.(당시에는 그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러더니 소녀는 곧 예쁜 드레스를 입고 사장님의 부인이 되어 있다.
이 드라마에서 사장님과 만난 착하고 가난한 여주인공은 내게 유리 구두를 찾은 신데렐라와 다르지 않았고, 한쪽 어깨만 내려진 옷은 어른스러운 드레스의 상징이었으므로, 사장님과 비서 놀이는 사랑받는 몸으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어린 내게 신데렐라의 변신은 드레스를 입고 예뻐지는 것, 왕자님이 유리 구두의 주인을 찾으러 올 때까지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것, 욕망하지 않되 욕망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나는 얼마나 오래 수동적인 여성을 이상화하며 살아왔던 것일까!
돌이켜 보면 그때 나와 같이 야릇한 소꿉놀이를 했던 친구들은 모두 가난한 집 아이들이었다. 만화방 안쪽 가겟방에 살았던 S. 겨울에도 반팔만 입고 다닌다고 소문이 돌았던 H, 설비가게 위쪽에 다락방을 만들어 살았던 우리집까지. 우리는 바로 옆 아파트 놀이터에 들어가지 못하는 아이들이었고,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아마도 내가 어릴 적부터 예쁘지 않고 사랑받지 못하는 몸이라고 내 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 건, 통통한 어린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도 한몫했지만 깨끗한 옷을 입고 귀여운 머리방울을 하고 아파트에 사는 여자아이들에 대한 비교와 선망에서 비롯된 것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나의 유년이 부끄러움이나 선망 혹은 외로움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리고 현실의 나는, 수동적으로만 자라지 않았다. 밤이 늦도록 다방구와 술래잡기, 말뚝박기를 하며 신나게 놀았고, 뚝방에 가서 미꾸라지를 잡고, 나무에 올라 개복숭아를 따는 걸 좋아했다. 앞집 과일 가게 아저씨의 머리 빗는 버릇과, 기름집 아주머니와 자전거포 아주머니의 화투 놀이를 옆에 앉아 구경했으며, 가게 앞에 상을 차려 돼지꼬리를 내놓는 엄마 덕분에, 오가는 어른들이 주저앉아 고기 한 점 먹으며 꺼내놓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숙제를 했다.
다만, 내가 더 일찍 『해방자 신데렐라』 같은 진취적인 신데렐라를 만났더라면 수동적인 여성성을 이상화하며 나를 오래 부정하거나, 사랑받는 몸이 되도록 연기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았을 텐데, 야릇한 판타지를 가졌다고 해서 수치심이 나를 오래 가두지도 못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타인의 시선과 욕망을 신경 쓰며 살아왔다. 게다가 사랑받는 몸, 욕망의 대상이 되는 몸은 동경하는 상태임과 동시에 나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한 상태이기도 해서, 결국 나는 모순되고 갈등하는 몸으로 살아왔다는 걸 깨닫는 즈음이다.
나는 한 이야기가 어떻게 왜곡되거나 발전하거나 변주될 수 있는지, 이야기들은 어떻게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돌아볼 수 있게 된 후에야 나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 책, 『해방자 신데렐라』의 일러스트는 1919년에 C.S. 에반스가 쓴 신데렐라 책에 그린 삽화 그림 일부를 가져오 것이다. 영국 일러스트레이터 아서 래컴의 검은 실루엣 그림은 아름답고 역동적이면서, 인종을 떠올리게 하지 않고, “홀로 국경을 넘은 중앙아메리카 난민 아이들, 이주민 가정부들, 입양 아동들, 불안정하고 냉혹한 환경에서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모든 아이들, 집에서도 외부인 취급을 받는 사람들, 가정이 가장 위험한 공간인 사람들, 집이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해서, 이 그림을 선택했다고.
*필자 소개: 안지혜 님은 그림책 『숲으로 간 사람들』(김하나 그림, 창비, 2018)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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