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웹툰 『이대로 멈출 순 없다』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1년의 봄, 학교폭력 문제가 연예계를 휩쓸고 갔다. 이 흐름은 학교폭력이라는 주제를 또 한 번 우리 사회에 끌어올렸지만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보호하지 못한 것 같다. 누구를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학교폭력 문제의 해결이라는 게 무엇인지 논의하지 못했으니까. 우리는 학교라는 공간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언젠가 학교라는 곳은 정글 같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다수의 타인을 한 공간에 놓지만 공존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 곳. 학교 안에는 여러 가지 규칙이 있고 교칙이라는 형태로 연속적인 계승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들은 학생들의 삶에서 삶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적어도 교복 치마 길이 등의 복장 규정이나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요’ 같은 허울뿐인 말이 교실 생태의 평화와 안정을 불러올 거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데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학기 초, 전산오류로 정문여상에 발령 받은 교생은 학생 간의 싸움을 담임교사에게 보고하면서 학생과 상담할 것을 권고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하다. 그런 사소한 일을 모두 걸고넘어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교생은 아이들이 기절할 때까지 싸우는 모습과 학교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교사들을 보면서 정문여상을 무법지대라고 칭한다. 이곳에는 법뿐만 아니라 책임감 있는 어른 또한 없다.
“담임한테 말해봤자야. 여기 선생들은 그딴 거 1도 신경 안 써. 걍 빨리 적응해라.” 『이대로 멈출 순 없다』 8화 수학 내신 향상반(4) 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학교에서, 유미의 이야기
책임을 피하는 어른들의 등잔 밑, 포착되지 않는 사회의 틈에서 아이들의 삶은 흐른다. 정문여상에서 가장 선한 인물인 ‘유미’는 가정으로부터 벗어나 비슷한 처지의 청소년/청년들과 살고 있다. 평소 성매매 업소를 들락거리던 아버지가 자기 또래의 어린 여성에게서도 성구매를 하고 있음을 봤기 때문이다. 유미는 학교를 다니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평일 저녁과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 문제로 예민해져가는 자립팸 식구들을 위해서라도 알바 시간을 더 늘릴 생각이다. 그는 떠안고 있는 고민이 너무 많다. 그래서 유미와 친구들은 같은 시간을 서로 다르게 보낸다.
같은 반 아이들이 선도부 학생들과 시비가 붙어 복수할 방법을 궁리하는 동안에, 유미는 자기를 식구로 받아준 자립팸의 언니가 급전이 필요해 성판매를 한 일을 알게 된다. 성매매 시장의 착취 구조 속에서 돈을 모을 수도 없고 쉽게 빠져나갈 수도 없는 상황, 유미는 언니의 부탁을 받아 포주를 소개시켜준 자립팸 남학생 ‘정욱’이 상황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자 분개한다. 『이대로 멈출 순 없다』 시즌 1의 마지막 에피소드 ‘복수혈전’은 3반 아이들의 복수와 유미의 복수를 번갈아 보여준다. 3반 아이들은 선도부 학생의 오토바이를 훔쳐 불에 태우고, 유미는 정욱의 학교 앞에 찾아가 싸운다.
“언니가 전부 해결해달라 한 게 아니잖아! …언니는 너한테라도 도와달라고 한 거야! 그런데 네가 어떻게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어떻게… 나 하나로도 벅찬데 어떻게 도우란 말이야…. 너도 나한테 화풀이하는 거 말고 뭘 할 수 있는데… 이유미… 우린 아무것도 못 도와줘….” 『이대로 멈출 순 없다』 33화 복수혈전(5) 中
자취를 감춘 책임의 행방은 계속해서 대물림되고 흩어진다. 유미는 교장이 옆 학교와 엮이는 것에 예민하다는 이유로 퇴학당하고, 다른 학교 애한테 몸을 팔다 걸렸다는 출처 모를 소문이 퍼진다. 3반 아이들은 적금을 깼다는 유미를 도와주러 같은 학생들에게 모금을 받으면서 헛소문을 바로잡는다. 그것이 사회, 정치, 학교, 어른들이 회피한 책임 사이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언젠가 너의 자리가 생길 거야’, 성진의 이야기
정치와 학교와 그 안의 어른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임이나 할 일이 꼭 어른의 것으로만 한정될 필요는 없다. 또한 어른이 ‘적극적인 교사’, ‘능숙한 부모’ 같은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른들’은 무언가를 똑바로 책임지지 않아서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이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며 청소년과 심지어 청년으로부터 권한을 빼앗아왔다. 그렇지만 사회안전망이 유미를 보호하지 못하자 3반 아이들이 모금을 진행한 것처럼, 함께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들은 많은 것들을 해내고 있다.
정문동에는 조선족이 많이 산다. 당연히 정문여상에도 조선족 2세대가 있다. 그 중 몇 명이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했는데 그 대표적인 구심점은 마작부다. 마작부에는 유령부원을 제외하면 총 네 명의 학생이 소속되어 있고, 방과 후 인쇄실에 모여 마작 게임을 하고 간다. 이들의 만남이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어 선생님이 “언어뿐만이 아니라 문화나 현실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싶다”며 마작부를 만들었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곳으로 모인 게 전부다.
“분명 언젠가는 널 원하는 곳이 생길 거야. 나한테도 그런 일이 생겼던 것처럼……. 그때 그냥 놓쳐버리지 마라.” 『이대로 멈출 순 없다』 52화 해저로월(4) 中 “마작은 네 명이어야 할 수 있어. 앉지 그래?” 『이대로 멈출 순 없다』 54화 해저로월(6) 中
그랬던 성진이 다시 길을 잃은 것은 체육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사고사 탓이었다. 예전과 같은 궤도로 돌아온 성진은 정문여상에 진학한다. 이때 같은 반 친구들 중 한 명만이 유일하게 이미 막장으로 소문이 자자한 성진에게 말을 건다. 그 친구는 다름 아닌 마작부 가입을 권유한다.
끌려가다시피 마작 테이블에 앉게 된 성진은 금방 떠나려고 하지만, 예전에 체육 선생이 말했던 것처럼 그 테이블에는 성진이 필요하다. 마작은 네 명이서 하는 게임이니까. 그곳에는 성진의 자리가 있다. 그때를 놓치지 말라던 체육 선생의 모습과 이곳이 너의 자리라고 알려주는 마작부 선배의 모습은 멋지게 겹치고, 성진에게 있어서 마작부 동료들은 한때 체육 선생의 것이었던 ‘어른’의 역할을 나눠 가진 또래의 어른들이다.
이대로 멈출 순 없다
서로의 어른이 되어주는 일은 무법지대 같은 학교 곳곳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그걸 알려주듯 『이대로 멈출 순 없다』에는 수많은 캐릭터와 이야기가 등장하고, 이 모든 아이들의 삶과 성장은 작품 전체에 걸쳐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어느덧 여름방학식을 맞은 정문여상 아이들이 비록 같은 학교 학생은 아니게 되었지만 유미와 만나 노래방에 가고, 마작부 친구들끼리 계곡이나 바다에 갈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정문여상 학생들의 여정은 어느새 학교 바깥으로 나와 이들을 지켜보는 입장이 되어버린 나에게 책임이라는 게 뭔지, 어른이라는 게 뭔지, 성장이라는 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한다.
책임감이 자취를 감춘 현장에서 아이들은 각자의 역할을 찾고 규칙을 만든다. 아이들의 곁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이 사실을,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는 의도로 회피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들이 정한 규칙은 도덕적이기도 하고 비도덕적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존하는 실제의 경험을 통해 자생한 것이라는 점이다. 교실을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주체적인 역할을 존중하면서, 또 나의 책임감을 잃지 않고 접근해야 한다. 이를 알리기 위해 정문여상 아이들의 성장기는 이대로 멈출 수 없다. 바른 답을 찾을 때까지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무법지대의 규칙은 누가 정하나.
*필자소개: 원정. “문학이 언제나 약자를 대변하길 바라는, 유니브페미 활동가.” 페미니스트의 책장은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UnivFemi) 기획으로 채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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