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자들 이야기'를 기록한다. 지금 내가 선 자리를 지키는 일도, 정해진 장소를 떠나는 일도, 너와 내가 머물 공간을 넓히는 일도, 살아가는 일 자체가 투쟁인 세상에서 자신만의 싸움을 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세상이 작다거나, 하찮다거나, 또는 ‘기특하다’고 취급하는 싸움이다. 세상이 존중할 줄 모르는 싸움에 존중의 마음을 담아,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공부하고 노동하는 11명의 필자가 인터뷰를 연재한다. [싸우는여자들기록팀]
“성매매 하면 겪는 일이라는 게 비슷하거든요. 폭력적인 것도 많이 겪고, 일상이 거의 폭력적이죠. 그래도 손님하고 있었던 안 좋은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이야기를 안 했어요. 서로 묻지도 않았어요. 일하는 일상 자체가 스펙터클하니까. 그 말을 또 듣는 게 부담스럽고 반응하기도 힘들다는 걸 서로가 아니까. 나중엔 아예 말을 안 하는 게 익숙해졌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제 자신이 거슬리는 거예요. 이런 마음을 어떤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그 친구가 ‘원래 관계라는 건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견디는 거야’ 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사회적 시선에 따라 성매매 피해여성, 성판매 여성, 성노동자라고도 불리는 여성들. 이들 중 한 사람인 여름(가명)을 만났다. 방음벽이 설치되어 있는 스터디카페에서 만났다. ‘굳이 방음벽이 설치된 공간이어야 할까?’ 고민했으나, 성산업 종사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알기에 조심스럽게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생계를 위한 대가는 더 아픈 몸
여름은 정신질환으로 인해 사회가 원하는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일상을 지켜내지 못해 평범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고 했다. 아픈 몸으로 생계를 위해 성산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이 일에 종사한 지 3년이 되어가는 여름은 올해 초 섬유근육통(근육, 관절, 인대, 힘줄 등 연부조직에 만성적인 통증을 일으키는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곳저곳의 병원을 다니며 여러 검사를 하며 일 년 만에 찾은 병명이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성산업에 뛰어들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대가는 더 아픈 몸을 가지게 되었다. ‘일반적’인 노동을 할 수 있는 몸으로 회복하는 것이 언젠가는 가능할까.
“성매매 현장은 감정노동과 육체노동이 함께 이뤄지는 곳이에요. 성병은 기본이고, 면역력이 떨어지는 질병들을 대부분 가지고 있어요. 임신과 임신중지도 빈번하게 다들 겪죠. 나는 그런 일들이 일종의 ‘직업병’처럼 생각되는데, 그렇게 조명되지 않고 성매매 여성 개인의 부실관리로 생기는 문제라고 치부하는 것이 좀 이상해요. 특히 업주들은 성매매 여성들한테 병에 걸리지 않게 알아서 관리하라고 하거든요. 실장들도 ‘네가 몸 관리를 잘해서 손님을 받고 일하라’고 말하는데, 짜증이 많이 나요. 마치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살아갈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처럼 상정하고 말을 하는 것이요. 사실 신기하죠. 그들이 보기에도 우리 모습이 어떤지 보일 텐데.”
업주들은 여성들에게 성병과 임신을 조심하라고 하지만, 콘돔을 거부하는 손님을 어르고 달래는 일은 여성의 몫이다. 그들의 일터는 손님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걸 ‘폭력’으로 규정하고 제지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이 아니다. 성매매 여성은 성병과 임신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몸을 볼모 삼아 이윤을 거둬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강간을 당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
여름은 “(폭행이나 협박이 아닌) ‘동의’를 중심으로 강간죄를 개정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걸 봤어요”라며, 자신이 겪은 성폭력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일하면서 성폭력을 겪은 적이 있어요. 일단 그 상황에서 느껴지는 나의 불쾌한 감정이 과연 내가 느껴도 되는 감정인지 엄청 고민했어요. 나의 위치 때문에···. 내가 있는 공간은 ‘동의’가 전제된 성적 접촉이 일어나는 공간이고, 나의 ‘동의하지 않음’이 거의 영향력이 없는 공간이거든요. 실제 (종사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폭력을 당하기도 하고요. 고민 끝에, 이건 폭력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업주와 마담에게 얘기했지만 그들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강간을 당했다’라는 말 자체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나에겐 없는 거 같았어요.”
여름은 억울했고,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불쾌한 감정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하면서 겪은 일에 대해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던 태도에서 벗어나, 친구에게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자신을 친구에게 드러내자, 친구의 도움으로 한 여성폭력피해상담소와 연결될 수 있었다.
상담소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직접 겪은 상황을 말하는 것이 떨렸다. ‘내 성폭력 피해가 피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확실히 피해로 느끼게끔 전략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정말 내 말을 믿어 줄까’ 두려웠다. 상담소에서는 여름을 지지해주었지만, 여러 이유로 경찰에 사건을 고소하지는 않았다. 대신 심리상담 전문기관을 통해 심리상담을 지원받았다.
죽음에 대한 생각과 거리두기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가 만났던 여성들, 같이 일했던 가게 언니들은 거의 모두 정신질환이 있어요. 우울증 이런 거요.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면 다들 계획이 없고, 죽고 싶다는 말만 해요. ‘내일 아침에 눈 떴을 때 죽어 있었으면 좋겠다. 수 틀리면 죽어야지’ 이런 말들. 이런 생각과 말들이 그냥 입버릇처럼 느껴지진 않았어요. 성매매 여성들이 죽음에 대한 열망과 거리두기가 안 되는 거 같아요. 거리두기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공간인 거죠.”
여름은 열 두 차례 전문 심리상담을 받았다. 상담소에서 들어서면서부터 진심 어린 친절을 느꼈고, 특히 전문 심리상담 과정은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여름은 의료지원을 통해 받은 전문 심리상담에 대해 “무척 좋았다”고 말했지만, 상담소의 지속 지원 목적인 탈성매매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상담을 통해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알게 되긴” 했지만, 당장 현실의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여름은 여전히 성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언젠간 다른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죠. 지금보다 덜 팔리는 몸이 되면···. 사실 그만둘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에게 성매매가 이렇게 유일무이한 자원이 되어버린 게 슬프고, 문제라고 생각은 해요.”
세상이 나를 뭐라고 부르든, 나는 존재한다
“인터넷을 통해 ‘반성매매’와 ‘성노동’에 대한 주장이 격렬하게 이루어지는 광경을 봤어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성매매 공간에 존재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죠. 그리고 전반적인 성매매 구조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궁극적으로 나는 성산업이 철폐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도 당장은 성매매를 하고 있으니 안전하게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죠. 나는 나의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성매매 구조와 싸우고 있는 거 같아요.”
모순된 마음이다. 성산업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성산업 안에서 업주나 알선자, 구매자 들에게 인권을 침해당하지 않고, 폭력을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 자신의 신념과 삶의 방향이 온전히 들어맞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모순된 마음을 부정하지 않는 것도 용기다. 여름은 용기를 내어 끊임없이 사유하려고 한다.
여름은 성매매와 관련된 책들을 여럿 읽었다. 내심 특별한 기대가 있는 걸까? 성매매 관련 도서를 계속 잡아 든다. 자기가 속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이 반갑고 좋다고 한다. 성매매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어떤 식으로든 많아졌으면 하고 바란다. 타인의 관심이 커지면, 어떤 식으로든 전반적인 성산업이 변할 것이라 기대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만, 나의 말들이 대표성을 가지게 되는 것에 항상 조심스러워요. 반성매매나 성노동을 주장하는 양 진영이 꼭 당사자를 내세우잖아요. 가끔 어느 쪽 당사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어요. 나는 어느 쪽이다 라는 생각으로 살지 않으니까 대답도 명확하게 나오지 않죠. 친구들도(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이런 나를 알고 있고 이해하니까, 생각이 나와 조금씩 달라도 친구로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친구들과 서로의 안부를 묻기
“관계라는 건,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견디는 거야”라는 친구의 말처럼, 여름은 무거움을 견뎌보기로 했다. 그렇게 자신을 보고, 서로 보여주고, 서로를 보기로 했다. 소중한 사람이 받은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기, 서로의 몸과 마음 상태를 살피기. 이러한 마주봄은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친구들에게 엄청 꼬치꼬치 캐묻고 있어요. 어제 어땠는지, 손님이 어떻게 했는지. 그러면 친구는 그냥 괜찮았다고 대답할 때도 있고, 너무 힘들었다고 얘기하는 날도 있어요. 제가 얘기를 듣는다고 해서 당장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없죠. 성매매를 그만둘 수 있게 해준다거나 그런 게 아니니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지만, 아픈 걸 계속 서로 봐야 하지만, 서로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겪은 걸 언어화하는 일상을 보내려고 하고 있어요.”
성매매 현장, 그 공간에 여름(수많은 여름들)이 있다. 자신의 삶의 조건을 구성하는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자신을 어떻게 위치 지을 것인지 고민하며 ‘살아내기’를 하고 있다. 한국의 성산업 구조 속에서 성매매 여성은 모순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 무거운 사실을 받아들이고 감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그 중 한 명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면 좋겠다.
[필자 소개] 하랑. 페미니즘 시각으로 여성과 노동, 여성노동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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