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의 여왕’ 할머니의 실패담에 마음 끌리는 이유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그림 『폭포의 여왕』

안지혜 | 기사입력 2021/11/10 [16:07]

‘폭포의 여왕’ 할머니의 실패담에 마음 끌리는 이유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그림 『폭포의 여왕』

안지혜 | 입력 : 2021/11/10 [16:07]

이런 장면을 상상해보자. 1901년,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와 가까운 도시 한복판에 많은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그 도시에서 가장 큰 호텔 앞에 사람 몸집만한 나무통 하나가 전시되어 있는데, 그걸 보러 몰려든 것이다. 그 나무통은 예사 통이 아니고, 열흘 뒤 한 여성을 속에 태우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내려올 걸로 예정된 통이다.

 

▲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그림 『폭포의 여왕』 (서애경 역, 사계절)

 

나이아가라 폭포를 정복할 여성의 이름은 애니 에드슨 테일러! 그녀는 기자와 사람들에게 자신이 마흔두 살이라고 했지만 누가 봐도 믿기 어려운 말이다. 실제로 그녀는 예순두 살인데 사람들이 자신보다 젊은 사람을 더 좋아할 거라는 걸 알고 거짓말을 보탠 것. 그러나 애니는 분명 열흘 뒤 폭포를 탈 것이다. 세상 누구도 이루지 못한 그 일을 해낼 것이다. 그러고 나면 명예와 재산을 다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무통을 구경하려고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을 저 뒤쪽에서 매니저와 함께 바라보며 구경하고 있었으니까. 그때 애니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나이아가라 폭포를 정복하려는 할머니, 애니

 

그림책 『폭포의 여왕』은 1901년, 나무통에 들어가서 나이아가라 폭포 타기를 성공한 최초의 여성, 애니 에드슨 테일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애니의 숭고한 스포츠 정신이나, 역경을 넘은 도전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애니의 성공 스토리가 아닌 것. 폭포 타기에는 성공했지만 어떤 의미에서 애니의 인생은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기도 하니까.

 

그런데, 나는 왜 실패한 인생을 산 여성의 이야기에 이토록 마음이 가는 걸까. 그건 이 책이 내겐 할머니 이야기여서이다. 인생과 현실을 좀 아는 할머니!

 

애니는 순하고 부드러운 성품이기보다는 고집 세고 전략을 세울 줄 알고, 필요하면 적절한 거짓말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애니가 나이아가라 폭포 타기에 도전한 것도 가만히 있다가는 구제원에 가게 될 것 같아서, 돈과 명예를 한 번에 얻으려고 생각해 낸 것이다. 그러니까 애니는 일찍이 남편을 잃고 혼자 작은 학교를 차려 아이들에게 춤과 예절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다. 처음에는 백 명이 넘는 학생들이 등록했지만, 애니는 점점 늙어 갔고 학생 수는 줄어들었다. 결국 학교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됐다.

 

애니는 좁은 셋방에 틀어박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가게 점원이나 가사 도우미 같은 일자리를 찾아볼까 싶었는데 그 일로는 푼돈만 벌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노후를 대비하겠나! 게다가 계산대에 앉아 자신이 가르쳤던 아이들에게 사탕을 팔거나, 그 아이들의 부모가 보는 앞에서 마루를 닦는 건 정말이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궁리에 궁리를 해봐도 뾰족한 수가 생기지는 않고 얼마 남지 않은 돈마저 다 떨어져 가던 어느 날, 애니는 신문에서 나이아가라 폭포 기사를 보고서야 무릎을 쳤다. 나이아가라 폭포 타기에 성공만 하면 큰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스친 것!

 

▲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그림 『폭포의 여왕』 (서애경 역, 사계절) 중에서 

 

애니는 야망이 있는 여자인데다 일도 잘하는 사람이었다. 폭포에 떠밀려도 부서지지 않을 나무통을 혼자 설계했다. 설계도를 들고 공장에 찾아갔다. 공장장은 나무통 속에 들어가 폭포 타기를 타다니 무슨 미친 생각이냐며 무시했지만, 애니는 포기하지 않고 공장장을 설득해서 강철 테두리를 두른 나무통을 완성한다. 속에 푹신한 배개를 넉넉히 넣도록 설계했고, 몸을 안전하게 지지해줄 가죽벨트와 손잡이도 단단하게 만들어 뒀다.

 

그 다음으로는 매니저를 고용했다. 어느 용감한 여자가 어마어마한 폭포를 정복하려 한다는 이야기는 놀랄 만한 소식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애니는 자신이 폭포를 타기 전에 미리 매니저가 나이아가라 폭포로 가서 그 지역 기사들을 만나 취재 요청을 하도록 준비한 것이다. 이렇게 철저히 준비한 애니는 정말로 나무통 속에 들어갔고,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17층 건물만한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어마어마한 폭포를 타기에 이른다. 요란하게 우르릉거리며 쏟아지는 물기둥을 타고 절벽과 바위에 부딪히며 폭포를 타고 내려오는데….

 

어떻게 늙어 가야 할까?

 

중년이라고 불리는 나이가 된 지금, 나 역시 애니처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늙어 가야 할까 고민하곤 한다. 나는 애니처럼 나이가라라 폭포를 탈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도 몇 해 전 친구들과 같이 살았던 때에는 이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죽임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굶어 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만든 영화 <어른이 되면> 삽입곡을 친구들과 종종 부르던 시절이어서, 내가 비혼으로 가난하게 늙어도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으로 혼자 시간을 많이 보내서인지, 친구들과의 마음이 달라진 게 아님에도, 나는 미래를 그리 낙관하지 않게 되었다. 관계도 체력이라든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과 자본이라든지, 최소한의 기반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독거노인이 될 건 확실하고, 모아둔 돈이 없으니 아프면 어떡하나 불안하고. 거칠고 드센 내 기질과 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어서인지, 우악스러운 꼰대 할머니가 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가득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노년에 대한 안전망은 마련하지 못했고, 극단적인 할머니 상만 매체에서 주로 보여주거나 노년에 대한 불안을 부추기다 보니 나 역시 내 미래를 불안하게 점칠 수밖에 없게 된 건지 모른다.

 

▲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그림 『폭포의 여왕』 (서애경 역, 사계절) 중에서

 

이런 시기에 만난 애니의 욕망과 현명함, 당당함은 내 불안을 가볍게 잠재워준다.

 

폭포타기에 성공한 애니는 이제 매니저와 많은 곳을 다니며 강연을 해서 돈을 벌겠구나,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애니가 젊은 여성이 아니라며 주목하지 않았고 나무통에만 관심을 보였다. 매니저는 혼자 돈을 벌기 위해 나무통을 훔쳐 도망가버렸다. 애니는 어렵게 나무통을 되찾아 왔고 새로운 매니저를 구했지만 새 매니저도 사기를 치거나 나무통을 훔치거나 별반 다르지 않은 행동들을 일삼았고, 이후에도 애니의 고난은 연속으로 일어났다.

 

그러는 중에도 애니는 자신이 가진 것을 활용해서 돈과 명예를 얻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결국 자신의 기력이 약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 작은 가판대를 세우고 정착한다. 거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자와 엽서를 만들어 판다. 사람들이 다가와서 폭포의 여왕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자기가 바로 그 여왕이라는 걸 설명하느라 쩔쩔매면서도 그렇게 살아간다.

 

이 그림책 구석구석에 나를 흔드는 내용이 많지만, 바로 이 지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돈과 명성을 얻고자 하는 솔직한 욕망을 드러내고,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계속하는 것. 고난을 겪지만 뚫고 나가는 의지력 말이다. 그런데 더 멋진 건, 어떤 시기에는 자신의 힘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능력. 그것을 수용하는 현명함! 사람들에게 주입된 여성 영웅 이미지와 다른 자신을 설명하는 일이 난감하면서도, 늙어가는 모습 그대로, 그렇게 계속 세상에 속하고, 세상을 관찰하고 세심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모습까지!

 

훗날 애니는 자신을 찾아온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일로 큰돈을 벌지 못했고, 좌절감을 느끼며 살아왔어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고 덧붙인다.

“나는 ‘그 일을 한 사람이 바로 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해요.”

이 책을 다 읽고 나보면 어쩐지 애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얼마 전에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노래를 같이 부르던 친구와 전화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늙으면 폐지를 함께 줍자고, 폐지 주워서 재활용 종이를 만들자고. 힘없이 구부정한 채여도 괜찮다고, 환경을 덜 망가뜨리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무엇이든 천천히 만들자고. 그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용기가 났다. 몸을 쓰는 것, 만드는 것, 아파도 아픈 채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주위의 친구들과 농부들과 할머니들에게서 배워나가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새로운 곳에 가더라도 새 이웃들과 그럭저럭 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필자 소개: 안지혜 님은 그림책 『숲으로 간 사람들』(김하나 그림, 창비, 2018)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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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1/11/11 [13:45] 수정 | 삭제
  • 므찌다 므찌다 애니 할무이
  • 2021/11/10 [22:06] 수정 | 삭제
  • 할머니 표정이... 벌써 그냥 감동이네.. 그림책을 너무 보고 싶어지게 만드네요. ㅋㅋ
  • 돌멩이 2021/11/10 [19:00] 수정 | 삭제
  • 오랜만에 글 올리셨네요.. 늙어가는 입장에서 마음을 다독여주는게 편안함을 안겨 주네요~~ 고맙습니다. 행복하게 늘거 갑시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