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보는 광고, 이미지들을 젠더 관점으로 읽기

미술사·젠더사 연구자 기라 토모코 인터뷰

시미즈 사츠키, 구리하라 준코 | 기사입력 2021/12/08 [10:14]

매일 보는 광고, 이미지들을 젠더 관점으로 읽기

미술사·젠더사 연구자 기라 토모코 인터뷰

시미즈 사츠키, 구리하라 준코 | 입력 : 2021/12/08 [10:14]

일본 도쿄신문 석간에 연재되고 있는 칼럼 「댓글 전쟁 고찰」(炎上孝)이 흥미롭다. 수영복을 입은 여성이 등장하는 음료 광고나, 양식 장어를 여성에 의인화한 지자체 홍보영상(가고시마현 시부시(市)의 고향 납세 홍보영상 ‘장어녀’는 시부시에서 자란 장어라는 이름의 수영복을 입은 소녀가 “날 키워 달라”며 애원하는 내용을 담아 논란이 됨) 등에 대해 “시대착오적”이고 “유아에 대한 성적 학대를 환기한다”며 젠더적 관점으로 날카롭게 따진다.

 

「댓글 전쟁 고찰」의 필자이자, 세상에 넘쳐나는 표상을 읽어내는 이는 미술사와 젠더사 연구자인 기라 토모코(吉良智子)씨이다. 저널리스트인 시미즈 사츠키 씨가 그를 인터뷰하고 구리하라 준코 씨가 글로 정리했다. [편집자 주]

 

▲ 미술사와 젠더사 연구자 기라 토모코(吉良智子)씨. 1974년 도쿄 출생, 일본여자대학 학술연구원. (사진 촬영: 우이 마키코)

 

여성에 대한 미술교육은 신부수업의 일종이었다

 

기라 토모코 씨는 어린 시절 부모와 남동생, 조부모가 함께 사는 가정에서 자랐다. “10대 때는 속마음을 말하지 못해 갑갑했다”고 한다. 항상 시부모의 안색을 살피며 살았던 전업주부 어머니의 푸념을 듣곤 했다.

 

“어머니가 난처해지지 않도록 ‘착한 아이’로 지냈어요. 막연하게 나도 어머니 같은 인생을 살겠지 했는데, 대학 수업에서 여성이 살기 어려운 것은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서부터 다르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해 폭넓게 문화 현상을 공부하는 문화학과를 택했다. 수업에서 “왜 여성 예술 거장은 나타나지 않는가”라는 제목의 해외 논문을 읽고 “이 역시 사회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납득할 수 있었다.

 

“메이지 시대에 서양의 예술이 유입되었고 ‘보는 주체인 남성과 보여지는 객체인 여성’이라는 구조가 강화되었습니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당시 여성에 대한 미술교육의 장은 민간으로 제한되어 있었고, 그조차도 현모양처주의에 기반해 취미로서나 추후 자녀 교육에 필요한 교양을 쌓는 것이 목적이었죠. 중산계급의 여성에게 여자의 나체를 그리는 서양화는 허용이 안 되었지만, 신부수업의 일종으로 일본화를 배우는 것은 용납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일본화 전시 등에 데리고 가줬던 것도, 교양을 쌓게 하기 위해서였던 거죠.”

 

전쟁시기 여성 화가들이 그린 ‘총구 후방의 여자들’

 

기라 토모코 씨는 젠더 관점으로 예술에 접근하는 사람들로부터 자극을 받아, 미술가 시마다 요시코(嶋田 美子), 연구자 故 치노 카오리(千野 香織), 故 와카쿠와 미도리(若桑 みどり) 등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를 계속해 나갔다. 한때 연구에 자신감을 잃어 3년 정도 떠나 있었지만, 열정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다고 한다. 오랫동안 계속 연구하고 있는 주제는 ‘여성 화가와 전쟁의 관계’이다.

 

“제가 나온 고등학교는 2학년 때 근현대 일본사만 몰아서 공부하는 학교였어요. 당시 심야 방송프로그램이었던 <11PM>이 특집으로 다룬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선생님이 보여준 난징대학살의 처참한 사진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행한 참혹한 짓에 충격을 받고부터 계속 전쟁과 전쟁화에 관심이 갔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라 씨는 전쟁 시기에 여성 화가들도 활약했다는 사실을 알고, 공들여 발굴하고 검증했다.

 

여성 화가들이 만든 단체였던 ‘여류미술가봉공대’는 전투기나 포탄을 생산하는 여성들, 또 농업·어업 등에 종사하는 ‘총구 후방의 여자들’을 공동으로 그렸다. 공장에서 근로봉사를 했다는 화가도, 그림으로 그려진 육체노동을 하는 여성들도, 모두 전시 남성의 대체노동자로서 ‘총력전’에 참가한 것이었다.

 

“국가적인 사업에 참여하면 화단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여성 화가의 지위도 향상될 거라고 기대하고 참여한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여성들과 연대하고 자립하려고 했던 여성 화가들의 생각은 국가에 의해 전쟁의 프로파간다에 이용당했다.

 

“대학 수업에서 전쟁에 주체적으로 관여한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은 ‘전쟁에 협력하다니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여성의 인권과 지위 현황을 무시한 채 여성 활약 추진 운운하는 정부의 정책에 생각 없이 편승하면, 노동력으로서 가부장적 국가에 포박당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얘기해주지요. 그러면 학생들도 다시 생각을 해보더군요.”

 

쏟아지는 이미지들에 세뇌당하지 않으려면

 

여성 작가의 작품은 다분히 ‘여성다움’이나 ‘엄마다움’과 결부되어 향유되고 있다. 일본의 미술계에서는 아직 젠더미술사 연구를 이질적인 눈으로 보고 있다고.

 

“남성이 그리고, 여성이 모델인 회화는 대상의 연령에 따라 ‘소녀상’ ‘부인상’ ‘노파상’으로 장르가 나뉩니다. 그중 여성의 내면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은 에로스의 대상으로부터 벗어난 ‘노파상’이라는 선행 연구가 있어요. 이런 것들, 이상하지 않나요?!”

 

기라 토모코 씨는 그동안의 연구 작업을 기록하여 『여성화가들의 전쟁』(헤이본샤),『전쟁과 여성화가- 또 하나의 근대 ‘미술’』(Brücke), 공저로 『젠더 분석으로 배우는 여성사 입문』(이와나미쇼텐) 등의 책을 펴냈다.

 

미술사만이 아니라, 표현과 이미지에 대한 젠더 관점의 비평이 필요하다고 기라 토모코 씨는 말한다.

 

“길을 걸으면 간판에는 그림이 있고 사진도 있죠. 온라인이나 SNS가 발달한 사회에서, 이제 그림/사진을 보지 않는 날은 없을 겁니다. 표상이 의도하는 것을 제대로 읽어내는 방법을 모르면, 무의식적으로 그 이미지에 세뇌당해버리게 되죠. 이미지를 읽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 몇 년 전부터 일본 온라인에서 크게 논란이 된 성차별, 성희롱 광고들. (출처: 페민 제공) 관련 기사: 성차별 방송광고에 ‘댓글 뭇매’로는 족하지 않다 

 

도쿄신문에 연재 중인 「댓글 전쟁 고찰」은 “이미지를 읽는 문화”를 확산시키고자 하는 노력 중 하나다. 그런데, 연재 칼럼의 댓글에는 혹평이 따라붙곤 한다.

 

“표현과 젠더에 관한 문제는 반응이 불붙기 쉽죠. 제 글을 비판하는 사람 중엔 남성이 많은데요, 그들은 ‘만화, 아니메, 게임에 나타나는 일본 특유의 이미지(萌え絵, 모에)에 대해 재수 없는 소리를 하는 페미니스트’라는 딱지를 붙여 비난하죠.”

 

온라인 댓글뿐 아니라,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주로 맡아 온 남성들 역시 여성 작가들을 배제하고 주변화시켜왔다고 기라 토모코 씨는 지적한다.

 

“가츠라 유키(桂 ゆき, 1913~1991) 작가는 ‘재봉’ 등, 당시 예술로부터 배제되는 손작업 기법에 천착했습니다. 이처럼 간과되어온 여성 작가의 역사를 다시 엮어내고 싶습니다.”

 

※ <일다>와 제휴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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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영 2021/12/09 [16:05] 수정 | 삭제
  • 전쟁 시기 일본의 여성 화가들 얘기 더 알고 싶은데 국내 번역된 책은 없는 것 같네요.
  • hyun 2021/12/08 [20:06] 수정 | 삭제
  • 헐.. 어째 한국이랑 일본은 그리 비슷하냐.. 양식장어에 비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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