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엄마를 때린 아빠, 딸은 경찰서에 갔다[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고향 친구 예나와 나눈 1년간의 대화* ‘싸우는 여자들 이야기’를 기록한다. 지금 내가 선 자리를 지키는 일도, 정해진 장소를 떠나는 일도, 너와 내가 머물 공간을 넓히는 일도, 살아가는 일 자체가 투쟁인 세상에서 자신만의 싸움을 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세상이 작다거나, 하찮다거나, 또는 ‘기특하다’고 취급하는 싸움이다. 세상이 존중할 줄 모르는 싸움에 존중의 마음을 담아,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공부하고 노동하는 11명의 필자가 인터뷰를 연재한다. [싸우는여자들기록팀]
아주 오래된 폭력과 맞서다
이 글은 1년 간의 대화를 정리한 글이다. 대화가 시작된 것은 본가에 잠시 머물던 올해 초의 일이었다. 전라도 남쪽 끝자락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대부분이 지역을 떠난다. 예나(가명)와 나도 그랬다. 이젠 아는 얼굴이 별로 남지 않은 고장에서 우리는 자주 만났다. 그날은 읍내의 한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쳤었다고 기억한다. 그때 예나는 전날 일어난 가정폭력에 대해 경찰서에서 진술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후에 편지에서 예나는 나에게 말했다.
“현실을 잊기 위해서 다른 곳으로 도피하는 건 그리 좋지 못한 것 같아. 그걸 그렇다고 직면할 자신도 딱히 없어. 잠을 많이 자는 이유도 이런 것 같아. 꿈은 항상 재밌거든. 이렇게 회피만 해선 안되겠지. 나도 삶을 살아야겠지? 아무튼 민경아 넌 내 현실 중 하나고 난 너랑 꽤 오래오래 보고 싶어. 어떻게 계속 연락하고 지내자.”
우리는 간격을 길게 두고 만나며 그날의 사건에 대해, 그보다 더 오래된 폭력의 맥락에 대해, 그리고 가해자를 지목할 수 없는, 그래서 폭력으로 명명하기 어려운 기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예나는 그런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처음이었다고 했다. 나 역시 다른 이의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듣는 경험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듣는 일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공동작업자였다. 예나가 기억을 꺼내놓으면 우리는 함께 그것을 서사화하고 정치의 언어에 가닿고자 했다. 그것은 우리가 기억을 다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건 결국 계속해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다.
인터뷰를 통해 슬픔, 분노, 우울이 조금씩 정리돼
민경: 이야기를 처음 시작한 게 올해 초였잖아. 그리고 드문드문 만나면서 계속 우리가 이야기를 해왔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에 대한 너의 감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해.
예나: 그러게. 이 일도 벌써 1년이 되어가네. 초반에는 슬픔과 분노와 우울이 뒤섞여서 불쑥불쑥 폭발할 때가 많았어. 너랑 얘기를 하면서 점점 정리가 된 것 같아. 감정이 녹은 후에 사실만 놓이게 된 느낌이야. 그냥 나한테 있었던 하나의 경험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 이 인터뷰 덕분이라고 생각해. 생각하고 직면하고, 나의 말로 설명하고 이해했던 모든 과정 덕분이야.
민경: 나는 「싸우는 여자들」이라는 기획이 처음 만들어지던 회의에서 네가 생각이 났었어. 세상이 싸움이라고 부르지 않는 싸움을 조명하자는 이야기를 나눴거든. 너는 스스로를 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 있어? 네가 하고 있는 싸움을 사람들한테 소개한다면 어떻게 이야기할 것 같아?
예나: 일단 이 인터뷰가 시작되게 된 사건은 올해 초에 아빠가 엄마에게 폭력을 가한 일이었지. 사실 언젠가는 일어날 거라고 예상했던 일이었어. 아빠의 폭력성을 느낀 건 아주 어릴 때부터였으니까. 왜 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손을 쓰지 못했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누구라도 그 일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가부장적이고 수직적인 분위기가 특히 강했던 집안이어서 아빠를 통제할 사람이 없었어.
내가 싸우고 있다면 그건 내 안의 이상과 실제로 처한 상황과의 괴리에 대한 싸움일 거야. 모순을 견디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거, 그게 내 싸움인 것 같아. 현실에 안주하고 생각을 멈추어 버린다면 아무것도 안 하는 인형이 되는 거라 생각해. 여기서 현실이란 아빠의 폭력이기도 하고 이 폭력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친가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이기도 해. 무엇보다 아빠의 폭력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집안 분위기인 것 같아.
민경: 사람들은 가정폭력을 신체적인 폭력 중심으로 생각하잖아. 경찰이 개입할 때도 그런 극단적인 폭력이 일어날 때고. 네가 느끼는 건 좀 다를 것 같아.
예나: 훨씬 오랜 폭력에 대한 맥락이 있지. 아빠는 나랑 동생들이 어릴 때부터 수틀리면 폭력을 사용했는데 화를 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어. 같은 공간에 있으면 내 주의가 아빠를 향하게 돼. 집에서 큰 소리가 나면 무섭고. 아빠가 누구를 부를 때 큰 목소리를 내거나 행동이 커지면 엄청 긴장하게 되고.
아빠가 그런 행위를 할 때 우리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어. 아빠가 아니어도 눈 앞에서 누가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걸 보면 그게 나한테 향하지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껴. 특히 남자가 그럴 때. 저 행위를 중재할 수 없다는 거, 나에게 위협적임에도 저 꼴을 봐야 한다는 거, 무서우면서도 짜증 나는 그런 익숙한 느낌이 있어.
아빠의 폭력을 당연시하는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
민경: 그런 상황 속에서 너 자신을 지키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있을 것 같아. 너를 버티게 했던 건 뭐였어? 다른 말로 한다면 너만의 투쟁 전략을 소개한다면 뭔 것 같아?
예나: 아빠가 그럴 때 다른 가족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생각해봤어.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그 당시에는 나와 의견이 다른 가족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각자의 버팀이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나와 같은 의견인 사람들을 보고 얘기를 듣는 것이 힘이 됐지. 내가 처한 상황이 잘못된 것이고 나의 잘못은 없다는 걸 계속 생각하려고 했어. 나는 그때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했어. 사건 직후에 신고를 했는데, 폭력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고 싶어하지 않았던 다른 가족들이라면 하지 않을 일이었어. 이후에 아빠, 엄마, 나, 동생들이 다 같이 이야기하도록 주도하기도 했어.
이제는 집에서 멀어져서 기숙사에 살고 있는데 이것도 도움이 됐어. 거리가 멀어지니까 심리적으로 부담이 적어져. 집에 가족들이 있지만, 일단은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맞다고 봐. 내가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된다고 생각했어. 집 안에 있으면 항상 날이 서있을 수밖에 없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폭력 때문에 긴장하고 있어야 하니까. 내가 다른 가족들에 비해 더 예민한 편이기도 하고. 집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기가 어려운 것 같아.
중고등학생 땐 인터넷에 빠져서 회피해왔다면 대학생이 돼서는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있는 손뜨개, 그림 그리기를 하면서 성취감을 느꼈어. 스스로 무언가를 완성했을 때, 남들이 나의 결과물을 보고 잘 했다고 칭찬했을 때, 그런 때의 감정을 조각조각 모으면서 버텨온 것 같아.
농어촌 이주여성의 노동과 사회적 위치를 깨닫고
민경: 엄마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 난 너한테 처음으로 이런 얘기를 듣던 날 여성단체에서 하는 ‘가정폭력 상담원 교육’을 신청한 참이었어. 얘기를 듣자마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도 “아, 교육을 더 빨리 들었으면 좀 더 적절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였어. 친구 입장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너무 어려웠거든.
근데 그 후로 교육을 듣는데 피해 여성을 어떻게 가해자로부터 분리할 것인지, 자립을 어떻게 할 것인지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되는 흐름이 있더라고. 이주여성의 가정폭력에는 진짜 어려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전에 네가 ‘엄마가 막내가 성인이 되고 난 후에 필리핀으로 갈 거라고 하셨다가, 한국에서 계속 살 거’라고 말했다고 한 것 같은데?
예나: 응. 사실 그런 갈등엔 이 지역에서 일해서 충분한 돈을 모으기 어렵기 때문에 이후에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는 맥락도 있는 것 같아.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게, 내가 빨래 공장에서 2주 동안 알바를 한 적이 있어. 하고 와서 어깨랑 허리가 발바닥이랑 너무 아파서 진짜 죽을 것 같은 거야. 왜냐하면 서 있기만 하거든. 서서 빨래만 이렇게 죽어라 개. 그렇게 공장 소음 속에서 사람들 모습이랑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보고 있으면 진짜 낙관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거야.
그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주여성들 아니면 중년 여성들이야. 이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서 정말 몇십 년을 앞으로 계속 일할 텐데, 혹시나 몸이 아프면 진짜 이 고강도 노동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러다가 허리를 다치고 팔을 다쳐도 안타까울 뿐, 몸이 다칠 정도로 힘든 노동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돈 문제도 그래. 나야 어리기도 하고 이쪽 국적이기도 하니까 어쨌든 최저시급을 받지만 그 사람들은 1달 치로 받는데, 그걸 계산하면 최저 시급이 안 돼. 나보다 훨씬 더 일하시는데도. 그리고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냥 꼬깃꼬깃한데 그 분들은 그냥 뚝딱하면 정사각형 이렇게 된단 말이야. 사실 엄청난 기술이잖아.
그리고 들으니까 빨래 공장이 일감이 없으면 갑자기 사람을 줄이거나 그냥 공장을 닫을 수도 있는 거 같더라고. 친구가 말해줬어. 그래서 사람을 줄인 적이 있다는 걸 들은 것 같기도 해. 그러면 그 사람 입장을 또 한번 상상을 해보는 거지. 일을 할 만큼 되게 절박했을 텐데 그것마저 잃었으면 대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리 엄마는 농사를 전업으로 하시는데 농사도 별반 다를 게 없어. 하루 종일 밭에서 논에서 허리 펼 시간도 없이 일을 하셔. 그런데 수입은 일정하지도 않고 고된 노동에 비해 넉넉하게 들어오는 편도 아니야. 아빠도 농사를 하고 있지만 노동의 강도가 다르다고 생각하거든. 아빠는 주로 큰 농기계를 운전하고, 아니면 쉬는 시간이 많아. 큰일이 아닌 이상 밭에 안 가는 경우가 많고.
민경: 근데 한편으로 이런 열악함이 있지만 이주여성들이 여기를 떠나고 싶어하는지는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
예나: 맞아. 분명히 이미 지역과 가족의 중요한 구성원이고 뿌리내리려고 애쓴 시간들이 있잖아. 우리 엄마도 그렇고 다른 이주여성 이모들도 여기서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학교와 센터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네일샵이나 가게를 차리고, 남편이 무능하니 이혼하고, 돈을 벌어서 집안의 생계를 이어나가고, 자식의 대학 등록금을 지불하고, 더 나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 살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서로에 대한 유대감도 크지. 이모들끼리 자주 모여서 음식도 만들어 먹고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셔. 그 공간에 있으면 느껴지는 유쾌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있어. 우리 지역을 조금만 돌아다녀도 심심찮게 이주여성을 만날 수 있잖아. 이 사람들은 이제 온전히 이 지역의 일원이지. 다문화 가정 자녀보다도 오래 사신 거잖아.
이주여성을 마냥 불쌍하게 보라는 게 아니라 이들에게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와 권리를 인정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 누구보다도 이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을 어떻게 배척할 수 있겠어.
‘나의 경험으로 다른 이의 경험에 가닿기’
민경: 우리 고등학생 때가 생각나. 사실 그때 누구나 이 지역을 탈출하고 싶어 했었잖아. 그리고 우린 결국엔 성공해서 지금은 다른 곳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근데 탈출에 성공했다는 게 온전히 단절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아. 난 요즘 이곳에서 본 장면들이 나한테 크게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의 삶에도 그럴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해. 너는 어떤 것 같아?
예나: 내가 이곳에서 이런 경험들을 했잖아. 폭력 문제가 이렇게 수면에 올라왔을 때 나와 대화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경찰도 진술을 받았고, 다문화가족 지원센터에서도 왔었고. 그런데 그 사람들은 나를 배려하지도 않았고 내 이야기를 오래 듣거나 깊이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았어. 그래서 나도 빨리빨리 대답이나 해버리고 그랬단 말이지. 낯선 사람에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마음 속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겠어.
그때 그러고 나니까 나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더 많을 텐데, 그런 사람들의 경험에 공감하고 해결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사회복지학과잖아, 우리 과에선 사례 관리라고 하는 걸 배워. 예를 들어 가정 내에서 매일 갈등이 있을 때 그걸 관리하고 최종 종결까지 하는 과정을 배우는 거야. 사회복지사가 되면 그런 일을 할 때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내가 이런 경험을 얘기했을 때 듣는 사람들이 경찰도 남자였고 센터 사람도 남자였단 말이야. 그래서 내 말이 가닿지 않을 것만 같다고 느껴졌었어. 근데 나는 이런 경험이 있고 여성이니까 그래도 나를 조금 더 편하게 느끼지 않을까, 나의 강점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랬어.
민경: 기사로 나가면 너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이 글을 읽을 수도 있잖아. 혹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예나: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당한 폭력 경험에 대한 얘기가 나온 적이 있어. 그때 내 얘기를 하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이 여러 반응을 해줬는데, 그런 일을 겪고도 견뎌냈다는 게 정말 대단하고 고맙다는 얘기를 들었거든. 지나고 생각해보니까 그 말이 참 좋았던 것 같아. 그래서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도 그 말을 해주고 싶어. 무엇보다도 그 당시 나는 할 수 있었던 만큼 했을 거란 거. 그런 말을 전하고 싶어.
오랜 대화였던 만큼 글을 쓰는 시간이 길었다. 인터뷰를 목적으로 녹취하지 않은 대화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대화는 나의 기억에서 구성되고 예나가 확인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우리는 함께 글 속의 ‘예나’를 보았다. 예나의 감정이 이동하고 해석이 나아감에 따라 글 속의 ‘예나’도 변화했다.
장소가 주는 무기력과 우울에 대한 이야기에서 한동안 나아가지 못하던 우리가 ’예나’를 새로이 바라보기 시작한 시점이 있었다. ‘예나’는 장면을 목격하고 머물러 생각한 사람이었다. 상황에 개입하고 세상 속에서의 스스로의 위치를 가늠하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들른 본가에서 이전보다 마음이 가볍다는 예나의 카톡에 나는 글 속의 ‘예나’가 정말 예나인지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예나는 어느새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필자 소개] 신민경. 서울에 거주하는 농어촌 출신 20대 여성. 두 공간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 여성과 노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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