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여자들 이야기’를 기록한다. 지금 내가 선 자리를 지키는 일도, 정해진 장소를 떠나는 일도, 너와 내가 머물 공간을 넓히는 일도, 살아가는 일 자체가 투쟁인 세상에서 자신만의 싸움을 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세상이 작다거나, 하찮다거나, 또는 ‘기특하다’고 취급하는 싸움이다. 세상이 존중할 줄 모르는 싸움에 존중의 마음을 담아,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공부하고 노동하는 11명의 필자가 인터뷰를 연재한다. [싸우는여자들기록팀]
“특성화고 재직자 전형, 등록금 지원, 고교취업연계장려금, 청년내일채움공제”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겨울, 중학교에는 정문부터 교실 앞까지 특성화고 진학시 특전이 적힌 포스터와 현수막이 빼곡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대학 진학이 아닌 다른 길을 준비하는 청소년들에 대해 주목하지 않는다. 가끔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사고나 사망 소식을 접할 때를 제외하면 특성화고가 무엇인지 아예 모르는 사람도 많다.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일반고 직업반 등 직업계고 출신의 노동자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2016년 같은 특성화고를 다니면서 고졸 취업자 동아리 ‘처음처럼’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보람과 성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기업 계열 보험회사에 취업한 보람의 이야기
“학교에선 경사 났었죠. 현수막도 붙고. 저도 엄청 으쓱하고 기분 좋았고. 일단 취업했고 내 힘으로 돈을 버는구나. 막 이런 기분이 들어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기업 계열 보험회사에 취업한 보람의 뿌듯한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니, 보람의 표현에 의하면 입사하자마자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게 됐다고 했다. 보람이 지원한 직군은 고졸, 초대졸(전문대학 졸업자를 뜻함)의 서비스 직군. 사원으로 시작해서 8년이 지나면 주임, 다시 6년이 지나야 대리가 될 수 있는데, 그나마도 매년 2번 진행되는 인사고과에서 상위고과를 받아야 가능하다. 반면 대졸 직군은 입사하자마자 주임이 된다.
“우리는 승진해도 대리가 끝이에요. 30년을 다녀도 대리로 퇴사하는 거죠. 그리고 우리에겐 결재 권한이 없어요. 책임이라는 직급부터 결재권을 가지는데 우리는 아무리 오래 다녀도 ‘책임’이 될 수 없으니까요. 30년을 다녀도 영수증 처리하고 보험서류 처리하고 대출이자 수납하고…. 급여 차이도 커요. 일단 초임 연봉이 (대졸자와) 1.5배 정도 차이 나고, 승진을 해야 그만큼 오르는데 우리는 승진의 벽이 있으니까…. 대졸 사원들도 물어봐요, 어떻게 그 돈 받고 일하냐고.”
고졸과 초대졸, 대졸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시기는 차이가 있다. 학력에 따라 입사 시 급여나 직급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력에 따른 직군 구분은 시작만 다른 것이 아니다. 아무리 오래 일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그 차이는 좁아지지 않는다. 추격할 수 없다.
“애초에 제가 서비스 직군에 지원했고 직군별로 채용 공고가 다르게 나오니까 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죠.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승진이 좀 늦고 급여를 좀 덜 받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차이가 나고 심지어 아예 벽이 있을 줄은 몰랐죠.”
급여나 승진 체계의 문제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고졸 사원을 보는 시선에도 편견이 담겨 있었다. 얼마 전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글로 논쟁이 일었다. 서비스 직군에서 10년 일한 사원이 올린 글인데, 10년을 일해도 연봉이 너무 낮고 다른 회사에 비해서도 처우가 좋지 않다, 여기서 일한 경력은 어디서 인정도 못 받는다, 나갈 거면 빨리 나가자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글에 달린 댓글이 충격적이었다.
“여기서 이 연봉 받고 쉽게 일하면서 뭘 더 바라냐, 어디 가서 알바 하면 이 돈 받을 수 있냐, 그런 식의 비하 발언들이 줄줄이 달렸어요. 보통 게시글에 댓글이 3개 정도 달리는데 200개 넘게 달렸어요. 같이 일하는 부장급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 느껴지죠. 본인들 법인카드 사용한 거 영수증 스캔이나 해주는 사람으로 생각하죠. 여기서 오래 일해도 ‘물경력’이라고 하는데, 무슨 뜻이냐면 단순 사무보조라서 전문성을 쌓지 못한다는 거죠. 저도 지금 5년째지만 뭘 배웠나 싶고. 제 의견을 얘기하면 ‘강보람씨가 뭔데 그런 얘길 해요?’라는 말도 들어봤어요. 그런데, 우리 없어도 되나요? 필요하니까 채용한 거잖아요.”
상항이 이렇다 보니 보람의 동기들 대부분은 퇴사했거나, 야간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야간대학을 다니는 동기들도 졸업장을 따면 이직할 계획이다. 특성화고 재직자 전형은 졸업 후 3년 이상 회사에 다닌 특성화고 졸업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대부분 ‘재직 유지’를 조건으로 하고 있어 회사를 다니며 대학에 다녀야 한다. 만만치 않은 일이다.
“부모님도 자꾸 대학 가라고 하고. 졸업할 때 취업지도부 선생님이 너 대기업 들어갔잖아, 취업했으니까 거기서 3년만 일하면 대학 갈 수 있으니까 야간대 졸업해라, 그러면 경력도 쌓고 얼마나 좋냐 이런 얘기를 하셨거든요. (직장에 다닌 지) 3년이 됐지만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매일 9시까지 야근하는데 대학을 어떻게 가요.”
우체국에서 금융경비로 일하는 성현의 이야기
성현이 금융경비로 일하는 우체국에는 또 다른 ‘구분’이 있다. 처음 우체국 금융경비 모집 공고를 봤을 때는 공공기관, 우체국에 취직한다고만 생각했다. 우체국에서 창구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우정사업본부가 직고용한 정규직 공무원이다. 성현이 소속된 곳은 우정사업본부의 자회사인 우체국 시설관리단이다. 그 안에 다시 시설관리단의 정규직 직원과, 현장의 무기계약직 직원이 나뉜다. 금융경비, CCTV를 관리하는 기술원, 청소노동자까지 우체국에서 창구 직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 속한다.
금융경비는 사람들을 안내하고 포장 등 다른 직원들을 도와주는 업무까지 했었다. 그러나 현재 성현이 속한 노동조합에서는 ‘경비업법’에 따라 금융경비들이 경비업 외의 노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바쁘면 도와줄 수도 있죠. 경비가 필요할 만큼 항상 위험한 것도 아닌데 그걸 못 도와주냐, 그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원래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아니잖아요. 해야 하는 일이 아닌데 너무 당연하게 시켰던 거죠. 그걸 이제까지 해주다가 못 한다 하니까 난리가 난 거예요. 사실 그 일 시키고 싶으면 우리를 직고용하면 되거든요. 최저임금 받고 일하는 우리한테 경비업 이외의 노동을 시키고, 그에 대한 대가는 주지 않으면서 ‘도와준다’ 그럴 거면, 우리가 점심시간에 자리를 비웠을 때 제 자리에도 누가 나와서 앉아 계셔야죠. 그렇게 하지는 않잖아요. ‘돕는’ 거라면 서로 도와야죠.”
금융 업무를 하는 우체국에 한 명씩 배치되는 금융경비는 위험 방지, 도난 방지 업무를 담당한다. 위험 방지 업무는 우체국에 들어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뭔가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감시하는 것이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다. 그리고 ATM기 정산을 할 때처럼 돈이 오갈 때 경비를 선다. 그러나 이제까지는 원래의 업무 외에 고객 응대, 포장 업무, 청소까지 해왔고, 심지어 창구에서 접수를 받는 금융경비도 있다고 한다.
“우체국에서 본사에 업무요청 리스트를 보냈는데 노조에서 불가하다고 했어요. 사실 국장이나 직원들은 같은 입장이고, 저는 혼자니까. 안 하면 제가 왕따 당하는 그런 분위기니까 할 수밖에 없고, 분명히 눈치 보여서 다른 업무까지 하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그래도 우리는 공무원 보조해주려고 들어간 게 아니니까, 그리고 우리의 업무가 다르다고 자회사로 분리해놓은 거니까, 그렇게 일을 시키면 안 되는 거잖아요.”
성현은 노동조합 조직부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 지역에는 각 동마다 대부분 금융경비가 있는데, 성현처럼 혼자인 금융경비들을 연결해서 현재 거론되는 업무보조 문제를 포함해 함께 목소리를 내보려 한다.
“힘든 거요? 사실 외로운 게 제일 커요. 정신없이 바쁠 때는 사람들 상대하느라 힘든데 갑자기 한가한 날이 있어요. 그럴 때 누구랑 무슨 얘기를 하겠어요. 공무원들은 우체국 간 순회를 하니까 서로 잘 알거든요. 전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거죠. 외로워요. 예를 들어 어디 레일이 고장 나서 경기도로 가는 택배가 늦어진다. 그런 일이 생기면 직원들끼리 얘기하고 공문 붙이고 저한테는 말을 안 해줘요. 저 혼자 공문 붙인 거 보고 아, 오늘 이렇게 안내해야겠다고 생각해요. 하루종일 뭔가 섬 같을 때도 있어요. 그래서 금융경비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어요.”
여성이라서 겪는 차별적인 일들도 있다. 여자가 경비를 하면 어떡하냐고, 어떻게 지켜줄 거냐고 시비를 걸거나, 자기랑 한번 싸워보자고 하는 사람도 있다. 허리에 찬 가스총에 갑자기 손을 대거나, “예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현의 경우 학력으로 구분된 취업은 아니었으니, 학력차별을 경험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했다.
“같은 시설관리단 사람들은 대학 나왔냐고 물어보지는 않죠. 근데 공무원분들 중에 대학 나왔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안 나왔다고 하면 나이도 어린데 공부해서 공무원 해야지, 이래요. 그런 거 있잖아요. 고졸들은 어쨌든 대학 나온 사람의 삶보다 불행할 거란 생각. 저는 이미 직업을 선택해서 사는 건데, 뭘 덜 한 것처럼 얘기하는 게 싫어요. 뭔가 다른 사람들이 사는 보편적 인생에서 덜 산 느낌을 사람들은 계속 가지고 있으니까. 그분들이 고졸을 막 차별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제가 안타까워보여서 하는 얘기겠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차별, 편견이 있는 거죠.”
대학 졸업장 따기보다, 내가 있는 곳을 바꿀 것
보람과 성현이 고졸 취업노동자 모임 ‘처음처럼’을 만든 것은 2016년이다. 만나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만큼 할 얘기가 많았다. 지금까지 일한 얘기, 일하면서 만난 사람 얘기, 그 안에서 겪은 차별 얘기들이 모였고 청년 정책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 시작했다. 주택 청약 저축이나 적금 통장을 만드는 법, 엑셀 활용법이나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 등 직장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팁을 선배들이 알려주기도 했다. 함께 술을 담거나 연애 강좌, 타로 강좌 등도 열었다. 최근에는 학벌주의와 능력주의에 대한 강좌를 열어 앞으로 ‘처음처럼’이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논의했다.
같이 활동하다가 대학에 간 동료들도 있다. 회사 동기들도 계속 보람에게 왜 대학을 가지 않냐고 묻는다. 두 사람은 왜 대학 진학을 선택하지 않을까.
“대졸로 신분을 바꾸는 게 우리한테 당장 아무 도움이 안 돼요. 그런 학력으로 계급을 나누는 거면 고졸, 전문대, 대졸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대졸에서도 스카이, 지방대 이런 식으로 계속 나뉘는데, 그랬을 때 내가 계속 막 이것까지 해볼 걸, 저것까지 해볼 걸 하면 한도 끝도 없을 거 아니에요.”(성현)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우리 회사는 대학 졸업장을 따온다고 대졸 직군으로 바꿔주지 않거든요. 그럼 제가 대학 졸업장을 따야 하는 이유는 이직을 위해서인데, 야간대학 졸업장 따고 다른 회사에 가면 불평등을 안 겪는다는 보장이 없어요. 게다가 졸업장 따려고 야간대를 가면 제가 부수고 싶은 학벌주의를 옹호하는 게 되잖아요.”(보람)
자신이 고졸 노동자기 때문에 노동조합 활동을 선택했다는 성현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자신이 남성이었다면, 정규직 노동자였다면, 혹은 대학을 나왔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너무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일들로, 그야말로 별 걸 다 가지고 싸워야 하는 지금과 달랐을까?
“술집에서 화장실 갈 때 왜 내가 불안해해야 하나 싶고. 저 진짜 밤에 혼자 걸어가면 핸드폰 꽉 쥐고 다니거든요. 사실 제가 정규직 그러니까 본사 직원이었으면 저는 노조 안 왔을 거예요. 근데 진짜 제가 요구하고 투쟁하지 않으면, 우리 같은 비정규직, 고졸들부터 죽어 나가니까. 여성, 비정규직, 청년부터 밑에서부터 깎여 나가잖아요. 그러니까 싸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성현)
불편한 사람이, 필요가 있는 사람이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보람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조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을 바꾸는 것이 빠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함께 바꾸고 싶다. 보람은 요즘 특성화고를 졸업한 청년 노동자들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자신들이 모여서 하던 얘기를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어서다.
“고졸이라고 해서 부족한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는 모자라서 고졸인 게 아니에요. 고졸을 선택한 거지. 고졸 노동자라고 차별받을 이유가 없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나는 노동인권 교육을 하면서 비진학 청소년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덜컥거렸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잘 살 수 있고, 다양한 길이 우리 앞에 있다고, 그러니 지금을 행복하게 살자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온통 거짓말인 것만 같아서. 그러다가 ‘처음처럼’의 보람과 성현을 만났다.
세상에는 끊임없이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애를 쓰며 사는 이들도 있지만,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싸우는 사람도 있다. 싸우며 걸어가다 보면 그만큼 바뀐다고 믿는 두 사람, 나도 같이 걸어 가보고 싶어졌다. 교실 밖 세상을 바꾸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고, 내가 만나는 청소년들에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필자 소개] 느린(박내현). 노동과 인권의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세상이 나아지는 방향을 따라서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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