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복까지만 ‘허락’한다? 허락받지 않을 ‘권리’를 내놔

2022 대선 기획: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⑨ 학생의 인권

일움 | 기사입력 2022/03/02 [09:46]

체육복까지만 ‘허락’한다? 허락받지 않을 ‘권리’를 내놔

2022 대선 기획: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⑨ 학생의 인권

일움 | 입력 : 2022/03/02 [09:46]

수업 시간에 한 교사가 엎드려 자는 여학생의 팔을 치려다 이야기한다, “이제는 이런 것도 조심스럽데이. 요즘 세상에 뭐만 하면 ‘미투’ 당하제? 학생인권이 너무 과하게 보장되니까 교사들은 아무런 힘이 없어. 체벌도 못 하고, 국가가 교사들의 손발을 다 묶어놓으니까 이게 통제가 안 되는 기라.” 손에 든 자를 흔들며 거들먹거린다. 잠시 싸해지던 교실은 다시 학생들의 작은 잡담들로 채워지고, 교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쁘게 진도를 나간다.

 

체벌 금지 이후의 학교, ‘좋은 말로 할 때 들으라’?!

 

체벌 금지의 과도기적 시기에, 보수적인 도시 대구의 외곽 지역에서 초ㆍ중학교 시절을 지나온 나는 중학교를 끝으로 더 이상 체벌을 당하거나 목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학생들은 여전히 학교에서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체벌이 금지되면 폭력으로 굴러가던 교육은 이제 옛말이 될 줄 알았는데, ‘폭력으로 제압하지 않게 알아서 잘 처신하라’는 말에 기대어 질기게 따라붙는다.

 

▲ 2021년 겨울, 대구청소년페미니스트모임 ‘어린보라’ 워크샵에서 학생인권법 제정 SNS 캠페인에 참여하며 찍은 사진이다. Ⓒ어린보라:대구청소년페미니스트모임

 

체벌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 아닌 금지가 되었음에도 ‘좋은 말로 할 때 들으라’는 협박이 유효한 것은, 체벌 금지가 어디까지나 시혜로써 작동하기 때문이다. 체벌이 금지될지언정 어떻게든 학생을 압도하길 지시받는 교사와 그렇게 통제되는 학생들의 삶은, 위태로운 학생인권과 교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체벌의 역사는 생활기록부를 통해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 폭언, 고함 등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두발과 복장 규제도 마찬가지다. 지겨울지언정 낯설지는 않게 받아들여지는 ‘학생인권’ 덕에 cm 단위로 두발·복장 규제를 하는 것은 조금 민망해질 수준까진 도달했다.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 체육복 입기를 ‘허락’하면서 사복은 잡는다. 머리 길이는 자유롭게 ‘허락’하면서 펌이나 염색은 잡는다. 투명 피어싱은 되지만 화려한 피어싱은 잡는다. 두발·복장 규제는 여전히 금지보다 지양에 가까우므로 학교마다 규제 수위를 학교장 취향껏 조정할 뿐이다. 그리고 그 조정에 대해, ‘이만큼 양보했으니 알아서 적당히 단정하라’는 명령을 덧붙인다. 불편한 교복을 강요하지 않는 것으로 건강을 지켜주는 것처럼, 통제가 최우선가치인 학교에서 이 정도면 배려해주는 것처럼 이야기하며 ‘인권’으로 이야기되어야 할 문제가 ‘시혜’의 영역으로 밀려난다.

 

고분고분할 것을 특히나 강요받는 여학생에게 ‘알아서 바른생활’에 대한 요구는 더욱 익숙하게 다가온다. 남학생은 말이 안 통하니 때려서 제압하고, 여학생은 때리지 않아도 알아서 잘 처신할 것을 강요받던 시기에, 그것이 마치 여학생의 특권인 듯 이야기되던 맥락이 있었다. 체벌이 금지된 지금 그러한 논리는 모든 ‘요즘’ 학생들에 대한 혐오로 확장되었다. 체벌 금지를 검색해보면 체벌의 회복을 통해 무너진 교권을 바로 세우는 이른바 ‘참교육’ 웹툰이 순위에서 상위권을 유지한다. 웹툰 말고도 온갖 사이다를 가장한 ‘참교육’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온다.

 

스쿨미투 그 후, 여학생은 몸의 권리를 찾았을까

 

글의 서두에 인용한 교사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스쿨미투’는 쉽게 조롱당한다. 지금껏 학생의 몸은 교사의 통제 하에 있었고, 여성의 몸은 남성의 통제 하에 있었으므로, ‘여학생’의 몸에 가해지는 통제는 더욱 촘촘하고 당연시되었다. 스쿨미투는 그로부터 발생하는 남성-교사의 권력형 성폭력을 해체하자는 외침이었다.

 

나는 스쿨미투 고발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스쿨미투가 지나간 학교에서 백래시(backlash, 성평등과 같은 사회의 진보적인 변화와 진전에 대한 집단적 반발)를 고스란히 목격했다. 스쿨미투를 조롱하는 것은 비단 한 교사만이 아니었다. 특히나 복장 단속을 도맡는 교사들이 그러한 발언을 일삼았다. “스쿨미투 당할까 봐 필요한 복장 검사도 제대로 못하겠다”고 말하는 교사에게, 복장을 검사하는 것과 성희롱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묻고 싶었다. 스쿨미투는 학생의 몸을 통제하며 확립되는 질서가 부당함을 말하고, 그 질서를 해체하며 여성-청소년의 몸에 대한 권리를 쟁취해가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2018년 4월 용화여고에서 시작된 스쿨미투는 전국 100여 개의 학교로 뻗어나갔고, 2021년을 기준으로 261명의 가해 교사가 지목되었다. 그러나 그 중 해임, 파면 처분을 받은 교사는 22%에 그쳤다. 용화여고의 경우 교사 18명 중 15명이 정직·견책 등 징계를 받고 현재 학교에 복귀를 완료했다. 늘어지는 수사 기간과 너무도 가벼운 처벌, 숱한 2차피해를 입으며 많은 고발자들이 졸업과 함께 사건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학교와 교육 당국은 안일한 태도로 일관해오며 가해자의 편에 섰다.

 

▲ 2022년 1월, 한 학교 앞에서 여성 청소년으로서 경험하는 차별에 대한 설문조사와 함께, 대구청소년페미니스트모임 <어린보라> 홍보 책갈피를 나누어 주었다. Ⓒ어린보라:대구청소년페미니스트모임

 

그 사이 ‘순수한 여학생’과 ‘나쁜 선생’이라는 구도가 생기는가 하면, 배후 세력이 있어 스쿨미투를 악용하는 게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됐다. 고발자들이 겪은 사건은 명백한 교사-학생 간의 권력형 성폭력이었음에도, ‘나쁜 선생’의 도덕성만이 질타를 받는 정도에 그치기 부지기수였다. 피해 고발자들은 ‘순수한 여학생’으로서의 피해자다움을 가지길 강요받거나, ‘꽃뱀’ 논리와 같은 모욕적인 억측에 시달려야 했다. 전국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스쿨미투를 통해,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한 학교의 강간 문화를 고발했음에도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반성하거나 각성되지 않은 채, 학내 성폭력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유사품을 넘어, 지금 당장 ‘학생인권법’

 

학교의 일상화된 성차별, 성폭력, 여성·청소년 혐오를 끝내려면, 그에 저항할 근거를 마련하는 학생인권법이 필요하다. 현재 초·중등교육법에는 학생인권을 보장할 구체적·실질적 조항이 부재하다. 작년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학생인권법안(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학생의 행복추구권, 신체의 자유, 사생활과 비밀의 자유,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기본적인 권리 보장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가정환경, 성적, 외모, 성별, 국적, 종교, 장애, 사상·신념, 성적지향,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임신 또는 출산, 징계 등 일체의 이유에 의한 차별행위를 금지하도록 하고 있다.

 

학칙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에 학생의 의사를 반영하도록 하고, 학생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교칙에 대해 교육부·교육청에 학칙 변경 권한을 부여한다. 학생인권침해 구제 기구를 설치하는 등의 장치도 마련하도록 한다. 특히나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두발과 복장 규제나 종교 강요, 성추행, 보충학습과 자율학습 강요 등도 엄격히 금지한다. 교육감에게는 학생인권 증진을 위한 인권교육 실시, 학생인권 실태조사 실시, 학생인권 종합계획 수립, 학생인권 침해에 대한 적절한 전문 상담 및 구제체계 구축, 학생인권 정책 심의를 위한 민관합동 학생인권위원회 설치 등의 의무를 부여한다.

 

그간 학생인권법이 부재한 상황은, 학생들이 자신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인권의 존재 자체를 감각할 수 없게 했다. 현재 서울 등 6개의 지역에 학생인권조례가 있으나, 최근 서울만 보더라도 속옷 색깔 규제를 비롯해 세세한 두발 복장 단속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정된 학생인권조례가 무색해지는 사례는 조례가 제정된 어느 지역에서나 만연하다. 강제력이 크지 않으며 지역마다 편차도 심한 조례의 구성에 실효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학생인권조례가 부재한 지역 중에는 유사품이 있는 지역도 있다. 대구교육권리헌장이 있는 대구와, 학교구성원인권증진조례가 있는 인천이 그렇다. 퇴보한 학생인권조례라 보아도 무방하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권리를 담았다고 하지만, 단호한 인권의 언어로 기존 학생인권·교권을 둘러싼 편견에 대응할 책임을 다하지 않고, 추상적 권리를 늘어놓은 임시방편에 그친다. 이름만 거창한 보여주기식 조례인 것이다. 심지어 대구교육권리헌장에서는 ‘학생은 선생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등의 퇴보적 조항까지 찾아볼 수 있다.

 

최근 화제가 된 영남고 두발 규제 사건은 대구교육권리헌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앞머리는 두발을 손으로 누른 상태에서 눈썹 위 이마의 일부가 드러나야 하고, 옆머리는 귀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하며, 뒷머리는 와이셔츠 옷깃에 닿지 않는 스포츠 형태를 유지한다”와 같이 획일적인 두발 규제는 명백히 인권침해적이다. 그것을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지적받고, 교칙을 개정하라는 시정권고를 받은지 1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교장은 이행하지 않고 있다.

 

▲ 2021년 겨울.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 학생인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18세 미만의 사람들이 대선을 지켜보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지역의 상황도 크게 개선되지 않는 마당에, 조례조차 부재한 지역에서 학생들의 인권은 더욱 운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육감이나 시의회의 정치색, 지역의 혐오세력에 따라 제정 여부가 크게 좌우된다. 또한 학교의 재량에 따라서 조례의 반영 정도, 인권의 보장 정도가 조절되는 세상이다. 학생들의 인권에 지독히 무책임한 현 정부와 교육 당국이다.

 

2030 여성의 표가 갈 곳이 없다면, 10대 여성의 표는 갈 ‘수’가 없는 대선이다. 만 18세 이상의 일부 청소년만이 선거권을 가진 상황에서 청소년, 학생인권 관련 공약은 역시나 잘 찾아볼 수 없다. 입시의 공정성에 대해서나 몇 가지 공약이 거론될 뿐이다. 대선 후보들은 학생인권법 제정을 중심으로 학생인권 보장의 방법에 대해 구체적이며 실효성 있는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허울뿐인 청년 정치, 젊은 정치를 넘어 청소년과 학생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이야기할 때다. 우리는 더 이상의 유예를 기다릴 수 없다.

 

[필자 소개] 일움: 일단 울고 일단 움직인다는 뜻의 일움입니다. 대구에 살며 청소년 페미니즘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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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 2022/03/07 [14:48] 수정 | 삭제
  • 십대도 사람이다. 좀 자유롭게 성장할 권리를 주자.
  • 대숲 2022/03/03 [11:43] 수정 | 삭제
  • 학생 때 존중을 못받으니까 사회에 나와서도 인권에 대한 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하요 2022/03/02 [21:22] 수정 | 삭제
  • 학교는 왜 감옥을 닮았을까.. 그 답은 통제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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