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사’를 만든 사회에서, 내 삶의 운전대 잡기[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여성운전 프로젝트 ‘언니차’※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과 공격이 심각한 백래시 시대,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로 다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스무 편이 연재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요즘 남녀차별 그런 게 어딨나요~
사람들에게 나를 <여성운전 프로젝트 ‘언니차’>의 기획자라고 소개하면, 조금 특이한 사람이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자동차나 운전, 경정비, 여성과 기술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성이라는 점이 남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마치 위인전기의 앞머리처럼 ‘어릴 때부터 자동차의 이름을 줄줄 외우고 만 18살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운전면허를 딴’ 그런 비범한(?) 어린 시절을 갖고 있지는 않다.
어릴 적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서 한 남자아이와 친해지기 시작했을 무렵의 일이다. 어느 날 그 아이보다 두어살 많은 남자아이가 나와 놀고 있던 남자애를 놀리며 이렇게 말했다. ‘여자를 쳐다보면 눈이 나빠진다, 놀면 안 된다.’ 말도 안 되지만 어린이들의 세계에는 ‘홍콩할매귀신’도 진짜이기 때문에 화장실도 혼자 가기 무서운데, 그 아이에게도 그런 괴담 전법(?)이 먹혀들었다. 그 형아는 그 애의 눈을 손으로 가리고 낄낄대며 사라졌고, 이후에 둘은 동네에서 나를 마주치면 ‘으악 여자다!’라며 줄행랑을 쳤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여자’로 취급받은 에피소드이다.
어릴 때에는 당차고 용감하고 호기심이 많던 여자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여자애가, 여자는~’ 같은 말들을 들으며 자신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암시받는다. 여자아이는 목소리가 커도, 많이 뛰어도, 몸이 너무 자라도, ‘남자애’ 같은 일이라도 하면 미묘한 시선을 받게 된다. ‘요즘 남녀차별 그런 게 어딨나요’라고들 하지만, 아직도 무엇이 ‘여자아이’다운 일인지, 어떤 점이 무안한 눈길을 받게 하는지 끊임없이 느끼게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자전거를 좋아하고 기계를 대하는 것에 그리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내게 자동차는 대수롭지 않은 대상이었을 텐데도, 많은 십대 소년들이 자신의 차를 꿈꾸는 것만큼 내게는 미래의 내 차라는 관념이 어쩐지, 흐릿해져 있었다.
운전면허를 따려고 할 때부터 마주하는 ‘문턱’들
내가 운전면허를 따러 갔을 때는 2006년이었다. 약간의 호승지심이 있던 나는 1종 면허를 따 보고 싶었다. ‘남자는 1종’ 같은, 그게 뭐라고 무언가 대단한 것인 양 우쭐대는 시류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다. 그러나 1종 면허를 따겠다는 생각은 친구의 반대에 부딪혔다. 뭐하러 어렵게 수동을 따는지, ‘우리’가 차를 사게 될 때쯤엔 수동 기어 차도 거의 없을 거고 승용차를 몰 텐데 그럴 필요 있냐는 거였다. 무엇보다 내가 1종을 따면 자기와 같이 수업을 들을 수 없지 않냐는 말에, 뭐라고 반박하기 애매해서 친구와 2종 보통 면허에 응시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때 친구가 말리지 않았더라도 학원이 말렸을 것이다. 언니차 활동을 하면서, 전국의 운전면허 학원들이 마치 단합이라도 한 듯 ‘여자분이 1종을 왜 따느냐’라며 의아해하고, ‘굳이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2종을 거의 강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성 수강생이 1종 면허를 취득하겠다는 걸 말리는 운전면허 학원에 대한 글은 SNS에서 몇천 회 공유되었고, 자신도 그렇게 만류당했다는 사례가 몇십 건이나 나왔다. ‘집이 유치원을 운영해서 봉고차 몰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나서야 1종을 수강할 수 있었다는 사례도 있었다.
그때 확실히 느꼈다. ‘이것이 내가 운전에서 느껴오던 미묘한 문턱의 실체다.’라고. 나 역시 언니차 활동의 일환으로 1종 대형 면허를 따러 학원에 갔을 때, 접수처 직원이 “대형 왜 따세요? 어려워요.”라며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보라 했다. 당시 접수실에는 찾아온 사람이 나뿐이었는데, 접수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지 그 직원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만류했다. 나는 그날 집에 터덜터덜 돌아갔다가 다음 날 다른 직원에게 접수했다.
여성들에게는 운전이 ‘장려될 만한 일’이 아닌 듯하다. 여성이 1종 면허에 응시하려 하면 운전학원에서 말리는 이유가 ‘어렵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남성에게는 쉬운가? 그럼에도 여성의 운전 능력에 대해 이미 당연히 못할 거라 생각하고 그렇게 대하고 있다. ‘여성은 공간 감각이 떨어져서’, ‘여성은 기계 같은 것엔 약해서’라는 표현들은 사실의 묘사라기보다는 남성의 우월성을 부각하기 위해 여성을 평가절하시킨 말일 뿐인데도, 여성이라면 으레 그렇겠거니 하며 더 가르치려 하지 않고 투자하려는 시도까지 막는 것이다.
학원은 수강생을 받으면 돈을 벌 텐데도 접수조차 막는 실정이니, 결과적으로 여성이 운전 분야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고 있었다. 여성은 못한다고 믿기 때문에 시도하지도 못하게 하고, 배우지 않았으니 못하는 게 당연한데도 역시 여자라서 못한다며 그릇된 믿음을 강화하는 기가 막힌 사이클이 존재하고 있다.
‘김여사’를 만든 심리
도로 위에서 자주 목격하게 되는 장면이 있다. 누군가 운전에 서툴면, 꼭 차창을 내리고 그 운전자를 보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운전자가 남성이면 그냥 지나가거나 ‘미친 놈’ 정도가 되지만, 여성이면 꼭 성별을 언급하며 욕을 하거나 ‘드디어 그 김여사를 만났다’고 생각하며 여성은 역시 운전을 못한다는 자신의 편견을 강화한다.
이런 식으로 여성에 대해 상습적으로 폄하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누구든 당연히 거치는 연습 과정을 수치스럽게 느끼기 쉬우며, 자신은 그 일을 해낼 능력이 없을 것 같다고 자신 없어 하고, 초보라서 당연히 미숙함을 보인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서’ 미숙한 거라고 잘못 생각하기 쉽다.
남성과 달리, 한 여성의 서툶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인 것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증거처럼 취급되곤 한다. 이러한 문화는 근본적으로 발전의 가능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려 하면 시작의 어려움에 더해 가혹한 비판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시작하는 남성 청년에게 주는 ‘도전’이라는 훈훈한 말과 달리, 여성의 시작은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으면서 그 일을 하필 해서’, ‘민폐를 끼치는’ 괘씸한 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바로 ‘김여사’라는 말을 만든 심리다. 남성은 특별히 잘하지 않아도 당연히 운전석을 차지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여성이 그렇게 되려면 ‘남성의 자리를 밀어내야 하는 사유’가 있어야만 특별히 허락한다는 듯한, 까다롭고 가혹한 여성 혐오가 어디든지 도사리고 있다.
막 성인이 된 소년들이 운전을 ‘무서워서 못한다’고 말하는 경우를 거의 본 적 없다. 하지만 여성들은 면허를 따고도 운전하기를 꺼리거나 자격이 부족하다, 무섭다는 생각들을 곧잘 하는 듯하다. 그 무서움 안에는 시행착오를 비난하는 세상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운전이 여성과 어울리지 않는 위험한 일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제대로 하지 않으면 자격을 뺏을 것처럼 비난하며, ‘안전하게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라’고 은연중에 종용한다.
‘언니차’의 시동을 켜다
‘언니차’는 운전을 시작하는 여성들이 안전하게 새 길과 만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정비, 교통안전 등 여성 전문가와 여성 운전자가 만나는 워크샵을 기획하고 열었다. 그동안 분명히 존재했지만 사회가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고통을 부정했기에, 이야기를 꺼내면 예민한 사람이 되고 마는 그런 차별과 텃세, 경험들을 공론화하고자 했다. 각자의 방에서 ‘내가 예민한 건가?’라고 고민하다 입을 다물고 말아 버리지 않고, 이러한 문제가 개인의 유별난 불운이 아니라 남성중심의 사회가 여성 전반에게 가함으로써 여성이 운전, 그리고 많은 사회활동으로부터 자신감을 잃고 위축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여성들의 증언을 모아 사회가 더이상 모른척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해시태그 운동과 기사 비평, 운전 정보 등을 거의 매일 올리며 SNS활동과 워크샵으로 사람들과 만나서 운전과 여성의 이동 독립, 주체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많은 경험들이 모여 차곡차곡 쌓이고 다시 퍼져나갔다. ‘1종을 어떻게 하나같이 말릴 수가!’, ‘여성이 차를 사러 갔는데 동행한 남성에게만 설명을 하다니!’, ‘이렇게까지 여성을 배제해온 것이 나 하나만의 경험이 아니었다니!’ 그렇게 언니차라는 구심점을 통해 차별에 대한 가시화와 공감, 공론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여성가족부 청년지원사업으로 첫 번째 워크샵을 연 것이 2020년이었는데, 벌써 제주도, 광주, 대구, 서울을 비롯 전국에서 수십 회의 워크샵을 거쳤다. 언니차 활동을 하며 원칙으로 삼은 것이 있다. ‘가능한 여성과 일할 것’이었다. 언니차의 활동 자체가 여성과의 연대가 될 수 있도록, 여성들이 운영하는 회사에 책자 제작과 인쇄물 등을 수주했고, 여성 정비사를 초대하였고, 케이터링 역시 여성 대표 업체에 맡겼다. 이 과정에서 여성이 대표인 기업을 찾기 힘들다는 것, 참 적다는 것을 느꼈다.
첫 워크샵에 모인 여성들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희망을 느꼈다. 자신감이 생기고 유익했다며, 이런 것들을 누군가가 해 주었으면 했는데 없었다고, 꼭 계속해 달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내 삶의 운전대를 잡고 나아가는 힘
누군가 내게 언제부터 페미니스트였냐고 묻는다면, 아마 ‘여자를 보면 눈이 나빠진다’며 남자애가 나와 어울리지 못하게 하는 말에 반감을 가진 순간부터 시작된 여정이 아니었나 한다. ‘최고의 튜닝은 조수석 튜닝(여자친구 앉히기)’ 같은 농담이 도는 현실의 모순을 허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알기 어려웠으나, 언니차 프로젝트를 통해 여성이 운전이라는 영역에 처음 들어설 때를 중심으로 목표를 잡으니 명확해졌다.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강의도 듣고, 기획부터 교재 제작, 업체 선정, 강연 내용 및 섭외 등 모든 것들을 목표에 알맞게 선택하고 만들어 가면서 신념을 이루어가는 기쁨을 알았다.
아무도 안 오면 어쩌지, 라는 걱정에서 시작했지만 눈을 반짝이는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나타날 때의 설렘을 기억한다. 내 손으로,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일을 하나씩 이루고 있다는 기쁨은 지원사업이 끝난 후에도 언니차를 지속하게 했다. 리더로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도로교통공사 교통안전관리자 자격증을 취득하고, 새 워크샵을 준비하며, 다양한 기관에서 강의를 하는 등, 여성들과의 활동 속에서 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쁨이 있다는 것과 그 방향성에 대해 전하며, 계속해나가고 싶다.
최근 모빌리티 회사 우버(Uber)에서 직원 채용 면접을 할 때 여성 면접관을 포함시키기 시작했는데, ‘여성 면접관을 당혹스러워하거나, 못 본 척하며 남성 면접관만을 향해 대답하는 남성 지원자’들이 있어서 그들을 대거 탈락시켜야 했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서 접했다. 구직자라는 위치에서조차 남성 구직자들이 여성 면접관을 투명인간 취급한다는 점이나, 여성이 차를 사러 갔을 때 남성 동행인만 보며 설명하는 남성 딜러들에 관해 쏟아지는 사례들을 보며, 사실상 남성이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서, 선택권과 가능성을 가진 인간으로 여기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여성도 인간’이라는 페미니즘이 불순하고 위험한 사상으로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무면허, 음주운전 적발자의 약 91%가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성형의 운전자 멸칭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여성만이 감시와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 온 불합리의 역사를 뒤로 하고, 우리가 스스로 삶의 운전대를 잡고 가치와 지향을 정해 나가는 일,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으로 떠나고 돌아올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그것이 페미니즘이다.
[필자소개] 이연지. 여성가족부 청년지원사업 언니차 프로젝트의 기획자. 현재 여성운전, 교통안전 워크샵을 열고 여성 모임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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