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표현 난무하는 언론, 위기 느낀 기자들이 나섰다『젠더 표현 가이드북』 펴낸 요시나가 마미 일본신문노조연합 위원장“첫 승리에 흘린 남자의 눈물”, “이과女의 쾌거”, “노벨상은 내조의 힘” 등등. 언론에는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을 고착화하는 언어가 차고 넘친다. “이런 표현 이상하지 않아?”라며 여성 기자들이 현장에서 말해도 무시당하거나, 이해받지 못한다.
일본에서 언론인들이 만든 『실패하지 않기 위한 젠더 표현 가이드북』(쇼가쿠칸)이 나왔다. 젠더에 관한 왜곡된 표현에 대해 위기의식을 느낀 기자들 스무 명이 참여, 아사히신문 노조의 나카즈카 쿠미코 씨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표현사례 제안부터 바람직한 성폭력 보도 방식, 온라인 매체의 성차별 보도 실태, 현장 인터뷰 조사까지 머리를 맞대고 뛰어들었다.
때로는 단어 하나로, 가치관도 바뀔 수 있어
총괄을 맡은 신문노조연합 위원장 요시나가 마미(吉永磨美) 씨를 만났다. 그는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문의 편집 현장, 특히 언론사 간부의 압도적 다수는 남성이라서 남성우월적인 가치관으로 기사가 선별되고 편집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표현도 성차별이면 이것도, 저것도, 하면서.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에게도 ‘자각이 없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물론, 말을 바꾸는 데서 끝나는 기술론으로 가이드북의 결론을 맺고 싶지 않았다.
“단어 하나로 가치관도 의식도 바뀌잖아요. 그래서 혼자서도 시작할 수 있는 의식의 개혁. 거기에서부터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언론계의 노동방식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입사 당시부터 불편함을 느꼈어요. 주말도 쉬지 않는 엄청난 노동방식이죠. 그럼에도 자신의 일상을 희생하면서 일하는 문화가 있고, 그 연장선상에 여성에 대한 경시나 남성중심의 문화가 있습니다.”
자신이 소중히 대접받지 않는다고 느끼고, 인권 감각이 왜곡되고, 그 왜곡된 감각이 당연해져서 사람을 대면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위기의식. 지금은 거기에다가 디지털화로 부수를 줄이는 신문사의 경영합리화까지 가세한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동반해 약자 편에 서서 기사를 쓰는 생활보도부 계열이 ‘경영합리화’ 대상이 되기 쉬워서, 그쪽에서 실력을 쌓은 여성들도 승진이 어려워집니다. 선배들이 만들어온 자매애적인 문화도 무시당하고, 젠더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던 토대가 축소됩니다. 마이니치신문에서도 생활보도부가 없어지고, 어제도 어느 지방지에서 부서가 없어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여성이 빛나는 사회”라는 수사에 반발, ‘유리천장’ 기획
1972년생으로, 1998년에 마이니치신문사에 입사한 요시나가 마미 씨의 언론인생을 돌아보면, 30대 중반이 큰 전환기였다. 특종을 잡아 1면을 장식하고, 주변 반응에 고무되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도 어딘가 기쁘지 않은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이대로 끊임없이 취재에 쫓기고 조직의 톱니가 되어 쓸모있는 유형의 기자가 된들, 대체 나에게 무엇이 남을까. 그렇게 자각을 한 이후부터입니다. 제가 진심으로 추궁하고 싶은 문제들을 쫓게 되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젠더 이슈였다. 얼마 안 있어 당시 아베 정권이 “여성이 빛나는 사회”라는 고까운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정부와 일부 언론에서 ‘빛나는 여성’을 자기들 방식대로 골라 손쉬운 이상형을 만드는 듯한, 땅에 발이 닿지 않는 붕 뜬 선전을 하는 이상한 흐름에 분노를 느꼈습니다. 이대로는 이상해질 것 같다... 결코 빛날 수 없는 상황들이 있잖아요. 또, 이상한 방식으로 빛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독자들 역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여성들로 이루어진 연재 ‘유리천장’ 취재반을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평등한 조직이어야 할 노동조합 내에도 유리천장은 있다. 신문노조연합에서도 의사결정기관인 중앙집행위원회는 70년간 거의 남성으로 메워져 왔다.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위원회에 여성 30% 할당제를 도입한 것은 2019년의 일이다. 그리고 2020년, 요시나가 씨는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로 위원장에 취임했다.
기자의 역할을 묻다
요시나가 씨에게 왜 신문 기자가 되었냐고 물으니 “딱히 재미있는 계기는 없어요”라고 말하면서도 “그러고 보니, 그러고 보니...” 하며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 속에는 불합리를 용납하지 않는 단단한 뿌리가 보였다.
“초등학생 시절에 자주 벽신문을 만들었어요. 거짓말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선생님을 풍자하는 그림을 그려서 벽에 붙여 혼내주는 식이었죠. 아이들 반응이 재미있어서 누가 하라고 하지 않아도 자주 그렸어요. 그런 선생님에게 굴복하지 않다가, 양쪽 뺨을 왕복으로 맞은 적도 있어요, 그러고 보니.”
불합리에 대한 저항과,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의 재미. 그것이 직업으로 구체화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중국을 여행하고, 티베트의 현실을 세계에 전하는 저널리스트를 만나는 일이 이어졌다고.
지금, 이 일의 소중한 사명 중 하나를 요시나가 씨는 이렇게 정의한다. “시민들이 직접 모여 논의하고 민주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선택지로서의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라고.
3월에 출간한 『실패하지 않기 위한 젠더 표현 가이드북』은 기자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현장의 기자들이 다 같이 자발적으로, 우리가 만들고 싶어서 만든 책이에요. 그게 중요하죠. 함께 만든 동료가 각지에 있으니, 각자가 이야기꾼이 되어 직장과 노조, 지역에서 관련 행사를 진행하면서 발전시켜 나가고 싶어요.”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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