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 음악시장에서, 더욱 반짝이는

[페미니즘으로 다시 듣기] 싱어송라이터 클레어오(Clairo)

블럭 | 기사입력 2022/06/24 [15:52]

가부장적 음악시장에서, 더욱 반짝이는

[페미니즘으로 다시 듣기] 싱어송라이터 클레어오(Clairo)

블럭 | 입력 : 2022/06/24 [15:52]

전환치료(conversion therapy: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혹은 트랜스젠더를 시스젠더로 바꾸겠다는 시도를 칭함. 그 자체로 인권침해이며 의학적 치료가 아님)를 금지하는 법이 캐나다, 뉴질랜드,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시행 중이다. 영국 역시 입법화 과정을 밟았지만, 최근 보리스 존슨 총리가 관련 법안 입법화를 폐기하겠다고 밝혀 제동이 걸렸다.

 

2020년 7월 10일, 영국 정부에게 보내는 ‘전환치료 반대’ 서한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올라온 적이 있다. 이 서한에 이름을 연명하고 연대한 이들 중에는 엘튼 존(Elton John), 두아 리파(Dua Lipa)와 같은 음악가부터 배우, 감독, 여러 인권활동가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오늘 소개할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클레어오(Clairo)다.

 

▲ 클레어오(Clairo)가 2017년 유튜브에 공개한 “Pretty Girl” 중에서 https://youtube.com/watch?v=mngtcfcaVrI

 

양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팝 스타인 클레어오는 십대 시절 유튜브에 올린 음악으로 알려졌으며, 여성 간의 사랑을 담은 “Sofia” 등이 수록된 첫 앨범 Immunity(2019)가 여러 매체에서 호평을 받고 히트한 데 이어, 2021년 반가운 두 번째 앨범 Sling으로 돌아왔다.

 

직접 만든 곡임을 증명해야 했던 인터넷 팝 스타

 

고등학교 시절부터 음악활동을 해온 클레어오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처음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음악을 선보였을 때부터, 2017년 유튜브에 공개한 “Pretty Girl”이 잘 알려졌을 때(현재 조회수는 8천만 회를 기록하고 있다), 이후 “Flamin Hot Cheetos”를 비롯해 다른 곡도 연이어 사랑을 받을 때도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음악임을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모든 음악을 직접 만든다는 것을 매체를 통해 과정까지 보여주기도 했다. (How To: Make a Clairo Song)

 

*클레어오(Clairo)가 2017년 유튜브에 공개한 “Pretty Girl” https://youtube.com/watch?v=mngtcfcaVrI

 

클레어오의 인터뷰에는 유독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 관한 질문이 많다. 그는 소위 ‘DIY 정신’을 잃지 않는다. EP 때는 로스탐(Rostam)이나 잭 안토노프(Jack Antonoff)와 같은 이름 있는 이들의 프로덕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곡만큼은 직접 작사, 작곡에 편곡까지 해왔다. 클레어오처럼 자신의 공간에서 혼자 만들고 선보인 음악을 베드룸 팝(Bedroom Pop)이라고 부르는데, 클레어오는 어린 나이에 이미 그들 가운데서도 선두주자에 있었다.

 

▲ 클레어오(Clairo)의 “Bags” (Recorded Live for World Cafe) 중에서 https:// youtube.com/watch?v=Da3FBTjOwVM

 

클레어오는 이미 커리어 초기, 그러니까 10대 중후반 시기에 몇 곡이 인터넷 상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대형 레이블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후 그는 초대형 레이블보다는 페이더(Fader)라는 매거진이자 레이블과 계약을 맺었다. 이미 그 당시에 자신의 일을 도와줄 에이전시 계약도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생활을 캐기 시작했고, 그의 아버지가 대기업 마케팅 임원이라는 사실을 들이대며 아버지의 덕으로 레이블 계약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특정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번지며 기사까지 보도되었다.

 

여기에 대해 클레어오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자신을 둘러싸고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성차별주의자’라고 말했다.

 

그가 계약을 한 시점에 대형 레이블의 관심이 있었다는 증거도 있을 뿐 아니라, 첫 앨범 Immunity가 12개 매체에서 올해의 앨범 리스트에 꼽혔다는 점만 보아도, 또한 그의 유튜브 구독자가 192만명에 달하는 것만 보아도, 클레어오의 음악이 상업적 성과와 평단의 호평 모두를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 찬스로 레이블과 계약을 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다. 오히려 그는 더 큰 레이블과 계약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레이블과 함께하기로 선택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의 능력을 의심했다. 그래서 클레어오는 자신의 음악과 커리어에 관하여 증명해야 했다.

 

▲ 클레어오(Clairo)의 첫 앨범 Immunity(2019) 자켓 이미지

 

양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다

 

기사의 첫 부분에 전환치료에 반대하는 서한에 클레어오가 연명한 것을 언급했는데, 그는 SNS를 통해 퀴어임을 커밍아웃하고, 이후 발표한 첫 번째 EP에서 여성이 여성에게 사랑에 빠졌을 때를 노래한 곡 “Sofia”를 공개한 바 있다.

 

2019년 양성애자임을 커밍아웃 직후, 미국의 퀴어 매거진 뎀(them)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대학 진학 후 만난 친구들로부터, 특히 ‘오픈리 게이’인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많이 배웠고, 그 자신감과 기꺼이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의지를 보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뭐라고 불러야 할 지 몰라 두려웠으며, 퀴어 음악가들이 커밍아웃을 했을 때 특정한 상자(프레임)에 갇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경계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클레어오는 자신의 팬들이 섹슈얼리티 고민이나 정신건강 관련 문제를 겪을 때,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고 밝혔다. 자신의 경우 “내가 속한 커뮤니티와 환경이 내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시야를 돌렸다”고 했다. 그가 어렸을 적 왜, 어떻게 음악을 인터넷에 공개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Sofia”와 더불어, 클레어오의 첫 번째 앨범에 수록된 노래 중에는 크게 히트한 곡 “Bags”도 있는데, 이 곡 역시 은유적으로 자신이 경험한 동성 간의 사랑을 담아낸다.

 

▲ 클레어오(Clairo) “Sofia” 뮤직비디오 중 https://youtube.com/watch?v=0y8AEEyS20Q

 

소피아, 알아야 해, 너와 나

이 관계에 대해 죄책감이 느껴지면 안 돼

우리가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해

- Sofia 중에서

 

*Clairo - Sofia 뮤직비디오 https://youtube.com/watch?v=0y8AEEyS20Q

 

어제 내가 네게 줬던 그 이름으로 날 불러줘(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인용하며, 이 곡이 여성 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임을 전달)

매 분이 중요해, 난 더 이상 TV도 보고 싶지 않아, 내 말 알겠어?

그냥 소파에서 너와 시간낭비나 하고 싶단 거야

- Bags 중에서

 

*Clairo - Bags (Live) https:// youtube.com/watch?v=Da3FBTjOwVM

 

오롯이 자신으로 존재하기, 클레어오의 음악 세계

 

그의 음악은 굉장히 섬세하고 사려 깊다. 예쁘고 듣기 편한 곡만은 아니다. 특히 첫 번째 앨범 Immunity 수록곡 “Alewife”는 어린 시절 정말 죽고 싶었을 때 도와줬던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Sinking”과 “I Wouldn’t Ask You”는 자신이 앓고 있는 병에 관한 경험과 자신을 돌봐줬던 이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냈다.

 

이러한 면모는 작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Sling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사랑과 관계에 대한 노래도 담겼지만, 음악을 그만두고 싶어했던 시간 동안 느꼈던 것들, 타인에게 자신은 어떻게 보이는지에 관한 고민부터 음악산업 자체에 느끼는 회의감, 삶 속 다양한 관계와 과거에 대한 회상 등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다.

 

하지만, 클레어오는 그러한 스트레스를 온전히 앨범에 쏟아낸다거나, 듣는 이에게 자신의 우울을 전가하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솔직하고 아름답다. 곡에 관한 설명도 SNS나 매체를 통해 많이 이야기해온 첫 번째 앨범 때와 달리, 정적이고 은유적이며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두 번째 앨범은 그가 성숙해지는 과정까지 증명해내는 것인가 싶을 정도다. 정신건강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마저 아름다운 음악으로 담아낸 곡도 매우 인상적이다.

 

▲ 클레어오(Clairo)가 2021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Sling 재킷 이미지

 

여기에 “Blouse”와 같은 곡을 통해, 자신이 음악산업에서 겪은 성차별에 관해서도 신랄하게 이야기한다.

 

웃는 사람과, 비웃는 사람과 이야기하기

결국은 유머가 나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아

이젠 웃겨, 내가 단지 쓸모 없고 음란한 년일 뿐이란 거

내 기분을 왜 말해야 해, 네가 내 블라우스 아래만 보고 있을 때?

- Blouse 중에서

 

1998년생 클레어오에게 세상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고,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했다. 한편으로 그는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앨범으로 공개했고, 그것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두 번째 앨범을 내기 전 음악을 그만두고 싶어했지만, 결국 앨범을 만들고 선보이면서 회복의 여정을 밟고 있다. 클레어오가 성차별적인 음악시장에서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길,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참고 자료]

-영국 패션지 아이디 “셀럽들, 전환치료 금지 서한 서명”(더글라스 그린우드, 2020.07.10)

-영국 일간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즈, “보리스 존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 갈 수도 있다”(스테판 부쉬, 2022.06.07)

-예일대 페미니스트 온라인 매거진 브로드 레코그니션, “클레어오에 관해 알아보자”(카를로스 로드리게즈, 2018.05.22)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즈, “클레어오의 “Pretty Girl”이 화제가 되었고, 그는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조 코스카렐리, 2018.05.23)

-미국 문화 매거진 콤플렉스, “다음 단계: 클레어오와의 인터뷰”(그레이엄 코리건, 2018.07.31)

-미국 페미니즘 팝 문화 매거진 비치(Bitch), “2019 최고의 노래”(2019.12.13)

-미국 애틀랜타의 10대 매거진 VOXATL, “VOX 5: 뚜렷하게 꼽은 스포티파이 재생 목록에 추가할 페미니스트 앤썸”(벨 차펠, 2022.05.18)

-미국 LA 패션 문화 매거진 플루언트, “클레어오 - 감정에 맞서 싸우지 마세요. 감정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이브 발로우, 2019.10.22)

-미국 퀴어 매거진 뎀, “클레어오, 커밍아웃하고 오롯이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하다”(윌라 베넷, 2019.05.27)

-미국 음악 매거진 피치포크, “클레어오 Immunity 음반 리뷰”(캐서린 아사프, 2019.08.02)

-미국 패션지 보그, “클레어오: 카펜터스, 폴 사이먼 그리고 새 반려견이 최근 앨범에 영향을 준 것에 관하여”(키튼 벨, 2021.07.16)

 

[필자 소개] 블럭: 프리랜서 디렉터, 에디터, 칼럼니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내외 여러 음악에 관하여 국내외 매체에 쓴다. 저서로 『노래하는 페미니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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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22/06/25 [12:14] 수정 | 삭제
  • 진짜 반짝이네요. 자료들 더 찾아읽으며 클레어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어요.
  • 자갈치 2022/06/24 [21:04] 수정 | 삭제
  • Sofia 뮤직비됴 환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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