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언가를 미치도록 좋아해 본 적이 있는가. 나에게는 영화가 그렇다. OTT 시장이 활성화되자 영화가 사라지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다. 누군가는 말했다. 영화는 사라질 리 없다고. 그래도 불안했다.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너무 좋아하다 보니 만드는 일도 부담이 되었다. 내가 만드는 것이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해를 끼칠까 봐 걱정이 컸다. 사랑하면 용기가 생긴다던데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어떻게 잘 사랑하면서 만들 수 있지. 만드는 일도 지키는 일도 쉽지가 않았다.
‘짝퉁’ 가수 엄마와 ‘관종’ 유튜버 딸
김진화 감독의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는 윤시내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한 여성, 신순이(오민애)의 이야기다. 그는 ‘연시내’라는 윤시내의 이미테이션 가수로 활동을 하며 그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오래도록 보관해온 인삼주를 윤시내에게, 아니 윤시내 선생님에게 드리는 것이 꿈인 그는 연시내 분장을 지운 후에도 윤시내의 영상을 종일 보며 따라 부른다. 그러던 어느 날, 윤시내가 사라졌다.
연시내는 윤시내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여정 속에서 수많은 윤시내의 이미테이션 가수들을 만난다. 운시내, 가시내, 윤신애 등등... 모두 윤시내에게 푹 빠진 사람들이다. 절절한 사랑의 경로를 따라서 연시내는 달린다. 과정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연시내의, 아니 신순이의 딸 장하다(이주영)이다.
장하다는 신순이가 윤시내를 사랑하는 만큼 자신을 사랑해주길 바랐고, 결국 관심을 갈구하는 ‘관종’ 유튜버 ‘짱하’로 성장했다. 이름 모를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짱하는 자신을 위태롭게 지켜나가고 있었다. 윤시내를 찾는 여정에 함께하는 이유도 단 하나다. 윤시내 ‘짝퉁’인 엄마 연시내를 촬영해 유튜브에 올리면 조회수가 대박이 날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화는 모녀의 서사와 이미테이션의 진짜를 향한 사랑 사이를 오간다. 하지만 그 사랑과 이 사랑은 다르다. 엄마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과 연시내가 윤시내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다. 후자의 사랑은 뜨겁다면 전자의 사랑은 습하다. 둘 다 지독히도 오래간다는 공통점을 갖고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그 출발의 차이로 딸은 서운함을 느끼고 연시내는 그런 딸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답게 까불까불하다. 유튜버 짱하의 셀프 카메라 앵글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비단 그 앵글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핸드헬드와 배우들의 동선으로 장난기를 그득 보여준다. 배우들도 카메라도 자유로워 보이는 가운데 짱하의 자유와 연시내의 자유가 충돌한다. 관심받을 자유와 사라진 사랑의 대상을 찾을 자유가 맞부딪혀 마찰음을 만들어 낸다.
연시내는 결국 여정 중간 장하다에게 버려지고 눈 내렸던 길을 홀로 걷다가 누군가 버린 소파에 앉는다. 그리고 애지중지 껴안고 다니던 인삼주를 결국 본인이 마셔버린다. 정말 윤시내는 사라져 버린 걸까. 장하다는 신순이가 자신을 버렸다고 느끼고 연시내는 장하다가 자신을 버렸다고 느낀다. 이 버림받은 사람들은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까.
윤시내에 대한 사랑으로 출발한 이 영화는 모녀 관계의 관심의 문제로 파고들지만 결국 해결점도 윤시내다. 윤시내를 찾기 위한 마지막 종착역에서 연시내는 윤시내의 노래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를 열창한다. ‘벗어나고 싶어,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라는 후렴구로 유명한 이 노래를 부르는 연시내 역 오민애 배우의 열연은 정점을 찍는다. 영화는 연시내의 무대를 딱 한 번 제대로 보여준다. 그것은 멋진 무대도, 이미테이션 가수들이 활약하는 나이트클럽도 아니다. 조명 하나, 마이크 하나 없이, 심지어 반주도 없이 열창하는 그곳은 병실이다. 1세대 이미테이션 가수가 병환으로 누워있는 그곳에서 의식 없는 환자를 관객으로 연시내는 열창을 한다.
‘가짜’는 진실하지 못한가
연시내는 왜 그리 윤시내를 사랑했을까. 무엇에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을까.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신순이에게 윤시내를 따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질문을 던지다 보면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나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인가. 왜 그렇게 미친 듯이 영화를 봤을까. 영화를 찍기 위해 왜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는가.
싱글맘이었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단순한 결론을 짓고 싶지는 않다. 벗어날 곳을 찾다가 윤시내를 찾은 것이 아니라, 윤시내를 찾음으로써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영화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단순 도피처가 아니라 출발선이었다. 연시내에게도 윤시내가 출발점이었고 신순이는 연시내로 새 인생을 도모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한 예술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 아니다. 새로운 인생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모두가, 예술가를 사랑하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연시내가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를 열창할 때, 마침내 윤시내가 나타난다. 눈을 감고 열심히 부르던 오민애 배우는 윤시내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더 행복한 표정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멈출 줄을 모른다. 윤시내가 떠날 때까지도 연시내는 모르고 열창을 한다. 조용한 병실에 연시내의 노래가 울려 퍼진다. 와중에도 장하다는 카메라를 들이대지만 눈을 감는다. 그리고 오롯이 연시내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마침내 연시내를 이해하게 된다.
‘가짜에도 진실함이 있다’는 이 영화의 메인 주제다. 이미테이션 가수 학원에 적혀있던 이 글귀는 김진화 감독의 친필 사인으로 포스터 엽서 뒤에도 적혀있다. ‘가짜’, ‘이미테이션’은 어마어마한 애정을 수반한다. 애정과 그 애정을 기반으로 한 연마 없이는 불가능하다. ‘패러디’와는 다른 점이며 ‘오마주’에 가깝다. 하지만 ‘가짜’는 얼마나 폄하되었나. 하위문화로 분류되어 제대로 된 예술 취급을 받지 못했다. 예술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것은 예술이 아닐까? 설령 예술이 아닐 수는 있을 지라도 지금처럼 저급한 대우를 받을 것은 아니다.
‘관종’에 관하여
‘가짜’처럼 저급한 대우를 받는 말은 또 있다. 바로 ‘관종’이다. ‘관심병 종자’의 줄임말로 관심을 받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허나 ‘관종’이 아닌 사람이 존재하긴 할까.
영화는 그동안 우리가 흔히 ‘후지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해 다시 질문한다. 당신의 생각이 진정 맞는지, 언어를 재규정하는 과정에서 사랑을 도출해낸다. 관종은 사실 사랑이 필요했고,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짜는 사랑에서 출발했고, 사랑은 진실하기에 가짜에도 진실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랑의 가뭄과 오민애 배우
소셜 네트워크가 성행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관계망을 갖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더 외로워졌음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인생의 밝은 측면만 조명을 받고 그렇지 못한 부분은 가려진다. 이 사랑의 가뭄의 시대에서 영화는 사랑을 전한다. 이 전달의 큰 역할을 해낸 기관사는 바로 배우 오민애다.
23년 만의 첫 장편 주연을 맡은 오민애는 그간의 쌓여온 연기력을 가감 없이 발휘한다. 감정을 강요하지 않은 채 보는 이의 주머니에 어느샌가 쏙 넣어버린다.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아 준 덕에 영화의 관객은 배우의 연기를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오민애의 연기만큼은 렌즈를, 스크린을 관통한다.
흐트러지는 순간조차 관객은 감히 신순이를 연민할 수 없다. 오민애의 연기와 카메라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 사랑스러운 배우의 버림받은 장면을 카메라는 멀리서 지켜보며 처량하지 않게 담아낸다. 오민애의 연기 또한 관객을 시혜적인 자리에 앉아 그저 모성애에 신순이를 가두지 않게 만든다.
연시내가 살아있다
‘진짜’에 집착했던 시기가 있었다. ‘진짜’ 영화를 찍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것도 안 찍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2018년에 나는 새 목표를 세웠다. ‘못 찍는 사람이 되자.’ 그리고 찍은 영화가 <마더 인 로>였다. 그 영화는 ‘가짜’일까 ‘진짜’일까. 나는 기준을 모르겠다. 하지만 <윤시내가 사라졌다>를 보니 알게 되었다. ‘진짜’와 ‘가짜’ 모두 진실함이 있다는 것. 그러니 나는 ‘가짜’ 영화라도 찍고 싶다. ‘가짜’ 영화 칼럼이라도 쓰고 싶다. 윤시내는 사라질지라도 연시내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사라졌다’와 ‘살아졌다’는 같은 발음이지만 다른 뜻을 가진다. 마치 ‘윤시내’와 ‘연시내’처럼. 언뜻 들으면 비슷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윤시내’는 ‘사라졌다’. 하지만 ‘연시내’는 ‘살아졌다’. 윤시내를 찾아가며, 딸과 다투며, 다른 동음이의어 같은 이미테이션들을 만나가며 연시내는 살아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또한 연시내가 살아있는 한 윤시내는 온전히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 가짜에도 진실함은 있고, 연시내에게도 윤시내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가짜’일 지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쓰고 만들고 사랑하면 된다. 이 영화는 그간 하위문화로 분류하는 체계에 의문의 돌을 던지며 진실한 사랑에는 물음표를 지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 관종과 가짜가 유튜브 카메라 앵글에 들어온다. 신나게 윤시내의 노래를 부른다. 사랑은 ‘진짜’와 ‘가짜’로 결코 나눌 수 없는 것이며 그렇기에 더 진실하다. 이 저급하고 진실한 사랑을 우리는 만끽하며 ‘살아질’ 것이다. 그토록 연시내가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무언가를 하위로 규정짓는 체계였을 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끝나고 며칠 내내 윤시내의, 아니 연시내의 노래가 귀에 맴돌았다. 후렴구로 글을 마무리한다. “벗어나고 싶어. 벗어나고 싶어.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 벗어나고 싶어.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 지쳐버린 내 영혼 조금씩이라도. 벗어나고파. 그대에게서 벗어나고파.”
[필자 소개] 신승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 1집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2016), 2집 앨범 [사랑의 경로](2019)를 발매했으며 단편영화 <마더 인 로>(Mother-in-law, 2019), <프론트맨>(Frontman, 2020)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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