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 혐오’(misogynoir)로부터의 해방

[페미니즘으로 다시 듣기] 야야 베이, 북극성을 찾아서

블럭 | 기사입력 2022/07/23 [07:45]

‘흑인 여성 혐오’(misogynoir)로부터의 해방

[페미니즘으로 다시 듣기] 야야 베이, 북극성을 찾아서

블럭 | 입력 : 2022/07/23 [07:45]

음악가 야야 베이(Yaya Bey)는 어느 날 SNS에서 이런 내용의 글귀를 봤다고 한다. “흑인 여성은 건강한 사랑을 해본 적 없고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다.” 그는 글로벌 음반 판매 플랫폼 밴드캠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되물었다. “여성혐오가 나를 흙 길로 데려갔다. 나는 사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할까?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 아야 베이(Yaya Bey) EP “The Things I Can't Take With Me” 이미지

 

사랑은 여러 형태를 하고 있다. 하지만 흑인 여성의 사랑은 모종의 스테레오타입에 갇혀 있다. 흑인여성혐오(misogynoir, 여성혐오를 뜻하는 misogyny와 검은색을 뜻하는 noir의 합성어)가 여전히 만연하고, 흑인 커뮤니티 내에서도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만연하다. 대개 흑인 여성은 경제력이 없고, 성적 욕망이 강하며, 그런 점 때문에 늘 잘못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이런 편견을 부추기며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은 틱톡과 릴스 같은 숏폼 영상들이다. 자극적인 영상이 쉽게 눈길을 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황극이라는 포맷이 인기가 많은 매체 환경에서 흑인 여성은 더 우스꽝스럽고 한심하게 묘사된다. 당장 구글에서 “tiktok misogynoir”를 검색하면 관련된 많은 영상이 나온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야야 베이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이 속해 있는 커뮤니티, 자신의 생애와 경험을 작품에 담아야겠다 생각했고, 그 결과 앨범 Remember Your North Star가 나왔다. 발매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미 많은 호평이 쏟아지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앨범을 소개하는 글에서 ‘이 앨범은 일종의 논문이다’라고 했다. 다양한 흑인 여성이 존재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사랑과 커뮤니티로부터의 사랑을 원하며, 이 앨범은 그러한 목표를 상기시켜준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북극성을, 그러니까 삶의 방향을 찾으라고 말하는 야야 베이의 앨범에 대해 더 들여다 보자.

 

▲ 아야 베이(Yaya Bey)가 최근 발표한 앨범 Remember Your North Star 커버

 

야야 베이의 아버지는 힙합 음악이 초기 형성되었을 때 이름을 알렸던 래퍼다. 아마도 그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야야 베이는 훨씬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다. 비주얼 아티스트로서, 시인으로서, 교육자로서, 큐레이터로서 그는 지역 사회에서 다양한 일을 소화하고 있으며 동시에 뛰어난 음악가이기도 하다. 미국보다 영국 BBC가 먼저 주목했는데, 야야 베이가 요즘 유행하는 음악보다는 재즈, 소울, 힙합, 아프로비트 등 여러 장르를 섞으면서도 무게감 있는 노래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대중적으로는 덜 주목 받을지언정 평단으로부터는 항상 좋은 반응을 얻어 왔다.

 

그가 정규 앨범 정도 되는 규모의 작품을 만들고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20년, 이혼을 겪은 이후부터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기라 앨범을 내도 무대 활동을 할 수 없을 때였다. 오히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야야 베이는 좀 더 깊이 있는 음악을 위해 집중했다. 올해 발매한 새 앨범은 탄탄한 완성도와 높은 음악적 밀도를 보여주고 있다.

 

Remember Your North Star 음반은 흑인여성혐오 문제에서 출발한 만큼 계속해서 사회적 화두를 던진다. 정제된 언어만 있지는 않다. 이 모든 것은 음악가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가족부터 전 남편까지, 살면서 겪어온 남성들의 여성혐오로부터 일단 벗어나고 스스로 치유되어야 했다. 그는 이 앨범을 만들면서 자신만의 회복 여정을 만들고, 담아냈다. 그것은 심플하게 하나의 해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앨범에 담긴 언어나 내용도 변화무쌍하다. 슬랭(slang, 은어)부터 시까지, 현실부터 이상까지 공존하기 때문에 가사를 변역해서 소개하는 것보다 곡의 의미와 내용을 안내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아, 몇 곡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첫 곡인 “Intro”에서는 흑인 여성들이 일상에서 이야기하는 말들을 풀어낸다. 돈도 필요하고, 월세도 내야 하지만, 예쁜 신발도 사고 싶고, 관계에서는 늘 싸우는 듯한 그런 이야기를 무질서하게 풀어놓는다. 이후 짧게 등장하는 “Libation”은 은유만이 존재한다. “어떤 소녀들은 우리에게 신을 많이 생각나게 한다”는 첫 문장부터 “우리 눈의 샘은 마르고 더 이상 쏟을 제사 술은 남아 있지 많다”고 하는 구간까지, 흑인 여성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이야기한다.

 

-Yaya Bey “Big daddy ya” 뮤직비디오 https://youtube.com/watch?v=1tT4Epalqk8

-Yaya Bey “Reprise” 뮤직비디오 https://youtube.com/watch?v=b28A3-kwuW8

 

그런가 하면 “Big daddy ya”는 가상의 랩 스타에 빙의하여 자신감 넘치는 여성을 이야기한다. 네 번째 곡이자 가장 잘 알려진 곡인 “Keisha”는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친 동시에 그만큼 사랑이 필요한 여성의 모습을 담는다. “Nobody Knows”는 흑인 여성이 종종 겪는 패닉 상황과 트라우마는 결국 다른 사람은 알아줄 수 없다고 말한다. “Reprise”는 해로운 관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면서 자신을 개선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피로를 이야기한다.

 

-Yaya Bey “Keisha” 뮤직비디오 https://youtube.com/watch?v=h1Rf0W4co8c

-Yaya Bey “alright” 뮤직비디오 https://youtube.com/watch?v=nrS8cxqS6Gw

 

총 18곡이 담긴 이 음반은 현실적이면서도 복잡다단한 흑인 여성의 실제 삶을 조명한다. 흑인 여성의 관계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고, 문제점도 존재하며, 건강하게 나아가려는 노력은 물론 자존감 높은 모습도 존재한다. 또한 서로가 연대하며 흥겨움을 즐길 줄 아는 모습도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앨범을 듣다 보면 결국 관계에서 생겨나는 문제는 흑인 여성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 아야 베이(Yaya Bey)가 발표한 싱글 reprise 이미지

 

궁극적으로 야야 베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흑인 여성 해방이다. 그 해방은 기존 선입견으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하고, 실제 직면하고 있는 흑인에 대한 구조적 폭력이나 흑인 커뮤니티 내의 여성 혐오, 좋지 못한 관계로부터의 해방도 포함되어 있다.

 

삶의 희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프라이드와 상처를 모두 담아낸 앨범을 통해, 야야 베이는 훌륭한 스토리텔러라는 평가를 받는다. 가사에 담긴 내용을 모르더라도, 야야 베이의 보컬은 다양한 내용을 훌륭하게 여러 톤으로 전달하고 있어 흥미롭다. 기존 여성 음악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기도 한 Remember Your North Star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길 권한다.

 

[참고 자료]

-미국 문화 매거진 컨시퀀스, “야야 베이, 새 EP ‘The Things I Can’t Take With Me’ 발표, “fuck it then” 곡과 함께”(니나 콜코란, 2021.02.25)

-미국 음악 매거진 피치포크, “야야 베이 Remember Your North Star 리뷰”(에릭 토레스, 2022.06.17)

-미국 음악 매거진 피치포크, “알앤비 신예 야야 베이는 흑인 여성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원한다”(클로버 호프, 2022.06.13)

-영국 일간지 가디언, “야야 베이 Remember Your North Star 리뷰: 희비극을 위한 반짝이는 선물을 가져온 알앤비 가수”(벤 뷰몬트-토마스, 2022.06.17)

-미국 흑인 여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에센스, “국가 폭력에서 여성 혐오에 이르기까지 Yaya Bey는 흑인 여성 해방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 있다”(베로니카 힐브링, 2020.10.26)

-미국 흑인 문화 매거진 오케이플레이어, “야야 베이는 흑인 여성을 위한 힐링 음악을 만들고 있다”(로빈 모와트, 2022.06.22)

-미국 음악 매거진 페이더, “야야 베이, 새 앨범 Remember Your North Star와 함께 'Keisha' 공유”(조던 다빌, 2022.03.16)

-영국 음악 매거진 라두드 앤 콰이어트, “야야 베이 Remember Your North Star 리뷰”(닉 차라, 2022.06.13)

-글로벌 음반 판매 플랫폼 밴드캠프, “야야 베이는 여성 혐오를 끝낸다”(브리트니 피에르, 2022.06.24)

 

[필자 소개] 블럭: 프리랜서 디렉터, 에디터, 칼럼니스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국내외 여러 음악에 관하여 국내외 매체에 쓴다. 저서로 『노래하는 페미니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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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aper 2022/07/24 [14:14] 수정 | 삭제
  • 블럭님의 음악가 소개 기사는 공휴일에 읽어야 제맛. 아침부터 유튜브 켜고 정주행 중이에요.
  • 하오 2022/07/23 [12:52] 수정 | 삭제
  • 미국이나 유럽에서 아시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심한 선입견에 가둬버리는 걸 보면... 흑인 여성에 대한 억압이 얼마나 겹겹이었겠나 알 수 있을 것 같더라... 너무 멋진 뮤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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