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출신 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주 배경 청년의 목소리] 이주 2세, 평범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이연 | 기사입력 2022/08/14 [10:32]

엄마의 출신 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주 배경 청년의 목소리] 이주 2세, 평범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이연 | 입력 : 2022/08/14 [10:32]

※국제결혼 가정이나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한 청(소)년들, 아동 청소년 시기에 중도 입국한 청년 등 다양한 이주 배경을 가진 청년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청년 담론 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주 배경 청년 당사자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직접 들어봅니다. [편집자 주]

 

‘다문화가정’ 자녀라는 말은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외국에서 이주해 온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이주 2세 청년으로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사실 예전엔 ‘다문화가정’이라고 하면 뭔가 말하기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래도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연애를 하거나 가정을 이루는 것이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거리감이 줄어든 것 같다. 그냥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느껴질 때는 기쁘다.

 

한국에서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는 문자 그대로 다양한 문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가정을 이룬 사례들을 칭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경우에 한정해서 이야기되기 때문에 그만큼 선입견도 많은 것 같다.

 

내가 살면서 ‘다문화가정’ 자녀라는 말을 별로 듣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이기도 하다. ‘헉, 친구들하곤 잘 지낼 수 있었니?’,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지?’하며 안쓰러워하는 시선에 대한 반발심이라고 해야 하나. 자라면서 불편함을 겪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출생이나 가족 정체성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거나 견디기 힘든 기억은 없었던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 어릴 적에 ‘멘토’(가운데)가 되어준 언니와 함께 서울 명동 투어를 했던 때의 모습. 피자를 먹고, 박물관 관람을 했던 것이 기억 난다. (필자 제공 사진)

 

‘쟤는 우리랑 달라’ 부담스러운 시선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큰어머니, 큰아버지, 엄마, 아빠, 동생 이렇게 대가족 사이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가족이다 보니 관계에서 트러블이 안 생길 수 없었다. 게다가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은 문화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다 보니, 갈등이 생기면 오히려 서로 더 조심하는 분위기가 생겼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너무 서로 조심하다 보면 대화가 안 된다고 해야 하나? 소통을 잘 하지 못해 상처가 곪는다고 해야 하나? 큰엄마와 엄마 사이에 알 수 없는 기류가 흘러서 중간에서 눈치를 봐야보아야 했던 것이나,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가족들이 서로의 뒷말을 하는 것을 방문 뒤에서 들었을 때나, 어린 마음에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 가족들 중 누구 하나라도 없으면 허전할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우리 가족들에게 상처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결국 차이를 가진 서로롤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지내게 되었다. 나는 가장 가까이에서 이를 지켜보며 자랐고, 많은 영향을 받았고, 내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세울 수 있었다.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도 잘 살 수 있구나,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들과 입장이 다 있구나, 이걸 조화롭게 이끌어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가정 밖에서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 즈음엔 ‘다문화가정에 대해 차별을 하지 말자’는 취지의 교육이 시행되었다. 하지만, 실제 교실에서는 ‘쟤 엄마 한국 사람 아니래!’ 하면서 놀리는 분위기가 늘 존재했다. 특히 한국어 발음이 어눌한 아이가 주목을 받았다. 그러한 주목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고, 관계에서 위축되기도 쉽다.

 

그렇다고 심각한 괴롭힘이나 ‘왕따’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거나 겪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비유하자면, 마치 ‘쟤는 뚱뚱해’. ‘쟤는 행동이 이상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초등학교 교실은 ‘일반적이지 않은’ 부분에 있어 관심을 받게 되는 이 사회의 분위기와도 같았다. 물론,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나 말고도 부모가 국적이 다른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각자의 고충이 있겠지만, 또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하며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가 모국어를 딸에게 가르쳐주지 않은 이유

 

중학생 시절에 지역사회에서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 한 친구가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자신의 한국말이 어눌하고, 어머니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이 놀려 힘들다는 거였다. 그 아이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쟤는 우리랑 달라’, ‘너는 말이 어눌해’ 같은 말과 시선이 누군가에게 불쾌함을 넘어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옛날 사진들을 찾다가, ‘다문화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진행된 농촌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사진을 발견했다. 캠프파이어를 하는 모습. (필자 제공)

 

‘차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다름’으로 인해 오는 불편한 시선들이 한국 사회에서 조금씩 완화되면 좋겠단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비단 국적이나 인종의 문제만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나, 표면적으로 무언가 다름이 보일 때 주변인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단 거리를 두려고 하며 불편한 감정을 내비치는 모습을 종종 봐왔다.

 

그러한 분위기를 엄마도 느끼셨는지, 엄마는 딸이 어릴 때 모국어를 배우게 된다면 한국어 발음이 정확하지 않게 되어 놀림을 받을까 봐 가르치지 않았다. 정작 나는 살면서 그런 부분에 대한 걱정은 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엄마 나라의 언어를 하지 못해 너무 아쉬울 뿐이다. 엄마가 외국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주변에서는 ‘두 가지 언어를 할 수 있어서 좋겠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난감한 기분이 든다.

 

나는 아직도 엄마의 모국어를 하지 못한다. 성인이 된 지금에 와서야 엄마에게서 조금씩 언어를 배우고 있긴 하지만, 시간 내기도 어렵고 아무래도 체계적인 수업이 아니라서 어려움이 있다. 어릴 적에도 나는 엄마의 언어를 배우고 싶어했다. 그만큼 많이 아쉽게 다가오는 한편, 딸에게 모국어를 가르쳐주지 않았던 엄마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사실 나도 초등학생 때까지는 내심 엄마가 외국에서 오신 것에 대해 친구들이 물어볼까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6학년 때, 예기치 않게 친구가 물어보길래 사실을 말하게 되었다. 친구가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어가서, 그 이후부터는 친한 친구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가끔은 우리 가족이나 집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약간 불편한 기색이나 난감해 하는 기색을 느낀 적이 있긴 하다. 만약 거기서 더 나아가 내 집안 배경에 대한 말들이 친구들 사이에 오갔다면, 소심해질 수 있고 그 부분에 대해 많이 예민해졌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시혜의 대상이 된다는 것, 그 불쾌함

 

내가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불쾌한 경험을 한 건, 친구들 사이에서는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센터에서 주관한 활동에 참여할 때였다.

 

각 지역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고, 교육청에 속한 다문화교육지원센터들도 있다. 이 센터들 덕분에 많은 경험을 했고 도움도 받았지만, 센터 관리자들의 불편한 시선들을 느꼈을 때 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종종 있었다.

 

엄마는 1박2일 농가 체험이나 도자기 만들기 체험 등 ‘다문화가정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체험 활동을 많이 알아봐주고 신청해주셨다. 그런데 모든 활동이 다 그렇진 않았지만, 버스를 타고 이동하거나 체험 활동을 할 때 우리를 위아래로 스윽 훑는 시선, 무언가 거슬리거나 안쓰럽게 보는 표정, 관계자들끼리 속닥이는 행동 등을 접하게 되었다.

 

그중 어떤 이는 우리가 처음 버스에 오르며 이름표를 나눠받을 때, 나를 슥 보더니 작게 “불쌍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다문화가정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하여 신청한 것일 뿐인데, 왜 불쌍하단 소리를 들어야 하지? 정말 불쾌한 경험이었다.

 

부모가 이주민이든, 장애인이든, 한부모이든 ‘그게 뭐?’

 

그러한 경험으로 인해, 나는 적어도 사회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르다’는 것에 대해 편견을 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이주 배경을 가진 당사자와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한부모 가정이나 장애인 가정 등에도 마찬가지이다. 남들과 ‘다른’ 배경과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주눅 들지 않고 그게 뭐? 하는 당당함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는 이 사회에서 ‘다름’이 ‘틀림’으로 인식되지 않고, ‘우열’로 분류되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란다. (일러스트 제작: 두두사띠)

 

어머니가 다른 아시아 국가 출신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매우 고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곤 하는데, 그것이 선입견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부모님은 외국에서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경우인데, 천편일률적으로 아시아 여성과 한국 남성의 국제결혼에 대한 정보나 말들이 인터넷에 가득한 것을 보면 많이 속상하기도 하다. 가끔 유튜브에서 국제 사회와 관련된 다큐 영상을 보곤 하는데, 어느 영상의 댓글 창에서 ‘동남아 분들은 다 국제결혼으로 왔다, 돈을 들고 튄다’라는 요지의 글에 ‘좋아요’가 천 개가 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적도 있다.

 

반면, 부모 중 한 명이 미국이나 유럽 쪽 백인인 경우의 혼혈 자녀들은 TV 등 매체에 밝은 분위기로 등장하고, 주위에서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뭔가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서양에 대한 판타지가 이주 2세들에게도 투영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국가의 구분 없이, 그냥 다 사람으로 비등하게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언젠가 ‘다름’이 ‘틀림’으로 인식되지 않고, ‘우열’로 분류되지 않는 날이 오길 바란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자문 도움: 김재금 바보들꽃 국장, 안순화 생각나무BB센터 대표,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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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듵레 2022/10/14 [02:15] 수정 | 삭제
  • 다름을 인정하는 사고틀이 요즘은대세 입니다. 건강한 사회를 기대하면서 나의 시선은 어떠했나 뒤돌아봅니다.
  • 당근 2022/08/18 [09:50] 수정 | 삭제
  • 이주민 정책이 배려가 아닌 고려의 차원이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이주민 친구들의 자녀들의 마음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공존의이유 2022/08/16 [20:44] 수정 | 삭제
  • 궁금했던 내용인데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복지는 시혜가 되어선 절대로 안 된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네요.
  • 공감 2022/08/15 [21:33] 수정 | 삭제
  •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 하나이다. 이렇게 되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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