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모국어도 아닌, 평화의 언어 에스페란토

영어 교사였던 기타가와 씨가 에스페란토를 전파하는 이유

무로타 모토미 | 기사입력 2022/08/17 [14:31]

누구의 모국어도 아닌, 평화의 언어 에스페란토

영어 교사였던 기타가와 씨가 에스페란토를 전파하는 이유

무로타 모토미 | 입력 : 2022/08/17 [14:31]

“영어를 할 줄 알면 어엿한 국제인”. 일본에서도 교육 현장이나 비즈니스 영역에서 슬로건처럼 사용되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영어 선생님이었던 기타가와 이쿠코(北川郁子) 씨가 국제어인 에스페란토(Esperanto)를 배우려고 했던 것은 그런 의문에서였다.

 

▲ 기타가와 이쿠코(北川郁子) 씨. 1953년 가나가와현 출생. 영어 교사 출신으로, 1982년에 에스페란토와 만났다. 2020년에 교사 생활을 마치고 무보수로 일본에스페란토협회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촬영: 오치아이 유리코)

 

“대학생 때 단기 유학을 갔던 미국 버클리에서 인종이나 국적 등에 얽매이지 않는 개방적인 사람들과의 교류를 경험하며, 일본 사회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해방감과 민주적인 분위기에 젖어 굉장히 충만했습니다.”

 

하지만 영어 교사가 되어 고등학생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이 서양에서 온 유학생을 대할 때와 아시아 유학생을 대할 때 그 대응 방식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조선학교 학생을 향해 던져지는 혐오 발언을 들으면 가슴이 아팠다.

 

“영어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어 일변도로 치우친 세계관을 만들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라고들 하지만, 이탈리아나 프랑스를 여행하면서는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 또 영어 원어민 스피커와 토론할 때,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이에게 설복당하거나 그 의견이 맞는 것이 되거나... 이 커뮤니케이션은 대등한 것일까, 언어에 의한 역학 관계도 의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서양 간, 민족 간의 우열이 없는 언어로 소통하자

 

다른 언어를 배워보자 생각하다가 다다른 곳이 누구의 모국어도 아닌 에스페란토였다. 문법이 규칙적이고, 발음도 로마자로 읽을 수 있어 쉽게 배울 수 있다. 에스페란토는 1887년 폴란드의 자멘호프 의사가 끝나지 않는 민족 간 분쟁을 대화로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까 고민하며 창안한 언어다. ‘희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에스페란토라는 이름을 붙였다.

 

에스페란토가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 평화로운 세계는 일본에서도 오스기 사카에(大杉栄, 1885~1923, 철학자, 작가, 언론인, 사회운동가),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 1896~1933, 시인, 동화작가) 등에 의해 이상적인 언어로 받아들여졌다. 1919년에는 일본에스페란토학회가 창립되었고, 반전(反戰) 운동의 열기가 뜨거웠던 베트남전쟁과 학생운동 시기에도 붐이 일었다.

 

“제가 에스페란토를 처음 만난 게 1982년이에요. 의외로 쉽게 3주 정도 독학해서 배웠어요, 누군가와 이 언어로 이야기해보고 싶어서, 한국에서 열렸던 제1회 한일 청년 에스페란토 세미나에 참가했어요. 역사교과서 문제로 불안한 분위기가 떠도는 가운데, 한국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고 밤에는 은하수가 보이는 강가에서 다 같이 밥도 먹고, 역사 문제에 대해 대화하고... 영어를 가르치면서 서구의 가치관을 전파한다는 찜찜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를 연결하는 에스페란토는 저에게 희망이었습니다.”

 

남편도 이 세미나에서 만나,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1986년에 가와사키에스페란토모임을 만들었다. 가와사키의 고등학교에서는 동아리 활동으로, 요코하마의 고등학교에서는 정규 과목과 통합 과목에 에스페란토를 도입한 적도 있다.

 

“세세한 문법을 외워야 하는 영어를 싫어하는 아이도 빠짐없이, 에스페란토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고 기뻐하더라고요. 에스페란토라면 영어보다 쉽게 세계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감을 남긴 학생도 있었고요.”

 

▲ 에스페란토 플래그. ‘희망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에스페란토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국제어로, ‘언어 정의’와 국경을 넘는 평화적 소통을 추구하며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다. (출처: pixabay)

 

기타가와 씨 자신은 입문 강좌와 국제 교류 행사에 관여하고 국내외로 다니며 에스페란토의 매력을 전파시켜 왔다. 2020년에는 일본에스페란토협회의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아직도 전쟁하는 인류…에스페란토 정신이 필요한 때

 

조직에 소속되거나 대회에 참여하는 에스페란토 사용자는 제한적이라, 일본에스페란토협회에 소속된 회원도 현재는 천 명 정도로 감소 추세다. 하지만, 에스페란토를 배운 학습자 자체는 해외에서도 일본에서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학습자는 120개국 이상, 100만 명에서 30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해요. 최근에는 게임처럼 외국어를 배우는 어플에 에스페란토가 들어가기도 하고, 배워보고 싶은 언어로 잡지 같은 곳에 소개되는 걸 보면, 청년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것 같아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는 언어를 보며, 언어는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실감한다. 에스페란토에서도 사회적 흐름에 따라 남성과 여성을 표현하는 접미사나 접두사 등이 생략되고 ‘젠더 프리’가 되어 가고 있다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일본에스페란토협회는 성명을 발표했다. 우크라이나에도 러시아에도 에스페란토어를 통해 만난 수많은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는 점, 인간의 존엄을 박탈하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고 즉시 정전과 조속한 평화를 강력하게 촉구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자멘호프 의사가 130년 전에 민족은 왜 분쟁을 반복하는가로 한탄했는데, 자신들의 가치관이 옳다, 우수하다며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인류의 한심함은 변함이 없네요. 세계 각국의 리더들이 에스페란토 정신을 배우길 바랍니다. 전쟁은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어요. 세계가 파괴되어 가게 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쌓아나가는 것. ‘희망하는 사람’ 에스페란토의 정신이 지금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에스페란토의 이념에 공감하고 배우는 사람, 여행지에서 다양한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 사람, 에스페란토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사람을 내면에서부터 풍요롭게 해주는 언어입니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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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요일 2022/08/18 [14:27] 수정 | 삭제
  • 에스페란토 배우기 쉬워요. 에스페란토를 배우는 이유는 이 언어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 국적도 다양하고 꽤 좋은 사람들이라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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