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피해자의 행실 탓’하는 사회와도 싸웠다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 어느 유튜버의 용기 있는 미투, 그 이후

이은의 | 기사입력 2022/09/16 [09:34]

우리는 ‘피해자의 행실 탓’하는 사회와도 싸웠다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 어느 유튜버의 용기 있는 미투, 그 이후

이은의 | 입력 : 2022/09/16 [09:34]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이 된 성폭력과 미투 사건들을 맡아 해결해 온 이은의 변호사의 기록,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사진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사건

 

2018년 5월, SNS상에서 피해자가 직접 찍어 올린 ‘미투’ 영상이 순식간에 화제에 오르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영상을 올린 이는 그 당시만 해도 40대 이상 연령 층에게 낯선 단어였던 ‘유명 유튜버’ 혹은 ‘페북스타’라고 불리던 20대 초반의 여성으로, 10대와 20대 사이에는 제법 유명했던 양예원 씨였다.

 

그는 카메라 동호회 회원들을 위한 촬영에 필요한 모델 혹은 피팅 모델이라 설명 듣고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촬영일에는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스튜디오 안에 가득했는데, 촬영을 하며 심각한 노출을 요구받았고, 성기 사진까지 찍혔다고 했다. 그는 두려워서 도망치거나 거부하지 못하였다면서, 촬영 과정에서 추행을 당하기도 하였음을 폭로했다. 영상의 내용은 충격적이었고 사회적으로 파장이 컸다. 나도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영상을 보고 경악했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달라고 댓글을 남겼다.

 

댓글을 보고 처음 내게 연락을 해온 건 양예원 씨가 아니라, 고등학생 조카였다. ‘이모 양예원 알아?’라고 물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페북스타’라고 말했다. 나는 ‘양예원’이 누군지도 몰랐고 ‘페북스타’란 말도 처음 들었다. 이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는 내가 아니었다. 얼마간 뉴스로만 사건을 접했다.

 

양예원 씨의 ‘미투’ 영상이 불러온 파장으로, 서로 몰랐던 다수의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에 자신도 유사한 피해를 겪었다고 알렸다. 미성년자가 포함된 스무 살 전후의 여성들과 촬영계약을 맺은 후 비공개 촬영회를 열어, 여성들이 예상치 못한 심각한 노출 사진을 촬영하도록 주도한 스튜디오 실장과 부실장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이들은 ‘비공개’를 전제로 촬영된 영상을 유출했고, 촬영 과정에서 피해자 다수를 추행했다.

 

한국 사회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방식의 범죄였던 이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았다. 그런데 가해자들을 향해 분개하던 여론은, 어느 날 순식간에 방향을 틀었다. 스튜디오 실장이 핸드폰을 사적으로 포렌식해서 얻은 카카오톡 대화 내역이란 것을 공개했다. 촬영 일정 관련해서 양예원 씨와 나눈 대화도 있었다. 내용는 평이했고, 간헐적으로 피해자가 촬영을 문의하기도 했다. 스튜디오 실장은 양 씨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역을 언론사에 뿌렸고, 일부 언론이 이를 검증도 없이 보도했다. 카카오톡 대화 내역이 공개되자, 피해자가 동영상을 올렸을 때만큼이나 파장이 컸다. 언론도, 대중도, 피해자에게 있었을 사정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세간의 화두가 된 피해 사건이, 졸지에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 사건으로 매도되었다.

 

양예원 씨를 직접 만나게 된 건 그 즈음이었다.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단발머리 여성은 창백했다. 내 또래의 여성과 동행했는데, 양예원 씨의 어머니였다. 양예원 사건에는 초반부터 복수의 변호사가 선임되어 있었지만, 연락이 안 되는 중이라고 했다. 스튜디오 실장이 양예원 씨와 과거에 나눈 대화 내역을 공개한 이후 오해와 억측이 난무했고, 여론재판에서 일방적으로 매도되고 있는 양예원 씨는 수사만이 아니라 언론 대응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조력자가 시급해보였다.

 

‘피해자다운 모습’이 아니다?

 

내가 양예원 씨의 미투 영상을 보고 댓글을 남길 때와는 많이 달라진 상황이었다. 피해자는 스튜디오 촬영에서 입은 피해에 더해, 사진 불법유출로 입은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꽃뱀’이니 ‘거짓 미투’니 하는 여론으로 끊임없는 2차 피해에 시달리며 처음 사건을 호소할 때보다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 2020년 4월 3일,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가 공동으로 개최한 〈미투운동 2020년의 정치가 되다〉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양예원 씨. ‘미투’ 이후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사회의 시선과 목소리”였다고 밝혔다. (출처: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유튜브 채널)

 

사건 기록을 볼 때 양예원 씨는 피해자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가 사무실에 찾아온다고 상담을 예약했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성폭력 피해자 출신 변호사, 삼성을 이긴 변호사, 한류스타의 성폭행이 무고로 전락할뻔한 사건을 뒤집고 이긴 변호사 등 훈장 같은 수식어들을 어깨 위에 달고 있었다. 젠더폭력 사건에 대해 사회적 변화의 흐름 위에서, 박수받고 있었다. 사건 기록을 살펴볼 때 양예원 씨는 피해자가 분명했다. 하지만 이제 막 인지도를 쌓아가며 약진하던 변호사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컸다.

 

아동이나 청소년이 피해자인 사건들과 달리, 성인 여성이 피해자인 성폭력 사건은 유독 ‘선입견’과 여론의 ‘쏠림’, ‘부침’이 심하다. 사건이 알려지면 한국 사회에서는 당장 ‘그런 일을 당하면 안 되었을 피해자’와 ‘그런 일을 당해도 싼 여자’라는 이분법이 적용된다. 후자의 경우 피해자가 오히려 손가락질을 당하고, 비난을 받기 일쑤다. 그러면 별반 관심 없는 사람들조차 사건을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피해자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쉽게 치부해버린다. 그렇게 피해자에 대한 낙인은 피해자의 이름 위에, 가슴 깊이 새겨진다. 그렇게 ‘낙인찍힌 피해자의 곁에 서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 것 같아 마음이 복잡했다.

 

직접 만나 함께 기록을 살피며 대화를 나누게 된 양예원 씨는. 내 조카의 최애 ‘페북스타’라는 이 유명한 젊은이는, 여느 또래와 다르지 않았다. 평범하고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대학생이었다. 기억력이 좋았고, 차분했다. 피해 사실을 객관화할 줄 알았고, 솔직했다. 그리고 많이 다쳐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대체 어느 지점에서 양예원 씨에게 일어난 일이 범죄 피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어떤 이유로 양예원 씨가 피해를 말할 자격이 없는 여성이라는 것인지, 과연 가해자들이 양예원 씨에게 저지른 짓이 우리가 허용할만한 일인지, 조금의 답도 나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성폭력 사건 중 수사 과정이나 재판에서 가해자 측이 ‘피해자 탓’을 하지 않는 사건이란 게 있던가 싶기도 했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갖는 기본적인 소명은 피고인의 방어권에 있다. 죄가 있는 사람, 혹은 죄가 있을 수도 있는 사람도 변호를 하는 게 변호사인데, 피해자를 변호하지 못한다면 내 어깨에 금칠한 훈장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더구나 ‘보호받을 만한 피해자’, ‘환영받을 만한 미투’ 같은 말 자체가 넌센스 아닌가! 그렇게 나는 양예원의 변호사가 되었다.

 

촬영물 불법유포, 강제추행…피해자들의 신고 잇따라

 

양예원 씨 말고도 같은 사진 스튜디오에서 유사한 피해를 입은 이들이 많았다. 양예원 씨의 폭로로, 열 명이 넘는 피해자가 용기를 내어 경찰서에 신고하거나 고소했다.

 

대부분 피해자들이 피팅 모델이라며 계약서를 썼고, 스튜디오에 갔다가 예상에 없던 사진 촬영을 했다. 그닥 넓지 않은 스튜디오 안엔 카메라를 든 낯선 남자들로 채워져 있었고, 옷을 입고 시작된 촬영은 후반부로 갈수록 입은 옷의 단추를 풀게 하고, 흘러내릴 듯 걸쳐지게 하다가, 이내 속옷까지 벗을 것을 요구했다. 다리를 벌리거나 뒤로 엉덩이를 내미는 자세를 취하라고 했고, 성기까지 근접 촬영했다. 얼굴도 생생하게 노출됐다. 자세를 교정해준다는 핑계로 불필요한 신체접촉까지 이어졌다.

 

나이 어린 피해자들은 처음엔 노출이 조금 있는 촬영이라고 생각하고 응하다가, 이건 아니란 생각에 주저하거나 거부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을 주도한 스튜디오 실장은 스튜디오 안을 채운 남자들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온 자리인데 촬영을 중단해서 생기는 피해를 배상할 거냐며 피해자들을 압박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나이 많은 낯선 남자들 속에 어린 여성이 피사체가 되어 혼자 놓인 상황은 누가 특별히 뭐라 하지 않아도 이미 강압적이었다.

 

이런 촬영을 당한 피해자들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가해자들은 사진을 유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수많은 이들의 카메라에 이미 촬영된 사진은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었다. 촬영물 유출에 대한 공포는, 촬영 당시에 느낀 성적 불쾌감보다도 더 심각했다. 피해자들 중에는 해당 스튜디오와 단절한 경우도 있지만, 이후로도 몇 번 더 촬영 일을 한 경우도 있었다. 양예원 씨도 후자의 경우였다. 양 씨는 이미 촬영된 사진들이 유출되지 않게, 해당 스튜디오 실장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양예원 씨의 진술에 따르며, 해당 스튜디오의 촬영이 항상 노출 촬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평범한 촬영과 이런 노출 촬영이 불규칙하게 섞여 있었다. 양 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스스로 일해서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마련하는 딸이었다. 대부분 촬영이 해당 스튜디오 실장의 제안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예외적으로 양예원 씨가 먼저 연락한 적도 있었다. 신학기가 시작될 무렵이라 학비가 모자라서 급히 돈을 마련해야 했다. 그런데 혹시라도 급하게 구한 다른 모델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어떡하나 불안했다. 어떤 촬영이 있을지 모르니, 촬영물이 여기저기 보관되는 것보다는 한군데 보관되는 것이 낫겠다 싶기도 했다. 확률적으로만 보면 해당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진 촬영이 평범한 것일 때가 더 많았기 때문에, 돈이 필요해 촬영하기로 할 때는 멀쩡한 촬영일 거라 선해하고 마음을 다독였다.

 

해당 스튜디오에서 여러 차례 촬영을 했던 다른 피해자들의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스튜디오 실장은 비공개 촬영회의 대가로, 적지 않은 금전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이런 촬영의 대가로 양예원 씨가 지급 받은 돈은 하루에 10만원에서 15만원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2, 3년쯤 지나 이렇게 찍힌 사진들이 온라인상에 유포됐다.

 

양예원 씨를 비롯해 해당 스튜디오의 비공개 촬영회에서 피사체가 된 피해자들이 많았지만, 문제 제기조차 하지 못했다. 처벌이 쉽지 않을 것 같았고, ‘누가 너에게 돈 받고 그런 노출 사진 찍으래?’라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예원 씨 사건이 세간의 이슈로 떠오르며, 최소한 강제추행과 촬영물 불법유포로 처벌할 수 있다는 물꼬가 터졌다. 양예원 씨의 미투는 많은 피해자들을 용기 내게 했다. 다수의 피해자들이 해당 스튜디오의 실장으로부터 동일한 피해를 입었음을 수사기관에 알려왔다. 물론 유포된 촬영물에 찍힌 여성들의 숫자는 훨씬 더 많았다.

 

가해자의 자살과 앙예원 씨에 대한 마녀사냥

 

해당 스튜디오의 실장은 과거 비슷한 혐의로 처벌받은 이력이 있었다. 그러다가 양예원 씨가 입은 피해 사건으로 입건되었는데, 피해자의 숫자가 10명을 넘어선 상황이었고 중형을 면하기 어려워 보였다. 나는 양 씨와 여러 차례 면담하며 열흘 정도를 공들여 서면을 썼다. 직원이 경찰서에 제출하러 간 날, 해당 스튜디오 실장이 다리 위에서 투신했고 시신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뉴스가 떴다.

 

주범의 죽음으로, 양예원 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가 규명되어 그에 상응하는 처벌로 이어지지 못하게 된 것과, 손해배상을 구하기 어려워졌다는 것 때문에 무척 당황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가해자의 죽음이 피해자에게 어떤 2차 피해를 얼마나 남길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해당 스튜디오 실장의 자살은 양예원 씨에 대한 마녀사냥으로 이어졌다. 암암리에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에 공고하게 자리잡은 성범죄 피해자를 향한 이분법적 사고관의 위력은 대단했다. 악플과 악성 게시물이 쏟아졌다. 피해자의 변호사인 나에게도 비난이 확대됐다. 혐짤이나 온갖 비방을 하는 게시글이 올라왔으며, 항의와 욕설 메일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수사기록을 들여다보고 사건을 검토하고 판단하는 경찰이나 검찰, 법원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아무도 양예원 씨가 피해자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해당 스튜디오의 실장은 죽었지만, 촬영물을 유출하고 양 씨를 추행한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다. 부실장도 강제추행과 촬영물 불법유포 혐의를 받고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부실장의 경우 촬영장에서 보조적인 업무를 하다 보니 피해자들과 접점이 많지 않았다. 자신을 추행한 사람으로 부실장을 지목할 수 있었던 피해자는 양예원 씨를 포함해 2명이 전부였다. 그래도 피해자들이 이야기한 피해가 실재하고, 해당 스튜디오 실장을 포함해서 비공개 촬영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행위가 범죄행위거나 최소한 어디 가서 말하기 부끄러운 일임이, 부실장에 대한 형사재판을 통해 확인될 수 있었다.

 

형사재판일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안팎으로 기자들이 몰려 질문 세례를 했다. 법원 정문 앞에서는 ‘이은의 변호사를 구속해라’라고 소리를 지르는 이도 있었다. 양예원 씨는 용기 있는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당시 법원을 갈 때 찍힌 사진들을 보면, 내가 양예원 씨의 팔짱을 끼고 나란히 서 있다. 나는 청년 양예원에게 의지가 되어주고 싶었고, 나 역시 양예원 씨를 의지했다. 그렇게 우리는 재판을 달렸다.

 

▲ 피해자에 대한 악플이나 악성 게시물에 대해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제보를 해왔는데 그중 하나이다. 원 게시글은 성폭력처벌법상 의사에 반하는 촬영물 유포의 죄를 저지르고 있고, 무수히 달린 댓글들은 N번방 이후 개정된 동법을 위반한 것이다. 개정 법률에 따르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수치심을 줄 수 있는 영상을 소지하거나 구입, 저장 또는 시청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양예원 씨가 피해자라는 사실은 형사재판을 통해서나 민사재판을 통해 명백히 확인되었지만, 이미 다수에 의해 시작된 공격과 음해는 끊임이 없었고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사망한 가해자의 동생은 양예원 씨가 무고를 한 것이라며 고소했다. 많은 남초 커뮤니티에서 이를 환영하며 양 씨를 조롱했다.

 

양예원 씨가 인천 어딘가에서 남자친구와 탔던 낚시배에서 찍은 사진이 우연히 알려졌는데, 이번엔 사망한 가해자의 유골을 뿌린 곳에서 피해자가 낚시를 하고 거기서 잡은 생선으로 회를 먹었다며 비난이 쏟아졌다. 불법 행위는 유골을 뿌린 곳에 가서 낚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에 화장한 유골을 뿌리는 것이다. 또한 피해자가 가해자의 유골이 어디에 뿌려졌는지 알 길도 없는데, 실로 엉뚱한 화살이었다. 사실 이보다 황당한 것은 ‘가해자가 죽었으니 피해자가 이를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하는 시선이었다.

 

극심한 2차 피해를 줄이고 예방하는 방법이 그저 수비로만 될 일이 아니었다. 양예원 씨를 대놓고 모욕하고 조롱하는 유튜버들이 적지 않았고, 악플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때론 공격이 최선의 수비가 되기도 한다. 규정속도를 위반하며 거침없이 내달리는 차들의 속도를 줄이는 것은, 누가 단속될지 모르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양예원 씨의 얼굴을 합성하여 사과하는 것 같은 영상을 만들거나 명예훼손, 모욕하는 발언들을 반복해서 하던 유튜버를 고소하고, 악플러 100명에 대한 고소를 대대적으로 선언한 후 실행에 옮겼다.

 

낙인찍힌 피해자의 곁에 선다는 것

 

이 사건을 처음 맡을 때 나는 이미 ‘낙인찍힌 피해자의 곁에 선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각오도 했지만, 실제 치러야 하는 대가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변호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양예원 씨가 겪은 일들을 보며 여성으로서 공감했고, 그를 변론한 것이 변호사로서 보람 있었지만, 한국사회의 기성세대로서는 미안했다.

 

양예원 씨의 피해 사건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1020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성폭력이나 성착취 범죄의 전형성이 있는 사건이었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물론, 우리 사회에 이런 사건에 대한 이해도와 인권 감수성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2년 여의 시간이 흘러 N번방이 이슈가 되었는데, 피해가 발생하게 되는 과정이나 피해의 내용, 피해자의 경제적 사정 등을 들여다보면 과거 양예원 씨 피해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불과 얼마 전 피해자인 양예원 씨가 겪는 2차 피해에 수수방관하던 사회는, 어느새 N번방과 같은 디지털성착취 사건에서 피해자들을 향해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음을 학습했다. 여전히 성범죄 사건에 대한 보도나 사법 처리에서 ‘성인’ 여성 피해자가 소외되는 측면이 있지만, 이런 과정을 딛고 점차 나아질 거고, 나아갈 거라 믿는다.

 

우리는 피해자들에게 빚지고 있다. 사회의 낮은 인권 감수성으로 2차 피해로부터 보호하지 못한 채 낙인찍혔던 피해자들에게 특히 그러하다. 나는 양예원 씨 옆에서 그 빚을 조금 갚았다.

 

[필자 소개] 이은의. 2014년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후, 서울 서초동 법원검찰청 코앞에 〈이은의 법률사무소〉를 열고 지금까지 여러 성폭력, 성차별 사건들을 다뤄왔다. 특별한 정의와 굉장한 진보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게 처리되는 세상을, 합리적인 사고와 담론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어느새 9년째 말하고 글 쓰며 싸우는 최전방에서 세상을 계속 배워가는 중이다. 저서로 『삼성을 살다』, 『예민해도 괜찮아』, 『불편할 준비』, 『상냥한 폭력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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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레카 2022/09/16 [15:07] 수정 | 삭제
  • n번방 사건과도 유사점이 있다는 얘기를 보니까 정말 그런 면이 있네요. 디지털성착취 가해자들에게 봐주기나 선처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예원 씨에 대한 사이버폭력은 여성연예인에 대한 도 넘는 악플과 스토킹에 가까운 괴롭힘과도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ㅇㅇ 2022/09/16 [11:17] 수정 | 삭제
  • 양예원씨 재판에서 승소하고 나오는 거 보면서 울었던 사람입니다. 양예원 씨가 당하는 거 보면서.. 내가 성폭력 피해를 말해도 사생활 까발려지고 책잡힌 인간들에게 조리돌림 당하겠구나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납니다. 글을 읽는데도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지금까지도 양예원씨 비방하는 인간들이 있지만, 피해자의 용기와 미투가 승리한 순간으로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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