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국민에 대한 혐오를 반대한다[이주 배경 청년의 목소리] ‘혐중’ 사회에서 중국인 어머니의 딸로 산다는 것※국제결혼 가정이나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한 청(소)년들, 아동 청소년 시기에 중도 입국한 청년 등 다양한 이주 배경을 가진 청년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청년 담론 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주 배경 청년 당사자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직접 들어봅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편집자 주]
어머니가 중국인이라는 것
남들과 무언가 다르다는 건, 특별함을 가져서 좋을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나는 자라면서 내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왔다.
나는 한국인 아버지와 조선족인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의 국적이나, 우리 가정의 특색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고, 주변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어떠한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유치원 때의 일이다. 어머니는 당시 유치원에서 중국어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셨는데, 나는 어머니가 근무하는 바로 그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아직도 잊지 못한다. 뒤에서 ‘아, 쟤가 중국어 선생님 딸이야?’ 라면서 수근거리던 목소리와 따가운 시선을. 당시 5~6살 어린 나이임에도, 부정적인 공기의 흐름을 읽기에는 충분했고 첫날부터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왜 선생님들이 나를 그렇게 쳐다봤을까?’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나?’ 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들 중 가장 크게 날 짓누른 생각은 ‘혹시 내 어머니가 중국인이라서 날 좋게 보지 않는 건가?’하는 거였다. 그 생각이 자리잡은 뒤, 나도 모르게 ‘중국’이라는 단어가 들리면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혹시 내가 유치원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면 선생님들이 ‘아, 역시 중국인의 딸이구나.’ 라고 생각할까 걱정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과장된 생각이지만, 한국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친구들의 가정과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내 가정이 다르다는 걸 유치원에서 처음 자각한 뒤에는,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한국인의 무리 밖에 두었던 것 같다. 그렇게 유아 시기는 교실에서 누군가와 쉬이 어울리지 못하며 책을 친구로 삼아 자랐다.
토종 한국인은 누구인가?
초등학교 때에는 사회·도덕 시간에 ‘모든 인간은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 태어날 때의 국적 등은 정하지 못한다.’ 등의 내용을 배웠다. 나는 ‘그래, 내가 왜 이렇게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해. 어머니가 중국인이라고 해서 잘못된 건 없잖아.’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스스로를 배제했던 무리에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잘못된 건 없어, 나는 두 가지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이점도 있고, 다른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도 쉽게 얻을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보기도 하고 말도 걸어 보며 학교라는 사회에 점차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괜찮았다. 친구들도 사귀고, 무리의 소속감도 처음 느껴보았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가 나빠져 뉴스 기사에 오르기라도 하는 날에는 나도 모르게 친구들의 눈치를 보았다. 반 아이들 역시 뉴스를 보았기에, 그리고 그들은 완전한 한국인이기에 ‘중국이 무조건 나쁘다’고 했다. 심지어 누군가는 ‘중국인들 다 죽었으면.’ 이라고 말했다. 나는 가슴이 덜컹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지금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런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우리 엄마도 중국인인데.’ 혹은 ‘중국이 다 잘못한 건 아닌데.’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또 다시 무리에서 배제되는 느낌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들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러면서 속으로는 남모를 죄책감을 품게 되었다.
역사 시간에 과거 중국이 한반도에 대해 나쁜 짓을 했다고 배울 때면 나도 모르게 뜨끔하기도 했다. 내 어머니가 중국인이란 걸 숨겨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어머니에게도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는 걸, 어머니가 중국인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눈치를 본다는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친구들 눈에도 띄고 싶지 않았고, 어머니에게 이런 얘길 하면 어머니가 죄책감을 가질 것 같기에. 내게 미안하다고 말씀하실 것 같기에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 적응하고 SNS를 시작하며 조금 더 큰 사회를 마주했을 시점에는 내게도 용기가 어느 정도 자라있었다. ‘중국인들 다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굉장히 괴롭기 때문에, 그 말이 꼭 우리 어머니도 죽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친구들에게 먼저 ‘아, 우리 어머니는 중국 분이셔.’ 라고 말하곤 했다. 처음으로 말할 땐 두려웠지만, 친구들이 ‘정말? 너 그러면 중국어 할 줄 알아?’ 라며 호기심을 드러낼 때에는 안심하기도 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잘 풀리면 좋으련만, 세상일은 단순하지가 않다. 가끔씩 농담으로 친구들이 ‘난 토종 한국인이야.’라고 말할 때가 있는데, 그러면 난 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토종 한국인일까? 내 어머니는 중국인인데, 나도 토종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한국에서 태어나 국적도 한국인인 나의 자아는 내가 ‘토종 한국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밖으로 그렇게 말하기엔 왠지 껄끄러웠다. 그런 주제가 나올 때에면 불편함을 느끼며 웃어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 정도의 일화는 가벼운 것에 속했다. ‘중국인들이 한국의 땅을 사들이고 있다.’는 얘기, ‘한국인이 또 다시 장기매매를 당했다. 범인은 조선족이다.’라는 얘기가 온라인 상에서 떠돌곤 했다. 그런 내용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또 다시 위축되었고, 내 가정에 대해 타인에게 말하는 것이 꺼려졌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선 ‘중국인들 왜 저러냐’, ‘싸그리 다 잡아 죽여야 한다.’라는 말을 너무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몇 명의 중국인 혹은 조선족이 어떤 범죄를 저지르면, 마치 전체 집단이 그런 범죄를 저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평하는 댓글을 많이 볼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더욱 노골적인 된 ‘혐중’
다들 알다시피, 몇 년 전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점은 중국의 우한이라는 지방으로 알려졌다. 내 주변의 지인들도, SNS에서 보는 사람들도 중국에 대한 욕을 거리낌없이 하기 시작했다. 또 다시 ‘중국인들은 다 죽어야 한다’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이 즈음부터는 내가 느끼는 위화감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바로 ‘혐오’였다. 나는 특정 국가와 국민에 대한 혐오로 인해, 죄 없는 사람들이 눈치를 보고 숨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당하다고 느꼈다.
코로나19 상황이 계속해서 지속되며 ‘중국인들이 역시 그렇다.’라는 말이 하나의 유행어처럼 자리잡는 것을 보았다. 나의 어머니, 내가 봤던 어머니의 지인 분들, 즉 중국인들은 모두 친절했는데, 왜 사람들은 단지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나쁜 것처럼, 범죄자인 것처럼 말하는가? 나는 한국인이지만, 어머니의 나라인 중국에 대해 느끼는 친근함도 있기 때문에, 중국에 관한 터무니없는 부정적이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한 켠에 자리잡았다.
그런데, 이제는 중국에 관한 말을 꺼내기가 더더욱 어려운 분위기에 도달했다. 중국에서 한국의 문화가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라며 우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복이나 김치 등이 그러하다. 나도 이런 뉴스를 접하고 화를 내긴 하였지만, 집에서 대놓고 그런 얘길 하며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내가 중국을 비난하면, 어머니가 속상해 하시지 않을까? 라는 마음에 쉬이 말을 하지 못하였다. 집에서 친구들과 통화를 하며 게임을 할 때에도, 혹시 중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 봐 마이크를 끄기도 하고, 내 방에 가족들 중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만약 어머니가 중국에 대한 정 때문에 중국 측이 하는 부당한 행위까지 옹호한다면 난 어머니에게 실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번은 은근슬쩍 물어봤다. 어머니는 중국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그런 모습은 정말 싫다고 하셨다. 난 그 말을 듣고 안도감을 느꼈지만, 그 다음 순간에는 나 스스로에 대해 역겨움을 느꼈다. 나도 어머니를 멋대로 판단했다는 사실에 대해서였다. 나는 분명 소수의 문제를 보고 전체가 그럴 것이라고 판단하거나, 어떤 국가의 정치인들이 잘못하는 것을 보고 전체 국민을 욕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 자신도 그렇게 해버린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어머니를 ‘중국인’으로 바라보고, ‘중국인이니까 중국 편을 들 것이다.’라고 생각했다는 점을 뒤늦게 깨닫고는 나 스스로를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이내 우울감에 빠져들었고, 항상 보던 유튜브도, SNS도 하기 싫어졌다. 이제는 누군가가 혐오하는 발언을 보면 정말로 참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대한 불만도 품게 되었다. 왜 다들 이렇게 ‘혐오’에 선동되기 쉽고, 왜 이렇게 누구를 적으로 돌리며 배제하지 못해서 안달인 걸까.
나는 내 가정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시선의 압박감을 느꼈고, 쉽게 무리에 끼어들 수 없었다. 사실 내 경험은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라면 한 번쯤은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나처럼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과 관계가 좋지 않은 나라의 국적을 가졌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남들과는 다른 특별함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들. 전체와 다르다는 점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들. 어렸을 때는 숨기거나 도망치는 방법밖에 몰랐지만, 이제 나는 달라지려고 한다. 나는 남을 멋대로 혐오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다. 내가 달라지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굳이 이런 무거운 글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발걸음에 불과하다.
나는 내 어머니가 중국인이고, 조선족이라는 점에 대해 단 한 번의 부끄러움도 느낀 적이 없지만, 사회의 차별을 받을까 봐 두려워한 적은 한없이 많았다. 이런 두려움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다짐하듯이 이 글을 쓴다. 당장 큰 목소리를 낼 순 없지만 이런 자그마한 글이 나비효과가 되어 큰 힘이 될 수 있기를, 사회에 변화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보는 독자들 중에서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이가 있다면, 혹은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세상의 편견 때문에 ‘힘들지 않았냐’는 삼삼한 말을 건네주고 싶다. 예전에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끼리 모여 각자 차별당한 경험을 말하며 서로 위로해주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큰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글을 보는 독자들에게 혹시나 자신이 혐오 발언을 쉽게 한 경험이 있는지에 대해 묻고 싶다. 자신에게는 그저 유행어 같은 농담이나 사소한 말이겠지만, 나같이 그런 말을 듣고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소수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거나, 국적을 가지고 사람들을 싸잡아서 평가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세상은 지금보다 모두가 안전하게, 편히 살 수 있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이 기사 좋아요 21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