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는 성평등하게 축적되지 않는다, 페미위키 존재 이유[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버터나이프크루 폐지 ‘그럼에도 우리는’※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과 공격이 심각한 백래시 시대,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로 다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스무 편이 연재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일베 유저였던 내가 페미위키를 만들기까지
여기서 처음 고백하자면, 2012년에 나는 그 악명높은 일베(일간베스트)의 유저였다. 구글에 무언가를 검색하다가 흥미로운 글이 떠서 들어가게 되었고, 글을 몇 개 보다가 회원가입을 했던 것 같다. 일베 유저라고 말은 했지만, 여타 일베 유저와는 조금 달랐다. 그 때는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자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베에 성차별적인 편견을 담은 글이 올라오면 그것을 지적하면서 종일 논쟁을 했다.
특히 일베에는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으려는 여자는 ‘무개념’이라며 비방하는 글들이 많았는데, 나는 그런 남성 유저들의 이중성이 너무 싫었다. 여자와 연애, 섹스,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데이트 비용을 안 내려는 여자들은 싫다고 이야기하는 게 속이 빤히 보인다고 생각했다. 여성과의 관계를 자원으로 취급하면서, 그 자원을 되도록이면 싸게 얻었으면 해서 여자들을 무개념이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네 몸을 잘 간수해야 한다’, ‘아무에게나 몸을 내주면 그것은 손가락질 받을만한 일이고, 아주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들으며 자랐다. 티비 드라마에서 가난하고 불쌍한 여주인공이 돈 많고 순애보인 남주인공에게 구애받고 신분 상승을 하기 위해서는 예뻐야 했다. 학교에서 소위 잘나가는 애들이 되려면, 남자애들의 경우에는 웃기거나, 집안이 좋거나, 옷을 잘 입거나, 잘생겼거나 등 다양한 이유가 있는 반면 여자애들의 경우에는 거의 동일했다. 예뻐야 했다. 그다지 예쁘지 않다면 하다못해 가슴이라도 커야 했다.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의 외모에 순위를 매겼고, 여자애들은 그런 짓에 대해 뭐라고 하지 못했다. 다들 문제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을 분위기로 알았다.
여자아이들은 여성의 몸이 평가의 대상이고, 여성과의 연애, 섹스, 결혼은 물질적이든 아니든 무언가와 교환할 수 있는 자원으로 취급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학습하면서 자란다. 그런데 일베의 다수 유저들은 그런 성차별적인 현실은 싸그리 무시하고 남녀는 평등하니까 더치페이가 옳고, 남친한테 선물이나 바라는 여성들은 무개념이라며, 자기들 입맛에 맞게 여성들을 후려치기 하고 있었다. 데이트 비용을 내는지, 사치를 안 하는지, 섹스를 잘 해주는지,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에 불만을 갖는지, 돈을 벌어오는 가장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는지 등으로 여성을 ‘개념녀’와 ‘김치녀’로 갈라서 인정하거나 비난했다.
뭇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던 김치녀라는 단어는 그 곳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티비에도 나오고 기사에도 나왔다.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김치녀는 무개념이고 비난 받을 만하다는 의견에 동조했다. 나는 그 때 온라인에서 모인 의견들이 어떻게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처음 보았다. 그런 광경을 보면서, 마음 속 한 켠에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페미위키〉를 시작하고 온라인 상 젠더 문제에 천착하게 된 것은 예정된 일이 아니었나 싶다.
여성시대 사태와 메갈리아의 탄생을 지켜보며
2015년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여성시대〉 논란이 터졌다. 모 개그맨의 여혐 발언이 발단이 된 사건으로 무도갤, 이종, 나무위키 등의 남초 사이트와 여성 커뮤니티 간 무한여론전이 벌어졌다. 어느 커뮤니티든 간에 문제적인 글은 있게 마련이지만, 그동안 많은 남초 사이트에 존재했던 여성비하, 심지어 불법촬영 게시물조차 비난 받지 않다가 여초/남초 사이트 간의 대결 양상이 벌어지자 남초 커뮤니티들은 여시(여성시대)를 ‘여자일베’로 몰아갔다. 이 사건을 시종일관 남초 커뮤니티의 입장에서 정리한 나무위키는 이때를 기점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뤘다. (상세한 내용은 페미위키를 참고하시라. https://femiwiki.com/w/여성시대)
남초 커뮤니티와 여성 커뮤니티 양쪽에 다 가입되어 있었던 나는 이 일을 겪으며 온라인 상의 여론이 남성과 여성에게 불균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분노했다. 더 많은 발언권이 남성에게 주어지고 있었다. 온라인 상의 여론전은 많은 유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60만명에 달하던 여성시대의 유저들 중에서도 많은 수가 내가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을 품었을 것이다.
얼마 안 있어 한국에서 “페미니즘 리부트”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메갈리아〉 사이트가 탄생했다. 메갈리아에는 곧 여성시대 논란을 함께 겪은 여성시대, 소울드레서, 쌍코 등 여초 커뮤니티 회원들이 폭발적으로 들어왔다. 나 역시 메갈리아가 생기자마자 들어가서 살펴보았다. 메갈리아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미러링이었다. ‘미러링’이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하던 말을 성별만 바꾸어 그대로 남성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이었다.
김치녀라는 말에 대응하는 ‘김치남’이라는 말을 만들었고, 한국 여자를 비하하며 개념 있고 몸매까지 좋은 서양 여성을 찬양하는 방식에 대응하여 양남 찬양 논리를 만들었다. 임신중지를 하는 여자를 문란하다며 비난하는 ‘낙태충’이라는 말에 반박하며, 피임도 하지 않은 채 여성을 임신시키고 책임을 지지 않는 ‘싸튀충’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그 단어들은 메갈리아가 생기기 전에는 없었던 단어들이었고, 여태까지 쌓여온 성차별 여론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내가 살면서 느꼈던 불편함을 설명하는 언어를 찾았던 때’로 기억한다. 나를 포함해서, 여태껏 남성들이 쏟아내는 폭력적인 언어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쩔쩔매던 여성들이 그 부당함을 하나씩 하나씩 인식하고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메갈리아는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메갈리아의 행보를 응원하는 곳도 있었고, 메갈리아를 남성혐오 사이트라며 비난하는 곳도 있었지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메갈리아는 점점 더 유명해졌다. 메갈리아를 보도하는 뉴스, 분석하는 칼럼이 나오고, 여러 학자들이 나와서 이 사이트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여전히 나무위키 등의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메갈리아의 긍정적 영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페미위키에는 메갈리아에서 주도했던 ‘소라넷’ 공론화(성착취물 공유 사이트 폐쇄운동), 몰카 근절 전광판 설치, 여성혐오 반대 시위, 염산 시중 판매 중단(염산테러 방지), 모금을 통한 한국여성민우회와 미혼모센터 기부 등의 역할이 적혀있지만, 나무위키에는 그저 극단적 남성혐오 성향의 래디컬 페미니즘 커뮤니티라고만 되어 있다.
나는 몇 년에 걸친 시간 동안 온라인 커뮤니티를 경험하면서 깨닫게 된 바가 있다. 남성이 여성을 공격하는 글은 문제가 되지 않다가, 여성이 남성을 공격하는 글을 쓰면 낙인 찍히고 ‘남성혐오’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꼭 남성과 여성의 구도만 그런 것은 아니다. 주류의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소수자를 비방하거나 억압할 때는 그것이 괜찮게 여겨지다가도, 소수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주류의 논리를 비판하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그것이 문제가 되곤 한다.
우리의 언어를 갖자, 페미위키의 시작
메갈리아는 2015년 말이 되자 커뮤니티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유저 수가 급감했고, 여러 파생 커뮤니티가 있었지만 메갈리아만큼의 화력을 내지 못했다. 그리고 2016년 7월 말, 나는 몇 사람들과 함께 페미위키를 만들었다.
페미위키의 출발에는 계기가 있었다. “페미니즘 리부트”의 두 번째 기폭제가 된 강남역 여성표적 살인사건이 벌어진 뒤로, 나는 온라인 상에서 많은 사람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요지는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인지 아닌지에 관한 것이었다. 검거 당일, 범인이 밝힌 범행 동기는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였다. 범인은 범행장소에서 남성 7명을 그냥 보내고 처음으로 들어온 여성을 죽였다. 범인이 말한 대로, 죽일 사람을 여성으로 고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성차별과 이어진 증오 범죄가 아니며, 범인이 앓고 있던 조현병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에 존재하는 성차별과는 상관이 없는, 개인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여자가 나를 무시해서’라는 말은 그리 낯설지 않다. 여자친구나 아내가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고 말하는 뉴스 기사는 드물지 않다. 반면, 남자친구나 남편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는 뉴스는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에는 분명히 성차별적인 면이 있다.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여성혐오 범죄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와중에 그들은 나의 의견을 반박할 논거로 나무위키 내용을 들고 왔다. 나무위키에는 이 사건이 여성혐오보다 범인의 정신질환 때문에 생긴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라고 서술되어 있었다. 그들은 위키 사이트는 ‘중립적’이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이 이 사건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편향된 시각이라고 주장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러 일을 겪었던 나는, 오히려 나무위키의 편향성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만든다고 해서 그 내용이 꼭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지는 않다. 사회에 성차별이 만연해있으면, 성차별을 내면화한 여러 사람들이 같이 만든 내용은 성차별적이 된다. 그래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성차별적이지 않은, 소수자를 배제하지 않는 정보를 모아두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른 관점의 정보가 모이고 전파될 수 있다면, 사람들의 인식을 뿌리부터 바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여러 명이 모여 얼마 안되어 위키 사이트를 오픈할 수 있었다. 강남역 여성표적 살인사건에 대한 논쟁은 이때까지도 온라인 상에서 계속되고 있었는데, 페미니스트들이 논쟁을 하다가 페미위키의 문서를 가져오는 것을 보았을 때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난다. 메갈리아가 그랬듯, 우리의 언어가 하나씩 생기는 느낌이었다.
여성가족부의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폐지 사태
페미위키의 여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막 오픈했을 당시에는 디씨, 일베, 각종 남초 사이트에서 페미위키를 언급하며 공격하자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김치년’, ‘메퇘지’, ‘꼴페미’, ‘피싸개’ 등 각종 여성 비하가 담긴 욕을 닉네임으로 달고 가입한 사람들도 꽤 많았다. 이런 사람들은 페미위키 사이트에 들어오면 문서 수십 개를 통째로 비워버리거나, 비하 용어를 문서에 복붙하거나, 교묘하게 이상한 내용으로 문서를 바꾸고는 했다. 페미위키 운영팀은 그런 사람들을 ‘반달’이라고 불렀는데, 초기에는 반달이 정말 많았다. 그런 사람들을 거르고, 훼손된 정보를 복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페미니즘을 내세운 단체 활동을 하면서 집단적이고 노골적인 악의를 처음으로 경험했던 시기였다. 다행히 몇 년이 지나자 그런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는 남초 사이트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정치인들과 정부 부처에서까지 나설 줄은 몰랐다.
몇 달 전, 페미위키가 선정되었던 여성가족부의 버터나이프크루(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 사업이 폐지됐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2022 버터나이프크루 출범식에 참여해 축사까지 마친 사업이었다. 나는 장관이 먼저 손을 내밀어서 악수를 했었다.
이 사태의 발단은 남초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서 여성가족부 사업인 버터나이프크루가 페미들로 점철된 사업이라며, 그 중 한 팀인 페미위키가 어떤 사이트인지 보라며 사이트 내용을 캡쳐해서 비난한 일이 있었다. 이에 국민의힘 원내대표 권성동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러분들의 우려를 전달받았다’며 이 사업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고, 여성가족부 장관과 통화했다고 밝혔다. 그 뒤로 우리는 이 사업이 전면 재검토 중이라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했고, 설마 했으나 결국 폐지한다는 일방적인 통고를 받았다.
정확한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다. 애초에 권성동 의원은 이 사업의 지원대상이 “페미니즘에 경도”되었다며 비방했는데, 건너 들은 바에 따르면 여성가족부 측은 ‘남성 비율이 너무 적어서 성평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문화와 여론이 얼마나 남성 편향적인지 안다면, 청년 성평등 문화 추진단이 기계적인 성비 맞추기로 구성되어선 안 된다는 것쯤은 상식이 아닐까. 게다가 페미니즘 없이 어떻게 성평등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후로도 권성동 의원은 불법 성매매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며 페이스북에서 페미위키를 또 한번 언급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결산 및 업무 보고 자리에서도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지원대상으로 부적절한 단체 사례로, 페미위키 사이트가 거론되었다. 그러나 해당 정보들은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약자를 돕기 위한 내용이었다. 성 산업 속에서 여성의 현실이 어떠한지 그 맥락도 들여다 보지 않고서, 페미위키를 매도하는 것이 억울할 뿐이었다. 그 일 때문에 페미위키는 사이트 내의 관련 문서를, 문서 작성자를 보호하기 위해 잠깐이지만 통 삭제 처리해야 했다.
정치적 백래시 속에서도 ‘연결되는 페미니즘’
페미위키를 비롯해 버터나이프크루 4기에 선정된 팀 중 16개 팀이 모여 ‘버터나이프크루 정상화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리고 1만5천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정상화와, 여가부 폐지 반대 요구 서명을 받아 제출했다. 여성가족부의 불공정하고 부당한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중단에 대한 사과와,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을 포함한 성평등 정책 정상화를 요구하며 국회에서 기자회견도 열었다.
그리고 정부와 여당이 안티-페미니즘을 고수하며 무책임한 정책을 펴는 동안에도, 우리는 ‘버터나이프크루’가 아닌 ‘그럼에도 우리는’이라고 이름을 바꿔, 팀 별로 원래 진행하기로 했던 성평등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이다. 페미위키는 “방방곡곡”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문화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음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페미니즘 관점을 가진 단체들을 모아 서로 연결고리를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나는 온라인 상의 여성혐오가 어떻게 성평등에 대한 거대한 백래시가 되어 우리를 덮치는 지를 보았다. 하지만, 또 그로 인해 불붙듯이 일어난 온라인 상의 페미니즘 운동이 어떻게 현실의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고 여성들을 결집시키는지도 똑똑히 보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전혀 떨어져있지 않다. 모니터 속에 보이는 글자들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여성주의 정보집합체 페미위키를 띄운다.
[필자 소개] 열심. 여성주의 정보집합체 페미위키와 처음부터 함께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말하고 글 쓰고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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