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래시 겪은 마중물샘이 고통의 터널을 지나 발견한 것〈책방에서 밑줄 긋기〉 최현희 교사의 『다시 내가 되는 길에서』[연재 소개] 여성들의 말과 글이 세상에 더 많이 퍼지고 새겨져야 한다고 믿으며, 서점에서 퍼뜨리고 싶은 여자들의 책을 고른다. ‘살롱드마고’의 신간 책장에서 마음에 새겨지는 책을 한 권씩 밑줄 그으며 꼭꼭 씹어 독자들과 맛있게 나누고자 한다.
“지금 나에게는 힘든 시간을 버텨낸 사람들의 일기장을 들춰보는 일이 깜깜한 내 일상에 필요한 등불이라는 걸 알겠다. 내가 유난한 게 아니라, 마음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나아지려고 갖은 애를 쓰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고 위로받는 일이 나에게 무엇보다 필요했다는 것을.”(117쪽)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며 위안을 느껴도 될까. 불행을 저울질하여 내가 낫다 하는 이기적 안도감이 아니라, 완전한 타인에게서 뜻밖에 내 것과 비슷한 형질의 고통을 발견했을 때 덜 외로워지는 마음 말이다. 그 순간 어쩌면 나만 아는 나의 고통도 언젠가 이해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동질감과 희망이 느껴져 적지 않은 위로가 된다.
‘마중물샘’(최현희 교사의 별칭)의 단독저서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막연히 페미니즘 교육을 주제로 한 것 아닐까 예상했는데 ‘회복 일지’라는 부제를 보고 더욱 반가우면서 한편 만감이 교차했다. 2017년 최현희 선생님은 학교 운동장을 남학생들이 전유하고 있는 문제를 말하며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인터뷰했다. 그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며 비난과 공격에 시달렸고, 몇몇 언론사의 허위보도가 더해져 혐오 세력으로부터 민원과 고발을 당하기에 이른다.
당시 나와 주변인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건을 지켜보며 ‘#우리에게는_페미니스트_교사가_필요합니다’ 해시태그 운동이나 관련 청원 캠페인 참여 등으로 희미하게나마 ‘연대’하고자 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일상을 살아갔지만, 최현희 선생님은 몇 년간 무너진 일상과 건강을 홀로 ‘재건’하고 있었다. 그의 책을 읽으며 무참한 사회적 폭력의 한 가운데서 맨몸으로 비바람을 맞아야 했던 당사자는 그 시간을, 거기에 연결된 본인의 삶을 어떻게 보냈을까 가슴이 아려왔다. ‘사건’ 뒤에 존재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소중한 이유다.
사건을 거치며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휴직하고 잠시 거처를 옮긴 최현희 선생님은 블로그(‘양수리의 열두 달’)를 운영하며 솔직한 감정과 촘촘한 일상을 기록해왔다. 그 기록을 정리해 내놓은 책 『다시 내가 되는 길에서』의 맑고도 시린 글들은 저자가 자주 산책했다는 두물머리의 풍경을 닮았다. 깊은 숲속에서 자신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다음 사람이 숲에서 헤매지 않고 빠져나가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 천천히 내딛는 걸음마다 작은 돌멩이를 하나씩 놓는 이의 마음처럼 다가왔다.
“나만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누가 확 핸들을 돌려버린 느낌. 아니, 도로가 무너져 내린 느낌. 그래도 멀리 왔다. 그냥 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77쪽)
“어떤 것에 내 감각을 내주지 않으면 벌어지는 일들이 대체 뭔가 생각해보면 바로 과거를 돌아다니는 일이다.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현재의 몸과 마음 상태를 내버려둔 채로 나는 계속 과거에 있다.”(115쪽)
책을 읽으며 성평등 교육현장에서 ‘백래시’를 겪은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다친 폭력의 경험이 겹쳐지고, 상처 속 웅크려진 기억이 떠오른다. 4년 전, 스쿨미투가 일어난 지역의 고등학교에서 성평등 교육을 일방적으로 취소했을 때, 약속된 교육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스쿨미투 사건 해결을 지원하는 데 몇 달이 걸렸다. 당시 스쿨미투 고발 당사자들이 내 수업을 듣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학내에 성평등 이슈가 더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페미니즘이 학내 갈등을 유발한다”며 예정된 수업을 취소했다.
수업 취소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면서 스쿨미투 사건 해결을 촉구하는 과정에, 상식 밖의 공격과 위협을 받았다. 동료들은 내게 ‘혼자 사무실에 남아 야근을 하지 말라’고 했고, 다른 학교에 수업을 다닐 때도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보디가드처럼 동행했다.(실제로 페미니즘 교육의 ‘증거’를 남기려고 관계자가 수업을 몰래 녹음하거나 촬영하다 발각된 경우가 있었다.) 쇼핑을 하거나 외식을 다녔던 일상의 공간들은 누군가에게 돌을 맞을까봐 피해 다녀야 하는 곳이 되었다. SNS도 누군가 감시하지 않을까 접속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나와 내가 속한 단체를 음해하는 가짜정보와 허위보도가 나왔을 때에는 충격이 몸으로 전해져 한동안 심장이 제멋대로 뛰기도 했다.
모든 일상을 포기하다시피 한 채 치열하게 싸운 끝에, 교육청과 학교에서 백기를 들어 다시 교실로 돌아갔을 때, 수업을 신청했던 학생 중 80%가 결석했다. 내 수업에 출석한 학생들은 그곳에 돌아오는 데 적지 않은 ‘용기와 결심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나 역시 수업을 강행하기까지 혼신의 힘으로 ‘용기와 결심’을 쥐어짜냈다. 감사하게도 든든한 동료들과 더불어 전국 5백여 개의 단체와 천여 명의 시민이 ‘성평등 교육 정상화’의 목소리를 함께 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투쟁의 한가운데를 지날 때, 나를 짓누른 것은 두려움보다 외로움이었다. 곁에서, 또 멀리서도 자기 일처럼 돕고 걱정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있음에도 어떤 것들은 오로지 혼자 겪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나만 아는 고통이고, 혼자 통과해야 하는 터널이다.’ 어느 순간 그 가혹한 진실을 깨달았을 때 사무치는 외로움 위로 막막함과 서러움이 덮쳤다. 승리나 보람을 느끼기엔 너무 다쳤고, 그래서 허무하기도 했다. 무너진 몸과 일상을 복구하는 것 또한 온전히 내 몫이라는 사실이 억울해 화가 났다. 그때 허위기사를 내고 악플을 달고 험담을 하고 악성 민원을 넣었던 이들은 다 아무 일 없이 잘 살았을까?
“그렇게 내 트윗을 집요하게 모아서 뿌리고 공격했던 이들은 지금 다 어디서 뭐 하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이것 봐, 나는 아직도 시시껄렁한 트윗을 마구마구 올리는 트잉여인 것이다! 나의 승리라고. 하하하하하하. 유치하다고? 유치하라지. 내 트윗이 시시할수록 자랑스러운 마음이 커진다. 힘든 일을 겪고 비장해지는 것은 별로야. 난 시시껄렁한 트윗을 검열 없이 가볍게 올리는 내가 대견하다.”(80쪽)
“주변 사람들이 이제부터는 ‘나’만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중략) 오늘,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여러 통 왔고, 받고 싶지 않아서 모두 거절을 눌렀다. 그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니 나만 생각한 것이 맞는 걸까. 이렇게 하면 되는 걸까. 하지만 동시에 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고 걱정하는 마음도 확인받고 싶다. 그러니까 나만 생각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떤 것도 확신할 수가 없고, 나는 내가 어떤지,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도 전혀 모르겠다.”(143쪽)
최현희 선생님은 몇 년간 자신의 내면과 깊이 대화한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삶의 균형을 찾고자 애썼다. 그의 책을 읽으며 배우고 싶은 태도가 있었다. 때로는 흔들리고 나약해지는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통제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을 돌볼 틈이 샘물처럼 주어진다. 또한 아픔이 보여준 삶의 다른 ‘샛길’은 몸과 만나는 방식,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까지 ‘재조정’해주었다.
“암이 완치되었다고 해서 다시 건강을 규범으로 삼아 몸을 잘 관리해서 잘 써먹어야 할 도구로 보는 삶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대신 오히려 아픈 사람의 정체성을 껴안을 것이다. 삶을 재조정할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아픈 사람들과 연대하고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내가 아플 때는 내 이야기를 할 것이다.”(220쪽)
“이제 나는 이렇게 한다. 완벽하게 쉬려고 하는 대신, 나에게 아주 작은 친절을 하나씩 베푼다. 산책도 하고 밥도 잘 챙겨 먹고 샤워도 하고 잠도 잘 자고 그렇게 다 잘하면 좋겠지만, 안 되면 그냥 하나만, 딱 하나만 하는 거다. (중략) 하루 한 귀퉁이의 시간만 내서 나를 잘 대해주면 된다. 그렇게 차차 나아진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분명히 나아질 거라는 점이다.”(273~274쪽)
내가 약해졌을 때 누군가 덥석 손을 잡으며 얼마나 힘드냐 성큼 다가오면, 경계심이 고슴도치처럼 자라 있는 나는 몸과 마음 모두 그대로 얼어붙곤 했다. 그럴 때 왜 상대의 ‘순수한’ 마음을 제대로 받지 못할까, 나라는 사람을 걱정‘해주’는 타인을 고마워하기는커녕 달가워하지 않는 걸까 스스로를 꾸짖기 일쑤였다. 그런데 복직을 앞두고 걱정하는 저자에게 지인이 걱정 말라거나 괜찮다 하지 않고, “나도 걱정이에요”라 말했을 때 그것이 뜻밖에 큰 위로가 되었다는 글을 보고 알게 되었다. 지금 내 마음에 일어나는 불안과 두려움을 바로 잠재우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알아주는 것만으로 혼자가 아니라 느낄 수 있음을.
최현희 선생님의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싸움의 한가운데서 자기만의 터널을 지나는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당신 역시 혼자가 아니라 말해주고 싶다. 이 터널 끝에 닿을 때쯤 나도 모르게 자란 새순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그 새순을 어루만지며 한 움큼 자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이 길을 계속 같이 가보자고 말이다.
[필자 소개] 달리. 전북 남원에 있는 지역서점이자 페미니즘 문화공간 ‘살롱드마고’의 공동운영자이며 에세이 『몸이 말하고 나는 쓴다』(2021)의 작가이다. ‘고요한 해방, 나의 목소리를 찾는 글쓰기 여행’, ‘삶의 빈 칸을 채우는 글쓰기’ 등 여성들과의 글쓰기 활동을 기획,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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