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과 공격이 심각한 백래시 시대,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로 다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백래시 시대, 페미니즘 다시 쓰기” 스무 편이 연재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강릉의 제로웨이스트 가게 ‘내일상회’
강릉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돈벌이는 별로다. 물건을 많이 팔지도 않고, 많이 산다고 해도 손님을 설득하여 물건 몇 개는 내려놓게 하는 가게, 내일상회는 제로웨이스트 가게이다.
처음부터 밝히자면, 내일상회는 가게를 표방한 작당모의 공간이다. 가게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사기 위한 장치이고, 쓰레기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뭐라도 같이 해볼 수 있는 동료를 만날 확률이 높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문을 열었다. 나름 수익도 생기지만, 우리는 당당히 ‘보이는 화폐보다 보이지 않는 구조, 버려지는 비용을 줄이는 일을 한다’고 말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당겨본다.
제로웨이스트란 말 그대로 쓰레기를 제로(0)으로 만들자는 야심찬 선언이다. 너무 흔해서 감각되지 않던 쓰레기라는 존재를 좀 더 사회적 의제로 끌어내고, 사람들의 슬기로운 궁리의 한 존재로 무대 위에 올리는 일이다. 쓰레기로 물꼬를 터서 ‘일회용이 많은 사회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연이든, 미생물이든 무엇이든 일회용으로 보고 쓰고 버려진다’는 이야기를 해보려는 것.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고금숙, 책 제목 차용). 3년 새에 전국에 많은 제로공간들이 생겼다.
제로웨이스트 가게는 보통 일회용을 줄이려는 것이 기본이다. 일회용 비닐, 일회용 플라스틱 등의 포장 없이 물건을 소개하는 ‘무포장 가게’를 선언하고, 용기를 가져와 가루 세제나 열매 세제를 담아가는 리필샵 ‘채워가는 가게’가 되기도 한다. 우리의 선택 기준은 일회용 대신 다회용이 가능한 재질의 물건을 소개하는 것. 적어도 수백 번 되사용하다 재활용 가능하거나, 쓰레기로 버려졌을 때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찾아 강릉과 전국을 수소문한다.
정말 다양한 용도와 물건이 우리를 사로잡고,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소개하고 적극 홍보를 시작하면 ‘우리 가게가 너무 잘 돼도 문제 아닌가’ 고민이 깊어진다. 홍보와 마케팅이 만나 소비를 촉진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감당할 수 없는 쓰레기가 많아진 건 소비가 많아서이고 구조적으로 폐자원을 순환하지 못해서이고, 화석연료와 석유산업이 플라스틱 생산으로 살며시 이동했기 때문인데, 우리가 소비자 운동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소비자의 부담감이나 역할을 강조하고 대안물품을 소개함으로써, 즉 소비로서 소비 문제를 풀어가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히게 된 거 같은 답답함이 솟아난다.
그래서 보통 다음 단계로, 지역에서 순환하는 구조를 이야기해보고자 쓰레기를 자원으로, 회수 캠페인을 시작하게 된다. ‘우리 가게로 쓰레기를 가져오시면 자원이 됩니다.’ 여러 가지를 모으고 있다. 강릉에 ‘삼영제지’라는 종이 재활용 공장이 있어, 이곳에 보낼 멸균팩을 모으고 있고, 강릉 중앙시장에서 재사용되는 아이스팩을 모으고, 플라스틱 방앗간으로 보낼 음료 뚜껑이나 플리스틱 고리 등을 모으고 있다. 회수 자원의 기준은 우리 지역에서 사용하다 발생한 것으로, 우리 지역에서 순환가능한 품목으로 최대한 지역 순환 고리를 만들려고 고민한다. 하지만 참 어렵다.
전국의 제로웨이스트 가게, 리필 가게들과 함께 공동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한다. 당연하게 포장되어 나오는 플라스틱 빨대나 숟가락, 포장용기 등을 거부하며 착실히 모아 다시 생산자에게 돌려보내며 ‘우리는 필요 없습니다’, ‘수거 시스템이 없다면 수거해서 보내드립니다’ 같은 메시지와 함께 전달한다. 함께의 힘이란 역시 대단해서 생산자에게 변화된 답변을 듣기도 한다. 그게 지역에서 함께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다음 걸음의 용기가 된다. 나 하나는 작지만, 이 점들이 모여 우리가 되고, 그게 작은 변화이자 균열을 내고 있구나 하는 위안과 자부심이 생긴다.
내일상회를 운영하는 사람, 찾는 사람
이쯤에서 다시 밝히자면 우리 손님의 90% 이상은 여성이다. 우리가 소개하는 물건이 대부분 일상, 주방, 욕실, 세탁실에서 사용하는 건데, 일상을 돌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연히 드러났다. 쓰레기라는 주인공이 무대에 올라가자 가장 먼저 감각하고 응답하는 존재들은 여성들이었다. 연령도 직업도 다양하다. 10대 청소년부터, 여행자, 양육자, 돌봄노동자, 단체 실무자, 같이 농사짓는 중년의 도시농부들, 영화 찍는 사람, 동네 할머니들까지.
우리 가게는 일상의 지속성으로 운영된다. 한두 번 행사용으로, 선물용으로, 대량으로 물건을 사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상을 꾸리면서 찾아오는 작지만 무수한 선택지 안에서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칫솔을 바꿀 때, 빨래를 할 때, 물을 마실 때 이런 사소한 순간들 앞에서 우리는 대게 질문하지 않고 몸에 익숙한 대로 선택한다. 내일상회에 찾아오는 이들은 사소한 순간들 앞에서 익숙한 대로 선택하지 않고, 지금 필요한 선택을 한다. 그 힘이 있다.
내일상회는 워낙 좁은 골목, 주택가 한 켠에 있어 찾아오기 어렵다는 원성이 자자한데, 그래서 더욱 한번 찾은 이들의 두 번째 걸음이 소중하게 이어진다. 어려운 발걸음으로 와서일까, 손님들은 내일상회 운영의 어려움 역시 받아들이고 어려움의 크기만큼 고마움의 크기로 우리에게 마음을 전달한다. 환대와 환대가 이어진다.
내일상회를 운영하는 친구들은 강릉에서 처음 만났다. 강릉으로 이주한 4명이 모여 시작했는데, 그때 우리는 정말 많이 지쳐있었다. 일단 어떤 동네에 하나둘 이사를 와 모였고, 사무실 하나를 얻어 퇴근 후에 모여 책을 읽거나 밥을 같이 해 먹으며 작게 농사를 지으며 서로를 겨우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화가 나 있거나, 이제 화낼 기운도 없는 사람들이 자꾸 찾아왔다. 강릉이라는 도시에 살아서, 청년이라서, 여성이라서, 어린이라서, 학생이어서, 무슨 무슨 직업인이라서 우리는 갖가지 사회 속의 역할을 수행하다 녹초가 되고 있었다.
사실 우리는 일상 앞에서는 너무나 막 살고 있었다(같이 하는 동료는 지금도 ‘너네만 아니면 막 살고 싶다’고 외친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하는 일이 많아서이기도 하고, 잠깐 멈추는 방법을 모르기도 하고 필요한지도 몰랐다. 화가 나고 분노해야 할 일들이 많은 시대이기도 했다. 나 자신 안에도 다양한 정체성이 있는데 그걸 잘 운영해야 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 했다. 잘 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대로 우리는 살게 되었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대로 살다 보면 일회용으로, 마치 삶이 연습이고 전시된 것처럼 막 살게 되어버렸다.
지금 필요한 선택들로 일상을 채우는 일은 힘들고, 특히 혼자서는 금방 멈춘다. 세상은 너무 빠르고, 너무 쉬운 선택이 많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려보면 우리는 또 쉬운 선택을 하고 있었다. 클릭 한 번으로, 보이지 않는 화폐의 거래로 지워지는 방법들이 너무 많았다. 힘들 때 하는 선택이 진짜 나라는데, 나는 힘들 때면 누군가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한번 쓰고 버려지는 포장용기에 담아 먹고 남기고 버리며 매일을 괴로워했다.
노동시장에서 일회용이 되어 쓰이고 버려지는 동료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그런 우리를 살리려고 매번 밥모임에 반찬이며, 양념이며, 과일이며 갖다주는 언니들을 보며, 일단 우리는 잠시 멈춰 서게 되었다.
기후위기, 고민의 크기만큼 실천하는 사람들
2019년 9월, 강릉에서 나를 포함한 8명이 서울로 올라가 ‘기후위기 비상행동’ 행진에 참여했다. 그때는 이름도 없고 물건 하나 없던 내일상회 텅 빈 공간에 모여 천을 깔고 박스를 모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살 수는 없다’고 적었다. 노래를 부르며 길을 걷다가 사이렌이 울리면 광화문 길거리 한복판에 누워 도시를 불편하게 만들며 ‘다이인 퍼포먼스’(잠시 동안 죽음을 표현하는 비폭력 시위)에 참여하며, 기후위기라는 엄청난 두려움을 몸에 새기고 돌아왔다.
그렇게 강릉으로 돌아온 우리는 기후위기라는 문제를 알리기 위해,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하나. 내가 있는 곳, 우리 지역, 우리 동네에서부터 시작하자. 둘. 거대하다면 쪼개고 쪼개서 우리 눈앞에 보이게 하자. 셋. 단순하지만 단단한 활동을 이어가자.
아무것도 없던 우리 아지트에 행진에 사용했던 종이피켓이 걸렸고, 동네 지역아동센터에서 얻어온 책장에는 기후위기, 대안경제, 에코페미니즘, 생태주의, 쓰레기 관련 책들이 하나둘 쌓여갔다. 한 켠에는 제로웨이스트 물품을 소개하는 작은 코너 하나가 생겼고, 그게 내일상회의 시작이었다. 그냥 작게 뭐든지 할 수 있는 일이면 시작했다. 내일상회라는 이름을 떡하니 붙이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다양한 온도의 고민을 나누었다.
‘나는 영화를 찍는데 촬영 현장에 쓰레기가 많아서 고민이다’(독립영화 감독), ‘나는 책을 만들고 파는데 포장이나 버려지는 책이 고민이다’(독립서점 사장), ‘나는 행사를 여는데 일회용품 없이 하고 싶다’(중간지원조직 실무자), ‘나는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는데, 시설에서 쓰레기를 줄일 실천 방법을 찾고 있다’(사회복지사). ‘나는 바닷가 근처에 사는데 폭죽놀이며, 해양 쓰레기로 너무 괴롭다’(사천해변 거주 초등학생). ‘나는 글을 쓰는데 기후위기와 기후난민에 대해 알고 싶다’(청소년 글쓰기 프로젝트팀). ‘나는 그림을 그리는데 강릉 해안숲이 사라질 위기에 대해 더 알고 싶고. 그림으로 알리고 싶다’(일러스트 작가). ‘나는 몸이 아파 서울을 떠나 강릉으로 왔는데, 화력발전소가 지어지는 건 왜 아무도 모르는지, 또 떠나야 하나 답답하다’(아픈 내 친구). ‘나는 기후위기 문제가 정말 걱정인데, 학교나 집에서는 이해해주지 못한다’(고등학생). 나는. 나는. 나는…. 우리 사는 세상은 정말 복잡하고 다층적인 그물망이었다.
기후위기 대응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다층적인 사회 시스템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에 해답이 있다고 한다. 다양함이 결국 우리를 살릴 것이다. 고민을 가지고 온 이들은 그 고민의 크기만큼 질문을 만들어내고, 성실하게 스스로 답하듯이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자리를 열고, 같이 활동하는 팀을 만들고, 해변 쓰레기를 줍고, 현장의 쓰레기를 줄이며 그 과정을 영상에 남기고, 자신의 먹거리를 직접 키우는 건강한 농사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내일상회는 ‘생태전환마을내일’이라는 이름의 협동조합으로 단위가 확장되었다. 뭐라도 하는 이들을 연결하고 무형의 네트워크를 유형의 마을로 만들고자 다음 단계의 고민을 하고 있다. 이제는 퍼머컬처(지속가능한 농업) 농사를 함께 지으며 흙을 살리고, 사람을 돌보고, 영혼을 돌보며 사는 삶을 살자고, 그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광부-청소노동자의 딸, 에코페미니스트가 되다
나는 강원도 정선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광부였고, 노동환경이 거칠었다. 마을도, 아버지도 가부장적이었다(아침에 여자를 만나면 부정 탄다는 이야기가 쉽게 나오던 시대). 탄광 산업이 역사의 뒤안길로 저물자 아버지는 고랭지 농부가 되었고, 어머니는 폐광지역에 세워진 카지노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가 되었다. 청소년 시절, 그 좁은 시골마을이 답답했다. 광업소에서 흘러나온 불이 뒤덮인 주황색 냇가를 보며 모든 존재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성인이 되어 강원도 산불피해지에 나무를 심는 일을 5년 정도 했다. 직접 나무를 심은 건 아니고 정부, 기업, 시민들이 강원도 산불피해지를 복원하는 일에 참여하고 동참하도록 독려하는 일을 했다. 낮에는 가파른 산, 길도 없는 산길을 다니다가 저녁에는 보고서를 쓰며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힘들면 무조건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마음속에는 늘 불타는 나무를 안고 살았고, 3일간의 경기를 위해 밀려나간 정선 가리왕산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이자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소비되고, 많은 역할을 부여받았다. 움직이지 않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에게서, 그들이 주지도 않은 상처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
그런 내가 세상과 화해하게 된 계기는, 나 자신과 화해했기 때문이다. 사회 이슈에 참여하고 외칠수록 내 안의 다양한 시대와 이데올로기가 목소리를 내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주변에 좋은 동료들을 만나면서, 그들과 협업하듯이 내 안의 다양성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내가 가진 소수자성이 결국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이 시대를 증언하고 기억하는 통로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생긴 변화였다. 이 시스템이 요구하는 대로 막 살아가는 게 아니라, 변화가 필요한 순간에 변화를 선택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 잘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둘 배우게 된 것이다.
나는 열심히 살면서도 막 살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막 살고 싶다. 막 살아도 건강한 사회라면, 막 살아도 나를 인정해주는 사회라면, 막 살아도 중요한 순간에는 필요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쥐고 있다면, 막 살아도 기본값이 평등하고 안전하고 공동체적이라서 그 구조가 나를 살리는 방식이라면 말이다.
페미니즘을 다시 쓰겠다더니, 기후위기와 쓰레기 이야기를 늘어놓아 생뚱맞다고 여겨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에코 페미니스트다. 그래서 기후위기 문제에 바로 반응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기후위기는 이제 재난을 넘어서 사회적 정의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기후정의’를 이야기할 때 그 옆에 누가 있을까. 기후정의는 기후위기가 다층적이라는 것, 모두에게 재난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 이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함께 이룰 수 있다. 나 자신의 소수자성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함께 외쳐줄 것이다. 그렇기에 페미니즘은 기후정의의 새로운 이름이고, 더 다양하게 확장되어 갈 것이다.
[필자 소개] 이혜림(솜씨). 일회용 대신 죽어서 건강한 흙으로 돌아가고 싶은 에코 페미니스트. 막 살고 싶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강릉에서 퍼머컬처 방식으로 농사짓고, 친구들과 쓰레기를 명분으로 작당모의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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