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말]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하는 국어 교사들이 모여 교실과 학교에서 성평등한 국어 교육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평등 국어교사 모임’을 만들어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만들어 온 국어 교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국어 시간에 만나는 시인들
이제껏 국어 시간에 만난 시인들을 한 명씩 불러보자. 윤동주, 백석, 이육사, 김소월, 한용운, 박목월, 박두진, 유치환, 이용악, 서정주…. 익숙한 호명에 몇몇은 얼굴까지도 또렷이 떠오른다. 그들은 국어교육 내에서 더는 도전받지 않는 뚜렷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들의 위상은 너무도 확고하여 일견 깊은 해자와 웅장한 산세로 둘러싸인 견고한 성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문학사적 업적이나 지명도 외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라고 하면 선뜻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숨 쉬듯 익숙한 것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바로 작가의 성별이다. 전부 남성인데, 왜 학창 시절에는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의아할 정도다.
2015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현대 시 참고서의 목차(『해법 문학 현대 시 (2023년용)』 천재교육, 2019)를 보면, 여성 작가의 작품은 234편 중 38편뿐이다. 심지어 이 수치는 여태껏 보아온 것 중에서 가장 높다. 기존의 문학사가 성별 대표성을 고려하는 데에 이만큼 무심했다는 걸 구체적으로 확인하니 안타까움에 한숨이 절로 난다. 더군다나 이러한 성별 편향이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결과임을 생각하면,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국어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보기로 했다.
현재 근무 중인 중학교는 국어 수업 네 시간 중에서 세 시간은 교과서 수업을, 한 시간은 시 감상 수업을 한다. 1학년 자유학년제의 연장선 격으로, 학생들은 매주 한 편의 시를 읽고 이를 필사한 뒤 감상을 적고 자신이 이해한 바를 바탕으로 시화를 그린다. 전입 첫해에는 교과서 수업을 전담하기도 했고 새 학교에 적응하는 데 온 신경을 쏟느라 다른 수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둘째 해에는 같은 학년을 지도하는 선생님과 절반씩 나눠 들어가게 되면서 비로소 시 감상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업무 분장이 2월 셋째 주 정도에나 발표되기 때문에, 처음 맡는 업무일 때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 작년에 했던 것부터 숙지하고 그대로 하기 쉽다. 나 역시 그랬다. 동료 선생님이 준 시 목록을 그대로 인쇄해서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 나누었다. 그 목록에서 열의 여덟은 남성 작가의 자리였다. 우선은 이미 정해진 목록을 충실히 하되, 2학기 평가계획을 수립할 때에는 반드시 개선하겠노라며 의지를 다지고 틈틈이 여성 작가의 좋은 작품을 수집했다.
그리하여 2학기를 시작하기 전에 교과 협의를 할 때는 지난 학기에 가졌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시 목록을 정할 때 기계적인 성비 1:1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어떨지 제안했다. 여성 작가의 좋은 작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전체의 2할에 그치는 건 아쉬운 일이며, 학생들에게도 ‘잠재적 교육과정’(학교의 물리적 조건, 지도 및 행정적 조직, 사회 및 심리적 상황을 통하여 학교에서는 의도하고 계획 세운 바 없으나,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에 은연중에 가지게 되는 경험을 뜻함. 『교육학용어사전』 1995)으로서 남성 작가의 작품이 더 가치 있다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도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 가능한 선에서 여성 작가의 작품을 발굴해 추가하는 편이 좋겠다고 말이다.
다행히 이런 의견을 동료 교사가 수긍해주어 목록을 선정하는 일은 나에게 맡겨졌다. 기대감과 책임감을 안고 부지런히 찾아보았다. 최근 교과서 또는 EBS 수능특강 등에 실린 작품 외에도 짬이 날 때마다 시집을 읽으며 학생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 시를 스크랩해두었다. 그리하여 2학기 시 수업에서 학생들은 고정희와 황인숙, 정끝별과 한강, 강은교와 같이 이전에 비해 높은 비중의 여성 작가들을 만나며 문학의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할 수 있었다.
화자의 감정, 꿈, 세계를 탐험하는 학생들
“너에게로 가는 / 그리움의 전깃줄에 / 나는 / 감 / 전 / 되 / 었 / 다”(「고백」, 고정희)와 같이 간결한 형식에 담긴 간절한 마음을 들여다보며 그룹 f(x)의 Electric Shock를 엮어 읽고 상대에게 사로잡힌 화자의 그리움을 위로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빗방울의 처지에 이입하여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빗방울 하나가 5」, 강은교) 자신이 두드리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며 자신이 살고자 하는 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한 도전 과제들을 떠올리는 학생도 있었다.
‘문 앞의 돌길은 이미 모래가 되었겠지요.’(「몽혼」, 이옥봉) 같은 구절에서 “꿈속에서는 한평생이 흐르는 것 같은 시간이라도 꿈에서 깨고 보면 한순간처럼 느껴지니 어쩌면 모래처럼 없어지는 건 돌길뿐 아니라 화자의 꿈 또한 한 줌의 모래처럼 변해버리는 것 같다.”는 감상을 남긴 학생도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여성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학생들의 삶과 연관성이 높은 작품들을 수배하기 위해 애쓴 보람이 있어, 이전 수업 시간에 활동한 결과물보다 양과 질 모두 개선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단지 시간적 성숙에 따른 것이거나, 또는 1학기 활동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방식대로 남성 작가가 남긴 정전 위주의 수업이었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작품들을 사용함으로써 가능한 결과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올해는 그래서 한층 대담하게 비중을 높여보기로 했다. 저번 학기에 학생들은 강은교와 최영미, 이매창과 진은영, 최승자와 나희덕, 황인숙과 천양희, 문정희와 정끝별, 홍랑을 만났다. 이번 학기에도 새롭게 고정희와 황진이, 허영자와 조용미를 만날 것이다.
사실 당장 주목할 만한 감상과 표현의 발전을 확인하지 못하더라도 좋다. 원래 교육의 효과는 비가시성이 그 특징이다. 당장 나타나는 변화가 없다고 하더라도, 교실에서 만난 여성 작가들은 문득문득 학생들의 삶 속에서 그들을 부를 것이다. 작품 수용을 통해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고, 감상을 표현함으로써 내면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 교육은 높은 가치를 가진다. 이때 접하는 작가의 대표성은 학생들의 세계 인식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꾸준히 학생들과 나누고 싶은 여성 작가의 작품을 찾아서 모으고 이것이 학생들의 삶 속에 스며들도록 애쓰기 위해, 오늘도 수업 준비에 힘을 쏟아본다.
*위 글은 성평등 국어교사모임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이메일 주소 femi_literacy_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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