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외국인 아이들이 한국에서 자라고 있다[이주 배경 청년의 목소리] 세상이라는 무대에 평등하게 설 수 있길※국제결혼 가정이나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한 청(소)년들, 아동 청소년 시기에 중도 입국한 청년 등 다양한 이주 배경을 가진 청년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청년 담론 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주 배경 청년 당사자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직접 들어봅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편집자 주]
‘이야기’와 연기하는 것이 좋았던 아이
나는 2004년의 어느 일요일 서아프리카 토고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기 전날, 어머니와 아버지는 뮤지컬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이야기가 좋았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맞벌이 부부셨는데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나는 TV를 자주 보았다. 특히 투니버스에서 나오는 일본 애니매이션(짱구, 도라이몽, 이누야샤, 캐릭캐릭체인지 등등)을 엄청 좋아했던 것 같다. 그 당시 나이에 보면 안 되는 내용들도 많았지만, 아닌 척 열심히 보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 그때부터 ‘이야기’를 정말 좋아했던 것 같다. 애니매이션 속에서 묘사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을 보는 게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인생을 나도 한 번 살아본 기분이 들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직접 여러 인생을 연기해보고 싶다는 욕구로 이어졌다.
하지만, 연기라는 것이 매번 즐거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첫 배역은 한국인이었다
‘외국인’, ‘흑인’, ‘아프리카’ 등. 이 단어들은 어렸을 때 내가 들을까 봐 가장 무서워했던 말들이다. 누군가에겐 되게 아이러니하다 느껴지겠지만 -외국인이고, 흑인이고, 아프리카 사람이잖아- 억울했던 것 같다. 비록 타국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내 인생 첫 번째 기억은 한국에서부터 시작되어서 한국으로 끝나는데, 서류 하나로 그들과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발버둥쳤다. 사람들이 나를 외국인이라 인식하지 않게끔 최대한 하얗게 보이려 노력하고, 어머니께 떼를 써 머리를 그들과 비슷하게 하고, 외국인들끼리 있으면 영락없는 외국인으로 보일까 봐 멀리하기도 하였다. 최대한 나의 정체성을 죽이며 한국인인 척 연기하며 살았다.
이러한 행동들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반복하다 보니, 나를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슬펐던 것은 이 행동들이 내 안에서 부모님의 흔적을 지우는 행동들이라는 것이었다. 부모님께 상당한 상처를 주었다.
그래서 멈췄다. 나와 솔직해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부모님께 토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기도 하고, 너무 외국인 느낌이 강해서 절대 하고 싶지 않았던 머리 스타일도 도전했다.
생각보다 별일이 아닌데 왜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이것을 깨닫기에는 이 사회가 나에게 보여주는 세상이 너무 작았다.
그러자 어린 내가 이러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이 사회 구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싶었고, 사회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돌아보면, 괴로웠던 첫 배역이었으나 난 잘 소화했고 나를 성장시키기까지 한 것 같아 뿌듯했다.
더 큰 무대로 나가는 길을 막고 있는 ‘체류’ 문제
내가 태어난 토고는 1960년 독립 이후 쿠데타와 독재정치가 이어졌다. 38년을 장기 집권한 대통령이 사망하고 유혈사태까지 빚어지며 그의 아들이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다. 불안정한 정치 상황으로 인해 부모님은 토고를 떠나야 했다.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난민인정 신청을 했지만 난민불인정을 받았다.
난민불인정을 받고 출국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난민인정 소송은 계속되었고, 출국기한을 유예하며 지내왔다. 그러다가 출국기한 유예기간마저 지나고, 미등록체류가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올해 1월 20일, 법무부에서 장기체류한 미등록 아동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체류자격, 즉 비자를 부여하겠다는 구제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4월, 나는 구제대책을 신청했다.
이제 내년에 성인이 되는 나는 더 큰 사회라는 무대에 서게 된다. 하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래가 겪지 않는 어려움이 내게는 너무 많다. 난 지금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으로 대학을 가려고 하는데, 비자 문제로 인해 나는 공부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현재 몇몇 대학교에 입시원서를 제출했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만약 합격을 한다면 외국인등록증 사본을 제출해야 입학이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난 여전히 외국인등록증이 발급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외국인등록을 발급받지 못한다면, 대학교 입학이라는 꿈은 좌절될 것이다.
심지어 곧 발급받게 될 비자로 대학교에 진학하더라도, 졸업 후 취업할 수 있는 전공분야가 제한되어 있다. 나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여도 취업할 수 있는 직종이 정해져 있다.
성인이라는 문턱을 넘을 때 미끄러지는 아이들
‘다른 나라 사람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어떻게 당연할 수 있지?’라고 다시 묻고 싶다.
지금도 수많은 외국인 아이들이 한국에서 자라나고 있다. 그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꿈과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 텐데, 그 아이들은 성인이라는 문턱을 넘을 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그 꿈과 희망이 묵살되는 것이다. 그것이 어찌 당연할 수 있는가.
그래서 나는 그 아이들이 마음껏 꿈꾸고 정체성으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주고 싶다. 아이들이 세상이라는 무대에 설 때, 미끄러져서 다치지 않도록 대사를 까먹어서 좌절하지 않도록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다.
이를 위해 먼저 현재 사회가 어떻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사회학과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또 사회학과에서 배운 전공 지식을 나는 예술로서 풀어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로, 그리고 연기로. 그래서 연기공부와 노래공부를 병행하며 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라는 전국 대회에 나가서 내 진로를 밝혀 스스로 굳게 다짐할 수 있도록 하고, 일요일마다 엑소더스라는 이주민 센터에서 봉사하며 이주민과 그들의 아이들에 대해 더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낯설고 먼 존재가 아니야
외국인이라는 단어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우리에게 굉장히 낯설고 먼 존재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여러 국가를 서로 넘나드는 이 시대, 이 사회에서 누구나 외국인이다. 과거에는 굉장히 멀고 낯선 존재였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단어에 변화를 줌으로써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조짐이 보일 것 같다. 급하게 생각한 것이지만 만약 바꾼다면 ‘나그네’라는 단어는 어떨까.
[기사 보도에 도움 주신 분] 강슬기 의정부EXODUS 활동가.
이 기사 좋아요 24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