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동굴’에서 여자들은 무엇을 할까[극장 앞에서 만나] 장 피에르 주네 〈아멜리에〉, 이가은 〈(BLANK)〉‘남자들은 자신만의 동굴이 필요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일 것이다. 이 문장에는 마치 고독이 남자들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기는 생각이 들어있다. 여자는 자신만의 동굴이 필요 없을까? 조용하고 고독한 시간이 다른 성별들에겐 필요 없는 것일까?
10대 시절, 나는 무척 고독했다. 나만의 동굴이 필요했으나,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나는 동굴을 갖기가 쉽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교내의 나만의 아지트를 발견했다. 그곳은 먼지가 가득했다. 서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 10대에게 주어진 동굴이 마치 그 정도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최대한 내 동굴을 지키고 싶었다. 폐지함에 가득 쌓인 모의고사 종이들을 가져와 먼지들 위에 장판처럼 켜켜이 깔았다. 책상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 주인공들의 이름을 적고 좋아하는 노래 제목들을 적었다. 나는 모의고사 장판 위에 누워 음악을 듣기도 하고 좋아하는 영화와 노래가 적힌 책상 위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물론 수업을 빠지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종종 나를 찾는 방송이 들려오면 허겁지겁 다시 교실로 돌아가야만 했다. 동굴이 부족했다. 다같이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고 또 같은 수업을 듣는 것이 나에게는 의아하고 괴랄하게 느껴졌다. 친구들은 내가 종종 사라지면 비밀의 방에 간다고 말을 했고, 나는 정말 소중한 친구 한 명에게만 내 아지트를 공개했다. 영화와 음악이 있는 내 동굴로, 역시 영화와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를 초대했었다.
아멜리 뿔랑의 동굴
내가 그나마 빠지지 않는 프랑스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보여주었던 영화가 〈아멜리에〉(장 피에르 주네 감독, 2001)였다. 〈아멜리에〉의 원제는 〈아멜리 뿔랑의 멋진 운명〉이다. 당시 짝수 글자로 영화 제목을 짓는 것이 유행하던 탓에, 수입사는 ‘아멜리’의 이름에 아무 뜻이 없는 ‘에’를 덧붙여 ‘아멜리에’를 완성 시켰다는 속설이 있다. 주인공 이름은 제목과는 달리 ‘아멜리에’가 아닌 ‘아멜리 뿔랑’이다.
아멜리는 어릴 적부터 혼자였다. 어머님을 일찍 사고로 여의던 날, 한 짓궂은 어른이 어린 아멜리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전부 너 때문이라고. 아빠는 자신의 일로 바쁘고 아멜리는 혼자 시간을 보낸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놀이를 빠르게 모아 놓은 영상들로 이뤄져 있다. 손가락에 산딸기를 끼우고 먹는다든지, 본드를 손에 붙였다 뗀다든지, 색종이를 오려서 후 부는 등의 놀이들이다. 그리고 얀 티에르상의 쓸쓸한 음악이 흐른다. 오프닝부터 고독이 관객의 온몸을 감싼다.
아멜리의 삶 자체가 동굴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동굴에서 아멜리는 무엇들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영화는 아멜리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제3자의 내레이션까지 덧대 촘촘히 나열한다. 이것은 장 피에르 주네의 단편 〈쓸모없는 것들〉(1989)에서 나왔던 연출 방식이다. 한 인물을 보여주며 그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소한 것들을 주르륵 나열한다. 그것이 과연 쓸모없는 것인지 되짚어 보게 만든다. 인물의 사소한 특징까지 알게 되면 더 이상 그 인물은 멀리 보이지 않는다.
“세이브 더 캣”이라는 말이 있다. 주인공이 관객에 호감을 얻기 위해 영화 초반에 고양이를 구하는 등, 선한 행동을 하나 반드시 해야 한다는 영화계의 전통 깊은 말이다. 장 피에르 주네는 아멜리가 고양이를 구하게 하는 대신 인물의 여러 특징들을 내레이션과 빠른 영상으로 마치 소설처럼 과감히 늘어놓음으로서 관객과 인물의 유대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아멜리는 카메라를 직접 보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관객과 아멜리 둘만의 관계가 생긴 셈이다. 아멜리가 동굴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관객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서사에 진입하게 된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왜곡되어 보이는
그러면서도 인물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영상화하듯 광각렌즈를 사용해, 인물을 가까이 촬영하는 샷에서 인물이 왜곡되어 보이게 한다. 광각렌즈는 멀리서 찍었을 때는 심도가 깊어 초점을 여러 곳에 맞출 수 있지만, 촬영하는 대상이 가까이 왔을 때에는 왜곡되어 보이게 한다. 이 영화는 광각렌즈를 통해 함부로 타인의 삶에 다가가는 것은 그 인물의 특이하고 괴랄한 부분까지 감내해야 함을 시각화한다. 잔뜩 다가간 카메라의 렌즈에 비친 아멜리의 눈은 크고 턱은 작아 기괴하게 보인다. 영화 자체가 기괴하진 않다. 영화는 화려한 색을 사용해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한다. ‘고독은 귀여운 거야’ 마냥 외롭던 나에게 주는 근사한 위로였다.
〈아멜리에〉는 아멜리의 원 샷이 주된 동력이다. 아멜리가 다른 누군가와 한 앵글에 잡히는 일은 거의 드물며 카페에 상주하는 다른 인물들 또한 그러하다. 그들 모두 각자의 문제를, 동굴을 안고 있다. 이를 원 샷을 통해 함부로 타인의 앵글에 들어가기 힘든 사회를 설파한다.
아멜리는 자신의 동굴에서 타인을 돕는 기쁨을 발견한다. 한 남자가 어린 시절 집에 숨겨 놓고 잃어버렸던 보물 상자를 찾게 한다. 아멜리는 이 모든 일에 자신을 숨기고 시행하며 큰 즐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동네 과일가게에서 사장에게 구박받는 과일가게 청년을 위해 과일가게 사장에게 복수를 하며 보람을 느낀다. 그래도 고독은 끝이 없다. 아멜리는 혼자 늙어 죽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으로 보게 된다. 눈물을 흘리며 잠에 든다.
내가 고독을 견디는 방법은 하나였다. 외로움을 의인화하는 것이다. 외로움을 하나의 존재하는 대상으로 만든다. 그러면 혼자 있어도 혼자 있지 않는 것이 되는 셈이다. 난 동굴이 필요했지만 그 속의 외로움은 남몰래 견뎌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만의 방법을 찾은 것이다. 현명한 아멜리는 남몰래 계속 타인을 도우면서 동굴에서 지낸다. 그러던 중 사랑을 만나게 된다. 사랑 앞에서도 아멜리는 겁을 낸다. 동굴에서 자라 살아온 자에게 동굴 밖으로 나오는 일을 퍽 어려운 일이다. 눈부신 햇살은 어찌할 것이며 동굴 안에서의 내 관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멜리는 과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동굴에 있어본 자라면 아멜리를 힘껏 응원하게 된다.
소리 없는 동굴을 메우기
이가은 감독의 〈(BLANK)〉(2021)는 가족을 잃은 소림의 이야기다. 소림은 홀로 커다란 집에서 지낸다. 이제 막 가족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소림은 조용한 집이, 조용한 동굴이 너무 두렵다. 소림은 이 공간을 소리로 채우려 한다. 가족들이 냈던 소리들을 흉내 내어 테이프에 녹음을 하고 플레이어를 여러 개 구매한다. 그리고 집안 곳곳 틀어놓는다. 어떻게든 부재를 메우려는 행동은 가상한 노력에 비해 어쩔 수 없는 허무함으로 돌아온다.
소림의 동굴에는 침입자가 발생한다. 바로 이웃집 남자다. 소림이 틀어놓은 소리들에 스트레스를 받은 남자가 인터폰에 등장한다. 소림은 가족들하고 있다고 변명하지만 남자는 믿지 않고 가족들 목소리를 들려달라는 요구까지 한다. 소림은 당황하며 공황에 빠진다. 소림을 연기한 손수현 배우는 이 장면에서 입으로 ‘아, 아’하는 짧은 소리를 반복해서 내며 정신없이 집을 돌아다닌다. 비어버린 집을 채우려다 실패한 소림이 어떻게든 이 무시무시한 적막을 메워보려는 가냘픈 시도가 가슴을 저리게 한다.
이 영화는 제목 ‘Blank’의 뜻인 ‘빈, 녹음되지 않은’을 고스란히 담는다. 암전된 화면을 진행되고 있는 컷 사이에 사용하여 행동이 끊기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준다. 사운드를 중점으로 다룬 영화인만큼 가족들을 어떻게 잃게 되었는지도 암전된 화면과 음향 효과만을 통해 드러낸다. 최소한의 정보로, 소림의 악몽 같은 기억을 다시 재생하지 않으며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세심한 방법이다.
말은 없지만 소리는 많은 이 영화는 그래서 슬프다. 소리가 많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슬프다. 가족과 함께했던 과거 회상 씬을 제외하면 전부 소림의 원 샷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소림은 결국 어떤 방법을 택하게 될까. 소림은 그 공백을 과연 메울 수 있을까. 영화를 끝까지 본다면 관객은 소림의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동굴은 필요하다
필연적으로 동굴에 살게 된 두 여성 아멜리와 소림에 대해 적어보았다. 아멜리와 소림이 멀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누구에게나 동굴에서 보낸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에게만 동굴이 필요하고, 남자만 고독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성별, 누구에게나 동굴은 존재하고 고독한 시간이 있다.
그 동굴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지가 다음 문제다. 동굴을 영화적으로 표현한다면 원 샷일 것이다. 그 원 샷 안에서, 그 앵글 안에서 당신은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 나는 원 샷이 많은 영화들과 시간을 보냈다. 〈아멜리에〉의 아멜리, 〈수면의 과학〉(미셸 공드리 감독, 2006)의 스테판, 〈400번의 구타〉(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1959)의 앙뜨완,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아녜스 바르다 감독, 1962)의 클레오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영화를 만들게 되면서 비로소 동굴에서 나올 수 있었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영화 작업은 동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맞지 않는 작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또다른 동굴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닿을 영화를 만들기 위해 나는 동굴에서 나오고 싶었다.
여성의 고독은 종종 가볍게 치부되곤 한다. 반면 남성의 고독은 사회적으로 다뤄진다. 특히나 가장의 고독을 사회에서는 무게 있게 다룬다. 하지만 여성의 고독은 잘 언급되지 않는 만큼 여성의 고독을 다룬 미디어가 소중하다. 그 영화들이 동굴에서 재생될 때 동굴은 비로소 밝아질 것이다. 그리고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게 될 지도 모른다. 영화는 빛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필자 소개] 신승은: 싱어송라이터이자 영화감독. 1집 앨범 [넌 별로 날 안 좋아해](2016), 2집 앨범 [사랑의 경로](2019)를 발매했으며 단편영화 〈마더 인 로〉(Mother-in-law, 2019), 〈프론트맨〉(Frontman, 2020)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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