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말]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하는 국어 교사들이 모여 교실과 학교에서 성평등한 국어 교육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평등 국어교사 모임’을 만들어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만들어 온 국어 교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동문학과 청소년문학 사이, 성장소설
살다 보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담임을 맡는 학년이다. 이제껏 한 번도 1학년 담임을 한 적이 없었는데, 질문이 많고 손이 많이 간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가, 올해 처음으로 1학년 담임을 하게 되었는데 약간은 긴장을 하면서 학생들을 만났다.
작년 중학교 3학년 수업을 하다가 1학년을 만나게 되어서 그렇게 느껴진 건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달랐다. 그들에게는 중학생이 되었다는 압박감과 묘한 긴장감이 얼굴에 서려 있었고, 초등학교에서 온종일 담임선생님의 집중 케어를 받다가 너무 많은 교과 선생님들이 생겨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궁금한 것도 너무 많았다. 그런 모든 것들이 뒤섞여 있는 1학년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1학년 담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1학년 교과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수업을 준비하며 뒤적인 교과서에 실려있는 작품들도 흥미로웠다. 문학 작품들 중에 동시들도 꽤 있고,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각색한 소설들도 실려있다. 아동문학과 청소년문학, 그 어느 경계 즈음에 중학교 1학년 독자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과 가장 먼저 수업하게 된 소설은 이오덕의 『꿩』이었다. 머슴의 자식이라고 동년배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받던 아이가 꿩의 자유로운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괴롭힘을 거부하고, 외모 때문에 괴롭힘을 받아 등교를 거부하는 동네 소녀에게도 학교에 같이 가자고 제안하겠다는 다짐으로 끝나는 소설!
성평등 관점으로 보았을 때 썩 내키는 소설은 아니었다. 남자 주인공이 세상의 부조리에 각성하고 여성을 구원하겠다는 것인가. 물론 이런 생각이 들 때는 혹시나 내가 편협하게 작품을 판단하는 것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떤 부당한 현실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해 괴로워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소설인데, 남자 여자가 뭐가 중요할까.
그러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이 작품처럼 자신의 내면을 키워가고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동일시할 수 있는 소설들에는, 여성 주인공도 있겠지? 어떤 내용으로 실려있고, 어떤 유형일까?
국어책에 실린 성장소설 주인공, 서사 분석하기
이 궁금증은 각 출판사별 1학년 교과서를 보면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2015년 개정교육과정 성취기준 중에서 ‘[9국05-10] 인간의 성장을 다룬 작품을 읽으며 삶을 성찰하는 태도를 지닌다’에 따라,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는 성장소설이 최소 한 편은 실려있기 때문이다.
다음 표는 2015 개정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성장소설 목록이다.
성장소설은 주로 유년기에서 소년기를 거쳐 성인의 세계로 입문하는 인물이 겪는 내면의 갈등과 정신적 성장,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각성의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을 지칭한다.(최현주, 『한국 현대 성장소설의 세계』, 박이정출판사, 2002) 여덟 작품들 모두 성장소설로서 손색이 없으며, 학생들이 좀 더 쉽게 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연령대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를 페미니즘 시각에서 접근해본다면? 우선 주인공 성별이 남성에게 많이 치우쳐있음을 알 수 있다. 남성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네 편의 작품, 남성과 여성이 함께 등장하여 그들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세 편의 작품, 그리고 여성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한 작품. 양적인 면에서는 이러하다.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았을 때, 소년들이 갈등을 겪는 내용 양상은 ①돈과 거짓말, 양심의 문제 ②머슴 자식이라고 친구들에게 괴롭힘당함 ③친구의 공작나방을 훔치려다 망가뜨림 ④경제적 어려움과 양심의 문제 ⑦좋아하는 소녀의 죽음을 겪음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반면, 소녀들이 갈등을 겪는 내용 양상은 ⑤서로 호감이 있는 상태에서 소녀의 오해로 관계가 어긋남 ⑥몰래 염색을 해서 엄마와 갈등을 겪음 ⑧가난한 수택이 고마움의 표시로 준 어린이 신문을 난로에 버림(친구에게 상처를 줌)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⑤소설이 남녀의 대등한 비중과 관계에 대해 다룬다고 본다면 논외로 하고, ⑥과 ⑧을 보더라도 소녀들이 겪는 갈등은 상대적으로 일상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흔히 사소하다고 치부되는 일상의 영역에서 여성 주인공들은 고민하고 성장한다.
교과서에 실린 성장소설 주인공의 성별이 특정 성별에 치우쳐있는 것뿐 아니라, 소년과 소녀의 성장기 역시 상당히 ‘성별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성장소설의 특징상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과 고민들, 그리고 극복 과정에 있어서 독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연결 짓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는 수업에서 학습 활동으로도 이어지는데, 천재(노) 교과서의 경우 헤르만 헤세의 『공작나방』 작품 분석 후 활동으로 다음과 같은 활동을 제시하고 있다.
[3. 작품과 관련지어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① 하인리히처럼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고 후회한 경험을 떠올려 보자. ② ①에서 떠올린 경험을 바탕으로 하인리히의 깨달음에 공감할 수 있는지 자기 생각을 정리해 보자.]
이렇듯 소설 속 인물의 행동과 사고는 학생들에게 좋은 타산지석이 되기도 하고, 남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남학생이건 여학생이건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고 후회한 경험을 떠올리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다. 여학생들이 남성인 하인리히에게 공감하는 것은 지금까지 쭉 있어왔던 일이고 여학생들은 쉽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그러니까 국어 성적도 여학생들이 평균적으로 높다고들 하는 것인가?!)
사실 주인공의 성별은 학생들에게 뭐 엄청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남학생들이 여성 주인공의 소설을 읽고 엄마와의 갈등 상황에 이입할 수도 있는 것이고, 여학생들이 남성 주인공의 소설을 읽고 돈을 훔치는 경험에 대해 이입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엄연히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성비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학생들은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 주인공인 성장소설을 읽고 공감하고 경험을 확장하는 기회를 많이 놓쳐왔고, 남학생들은 더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왔다.
그러니까 여성 주인공이 더 많이 등장하는 성장소설을 채택해보자. 여성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소설을 교과서 속에서 많이 본 경험이 없어서, 그것이 주는 효과가 어떨지 상상도 하기가 어렵다. 분명한 것은 학생들의 세계가 넓어질 것이다.
*위 글은 성평등 국어교사모임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이메일 주소 femi_literacy_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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