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 권리 후퇴시키지 마!’ 美 중간선거의 표심

재생산의 권리 폐기한 연방대법원 결정에 맞서, 투표로 목소리 내다

박주연 | 기사입력 2022/11/15 [13:26]

‘임신중지 권리 후퇴시키지 마!’ 美 중간선거의 표심

재생산의 권리 폐기한 연방대법원 결정에 맞서, 투표로 목소리 내다

박주연 | 입력 : 2022/11/15 [13:26]

지난 9일 미국에선 바이든 정부의 임기 중간에 실시되는 중간 선거가 진행됐다. 의회의 하원 전체와 상원과 주지사 일부 등을 뽑는 이번 선거는 야당인 공화당의 우세로 예상되었다.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바이든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높지 않은데다, 미국에서 중간 선거는 대체적으로 현 정부를 심판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여당에게 불리하게 작동하는 탓이다. 선거 직전까지도 공화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예측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 하원은 공화당이 과반 이상 의석을 달성할 것으로 보이지만, 상원은 민주당이 과반 이상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바이든 정부는 예상보다 좋은 성적표를 받게 되어, 앞으로의 의정활동에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번 선거는 중간 선거이면서,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대결’이기도 하다는 점이 큰 주목을 받았다. 여전히 지난 선거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음 대선을 위한 재기의 발판으로 이번 선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으나, 그 계획은 실패한 모양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는 임신중지 권리 보호, LGBT권리 보장, 기후위기 대응 등과 관련해 어떤 목소리가 나올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는 선거이기도 했다.

 

특히 지난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 권리를 인정한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판결’(Roe v. Wade :: 410 U.S. 113)을 뒤집으면서 사회가 발칵 뒤집혔고, 법이 내팽개친 임신중지권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열망이 뜨거웠다. 그에 따라 미시건, 몬태나, 버몬트, 캘리포니아, 켄터키를 포함한 5개 주에서 ‘임신중지권을 보호할 권리’를 주 헌법에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투표가 중간 선거와 함께 진행되었다. 과연 그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 다큐멘터리 <제인 로 케이스 뒤집기>(Reversing Roe, 2018년) 장면 중 임신중지 권리를 위해 시위 중인 미국 시민들의 모습 ©Netflix

 

임신중지권, 인플레이션만큼 중요한 이슈

 

미국 사회에서 1973년부터 보장되어 온 임신중지의 권리가, 50년이 지난 2022년에 폐기될 거라고 생각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트럼프 정부가 3명의 보수 성향의 대법관(닐 고서치, 브랫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을 지명함으로써, 9명의 대법관 중 5명이 보수주의자가 된 것의 영향은 엄청났다. “90년 만에 가장 보수적인 대법원이 됐다”는 평가가 빈 말이 아니었다. 끈질기게 ‘낙태 반대’를 외쳐온 공화당과 일부 개신교 내의 목소리와 합쳐져, 결국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하고 시민들의 임신중지 권리를 박탈하는 엄청난 퇴보를 가져오고야 말았다. (참고: 다시 ‘낙태’ 금지국가로?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 https://ildaro.com/8473)

 

많은 미국 시민들은 대법원의 결정에 굴복하지 않았고, 분노했다. 특히 여성들, 젊은 청년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과 바이든 정부는 이 목소리를 끌어안으며 ‘재생산 권리를 보호할 법을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이번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은 임신중지권을 주요 이슈로 내걸었다.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 공화당의 압승을 예측하는 많은 이들이 민주당의 이런 전략은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경제 상황이 안 좋은데,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출구 조사의 분석에 따르면, 유권자의 31%가 인플레이션을, 27%가 임신중지권을 중요한 문제로 꼽았다. 그리고 임신중지권을 중요한 문제로 꼽은 이의 대다수(76%)는 민주당 후보를 선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유권자 10명 중 6명이 임신중지에 대한 대법원에 결정에 비판적이었으며, 임신중지가 합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젊은 층(18세~29세)에선 무려 44%가 임신중지권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았다. 또한 이들의 63%가 민주당을 선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 층은 민주당을 지지한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이기도 하다. 터프츠대학 연구소 CIRCLE에 따르면, 이들의 투표율이 지난 30년 동안의 중간 선거 중 두 번째로 높은 투표율(약 27%)을 기록했다고 밝혀졌다.

 

한편 민주당을 지지한 여성은 53%, 그 중에서도 흑인 여성(88%)이 압도적이고, 라틴 여성(66%)의 비중도 높았다. 단, 백인 여성의 민주당 지지는 45%로, 공화당 지지 53%보다 낮았다.

 

보수적인 주에서도 임신중지 제한이 아닌 보호 원해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의 선전뿐만 아니라, 5개 주에서 치러진 ‘임신중지권 보호 법안’에 대한 찬반 투표에서도 임신중지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결과로 드러났다.

 

▲ 2022 미국 중간 선거와 함께 5개 주에서 진행된 임신중지 관련 법안들에 대한 찬반투표 결과 (CNN Ballot Measures 참고)  ©일다

 

몬태나 주 유권자들은 임신중지를 더욱 더 제한하는 법안(임신중지 과정에서 ‘살아 태어난’ 영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하지 않는 의료진을 형사 처벌하는 법안)에 대해 반대했다. 켄터키 주 유권자들은 임신중지 권리와, 임신중지에 대한 자금 지원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수정안에 반대했다.

 

미시건 주 유권자들은 미시건 주 헌법에 임신 중지 권리를 포함하는 것에 찬성했다. 캘리포니아 주 유권자들 또한 임신중지 권리를 포함하는 주 헌법에 찬성했다. 버몬트 유권자들은 임신, 임신중지, 피임을 포함하여 자신의 재생산과 관련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내용을 담은 주 헌법 수정안을 찬성했다.

 

5개 주 모두에서 유권자들은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을 보호하거나, 추가 제한을 거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보수 성향으로, 공화당 지지가 높은 켄터키 주(이번 선거 상원과 하원 모두 공화당이 승리)와 몬태나(상원 선거는 없었으나 하원에선 공화당이 승리)주에서도 임신중지권에 대해서 만큼은 더 제한되어선 안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시건 주의 경우, 임신중지 권리 보호를 강하게 주장했던 민주당 주지사 후보 그레천 휘트머가 재선에 성공했다. 이외에도 많은 상하원 의원 후보와 주지사 후보가 임신중지 권리 보호를 외치며 선거에 매진했다.

 

12명의 여성 주지사 탄생, LGBTQ 역대 최다 당선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하지 않고 오히려 좋은 성적을 거둔 건, ‘임신중지권’을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열망의 목소리 덕분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우울한 소식도 있다. 플로리다, 아이오와, 텍사스 등에선 임신중지 권리를 제한하고 불가능하게 하려는 이들이 국회의원과 주지사로 선출되었다. 이들이 임신중지 권리뿐만 아니라 LGBTQ 권리를 제한하는 것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플로리다는 지난 2월, 학교에서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제한하는 ‘성소수자라는 말을 하지 마’(Don’t say gay) 법안을 승인했었고, 텍사스는 트랜스젠더 아동청소년의 트래지션을 협력하는 부모를 아동학대로 고발할 수 있도록 조사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주도했던 주지사 모두 재선에 성공했다. 심지어 이 중 한 명인 플로리다 주지사 론 디샌티스는 공화당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중이다.

 

▲ 2022 중간 선거를 통한 재선에 성공한 그레천 휘트머 미시건 주지사는 선거 결과를 알리며 “임신중지는 미시건에서 합법이었고, 합법이며, 합법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출처: 그레천 휘트머 주지사의 페이스북)

 

하지만 또 한편으론 이번 선거가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여성 주지사(12명)를 탄생시켰다는 점, 그 중 두 명은 오픈리 레즈비언이라는 점, LGBTQ 후보(최소 1,065명) 중 최소 436명(지금까지의 개표 결과 집계된 인원)이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어 최다 기록을 갱신했다(2020년엔 336명)는 점은 새로운 정치의 미래를 엿보게 한다.

 

여전히 더 나은 변화를 위한 길에는 걸림돌이 있지만, 이번 선거는 임신중지를 포함한 성과 재생산 권리가 결코 ‘사소하거나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경제 문제만이 ‘먹고사니즘’으로 중요한 게 아니라, 성과 재생산 권리 또한 한 명의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는 걸 말이다.

 

※ 참고 자료

-How Joe Biden and the Democratic Party defied midterm history (CNN, 2022년 11월 13일자)

-Turnout among young voters was the second highest for a midterm in past 30 years (npr, 2022년 11년 10일자)

-Democrats fend off headwinds from Biden and economy: Exit poll analysis (abc news, 2022년 11월 9일자)

-CNN 2022 Exit Po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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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1 2022/11/22 [14:41] 수정 | 삭제
  • 돌이켜보면 임신중지를 반대한다는 말 자체도 성립하지 않는데 세상은 왜 이리 자주 뒤집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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