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혈연, 입양 관계만 ‘가족’으로 정의한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1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이 10월 25일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25개 단체가 주최한 시민 발언대 “우리의 연결될 권리를 보장하라”에서 나온 다양한 목소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여러분의 가족은 안녕(安寧)하십니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가족은 여성가족부가 건강가정기본법에서 규정한 ‘가족’의 범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안녕’하지 못한 가족입니다.
저는 2005년,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출산하여 홀로 자녀를 양육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혼모가정이라는 이유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후 2013년 파트너를 만나 결혼하였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우리 가족은 여성가족부에서 정의하는 ‘건강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10년 동안 아이의 주 양육자 역할을 하는 남편은 아이와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가족은 어떻습니까?
2022년 현재, 우리는 다양함을 추구하고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개인의 삶을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삶은 우리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소위 ‘정상가족’ 안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에서 일반적인 가족의 정의는 여성과 남성이 결혼을 하고, 그들이 낳은 자녀로 이뤄진 가족이라고 교육을 합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아빠, 엄마가 없는 아이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비혼모의 자녀에 대한 암묵적인 차별은 여전히 심각합니다.
2021년 통계청이 발표한 ‘2020 사회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51.2%로 절반 정도에 그칩니다. 2020년 여성가족부의 ‘가족다양성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혼인 및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9.7%에 달합니다. 또한 ‘사실혼, 비혼, 동거 등 법률혼 이외의 혼인에 대한 차별 폐지가 필요하다’는 응답도 70.5%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근거로 여성가족부는 2021년, 건강가정기본법에서 ‘건강가정’이라는 용어를 뺀 ‘가족기본법’으로 변경하겠다고 했습니다. ‘건강가정’이라는 용어가 혼인, 혈연으로 이뤄진 가족 형태만 건강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어 차별적이고, ‘건강가정’과 상반되는 ‘건강하지 않은 가정’이라는 개념을 도출시키기 때문에 문제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2022년 들어와 여성가족부는 태도를 바꾸어, 다양한 가족의 형태와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건강가정’ 용어가 추구하고자 하는 정책적 목표를 나타낸다며, 삭제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가정’, ‘가족’ 용어가 실생활과 법률에서도 혼용되므로 “현행 유지가 필요하다”며, 가족 정의를 확대하겠다는 발표도 뒤집었습니다. “사실혼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건강가정기본법에 규정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지속해서 검토해나갈 예정”이라며 발뺌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현재의 법적 가족 정의에서 벗어나서 가족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감에 있어 어떠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하며, 누구에게 이런 것을 허락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이러한 시대에 뒤떨어지는 국가 정책들로 인해 미혼모 가정과 한부모 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을 해소해야 할 여성가족부가 오히려 더욱 더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한부모 가족, 조손(祖孫) 가족,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형태의 가족, 1인가구, 공동체 형태의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 형태가 예전과 달리 무수히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가 막아서도 안 되고, 인위적으로 막을 수 있는 현상도 아닙니다.
개인의 선택을 인정하고, 개인의 삶을 존중하고, 조금 더 힘든 위치에 놓인 이들을 배려하는 성숙한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회에서 아이들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고, 개인의 삶도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성가족부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필자 소개] 최형숙.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 홀로 자녀를 출산하여 양육을 하며 2009년부터 미혼모가족의 인권 향상을 위해 당사자단체를 조직화하여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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