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다양성의 힘’ 기후위기 시대 토종씨앗 지켜야

[기후위기와 여성농민] 강원도 홍천에서 농사짓는 손경희②

나랑 | 기사입력 2022/11/27 [10:12]

‘종 다양성의 힘’ 기후위기 시대 토종씨앗 지켜야

[기후위기와 여성농민] 강원도 홍천에서 농사짓는 손경희②

나랑 | 입력 : 2022/11/27 [10:12]

※기후변화를 일터와 삶터에서 피부로 느끼고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전국의 여성농민들을 만납니다. 여성농민의 시선으로 기후위기 그리고 농업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대안의 씨앗을 뿌리는 새로운 움직임과 공동체적 시도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단일 품종이 되어버린 바나나, 전염병으로 사라질 판

 

손경희 씨가 사무국장으로 있는 홍천군 여성농민회는 도시의 시민들과 함께 400평 규모의 ‘토종 씨앗 채종포(씨앗을 받기 위해 마련한 밭)’를 운영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토종 씨앗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경희 씨는 바나나 이야기를 들려줬다.

 

현재 우리가 즐겨 먹고 있는 바나나는 대부분 ‘캐번디시’라는 단일 품종이다. 바나나는 원래 수백 여 가지 품종이 있었지만, 거대 기업들의 주도로 잘 팔리는 ‘캐번디시’ 품종만을 대규모로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바나나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바나나 전염병인 변종 파마나병(TR4)이 유행하고 있다. 이 전염병의 치료법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 이대로라면 10여 년 후에 바나나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농학자도 있다.

 

▲ 토종씨앗 채종포(씨앗을 받기 위한 밭)에서 함께 농사짓는 시민에게 토종씨앗에 대해 설명하는 손경희 씨. ⓒ한빛 제공

 

원래 사람이 길러서 먹었던 작물은 7천 가지였다고 한다. 오늘날엔 겨우 30종의 작물이 전 세계인들이 섭취하는 열량의 90%의 칼로리를 제공하고 있다. 쌀, 밀, 옥수수 3종이 50%를 담당하고 있다.

 

수많은 작물을 생산하며 식량을 구하고 종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에도 기여했던 농사가 이윤을 추구하는 ‘산업’이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대규모의 농지에서 한 가지 작물만 생산하게 됐다. 먹기 위한 작물이 아니라, 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물을 생산하다 보니 다양한 종이 사라진 것.

 

“대규모 농사 위주로 가게 되면 단일 품목을 많이 재배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기후위기로 예상치 못한 병해충이 생겼을 때 대응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에 비해 토종은 정말 다양해요. 가뭄에 약한 애가 있는가 하면 강한 게 있고, 습기에 약한 애가 있으면 비가 와도 잘 되는 애가 있고.”

 

홍천군 여성 농민들이 재배하고 있는 밥밑콩만 해도 파란콩, 밤콩, 개이빨콩, 호랑이콩, 울강낭콩, 밭강낭콩 등 다양하다. 이렇듯 토종이 갖는 힘은 바로 ‘종 다양성’이다.

 

경희 씨는 “토종이라고 무조건 잘 살아남는다고 할 순 없지만, (이 다양성을 유지한다면) 어느 해에 40가지를 심었을 때 (기후위기에 따른 기상이변이 와도) 20가지는 수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통해 여성 농민들이 거두고 지켜온 토종씨앗에, 기후위기 시대 우리의 식탁을 지킬 수 있는 해법이 담겨 있는 셈이다.

 

시민들과 함께해 온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

 

경희 씨는 ‘토종씨앗 채종포’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한 달에 한 번, 도시에서 달려온 시민들과 같이 토종 농사를 짓는다.

 

토종 농사가 아무리 필요해도 농민 입장에서는 “먹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농사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막상 “낯선 토종 작물을 만났을 때 선뜻 먹겠다고 손에 들기가 어렵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같이 농사를 짓는다. 처음에는 행복중심생협 조합원들과 시작했고 지금은 광진주민연대,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 소속 시민들도 함께 하고 있다. 30~40여 가지 토종 작물의 씨앗을 뿌리고 돌본다.

 

여성 농민들은 농번기라 단 하루가 아까운 와중에 남편의 눈초리를 뒤로 하며 달려가고, 도시의 시민들은 새벽부터 집을 나서 먼 길 달려와 서투른 밭일을 땀 뻘뻘 흘리며 한다.

 

“함께 씨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과정에서 농사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하고, 토종 작물에 대해 알아가고 먹어보면서 잊혀져 가는 다양한 씨앗들을 이어갈 수 있는 터를 닦고 있어요.”

 

토종 작물을 먹어주는 소비자에서 출발해 이제는 함께 농사짓는 이들로 십 년 넘게 일궈 온 시간, 이 시간은 여성 농민들이 토종 씨앗 지키기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큰 힘이 됐다.

 

▲ 사과밭에서 환하게 웃는 손경희 씨. 우리는 언제까지 경희 씨의 사과를 먹을 수 있을까. ⓒ나랑

 

대구 사과 옛말, 기후변화로 재배지 줄어

 

인터뷰가 끝나고 사과밭에 따라 나섰다. 인터뷰 내내 떠나지 않던, 경희 씨의 사람 좋은 웃음기가 사라지고 사과 따는 얼굴에 진중함이 가득하다.

 

예전에는 대구가 사과 주산지로 유명했다. 지금은 사과가 경희 씨가 사는 홍천뿐만 아니라, 최북단 지역인 강원도 양구군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기상청 기후정보포털은 “사과의 경우 과거에는 남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재배가 가능했지만, 21세기 말 사과의 재배 적지는 강원도 산간에 극히 일부만 남아 생산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경희 씨는 언제까지 사과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까지 경희 씨의 사과를 먹을 수 있을까.

 

[참고자료]

『바나나 제국의 몰락』, 롭 던, 반니, 2018

『10대와 통하는 기후 정의 이야기』, 권희중, 신승철, 철수와영희, 2021

『씨앗을 부탁해』, 김은식, 나무야, 2016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 반다나 시바, 책세상, 2017

 

[필자 소개] 나랑(김지현) 독립 인터뷰어. 글쓰기 안내자. 목소리가 되지 못한 목소리를 기록한다. 그런 목소리들이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게 안내한다. 지금은 제주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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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1/29 [11:50] 수정 | 삭제
  • 콩이라면 강남콩, 완두콩 밖에 모르는데 ㅠㅠ 예전에 토종작물이라며 선물을 받고 제가 몇개 사기도 했던 콩이랑 잡곡류가 있었는데, 너무 낯설어서 그런지 잘 해먹게 되지 않아서 계속 소비를 못한 것이 좀 부끄러워지네요.. 다시 도전~~!!!
  • LuLang 2022/11/27 [22:59] 수정 | 삭제
  • 그렇군요. 한국에서 사과는 정말 흔한 과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재배지가 점점 줄고 있다니 충격이네요. 바나나 단일품종이 된 이야기도 슬프고요. 토종은 토종밤밖에 먹어본 기억이 없는데.. 앞으로 토종작물을 좀 알아보고 소비해야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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