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도시’가 개발의 미래인가?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저자 김윤영을 만나다

박주연 | 기사입력 2022/12/05 [14:59]

‘가난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도시’가 개발의 미래인가?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 저자 김윤영을 만나다

박주연 | 입력 : 2022/12/05 [14:59]

서울에서 처음 살던 때가 기억난다. 신촌에 위치한 고시원이었다.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가 공간의 모든 것을 차지해 버리는 정말 좁디 좁은 방이었다. 갑갑하다는 말만으론 다 표현하지 못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다음에 살았던 곳은 홍대 인근 반지하였다. 고시원에서의 작은 공간에 너무 질려버린 후 방 두 개인 곳을 찾다 보니 현실적으로 가능한 곳이 반지하였다. 공간은 확 넓어졌지만 반지하의 암울함은 고시원의 갑갑함과 또 다른 방식으로 괴로웠다.

 

그 다음 번엔 지상층이었지만 언덕 위에 위치한 곳이었고, 이후 드디어 역에서 3분 거리의 원룸에서 살게 됐지만 6개월도 되지 않아, 관광객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로 변경한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그 뒤로도 서울살이는 주거 공간을 찾아가는 여정의 연속이었다. 지금 사는 동네도 주변을 걷다 보면 재개발 어쩌고 등의 말들이 쉽게 들려온다. 앞으론 또 어떤 곳에서 살게 될까? 오래 머무를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새로운 아파트가 지어지는 공사 현장을 바라본다. 저 공간엔 무엇이 있었을까?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어떤 삶들이 저 공간을 채우고 또 떠나갔을까?

 

▲ 빈곤사회연대 사무실 앞에서 책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을 든 김윤영 활동가 모습 ©일다

 

그 상상의 실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빈곤사회연대에서 10년 넘게 활동해 온 김윤영 활동가가 쓴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후마니타스)이다. ‘쫓겨난 자들의 잊힌 기억을 찾아서’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도시 속에서 살아가지만 기억되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철거민, 노점상, 홈리스 등의 사람들이 쫓겨나면서 겪은 폭력과 피해도 기록했을 뿐 아니라, 이들의 진솔한 목소리와 이들의 싸움이 우리 사회에 남긴 역사와 성과도 다루고 있다. 그 현장의 생생함이 전해져 오는 탓에, 책 읽기를 멈출 수 없어 단번에 읽었다.

 

기후재난과 주거 불평등,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 코레일 용산정비창 부지 민간매각 등에 대응하며 바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김윤영 활동가를 만나, 책 이야기와 도시재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상계동 철거민의 거리에서 먹고 자랐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내게도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었다. 살았던 동네마다 항상 쫓겨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수원에 살 때는 성당 뒤쪽에 철거민 가수용 단지가 있었다. 용인에 살 때는 학교까지 오가는 길목에 비닐하우스가 많았는데, 그 벌판에는 스피커를 단 높은 구조물이 솟아있었다.”(133쪽)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엔 쫓겨난 철거민, 노점상인들의 이야기도 있지만, 윤영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어가 있어요. ‘이런 풍경을 다 기억하다니, 기억력이 대단한데?’ 싶더라고요(웃음).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닌데, 신기하게도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은 잘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이런 일들이 떠오른 건, 빈곤사회연대 활동을 하면서에요. 활동하면서 나의 추억도 되짚어 보게 됐고, ‘쫓겨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항상 있었구나.’ 알게 된 거죠. 신기하게 기억이 주마등처럼 쫘악 펼쳐지더라고요. ‘어렸을 때 내가 봤던 게 망루였구나, 거기 스피커가 달려있고 노래가 나왔는데 그게 민중가요였구나’ 뒤늦게 깨달은 거죠.

 

▲ 용산정비창공대위는 서울 용산역 뒤편의 대규모 공공부지에 대한 투기개발을 막고, 공공임대주택 등 시민을 위하 공간으로 남겨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용산정비창공대위에서 진행하는 용산 다크투어는 용산 참사를 기억하고, 용산정비창 개발의 대안적 미래를 상상하는 시민참여 프로그램이다. 용산 다크투어를 소개하는 영상 캡쳐

 

-경의선숲길부터 용산, 아현, 독립문, 상계동, 서울역, 청계천, 광화문, 종로, 잠실까지 도시개발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이 책에 담겨 있는데요. 이 활동하면서 처음 목격했던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언제가 처음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용산참사(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에서, 철거를 반대하며 점거 농성을 하던 세입자-철거민들을 경찰특공대가 진압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진 사건) 때가 생각나요. 그 전에도 탄압받는 노동자, 노점상, 빈민을 생각하긴 했지만 그 탄압의 실체가 무엇인지 면밀하게 고민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근데 용산참사를 목격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회가 정해놓은 ‘보통’이라는 규범을 벗어나는 순간, ‘사람이 이렇게까지 비시민 대접을 받게 되는구나. 국가로부터 폭력의 대상이 되는구나’ 큰 충격이었죠.

 

지금도 그래요. 많은 철거민들이 투쟁을 시작하고 나서 호소하는 것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들이 날 대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거에요. 나는 어제와 다름없이 같은 사람인데, 빼앗긴 내 권리를 찾겠다고 하는 순간부터 아무런 거리낌 없이 폭력의 대상이 된다는 거죠. 사회가 나를 보호해 줄 거라는 믿음이 깨지니까요. 예전부터 늘 그래요. 예전의 철거민 인터뷰를 봐도 ‘철거민이 되는 순간, 전부 다 뺏기고. 국가를 믿을 수 없게 됐다’는 얘기가 계속 나와요. 그게 제가 활동하면서 가장 슬픈 일인 것 같아요. 철거민이나 노점상 분들이 그런 감정을 가지면서 위축된 모습을 보는 게요.

 

“어느 날 갑자기 개발이라는 그 이름 하나, 관리처분 하나 하면서부터 온 동네를 들쑤시고 삶을 파괴하지. 사람들이 야반도주하게 만들고, 자살하게 만들고, 땅바닥에 앉아서 투쟁하게 만들고. 내가 우리 집에서 숟가락 하나를 사더라도 이거 살까 저거 살까 만져 보고 심혈을 기울여서 사는 거잖아. … 그런 거를 말 한마디 없이 통째로 쓸어 갔잖아. 그래놓고 우리한테 생떼거리를 쓴다는 소리나 하고.” (28쪽)

 

-철거민, 노점상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이 여전히 강한 것 같아요. 재개발 과정에서의 끔찍한 폭력이 잘 드러나지 않는 탓이기도 하겠지만요. 도시 재개발 과정의 문제 중 큰 부분은 어떤 것일까요?

 

한국의 개발이 굉장히 독특한 방식인데, 합동 재개발을 해요. 민간이 조합을 만들어서 시행사를 끌어들이죠. 민간이 조합을 구성하면 사실상 토지수용권(공익사업의 시행자가 법률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토지 소유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필요한 토지의 소유권을 강제적으로 취득할 수 있게 함)까지 주는 거거든요. 공익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거에요. 4분의 3만 동의하면, 나머지 땅을 수용할 수 있는 권한까지 안겨주는데, 정말 그게 공익적일까요?

 

과거처럼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개발 할 땐, 개발이 필요할 때니까 그렇게 토지수용권까지 주는 것의 공익성을 인정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그 때도 살고 있던 사람이 쫓겨났겠죠. 그렇게 그 공간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완전히 후순위로 밀려났기 때문에 지금의 ‘주거 불평등’이라는 상황이 생겼다고 봐요.

 

거기다 여기에 이해관계가 엮어있다 보니, (철거민, 노점상 등에 대한) 차별이 생기는 거죠. 우리 사회에서 이 갈등이 심각한 이유는, 개발 과정에서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갈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집이나 땅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은 재개발로 이득을 기대할 수 있고, 공사 과정에 참여하는 건설사 등의 사람들도 이득을 공유하죠. 반면 쫓겨나는 세입자들은 삶의 터전을 잃죠. 이웃이라 할지라도 이해관계가 갈릴 수밖에 없는 거에요. 철거민에 대한 편견은 오해나 상상의 산물이라기보다, 이런 재/개발 역사를 반복하면서 이해관계가 갈려온 영향이에요.

 

▲ 2020년 3월, 코로나19를 맞은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의 긴급요구안 기자회견장의 피켓. 책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엔 서울역 홈리스들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겪은 차별과 배제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출처: 빈곤사회연대 페이스북)

 

“중국집 공화춘 사장 김대원의 사정은 더 딱했다. 용산에서 맞닥뜨린 강제 퇴거가 이미 두 번째였다. 용산에 오기 전에 인사동에서도 장사를 하다가 재개발이 되면서 권리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 용산으로 가게를 옮기며 1억 2000만원을 투자했지만 결정된 보상액은 보증금을 합해 6500만 원에 불과했다. 소유주의 이익을 중심으로 구성된 개발법은 세입자에게 아무런 안전망을 제공하지 않았고…” (책 65~66쪽)

 

-한국 사회에서 주거공간이든, 상가든 세입자로 살아간다는 건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가야 하는 것 같아요.

 

2018년에 유엔 주거권 특보가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어요. (참고 자료: [논평] UN주거권특보, 한국의 주거권 실태에 심각한 우려 표해) 레일라니 파르하 특보가 했던 말을 살펴보면, ‘한국 시민들은 주거가 하나의 권리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철거민들이 쫓겨나는 상황에서 저항하는 걸 굉장히 냉혹하게 바라보는 이유 중 하나가,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그런 권리를 가져본 적 없어서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사람들은 왜 자기 땅도 아닌데 반발하고 있을까?’ 납득이 되지 않는 거죠.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쫓겨나면, 정말 영원히 쫓겨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군가는 싸움을 하는 거거든요.

 

사실 철거민이 된 사람들도 투쟁을 하기 전까진 ‘(다른 철거민들이) 왜 싸우는지 몰랐다’고 해요. ‘왜 저럴까, 나가라면 나가야지. 어쩔 수 없잖아’ 생각했다는 거죠. 제가 만난 철거민 중에 이 투쟁으로 정말 큰 이득이 생길 걸 기대하고 싸우고 있는 사람은 없었어요. 물론 마음 한 켠에 그런 마음을 품고 투쟁을 시작한 사람도 있을 순 있죠. 하지만 싸움이 길어질수록, 남아있는 철거민들의 마음은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하나는, 이렇게 쫓겨 다니는 것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마음. 예를 들어, 용산의 중국집 김대원 사장의 경우 인사동에 이어 용산에서 또 쫓겨나면서 거의 전 재산을 잃는 상황이었거든요. 서촌 궁중족발, 홍대 두리반, 가로수길 우장창창 등도 마찬가지였거든요.

 

또 하나는 ‘정말 너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마음이에요. 투쟁하시는 분들은 나 하나뿐만 아니라 이게 너무 이해가 안 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싸워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거거든요. ‘내가 어떻게 권리금을 모았는데, 가게에 어떤 투자를 했는데, 그 때만 해도 건물주는 문제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냐?’는 거죠. 주변을 보니까 이런 일을 겪은 게 나 하나가 아닌 거죠. 사실 냉정하게 봤을 때, 빨리 정리해서 나가는 게 더 이득일 수도 있어요. 철거민들도 ‘그게 더 낫지, 뭐’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근데 너무 화가 나는 거죠. 사람이 사람한테 어떻게 이런 대접을 하고, 이렇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냐. 이게 어떻게 허용이 되고, 합법일 수 있냐고요. 매번 당황스러워요. 이렇게 폭력적인 일이 합법이라는 게.

 

“이젠 사람이 무서워요. 그전에는 ‘이웃’이라고 하면 다정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젠 무서워. 지금 다정하게 대해 주는 사람들도 그 때 그 사람들(폭력을 사주하고 행사한 건물주들)처럼 나한테 그렇게 하지 말란 법이 없잖아요. 일단은 인간을 못 믿게 되더라고. 그게 싫어요. 인간이 황폐해져 버렸어요.”(책 44쪽)

 

-철거 과정에서 철거민, 노점상 등이 겪는 일들에 대해서 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보고 충격이었어요. ‘정말 이렇게까지 한다고?

 

그나마 너무 자극적인 건 안 써서 그 정도에요. 용산 4구역 같은 경우 철거되기 전에 가본 적은 없는데, 이미 남일당에서 투쟁할 때도 살벌한 흔적들이 남아있었어요. 벽에 사람이 칼을 들고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했고, 고양이나 비둘기 사체 등을 계속 길에 놓아 두기도 했고요. 그런 일들이 철거 현장에선 너무 부지기수로 일어나요.

 

▲ 되찾자 을지OB베어! 지키자 노가리 골목! ‘강제퇴거 OUT! 현장문화제’에서 발언하는 김윤영 활동가 (출처: 빈곤사회연대 페이스북)

 

-한두 달 전에 을지OB베어 투쟁(서울 중구 을지로3가 노가리 골목의 ‘원조’이자 주류 점포 최초로 ‘백년가게’로 선정된 곳이기도 한 을지OB베어가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양이 되어 지난 4월 철거됐다. 2018년부터 임대계약 문제로 건물주와 갈등을 겪었는데, 올해 1월 만선호프가 건물 일부를 매입한 이후 건물주가 을지OB베어 측에 점포를 비우라는 명도소송을 제기한 것이 발단이다. 만선호프는 점포를 계속 확장하여 현재 노가리 골목을 장악하다시피 했다) 현장 문화제에 갔어요. 우리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열심히 소리 내고 있는데, 주변을 다 둘러싼 만선호프에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서 무심히 술을 마시더라고요. 그 모습이 공포스럽기도 했어요. 이런 장면을 매일 보는 것도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다 싶더라고요.

 

철거민들이 그래요. 친구, 아는 사람 심지어 가족까지도 ‘도대체 왜 그러냐’고 하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사실 자신도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납득할 수가 없거든요. 그걸 설명하려니까 너무 힘든데 주변에선 이해도 못하니까. 단지 신체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외톨이가 되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되는 거에요. 보이는 폭력보다도 그게 정말 무서운 거에요.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은, 이 투쟁들이 실패로 끝난 게 아니라 분명 성과를 남겼다는 걸 알게 된 거였어요. 그들로 인해 바뀐 게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됐고요.

 

철거민들의 주거권을 위한 싸움이 분명 일정의 성과를 거둔 측면이 있거든요. 임대 아파트 도입, 특히 재개발 임대주택의 의무 비율을 정하는 것 등, 이 모든 게 철거민들이 이뤄낸 승리의 흔적들이에요. 이런 변화를 이끌어 냈기 때문에 이전보다 주거 지역의 철거민 투쟁은 줄어들기도 했고요. 다만, 상가의 경우엔 세입자들을 위한 보호가 전무했기 때문에 용산참사 같은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후에도 상가 상인들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고요. 물론 바뀐 법안들도 있어요. 여전히 사각지대가 있지만, 이만큼 온 것도 엄청난 노력의 결과거든요.

 

지금 강제퇴거에 맞서 싸우는 분들도 이런 역사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강제퇴거를 경험하는 사람의 다수가, 이런 일이 (나 외에도) 있다는 걸 몰라서 이 경험을 굉장히 특수하게 받아들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정서적으로 고립되기도 하고요.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지?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라고요. 그렇지 않다는 거죠. 내가 저 사람(건물주 등)과 개인적인 싸움을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는 걸 알면 힘들더라도 좀 더 자긍심을 가지고 싸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의 일도 고민이에요. 주거권이라는 것이 인정 받아 본 역사가 없는 사회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도 이제 민달팽이유니온 등의 단체에서 세입자 운동도 하잖아요.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하고, 또 이런 운동에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 국회 앞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장에서 피켓과 책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을 든 김윤영 활동가 (출처: 후마니타스 페이스북)

 

-주거권이라는 건 정말 당연한 권리인데 자꾸 ‘아파트를 사는 것’, ‘쟁취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 같아요.

 

지금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내놔라 공공임대’ 투쟁이 진행 중인데요. 여기에 대해서도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공공임대가 늘어나면, 고생해서 집 산 사람이 억울하다, 공공임대주택이 불공정하다는 등의 이야기요. 공공임대주택이 소수에 대한 특혜라는 발상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논리라면, 거의 모든 복지 제도 서비스가 ‘그 사람만 받으니까 특혜다’라고 말하는 거랑 똑같으니까요.

 

공공분양을 하는 것도 소수가 나눠가지게 되는 건데, 이걸 훨씬 더 공익적인 사업으로 판단하잖아요. 많은 이들이 ‘로또 분양’이라고 부를 정도인데도, 이건 공익적인 거고 공공임대는 아니다? 사실 특혜라고 할만큼 다 누리는 것도 아니에요. 임대주택에서 주거하려면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하고. 대기도 엄청 길어요. 또한 임대주택이 원하는 곳에 다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이렇게 원하는 사람이 많은 정책인데 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드러나지 않는 건, 가난한 이들이 실제로 몇 명이든 상관없이 정치적으로 과소대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입자들 또한 과소대표되고 있고요.

 

<(국일고시원 화재 이후) 소방관들은 현장 브리핑을 시작했다. “고시원이 애초 목적처럼 고시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다”,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 거처가 되고 있다”, “그래서 희생자는 대부분 50대 남성이다”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진 브리핑이 끝나자 정치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안전한가요?”> (책 178쪽)

 

-주거권 이야기가 나오면 ‘비적정주거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할 수 밖에 없는데요. 반지하, 고시원, 쪽방촌들을 차차 없애긴 해야 할 텐데, 그럼 도시빈민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도시가 빈민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얼마 전 한 대학원에서 강의를 했는데, 이야기가 끝나고 한 학생이 질문하더라고요. “근데 가난한 사람이 왜 꼭 도심에 살아야 하냐. 외곽에 나가면 되지 않냐”고요. 그래서 ‘그들은 계속 도시에서 살아왔고, 도시가 변화하는 과정이 이들을 쫓아내는 거다, 경제력에 따라 사람을 구획해 온 게 재개발의 역사였다, 그런 도시 개발이 과연 좋은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거고, 난 안 좋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어요.

 

근데 그 말을 하면서도 화가 나서,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생각해 봤는데…. 쪽방촌이나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분들이 하는 노동을 생각해 보더라도 그런 말은 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 너무 괘씸하게 들리더라고요. 판자촌 구룡마을에 사는 분들이 강남에 있는 오피스 건물을 청소하고 있고, 아이 돌봄 노동을 하고 있고, 가사 노동을 하고 있어요. 이 사람들도 도시를 굴러가게끔 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거든요. 근데 왜 이들의 자리가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지, 그게 훨씬 더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슬럼, 지구를 뒤덮다』(돌베개, 김정아 옮김)를 쓴 마이크 데이비스가, ‘슬럼이 생기는 이유는 도시가 가난해서가 아니라 부유해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한국의 주거 불평등의 역사는 발전의 이면이라기보다, 이 발전 자체의 성격이었다고 생각해요. 그걸 해결하기 위해선 발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죠. 우리가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 자체에 대해 회의를 가져야 한다는 거에요. 지금까지의 발전 방식이 잘못되지 않았는지요. 한국이 빠른 경제 성장에 대해 굉장히 자축하면서, ‘근데 그 이면에 안타까운 일도 있었지’하고 마는 게 아니라, 그 발전의 대가를 누가 치뤘는지 정확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봐요.

 

갑자기 모든 걸 해결하는 방법은 당연히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철거민들의 이야기가 알려지고, 이 이야기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해서, 세상이 갑자기 변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어떤 각성이나 결심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실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 낸다면 바뀔 수 있겠죠! 또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책임 있는 반응도 반드시 필요하고요. 지금까진 그런 걸 본 적이 없거든요.

 

-다주택자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하니 씁쓸해지네요. 한편으론 이렇게 너도 나도 부동산을 외치는 사회 속에서, 그런 욕망을 배제할 수 있을지…. 도시의 개발을 어떻게 바라보는 게 좋을지 고민됩니다.

 

이 구조 안에서 완전히 결백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봐요. 질문을 안 하고 생각을 안 하면 너무 쉽게 속거든요. 서울역에 가면 겨울에 꽃 얼지 말라고 화단에 비닐을 덮어줘요. 이 마음이 얼마나 예뻐요. 근데 거리에서 자는 사람들은 쓰레기 취급을 한다는 거죠. 전 그 마음 사이의 간극이 아찔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렇게 화단을 비닐로 덮어주는 살뜰한 마음과, 가난한 사람들을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리려는 마음이요.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닌데, 보이지 않게끔 하려는 건 현실을 조작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조작되기 전의 도시를 생각했으면 해요. 원래 누가 살았고, 누가 일을 했던 곳인지. 어느 곳에서 사라진 노점상 하나가 있다는 건 어쩌면 누군가의 생계가 끊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거. 그렇게 좀 더 구체적인 생각을 하면서 도시를 봤으면 좋겠어요.

 

-개발의 진짜 모습, 상실하고 쫓겨나는 사람들, 폭력적이고 책임지지 않는 국가, 주거 권리 등을 생각할 수 있는 이 책을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는데요. 특히 추천하고 싶은 분이 있을까요?

 

도시에서 사는 게 버겁고, 왜 이렇게 버거울까 의심하는 사람들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책을 읽으면서 쫓겨났던 사람에 대해 연대의식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를 바라볼 때 이전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철거 관련 투쟁하시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데, 사실 지금 싸우고 있는 분들은 책을 읽을 여력도 없어서…. 항상 그 분들이 외롭게 싸우는 게 슬프거든요. 책을 읽으면서 그 외로움을 좀 덜어냈으면, 자신의 싸움에 자긍심을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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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퉁이 2022/12/14 [12:45] 수정 | 삭제
  • 세입자로 산다는 거.. 진짜 매번 쫓겨다니는 인생이 되는 느낌이다. 더는 안 올랐으면 좋겠다.
  • 빛바라기 2022/12/08 [11:38] 수정 | 삭제
  • 화려함에 가려찐 초라함의 슬픔.
  • 주옥같은인터뷰입니다 2022/12/06 [21:27] 수정 | 삭제
  • 가난한 사람들과 세입자들이 과소대표되었다는 이야기에 정말 공감합니다
  • ㅇㅇ 2022/12/06 [17:03] 수정 | 삭제
  • 공공임대주택을 형평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저도 놀란 적이 있는데 설명을 해주셔서 속이 션하네요. 하늘의 별따기라서 그런가, 질투의 마음이 큰 거겠죠? 늘면 늘수록 좋은 건데.. 따질 건 분양자가 아니라 LH와 서울시죠.
  • 야니 2022/12/06 [13:52] 수정 | 삭제
  • 용산참사 때 하룻밤 사이의 죽음들이 너무나 무서웠던 것이 기억나네요. 도시재개발의 다른 이름은 철거였고, 세입자들을 쫓아내는 과정이었죠.. 점거투쟁이 사회를 조금 바꿔놓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그만 잊을 뻔 했는데..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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