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차별’이 허용되는 나라

정상가족 규범에 아직도 갇혀있나?

박한희 | 기사입력 2022/12/06 [19:02]

‘가족 차별’이 허용되는 나라

정상가족 규범에 아직도 갇혀있나?

박한희 | 입력 : 2022/12/06 [19:02]

※혼인, 혈연, 입양 관계만 ‘가족’으로 정의한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1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이 10월 25일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25개 단체가 주최한 시민 발언대 “우리의 연결될 권리를 보장하라”에서 나온 다양한 목소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평등이 아닌 차별의 원인이 되는 ‘가족’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으로 있는 박한희입니다.

 

2007년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을 입법 예고하고, 보수개신교 등의 반대가 있자 차별금지 항목에서 7가지 사유를 삭제했습니다. 그 중에는 ‘가족 형태’와 ‘가족 상황’에 대한 차별도 있었습니다. 인권에 관한 주무 부처이면서도 가족 형태나 가족 상황에 따른 차별을 해도 된다니, 이런 누더기 차별금지법을 만들었던 당시의 법무부는 ‘정상가족’ 규범에 근거한 가족 차별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 2007년 10월 2일,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을 입법 예고한 이후 한 달 여만에 7개 조항의 차별 금지 대상을 삭제한 것이 알려졌다. 삭제한 대상에는 ‘가족 형태’와 ‘가족 상황’도 있다. 11월 8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항의 기자회견에서, 참여자들이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소수자 혐오 차별 저지를 위한 긴급 공동행동

 

그런데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성평등을 실현할 부처인 여성가족부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이 필요 없다’며 기존의 입장을 바꿔 정상가족 규범을 고수하는 분노스러운 모습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헌법 제36조 제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하여 성립하고 유지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 조항에서 양성평등이라는 말이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것으로 오용하지만, 실제 그 의미는 가족은 평등한 관계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족 내에서, 또는 어떤 형태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헌법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평등이 아닌 차별의 원인이 되곤 합니다.

 

‘가족’ 용어가 들어간 법률 200개에 달해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019년 ‘당신의 가족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 아래, 가족에 관한 평등정책을 만들고 토론회를 진행했습니다. 그 논의 과정에서 가족을 매개로 한 다양한 차별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가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법률은 200개에 달합니다. 재난안전, 외교안보, 사회보장, 노동, 교육, 토지주택, 행정 등 공적인 영역부터, 출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개인의 삶에서 가족이라는 개념이 영향을 미칩니다. 혈연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률적 혼인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각종 사회보장, 주택서비스 등에서 배제되고, 직장 및 학교에서 차별이 이루어지고, 죽음에 대한 애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바로 협소한 가족 개념에서 나옵니다.

 

▲ 2019년 10월 23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최한 가족 평등 정책 토론회 “가족, 의무에서 권리로 차별에서 평등으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러한 차별의 근간이 되는 것이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제1항이라 할 것입니다. 혼인, 혈연, 입양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정상가족’을 공고히 하는 법 규정을 근거로 정부와 지자체의 공공연한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성가족부는 현행 법률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내고, 비판이 제기되자 이를 ‘소모적인 논쟁’으로 치부했습니다. 말이 안 되는 처사입니다.

 

차별의 문제는 현실 속의 구체적인 우리 삶의 문제입니다. 지금도 차별받는 이들의 목소리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이를 소모적인 문제로 치부하다니요. 나름의 변명이랍시고 여성가족부는 다양한 가족에게 실질적 지원을 하겠다고 했지만, 그것도 말뿐이고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입장도 정책도 내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실질적 지원을 하기 위해서라도 건강가정기본법은 개정되어야 합니다. 가족 정책의 기본법이 차별적 가족 개념을 규정하고 있는데, 실질적 정책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이행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더이상 낡은 법을 고수하지 못하도록

 

2007년 당시부터 이미 가족 차별을 해도 되는 것으로 인식했던 한국 정부의 태도가 현재까지도 달라지지 않고 있는 모습 앞에서, 분노하고 또 분노합니다. 동시에, 좌절하지 않고 이를 바꾸어내는 것은 평등한 사회를 바라는 시민들의 힘일 것입니다.

 

더 이상 국회와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지 못하도록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싸워왔고,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기 모인 우리들,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더 이상 여성가족부를 비롯해 현 정부가 핑계를 대며 낡은 법을 고수하지 못하도록 합시다. 모든 차별을 끝장내고 평등한 가족 관계가, 다양한 가족 형태와 가족 상황이 모두 인정받는 그 날까지 함께하겠습니다.

 

[필자 소개] 박한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집행위원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함께 실천하는 연대체입니다. 가족차별을 비롯하여 모든 차별을 예방 및 해소하고 모두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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