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 중인 日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소송

도쿄지방법원은 기각했지만, 동성혼 인정하는 제도 필요성 언급

박주연 | 기사입력 2022/12/08 [15:01]

전진 중인 日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소송

도쿄지방법원은 기각했지만, 동성혼 인정하는 제도 필요성 언급

박주연 | 입력 : 2022/12/08 [15:01]

일본의 삿포로, 도쿄, 나고야, 오사카에선 2019년 2월 14일, 성별 불문하고 결혼이 가능하도록 하는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소송이 시작됐다. 9월엔 후쿠오카에서도 소송이 시작됐다. 전국 5개 도시에서 총 36명의 원고가 함께 소송을 벌인 것이다.

 

법률상 성별이 동성인 상대와 혼인을 원하는 원고들이 제기한 소송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성 간의 혼인을 인정하지 않는 민법 및 호적 법의 규정이 헌법 24조 및 13조에서 보장하는 ‘혼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으며, 평등권을 규정한 헌법 14조 1항에 반해 동성커플을 차별적으로 취급하는 것이 위헌임을 판결해 달라는 것. 그리고 헌법에 위반하는 법률 규정을 개정하는 일을 게을리한 국가로 인해 받은 정신적인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이다.

 

▲ 2022년 11월 30일 일본 도쿄지방법원 앞에서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소송 원고들과 변호인단, 지지자들이 판결 결과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 사람들이 ‘위헌 상태’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Marriage for all Japan 유튜브 채널에서 이 모습을 생중계했다. https://youtu.be/wF0Ch_jCDXg

 

현재까지 소송의 결과는 각 지방법원마다 다르게 나오고 있다. 작년 3월 17일, 삿포로지방법원에서 처음으로 ‘위헌’ 판결이 나와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소송 원고들과 변호인단,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관련기사: 삿포로 법원 ‘동성결혼 불허는 위헌’ 판결에 축배를 들었죠!, 우리 요구는 동성혼이 아니라 ‘결혼의 자유를 모두에게’) 그러나 올해 6월 20일, 오사카지방법원에선 합헌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11월 30일, 도쿄지방법원에서도 합헌 판결을 내리며 원고들의 소송을 기각했다. 하지만 도쿄에서의 판결은, 기존의 법이 합헌이라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원고와 변호인단이 ‘획기적인 진전’이라고 할 만큼 법원의 변화된 모습도 보였다. 특히 “동성커플이 가족이 되는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현재 상황은, 헌법 24조 2항(혼인 및 가족에 관한 법률)에 반하는 ‘위헌 상태’에 있다”고 판결문에 명시한 것은 큰 성과다.

 

“제가 대학 가려고 세 번 시험을 봤었는데, 그 시험 볼 때보다 오늘이 100배 더 떨렸습니다. (중략) 왜 이 재판을 하는지, 왜 우린 3년 9개월 동안 우리의 모든 생활을 드러내면서까지 법정에서 증언을 해야 하는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울기도 하는지… (울먹임) ‘결혼하지 못해서 불편한 게 있나요?’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제가 쓰러졌을 때 파트너가 가족으로서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면 어떻게 하지, 내가 먼저 죽었을 때 유산은 어떻게 하지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잘 생각해 보면, 이 소송은 계속 상처 입어온 개인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가 가족이라는 걸 승인 받고, 법의 보호를 받는 인생을 살아가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걸 위한 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법원이 헌법29조 2항 위헌 상태를 언급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고 타다시 씨, 2022년 11월 30일 도쿄 판결 기자회견 & 재판보고회에서

 

도쿄지방법원 판결의 주요 포인트

 

11월 30일 판결 이후, 저녁 6시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된 〈도쿄 판결 기자회견 & 재판보고회〉에서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소송 도쿄변호인단 공동대표인 테라하라 마키코 변호사가 판결문의 주요 부분을 차례차례 짚었다.

 

① ‘동성 간 혼인을 인정하라’는 요구 무시할 순 없어

 

재판부는 24조 1항(혼인은, 양성의 합의를 바탕으로 성립하며, 부부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을 기본으로, 상호협력에 의해 유지되어야 한다)에 대해선, “양성 혹은 부부라는 말을 쓰고 있다는 점, 그리고 헌법이 제정될 당시의 사회통념으론 동성간의 혼인이라는 것이 생각되지 못했고 논의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24조 1항의 혼인이라는 건 이성 간의 것을 의미함으로, 동성커플에게 혼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위헌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테라하라 변호사는 (동일하게 판결한) 오사카지방법원과 다른 점도 분명히 있다고 했다. “도쿄지법에선 동성애자를 둘러싼 사회 상황엔 크나큰 변화가 있다는 것을 언급하며, 옛날엔 그랬을지 모르지만 지금에 있어선 이 24조의 혼인이라는 것이 동성 간의 혼인도 포함해야 하는 걸로 해석해야 한다는 원고 측의 주장을 그냥 부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지금 당장 동성 간의 혼인을 포함하긴 어렵겠지만, 그간 사회의 큰 변화가 있었고 원고 측의 주장을 간단히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법원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테라하라 변호사는 “이런 부분은 꽤 진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Marriage for all Japan) 주최 〈도쿄 판결 기자회견 & 재판보고회〉 현장 모습. https://youtu.be/8Ix16kdNEik

 

② ‘결혼할 수 있는 권리’는 ‘개인의 존엄’과 관련 있다

 

도쿄 판결은 개인의 존엄을 강조하며, 그것이 지켜지기 위해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 헌법 24조 2항(배우자의 선택, 재산권, 상속, 주거의 선정, 이혼 및 혼인 및 가족에 대한 기타 사항에 관하여, 법률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에 입각하여 제정되어야 한다)에 반하는 ‘위헌 상태’임을 언급한 것이다.

 

테라하라 변호사는 “도쿄판결은, 혼인의 본질은 신실한 의지를 가지고 공동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으로 그건 동성커플도 마찬가지라는 점. 혼인이 가능한 권리를 얻는다는 것은, 그 가족으로써 법적보호를 받거나, 사회적 교섭을 할 수 있는 등의 이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며, 이 이익은 개인의 존엄에 관한 중요한 인격적 이익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고 의의를 밝혔다.

 

이런 점에서 동성커플이 혼인을 할 수 없다는 건, 개인의 존엄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라는 거다. 이와 관련해서 도쿄 판결은 오사카 판결과는 다르다.

 

“오사카 판결에선 (동성애자들이) 어떤 계약이나 유언 혹은 양자결연 등의 대체수단을 통해 (혼인을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불이익이 해소되거나 완화될 수 있다고 했지만, 도쿄 판결에선 ‘그건 아니다’라는 점을 명확히 말했다. (그런 방법으론) 같은 효과를 얻지도 못할뿐더러, 개별적으로 개인이 해내야 한다는 점도 (혼인과는) 다르다는 점을 말했다. ‘(동성커플도) 공동생활을 할 수 있으니까 괜찮지 않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회적 교섭을 할 수 없는 상태. 그러니까 혼인을 할 수 없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짚었다.”

 

③ 파트너와 ‘가족이 되기 위한 법’이 필요하다

 

테라하라 변호사는 〈도쿄 판결 기자회견 & 재판보고회〉 이후 이루어진 〈보고회 애프터 토크〉에서, 도쿄 판결에 ‘파트너와 가족이 되기 위한 법제도’라는 말이 나온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이 말은 변호인단이 쓴 말이 아니라, 도쿄지방법원의 재판관들이 판결문에 직접 쓴 말이었다는 점도 밝혔다.

 

또한 판결문엔 “특정 파트너와 가족이 되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건, 그 사람의 인격적 생존에 중대한 위협, 장애가 된다.”고 나와있다.

 

테라하라 변호사는 “인격적 ‘생존’이라는 말까지 썼다는 건, ‘파트너와 가족이 되기 위한 법제도’가 없는 것이 생명과 관련된 문제라는 말을 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는 변호인들이 주장해 왔던, 동성애자들이 결혼하지 못하는 문제는 단지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의 존엄이 무시되는 것이고, 생명과 관련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드디어 법원에도 전달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더불어 도쿄 판결에서는 “(가족이 되기 위한 법제도가 만들어진다면) 동성애자들의 공동생활에 안정이 생기고, 개인의 인격적 관계도 강화되어 사회적 기반이 강화됨으로, 이는 사회 전체의 안정과도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한다. 이런 내용은 “이전의 삿포로 판결에서도, 오사카 판결에서도 없었던 부분”이다.

 

▲ “결혼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소송 관련 안내와 지원금을 모금하고 있는 call4 페이지 https://www.call4.jp

 

당사자들의 용기에 이어, ‘성 다수자’들의 참여가 필요

 

도쿄 판결은 그 의미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금 법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다. 원고들과 변호인단 모두, 법원이 지금의 현실에 대해 “헌법 24조 2항에 반하는 ‘위헌 상태’에 있다”고 하면서도 “위헌은 아니다”라고 한 것에 혼란과 실망을 드러냈다.

 

변호인단은 성명을 통해 “현행법이 위헌 상태에 있다고 한 점에서, 실질적으로 위헌 판결로 평가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판결이 “매우 부당하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항소에 대해 확정하진 않았지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만큼 이후 법원이 또 어떤 판단을 할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번 소송에서 원고들은 진술서를 제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재판정에 서서 본인 심문에 응했다. 변호인단의 우에스기 타카코 변호사는 “원고들이 직접 자신이 겪은 불합리와 상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파트너가 사망한 일에 대해 밝히면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털어놓았고, 이것을 재판장과 두 명의 재판관 모두 진지하게 들었다는 점이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판결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진일보하는 ‘판결’은 원고들의 노력과 용기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세상을 바꿀 판결이 나오기 위해선 더 많은 이들의 지지와 목소리가 필요하다. 보고회 애프터 토크에서 테라하라 변호사는 ‘성 다수자’(Sexual Majority)의 책임을 강조했다.

 

“제가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건데요. ‘이 문제의 당사자는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다수자 분들이 재차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부분이에요. 이번 판결에서, ‘동성 간의 인격적 관계가 강화되어 사회적 기반이 강화됨으로, 이는 사회 전체의 안정과도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 문제는 모든 사람이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 동성 간 혼인이 안 된다는 건, 동성커플이나 성소수자가 뭔가 나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저 같은 성-다수자들이 이 문제에 무관심했고, 결과적으로 이 차별을 방치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렇기에 이 문제의 당사자는 그 누구도 아닌 성-다수자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성-다수자 분들이 이 문제를 ‘지원한다’가 아니라, 자기야말로 이 인권 침해를 해소해야 할 책임이 있고, 그런 위치에 있다는 걸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