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혈연, 입양 관계만 ‘가족’으로 정의한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1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이 지난 10월 25일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25개 단체가 주최한 시민 발언대 “우리의 연결될 권리를 보장하라”에서 나온 다양한 목소리를 연재합니다.
애도의 순간에도 차별이 발생한다
지난 10년간 저는 무연고 사망자 장례 현장에서 장례를 지원하였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죽음과 장례에 있어서도 가족 관계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에 따라, 애도의 순간에도 차별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고 하면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무도 죽음이라는 것 자체를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죽음이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 장례는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누군가 장례를 치러주어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차별이 발생합니다.
내가 죽으면 누가 장례를 할 수 있을까요? 장례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사람을 ‘연고자’라고 합니다. 법적 연고자는 ①배우자 ②직계존비속-조부모, 부모, 자녀, 손자녀 ③형제자매까지만 해당합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의 범위보다도 훨씬 더 협소합니다. 연고자 범위에는 조카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뿐 아니라 사위와 며느리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요즘 비혼자 중에는 자기 조카에게 장례를 부탁할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조카는 장례할 수 있는 연고자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가족과 가구의 형태가 매우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결혼을 하지 않는(또는 못하는) 사람, 부모 없이 자라온 사람, 가족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홀로 남은 사람, 가족 안에서 소외되거나 단절된 사람, 비혼모, 비혼부, 독거노인, 친인척의 이민으로 돌봐줄 가족이 없는 사람 등 다양한 개인사가 존재합니다.
만약 부모 두 분이 모두 사망한 비혼자가 형제가 없거나, 또는 형제들까지 사망한다면 법적으로 연고자가 없는 무연고자가 됩니다. 이 사람에게 친밀한 관계의 다른 사람이 있어도, 물론 법적 연고자는 될 수 없습니다.
법적 연고자가 아닌 친밀한 관계의 사람은 상실감과 비통함 가운데 고인을 애도할 권리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박탈된 애도’라고 부릅니다. 보통 박탈된 애도는 반려동물이 사망했을 때, 여성이 유산했을 때와 같이 주위에서 제대로 애도를 인정 받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혈연, 혼인을 넘어 ‘동행의 관계’가 우선되어야
이제는 혈연과 혼인이라는 제도를 넘어 ‘내 뜻대로 장례’와 ‘가족 대신 장례’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합니다.
다행히 2020년 보건복지부는 ‘장사 업무 안내’에 ‘가족 대신 장례’ 지침을 마련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로 확정된 이후, 법적 연고자가 아닌 이들도 장례할 수 있는 길을 허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법률적으로는 여전히 한계가 분명합니다. 또한 장례식장과 장례지도사들조차 이런 지침이 생겼다는 것을 대부분 알지 못합니다.
현재 대한민국 법률체계가 규정하고 있는 법률혼과 혈연 중심의 가족 관련 법이 근본적으로 개정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좁은 연고자 규정으로 인해 앞으로 무연고 사망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선 당사자의 의사가 명시적으로 표시되지 않았을 경우, 법률혼과 혈연 중심의 가족에게만 장례 등의 사후 사무를 할 수 있도록 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연고자 적용의 우선순위와 적용 범위가 변경되어야 합니다. 삶의 동반자 관계에 있는 사람도 장례 등의 사후 사무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사자가 사전에 장례 등의 사후 사무를 명시적으로 표시할 수 있는 명확한 법률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후 사무의 최종단계로 사망신고까지 할 수 있도록, 민법의 개정도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인구와 가족구조의 변동과 다양한 가족 실천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살아 있는 동안뿐 아니라 죽음과 이후 장례 등의 사후 사무에 이르기까지 어느 순간이든 혈연과 제도를 넘어 ‘동행의 관계’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애도할 권리’와 ‘애도 받을 권리’는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법과 제도는 그 범위를 법률혼과 혈연 중심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애도의 순간에도 차별이 발생하지 않는 세상, 어느 한 사람도 ‘박탈된 애도’를 경험하지 않는 세상을 희망합니다.
[필자 소개] 박진옥. 나눔과나눔 상임이사. 내가 혼자가 아니고,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인기척’을 내기 위해 서울에서 공영장례 활동과 함께, 우리의 이웃들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기 위한 Re’member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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