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해법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것”

[기후위기와 여성농민] 경북 상주 농민 김정열②

나랑 | 기사입력 2023/01/05 [18:58]

기후위기 해법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것”

[기후위기와 여성농민] 경북 상주 농민 김정열②

나랑 | 입력 : 2023/01/05 [18:58]

※기후변화를 일터와 삶터에서 피부로 느끼고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전국의 여성농민들을 만납니다. 여성농민의 시선으로 기후위기 그리고 농업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대안의 씨앗을 뿌리는 새로운 움직임과 공동체적 시도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농민들에게 결정권이 있는 로컬푸드 매장, 상주생각

 

농산물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 농민이 제시한 가격에 도매업자가 사들이고 소매업자가 이걸 사서 마트에서 팔면 우리가 사게 되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농산물 가격은 가락시장이나 공판장 등에서 주로 경매를 통해 결정된다. 이때 가격을 제시하는 건 도매법인 소속의 경매사다. 농민들은 보통 다음날 경매된 가격을 통보받는다. 유통 과정에서의 불합리한 가격 결정 구조는 농산물에 대해 제값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 상주생각 매장에서 반갑게 인사하고 대화하는 김정열 씨(오른쪽)와 소비자. 이곳에선 생산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포장과 진열까지 스스로 한다. 제초제를 치지 않고 생산한 ‘얼굴 있는 먹거리’에 대해 소비자의 신뢰가 높다. ⓒ나랑

 

이곳에선 다르다. 매장 뒤켠에 포장대가 마련돼 있어 농민이 자기 농작물을 갖고 와서 중량과 가격을 결정한다. 포장도 직접 하고 라벨지를 붙여 진열까지 스스로 한다. 동일한 품목임에도 중량은 작은데 가격이 더 높게 책정된 경우도 있다. 농민이 직접 가격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바로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 직매장 ‘상주생각’이다. 로컬푸드 매장이라고 다 이곳처럼 가격결정권이 농민에게 있는 건 아니다.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의 이사장인 농민 김정열 씨(56세)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한국에 로컬푸드 매장이 한 800개 정도 있는데 90% 이상이 농협에서 운영하거나, 아니면 정부나 지자체가 매장을 짓고 민간에 위탁해서 운영하는 곳들이에요. 이런 곳들은 농민이 물건을 납품하는 사람 위치에 한정돼요. 농민들이 주체적으로 협동조합을 만들고 직매장을 연 경우는 우리가 거의 유일해요.”

 

소농들의 판로, 2년 4개월만에 흑자 경영

 

상주 농민이 생산한 먹거리를 상주 시민이 소비하는 지역공동체를 꿈꾸며 2017년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일 년 후인 2018년 9월에는 직매장 ‘상주생각’을 개장했다. ‘자본도 없는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여성 농민들이 지역에서 해 온 먹거리 운동 경험을 밑천 삼았다.

 

정열 씨가 속해 있는 언니네텃밭 상주 봉강공동체 회원들은 2012년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상주 시내에서 농민 장터를 열어 친환경 농산물을 판매했다. 그때 “장사가 상당히 잘 됐던” 경험이 자신감이 돼 주었다.

 

두려움과 자신감을 동시에 안고 빚을 내서 연 매장은 2년 4개월만에 흑자 경영으로 돌아섰다. 5년 차인 지금, 하루 평균 300명의 소비자가 이용하고 월 매출 1억 원, 연 매출 15억 원의 수익을 낼 정도로 성장했다.

 

▲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은 생산자 협동조합으로 2017년 설립되었고, 이듬해 8월 직매장 ‘상주생각’을 개장했다. ⓒ나랑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은 상주에서 농사짓는 농민만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현재 300여 명의 상주 농민이 가입해 있는데 ‘자신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 ‘제초제를 치지 않은 농산물’만 매장에 가져올 수 있다. 이사회나 임원도 전부 농민이다. 여덟 명 직원 빼고는 모두 농민인, 그야말로 농민의 관점에서 운영되는 곳이다.

 

“최근에는 귀농한 사람들 중에서 소규모로 농사짓는 분들이 많이 가입해요. 다른 판로를 찾기 어려운데, 여기서 팔 수 있으니까요.”

 

여성 농민이나 고령농, 가족농들은 주로 소농(小農)이 많다. 이들은 유통회사나 대농(大農)처럼 농작물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큰 저장고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제초제를 치지 않고 생산한 소량의 작물들을 그때그때 판매할 판로를 찾지 못하면 애가 탄다. ‘상주생각’은 이런 농민들에게 안정적인 판로가 돼주어 지속 가능한 생산을 돕는다.

 

대형마트 들어섰지만 매출 타격받지 않는 이유

 

‘상주생각’에서 판매되는 농산물 가격은 어떨까? 유통 단계가 줄어들어 중간 마진이 없기 때문에 일반 마트의 친환경 농산물보다 싼 편이다. 마트의 농산물 가격은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상주생각’은 크게 변동이 없다. 소비자는 조합원으로 가입할 필요 없이 회원이 되는 것만으로 저렴하고 신선한 농작물을 구매할 수 있다.

 

바로 옆에 생협 한살림 매장과 일반 대형마트가 자리 잡고 있길래, 매출에 타격이 없는지 물었다.

 

“우리가 한살림한테 같이 여기로 오자고 했어요. 우리한테 없는 가공식품 품목들이 한살림에 있으니까 서로 윈윈하지 않겠나 생각했어요. 일반 대형마트가 들어왔을 때는 걱정을 좀 했는데 한 달 정도만 매출이 떨어지고 그 후에는 영향이 없었어요. 일반 마트와 경쟁 관계는 아니라는 걸 확인했죠.”

 

“얼굴 있는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의 수고”에 대해 소비자도 알아주는 것이다. 정열 씨는 “소비자들이 과일은 상주에서 ‘상주생각’이 제일 맛있다고 말한다.”고 전하며 싱글벙글한다.

 

소비자로서의 우리는 어느샌가 생산자와의 연결을 잃어버렸다. 농작물을 보며 기른 사람을 떠올리기보다 흠은 없는지 매끈한지 모양에만, 얼마나 더 싼지 가격에만 신경 쓰게 됐다. 현재 농작물이 우리의 식탁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기업이 통제하고 있다. 바로 초국적 식품 기업과 유통회사, 대형마트 등이다.

 

농민들이 생산한 먹을거리를 그 지역 안에서 소비하도록 촉진하는 로컬푸드 운동은 거대 유통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주체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점, 짧은 유통 거리로 탄소 발자국을 줄인다는 점에서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가치 있다.

 

▲ 양파 속껍질도 판매하는 상주생각. 농민의 관점에서는 양파 껍질도 소중하다. ⓒ나랑

 

비닐, 플라스틱 포장재 어떻게 줄일 것인가

 

정열 씨는 ‘상주생각’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포장’ 문제를 꼽는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소비하면 좋은 점 중 하나가 포장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인데, 제로-웨이스트로 가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큰 통에 오이를 20개씩 담아놓거나 잎채소를 신문지에 담아서 내 놔봤는데 빨리 시들더라고요. 그러면 상품성이 떨어져서 소비자가 안 사게 돼요. 두부도 낱개 포장을 안 하고 판으로 놓고 덜어가는 방식으로 해 봤는데, 용기를 갖고 오는 소비자도 적고, 두부를 더는 과정에서 막 부서지기도 하고 그래서 결국 포기했어요.”

 

비닐, 플라스틱 포장재를 쓰지 않기 위한 이런저런 모색이 생산자나 소비자 양쪽 모두에게 아직은 낯설다. 특히 농민들에게는 “훨씬 더 번거롭기도 하고 책임을 많이 져야 하는 일”이기에 “따로 인센티브 같은 게 없는 상황에서 이런 시도를 강제해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시도를 이끌어주는 국가 정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정열 씨는 고민이 깊다.

 

상주 시민과 상주 농민의 연결

 

김정열 씨는 기후위기 해법의 시작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는 우리 운동이 어떤 거대한 주의(ism)나 담론의 실현보다 삶의 안정과 평화, 행복을 추구하면 좋겠어요. 그런 측면에서 지역 살림, 지역 돌봄이 중요하다고 봐요. 지역공동체가 평화롭고 안정되고 서로를 따뜻하게 돌보는 거요.”

 

“‘상주생각’이 있어서 상주에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는 상주 시민과 “내가 생산한 농산물을 상주 시민이 먹어주고 알아주고 그 관계를 통해 삶이 안정될 때 제일 행복하다.”(김정열)는 상주 농민. 이 둘의 연결에서 따뜻한 희망을 본다.

 

*참고자료

KBS 시사기획 창, ‘누가 밥상물가 흔드나’ (2022년 12월 20일 방영)

 

[필자 소개] 나랑(김지현) 독립 인터뷰어. 글쓰기 안내자. 목소리가 되지 못한 목소리를 기록한다. 그런 목소리들이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게 안내한다. 지금은 제주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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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k 2023/02/16 [12:42] 수정 | 삭제
  • 보통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로컬푸드 매장을 생산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드셨다니 대단하네요. 상주에 갈 일이 생긴다면 꼭 들러보겠습니다!
  • K 2023/01/06 [08:19] 수정 | 삭제
  • 로컬푸드 매장이 다 잘 되는 건 아닌데, 상주에서는 활발하게 운영이 되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포장재 줄이기 고민도 하고 계시는 군요. 최소한 각 지역마다 하나씩은 이런 곳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기대를 가져봅니다.
  • 싱긋 2023/01/05 [21:42] 수정 | 삭제
  • 양파껍질 당뇨에도 좋고 혈관에도 좋다는데 사진 보니까 차로 끓여마시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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