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혈연, 입양 관계만 ‘가족’으로 정의한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1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이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2022년 10월 25일 한국여성민우회 등 25개 단체가 주최한 시민 발언대 “우리의 연결될 권리를 보장하라”에서 나온 다양한 목소리를 연재합니다.
누구를 위한 가족의 발명인가?
가족구성권연구소 나영정 연구위원입니다.
우리 연구소에서는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1항 가족의 정의 ‘가족이라 함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가 국가에 의한 차별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어떤 차별이라고 설명하면 좋을까요? 차별은 다양한 이유로 일어나고, 구조적인 원인으로 정당화되고 유지됩니다. 특히 국가에 의한 차별은 그 이유를 잘 따져봐야 합니다.
국가는 가족을 이렇게 정의함으로써 무엇을 의도한 것일까요? 그 이유를 살펴보려면 애초에 근원이 된 민법을 살펴봐야 합니다. 민법 779조에는 가족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① 다음의 자는 가족으로 한다.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② 제1항 제2호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에 한한다.
이 조항은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된 이후, 마치 나라가 무너질 것 같다고 불안에 떨던 수구세력의 눈치를 보며 선물처럼 만들었던 조항입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그런 식으로 살았다고 갑자기 2005년에 가족을 이렇게 발명한단 말입니까. 성차별적, 나이차별적, 모계차별적, 우생학적 호주제를 폐지하라고 했더니 새로운 ‘정상성’을 발명해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정상성은 또다시 ‘건강’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습니다. 그것이 건강가정기본법입니다. 정상성을 시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바로 차별의 핵심입니다.
정상성에 따라 권리에 차등을 주고, 공동생활과 서로를 돌보는 관계를 국가가 인정하니 마니 하면서 이런 차별을 자행합니다. 마치 비정상가족은 권리를 요구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듯 이런 차별을 만듭니다.
정상성은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시민을 통제하고 인구로 통제하기 위한 장치일 뿐입니다. 우리의 존재를 인구로 환원하고, 국가발전과 경제성장을 위한 도구로 활용함으로써 진정한 건강과 행복을 파괴하는 통치에 저항해야 합니다. 따라서 가족구성권연구소는 단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제3조 1항 삭제만이 아니라 민법 779조 삭제를 요구합니다. 그러고 나서 가족에 대한 정의와 가족에 대한 정책을 완전히 새롭게 짤 것을 요구합니다.
국가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가족의 정의는 동사가 되어야 합니다. 함께 살고, 함께 돌보고, 함께 부양하고, 함께 양육하기로 하고, 실제로 함께 양육하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서 정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들이 어떤 권리를 누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새롭게 상상하고 요구해야 합니다. 이 상상력은 이미 시민의 실제 삶이 충분히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가족의 정의를 바꾸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서로에 대한 책임을 자발적으로 나누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뿐입니다. 가족에게만 주는 혜택을 노리고 허위로 신고할까 봐 걱정되나요? 새로운 가족 사례를 보고, 기존의 가족들이 역차별 당한다고 느낄까 봐 걱정되나요? 사회보험 재정이 필요하면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 불평등의 효과로 생산된 돈을 평등을 위해 쓰도록 정책을 만드십시오. 시민들 간의 싸움으로 만드는 것은 국가입니다. 20%밖에 안 되는 4인 가족을 정상가족 형태라고 붙들고 집착하며 당연한 권리를 시혜로 만드니, 없던 역차별 감각이 생기는 겁니다.
국회는 계산기나 두드리지 말고 시민들의 권리를 제대로 인식하고 입법해야 합니다. 시민들이 살 수 있고, 서로를 돌보는 일에 예산을 배정하십시오.
우리는 윤석열 정부에게 경고합니다.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 따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성평등에 대한 인식 없이, 사람을 살리고 돌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서로를 살리고 돌보겠다는 사람들을 차별과 폭력으로 내몰지 마십시오. 성평등 가치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보다 강력한 성평등 정책 추진 체계를 요구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구조적 불평등을 바로잡는 일은 국가의 책임입니다.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인정하고, 동성 간의 결합을 인정하고, 동거커플을 인정하며, 비혼출산을 차별하지 않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를 배제하지 않는, 다각도의 정책을 만들면 됩니다. 존재하는 사람과 관계를 인정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 됩니다.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합니다. -민법 779조 폐지하고, 실제 관계에 기반한 가족관계를 인정하라. -건강가정기본법 폐지하고, 성평등에 입각한 새로운 가족 정책을 수립하라.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시민들의 유대를 보장하는 가족구성권을 요구한다
[필자 소개] 나영정. 가족구성권연구소에서 14년째 가족을 정치화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 등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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