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속에서 ‘사회적 가족’ 인정 필요성 커졌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로

권수정 | 기사입력 2023/01/15 [15:31]

팬데믹 속에서 ‘사회적 가족’ 인정 필요성 커졌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로

권수정 | 입력 : 2023/01/15 [15:31]

※혼인, 혈연, 입양 관계만 ‘가족’으로 정의한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1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이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2022년 10월 25일 한국여성민우회 등 25개 단체가 주최한 시민 발언대 “우리의 연결될 권리를 보장하라”에서 나온 다양한 목소리를 연재합니다.

 

▲ 권수정 정의당 前 서울시의원. (필자 제공)

 

가족은 정형화된 집단이 아니다

 

《이코노미스트》지를 비롯한 주요 컨설팅 그룹들은 안정적인 주거, 의료, 복지, 교육 등의 하드웨어가 탄탄하고, 다양한 구성원들을 위한 사회적 네트워크 등의 제도가 안정적인 곳을 ‘살기 좋은 사회’로 매년 선정하여 발표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오며, 돌봄은 사회가 책임져야 할 주요 과제가 되었습니다. 가족 형태, 가구 유형 및 가족에 대한 인식의 급격한 변화에 맞춰 포용적 가족 정책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습니다. 누구나, 모든 영역에서 불합리한 차별을 겪지 않고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제도를 진전시키는 것은 필연입니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1인가구는 전체 가구 수의 40%에 육박했으며, 4인가구의 비율은 20% 대로 하락했습니다. ‘생계와 주거를 함께하는 관계라면, 혼인과 무관하게 가족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은 70%에 가깝습니다.

 

가족을 혼인, 혈연, 입양 등 단정적인 명사가 아니라, 서로 돌보고 어려움을 나누며 경제적 협조를 이어가는 동사로 정의해야 할 때입니다. 정형화된 하나의 집단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상황에 따라 결합되는 유연한 관계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여성과 한 남성의 단단한 결합만이 가족의 기본을 이루던 시대가 저물고 있는 이 시점에서,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결합이 차별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사회적 가족’ 인정, 언제까지 시기상조?

 

저는 서울시의회 의원으로 일하는 동안, 가족 차별을 없애고 포용적인 가족 정책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습니다.

 

2018년 11월 ‘가족구성권의 새로운 모색’을 주제로 한 서울시 정책위원회 연구 발표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2019년 4월에는 다양한 가족 지위 보장을 위한 TF를 발족하였습니다. 그해 10월 ‘혼인, 혈연가족을 넘어 사회를 다시 만드는 새로운 유대: 서울시 사회적 가족 지원을 위한 정책토론회’와, 12월 ‘서울시 사회적 가족의 지위 보장 및 지원 방안’ 연구용역을 발표했습니다.

 

또 2021년 1월 ‘다양한 가족의 권리보장 방안연구: 비혼, 비혈연 가구의 생활 경험과 제도개선 요구’ 연구발표를 비롯하여 수많은 간담회에서의 논의를 바탕으로, 2021년 5월 8일 ‘서울시 사회적 가족 지원에 관한 조례’를 발의했습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를 성숙하게 만들고, 서울이라는 곳이 각자도생하는 고립의 도시가 아니라 다양성과 포용력 넘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조례제정의 결단을 요구했지만, 의회와 시에서 나온 대답은 “시기상조, 사회적 합의”라는 말과 “법적 한계가 너무 크다.”라는 말의 반복이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의 위험 상황에서 ‘사회적 가족’을 인정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서울에서 3년째 함께 산 동반자인 A씨와 B씨는 혼인 관계로 인정되지 않아 직장에서 가족돌봄 휴가, 휴직 제도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5년째 생활동반자인 C씨와 D씨는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 및 치료를 받는 상대가 법적 배우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병원 및 요양 시설로부터 면회와 정보 제공을 거부당했습니다.

 

이외에도 실제 거주에 따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여 정부 지원금을 받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도 있으며, 직계가족 중심의 모임 허가/인원 제한 등에서 차별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례와 자료를 확인시키고 설득하고 목소리를 냈음에도, 발의된 조례는 수 차례 상정이 보류되었고, 어렵게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이후에도 논의를 보류하며 끝내 10대 의회가 종료되면서 그 시효가 끝났습니다.

 

현재 우리 법에서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뤄진 단위만을 가족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 주거와 의료, 채용 및 복지와 연관된 삶의 주요 영역에서 서울시가 독립적으로 ‘사회적 가족’을 인정할 수 없으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핑계가 되었습니다.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뤄진 단위만을 가족으로 규정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며, 명백하게 차별을 조장하는 구분입니다. 함께 살기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고, 현실의 요구가 이미 폭발하고 있는 지금, 구태에 사로잡혀 실제 시민의 삶을 보호하지 못하는 소모적 논쟁을 이제는 끝내야 합니다.

 

구분함으로써 배제와 차별을 만들 것이 아니라, 포용하고 확장함으로써 불평등을 줄이고 시민의 삶을 폭넓게 보호하는 방향으로 가족 정책을 진전시켜야 합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