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고 돌보는데, 우리가 남남이라고?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구성원들 이야기

홍주은 | 기사입력 2023/01/29 [19:31]

같이 살고 돌보는데, 우리가 남남이라고?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구성원들 이야기

홍주은 | 입력 : 2023/01/29 [19:31]

※혼인, 혈연, 입양 관계만 ‘가족’으로 정의한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1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이 10월 25일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25개 단체가 주최한 시민 발언대 “우리의 연결될 권리를 보장하라”에서 나온 다양한 목소리를 연재합니다.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겨울총회에서 주거, 금융, 건강돌봄을 키워드로 한 해 활동계획을 세웠다. (촬영: 공덕동하우스)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의 구성원 홍주은입니다.

 

여성가족부가 ‘동거 및 사실혼 가구도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었지요. 매서운 한파보다 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웅크려 들게 합니다.

 

여가부는 앞으로 ‘법적 가족’의 개념을 정의하는 소모적 논쟁은 지양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에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실질적 지원에 방점을 두겠다고 했는데요.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돌봄 관계와 공동체 가족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소모적입니다.

 

원가족보다 가까운 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구성원들이 혈연가족과의 관계에서 경험한 것들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속의 ‘가족’만큼 달콤하지 않습니다. 공덕동하우스에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습니다. 20대에서 30대, 학생과 직장인, 다양한 성별(여성, 남성,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다양한 계층(사회경제적 중하위층부터 중산층)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원가족으로부터 이어진 가난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가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돌보았다 해도, 주거와 일자리가 안정되지 못한 조건에서 자식을 보살피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따뜻하고 아늑한 집, 세심한 보살핌, 부모의 사회문화 자원과 경제적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웠고, 무방비 상태로 사회의 불평등을 오롯이 겪어냈습니다. 이러한 가족 경험은 거의 ‘방임’에 가까웠습니다.

 

아주 운이 좋았던 한 구성원만 나름대로 가족의 순기능을 경험하며 성장했습니다. 조부모의 충분한 사회문화·경제적 자원에서 이어진 부모의 충분한 관심과 돌봄과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 구성원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데다 3대 독자로서 받은 수혜로부터 자신의 교양과 취향과 여유가 생겨났다는 사실을 똑바로 직시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간과한다면, 이 사회의 실제 구조를 보지 못한 채 오만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구조 속에서 ‘상해버리기 쉬운’ 사람이라고, 자신을 표현합니다.

 

▲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겨울총회 후속 프로그램으로 ‘요가를 합시다’를 진행했다. (촬영: 공덕동하우스)

 

이렇듯 다양한 원가족 경험을 가진 우리는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했습니다. 무엇이 가족인지, 가족이 왜 문제인지, 평등하게 돌보는 가족은 왜 보기 힘든지, 그럼에도 돌보는 관계는 왜 필요한지 등을 말이죠. 이런 고민을 하며, 혈연과 결혼을 경유하지 않은 채 함께 돌보는 공덕동하우스는 많은 언론과 정부 위원회를 통해 ‘다양한 가족’이라고 호명되기도 했습니다.

 

근데 과연, 우리는 우리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아플 때 서로를 돌보고, 미래를 함께 계획하고 있으니 사회적 통념 속 가족이 맞긴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연결될 권리가 없습니다. 아프거나 늙어서도 같은 집이나 같은 건물 혹은 같은 마을에서 서로 돌보고 살 수 있으려면, 개인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의 보호가 필요한데, 사회에서는 우리를 남남 취급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를 꽁꽁 싸매고 있습니다. 계절마다 워크숍과 총회를 하고, 그 사이 사이에 주거-금융-질병을 키워드로 소규모 대화모임을 이어가며, 잘 살고 잘 죽기를 고민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우리의 경험을 말하고 연대하고 있습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함께 넘어서자

 

만일 가족 경험을 사회로 넓혀보면 어떻게 달라질까요? 평등한 대화, 평등한 가사분담, 서로 돌봄이 있는 가족은 얼마나 될까요? 저녁과 주말이 있어야 대화를 나누고, 평등한 대화가 생겨날 가능성이 생기고, 평등한 가족이 구성될 수 있고, 그래야 아내와 엄마와 딸들이 ‘독박’을 쓰지 않고 서로를 돌볼 수 있을 텐데요. 한국 사회에서 그것은 좀처럼 이루어지기 힘든 꿈만 같은 일입니다. 문제는 결혼제도만이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구조 자체인 듯 합니다. 전통적인 성별 이분법, 남존여비, 이성애-중심주의를 답습하는 ‘결혼’을 통해 만들어지는 가족이 대폭 줄고 있는 이 현실에서도 ‘평등한 돌봄 관계’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 공덕동하우스의 구성원 쥬니와 혜니가 기획하고 출연한 지난 연말공연 〈두 자매 이야기〉의 한 장면. 공연에서는 음악을 매개로 하여 관객들과 함께 자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촬영: 홍주은)

 

척박한 사회에서도 서로를 돌보는 관계는 생겨납니다. 정부는 이미 생겨난 다양한 돌봄 관계를 제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 없는 것 취급해선 안 됩니다. 또한 이 사회가 타인에게 마음을 쓸 만한 경제적·시간적 여유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어떠한 돌봄 관계도 제대로 유지될 수 없을 것입니다. 불안정한 주거와 일자리, 과도한 노동시간과 과도한 경쟁 사회에서는 다양한 돌봄 관계는 물론, 제도가 탄탄하게 지원하는 ‘결혼’ 관계마저 붕괴될 조짐이 보입니다. 그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한국은 OECD 가입 국가들 중 유일하게 합계출산율이 1.0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출생만을 정상으로 인정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지 못한 탓도 큽니다.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을 가르고 차별하는 인식이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에게 내면화되어 있습니다. ‘비정상가족’에게 수치심을 주는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관계를 맺고 서로를 돌볼 수 있을까요. 다시 한번 말합니다. 우리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함께 넘어서야 합니다.

 

가족의 개념을 축소시키고, 현실과 괴리된 정책을 국가 예산을 가지고 펼치겠다는 정부를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요? 여성가족부가 인정하지 않지만, 서로를 돌보는 우리의 관계는 이미 존재합니다. 아프면 돌보는데, 왜 가족이 아닙니까? 정부는 우리의 연결될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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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ㅎㅎ 2023/02/05 [11:50] 수정 | 삭제
  • 공덕동하우스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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