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말]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하는 국어 교사들이 모여 교실과 학교에서 성평등한 국어 교육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평등 국어교사 모임’을 만들어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만들어 온 국어 교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의 정의는 무엇인가
2023년 2월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랑’의 뜻풀이를 찾아보면 그중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정의된 문장이 앞선다. 이 건에 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기 위해서는 십 년 정도를 거슬러 올라야 한다.
2012년, 대학생 5명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이성애 중심적인 언어가 성소수자 차별을 만든다”라며 사랑의 정의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를 수용한 국립국어원은 그해 11월,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뜻풀이를 바꿨다. 동시에 ‘연애’는 ‘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며 사랑함’에서 ‘연인 관계인 두 사람이 서로 그리워하며 사랑함’으로 수정되었다. 또 ‘애인’은 ‘이성간에 사랑하는 사람’에서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으로 단어 뜻이 바뀌었다.
당시 이 소식을 접한 나는, 이성애 중심적인 사고에 갇히지 않고 다른 존재 양식을 긍정한다는 점에서 좋은 변화라고 생각하고 새 뜻풀이를 반겼다. 그런데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난 2014년 1월, 국립국어원은 보수 기독교계 등 일각에서 제기한 “동성애를 옹호한다”라는 비난에 굴복하여 ‘사랑’, ‘연애’, ‘애정’ 등 3개 단어의 행위 주체를 ‘남녀’로 되돌렸다. “재변경 이전 뜻풀이는 한쪽에서 보면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돼 전형적인 쪽을 기준으로 바꾼 것”이라는 국립국어원 관계자의 모호하면서도 건조한 설명 너머로 성소수자 혐오 세력의 모습이 투명도 50 정도로 보이는 듯하다.
한국에서 이렇게 평등의 시곗바늘이 후퇴하는 동안 2015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동성결혼 합헌이라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작년 12월 13일, ‘결혼존중법’에 서명하면서 동성결혼이 합법인 주에서 한 결혼이 미국 전역에서 인정받게 되었다. 미국만이 아니라 이미 세계는 네덜란드(2001)를 시작으로 캐나다, 아일랜드, 독일, 영국 등 많은 국가에서 동성혼을 인정하는 추세이며, 2019년에는 인접한 아시아 국가인 대만에서도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동료 시민으로 존중받기는커녕, 이들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하는 혐오 발언들을 너무나도 쉽게 마주하게 된다. 작년 10월 25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정경희 의원(국민의힘)은 여성가족부 국정감사에서 ‘지난 정부에서 여가부가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에게 동성애를 집단학습시키며 성인지감수성을 변질시켰다’, ‘동성애 교육은 김일성을 위대한 수령이라 세뇌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며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이뿐인가. 김진표 국회의장은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저출생 해결책으로 “동성애 치유운동”을 소개했다. 국민을 대리하는 국회의원이 언어폭력이나 다름없는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 사회라니, 우리 사회의 다양성 수용 역량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급기야는 교육부가 작년 12월 9일에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개정안에서 ‘성소수자’와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삭제하기에 이르렀다. 국가가 앞장서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고, 구조적 성차별을 부인하는 것이다.
국어 수업에서 성소수자 가시화하기
사실 어떤 사회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학교에서만 교육하면 된다’는 식의 게으른 발상 덕에 창의적 체험활동 내로 온갖 교육이 들어오고 있다. (정성식, 『함께 읽자, 교육법!』 ‘범교과교육 비중’ 참고) 그렇지만 한국 사회는 유독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해서는 아직도 그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는 정책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국가 통계에도 반영되지 않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무의식적 편견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포용성을 높이고 그들이 노동시장에서 받는 불이익, 일상생활에서 받는 광범위한 차별을 철폐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교사로서 우선은 공교육 현장, 더 좁게는 국어 수업 내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가시화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례로 참고서 등에서 고려가요를 ‘남녀상열지사’라고 일컫는 건 조선시대 학자들이 이를 얕잡아보고 낮잡아 부른 데에서 유래되었지만, 이 용어를 계속 사용한다면 낭만적이고 성적인 사랑은 오직 ‘남녀’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게 될 우려가 있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의 비판을 받아왔고 최근 들어 개선의 움직임이 있는 ‘남성적/여성적 어조’의 구분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온화하거나 단호하거나, 의지적이거나 호소하는 등의 여러 특성은 성별에 귀속되지 않는데도 이 같은 고루한 표현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성별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게 되고, 성차에 대한 편견을 삶의 진실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기 쉽다. 차별주의자는 사실 차별적 사회에 적응한 사람일 뿐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의식적으로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을 다루는 문학 수업이면 늘 말이 길어진다. 텍스트에서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적어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두 사람 간의 끌림이 있다는 얘기죠?” 또는 “화자가 그리워하는 대상이 반드시 이성일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가능성을 열어두세요.”라고 부연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지나갈 수 있는 수업의 흐름에 굳이 방지턱을 세우는 이유는 이렇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 나는 이미 포획되어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당연의 세계”와 “물론의 세계”(김승희,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2」)에 들어선 지 상대적으로 오래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꼭 세상에 두 가지 성만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기반으로 한다면 사랑에 제약은 없는 게 아닐까?’ 같은 질문을 마음속에 심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소극적인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밤에는 꿈을 꾸었다 /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라는 구절로 잘 알려진 황인찬의 「무화과 숲」을 수업에서 읽기로 했다. 연계 자료로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의 가사를 담은 노래 영상을 준비했다. 감상 중간중간 시의 내용과 연관된 성소수자 당사자의 차별 경험을 다룬 기사를 소개하고 성별 재지정 수술을 이유로 강제 전역 처분을 받은 뒤 스스로 세상을 등진 故 변희수 하사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시간, 교실은 낯설고 안타까운 이야기에 고요히 집중했다.
“동성애는 잘못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닌 그저 주위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사랑이라는 걸 성소수자 혐오자들이 알았으면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성별에 관계없이 내가 누구를 사랑하든 그건 남이 뭐라고 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차별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이 시는 내가 그동안 차별과 혐오로 사회에서 고통받는 성소수자들에 관한 뉴스를 보고 ‘나와는 관련 없는 얘기야’라며 무심히 지나쳤던 날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어떻게 하면 성소수자들이 고통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라고 궁리해보게 하는 영향을 끼쳤다.” 등. 학생 대다수는 수업을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폭력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그들의 어려운 처지에 공감하였으며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노력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교육 내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소수자의 존재를 학생들에게 알리고 교실에 함께 앉아있을 청소년 성소수자가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게 할 수 있다면 조금은 수고롭더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성소수자 학생들도 교사의 지지를 원하고 있다
물론 학교 현장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의 <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2014)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교사로부터 성소수자 혐오 표현을 들었다고 조사되었다.
2015 국어과 교육과정에는 [12독서04-02] ‘의미 있는 독서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타인과 교류하고 다양한 삶의 방식과 세계관을 이해하는 태도를 지닌다.’와 같이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다루는 성취기준이 있다.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이러한 성취기준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의 사회적 소수자에 관해 명시적으로 언급한다면 어떨까? 이와 함께 현장 교사들에게 지속적인 교육을 제공한다면 소수자에 대한 학교 내 혐오 표현의 범람을 다스리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더불어 이성애자/남성/청소년의 성장 서사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기존에 배제되어 온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청소년도 노래/이야기의 주인공인 수업을 만들어갈 수 있는 텍스트를 발굴하고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이 발표한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친화적 환경 구축을 위한 기초조사 보고서>(2016)에는 성소수자 학생들이 교사의 지지와 옹호에 대한 잠재적 욕구를 가지고 있으나 성소수자를 희화화하고 성별 이분법적인 학교문화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상황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받으며, 차이가 차별이 아닌 풍요로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문학 수업이 일상인 학교를 꿈꾼다.
*위 글은 성평등 국어교사모임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이메일 주소 femi_literacy_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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