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겼다고 버림받는 농산물 ‘파치’들의 해방일지

[기후위기와 여성농민] 제주 여성 그룹 ‘콩쥐와파치’

나랑 | 기사입력 2023/02/27 [14:23]

못생겼다고 버림받는 농산물 ‘파치’들의 해방일지

[기후위기와 여성농민] 제주 여성 그룹 ‘콩쥐와파치’

나랑 | 입력 : 2023/02/27 [14:23]

-기후변화를 일터와 삶터에서 피부로 느끼고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전국의 여성농민들을 만납니다. 여성농민의 시선으로 기후위기 그리고 농업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대안의 씨앗을 뿌리는 새로운 움직임과 공동체적 시도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못생겼다고 버려지는 ‘파치’들의 속마음

 

“비상품 당근! 농민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폐기만이 제주 당근을 지키는 일입니다.”

 

12월~ 2월 당근 수확철이 되면 제주에는 위와 같은 현수막이 붙어있다. 소위 ‘못난이’ 당근을 출하했다가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이들을 폐기하고,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매끈한 모양의 당근만 출하하라는 말이다.

 

▲ 인삼처럼 생긴 당근을 본 적 있는가? 당근은 자기 나름의 역사를 갖고 각기 다른 모양으로 뿌리내린다. (사진 제공: 콩쥐와파치)


“분명히 존재하지만 마치 없는 것처럼, 보여지면 안 되는 농작물”(선숙)이 있다. 바로 ‘파치’(깨어지거나 흠이 나서 못 쓰게 된 물건을 뜻함)라 불리는 비상품 농작물이다. 폐기 대상이 되어 땅에 다시 묻히거나 속절없이 버려지는 파치들의 속마음은 어떨까?

 

“같이 자라고 같이 수확되지만 외모와 크기를 기준으로 쓸모없는 것으로 구분된다.

 파치로, 못난이로 불리는 나.

 누가? 왜? 누가 우리를 쓸모없게 하는가?

 나는 파치이길 거부한다.”

-콩쥐와파치 활동일지 중에서

 

파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농작물의 외모지상주의에 반대하고 농부와 농(農)의 가치를 알리고자 활동하는 제주 여성 그룹 ‘콩쥐와파치’다. 제주 선흘에 사는 ‘선흘 콩쥐’ 그린씨(greenC)와 함덕에 사는 ‘함덕 콩쥐’ 선숙을 만났다. 그린씨는 ‘그린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으며 “내가 살아가는 삶을 디자인하는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나한테 밭일은 두 시간이 최대”라고 말하는 선숙은 환경 교육/성평등 교육 활동가다.

 

제주로 이주한 여자들, 콩 털다 ‘콩쥐’가 된 사연

 

콩쥐와파치 결성은 재작년 겨울로 거슬러간다. 두 사람에 더해 지금은 외국에 있는 멤버까지, 세 사람 모두 육지에서 제주로 이주한 이주민들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살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살다가 ‘대표’하겠다, 도망가자!” 셋은 각자의 삶에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시기에 도시에서 제주로 이주했다.

 

▲ 선흘 콩쥐 그린씨 GreenC (촬영: 나랑)

 

농사를 짓는 사람도, 짓지 않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같은 지역의 여성농민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밭과 땅에 몸을 붙이고 살려는 시점”(그린씨)에 있던 세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모여 제주 토종 콩을 털게 됐다.

 

“셋이 콩을 털면서 가난한 마음으로 ‘이러다 밥도 못 얻어먹고 살겠다’라고 생각하다가, ‘누가 우리를 쓸모없게 하는지’를 생각하다가, 토종 콩이 쓸모없어진 세상을 한탄하다가...”(그린씨)

 

전래동화 〈콩쥐와 팥쥐〉를 떠올리며 콩 터는 자신들을 ‘콩쥐’라 불러봤다. ‘누가 우리를 쓸모없게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은 쓸모없는 것들로 여겨지는 ‘파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콩쥐와파치’가 탄생했다.

 

파치를 캐다 

 

“나는 왜 파치들을 본 적이 없을까? 전 농사에 딱히 관심이 없는 존재였어요. 서울에서 텃밭 교육에도 참여해봤고 텃밭 가꾸는 걸 시도해 본 적은 있지만 잘 안 됐고, 농민은 나랑 거리가 되게 먼 사람들이었거든요.”(선숙)

 

인삼처럼 생긴 당근을 한 번이라도 본 적 있는가? 애호박에 꽉 끼워진 비닐이, 일정한 규격과 모양을 만들기 위해 어릴 때부터 씌우는 ‘인큐베이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선숙은 콩쥐와파치 활동을 하면서 파치를 처음 봤고, 이렇게 많이 나온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콩쥐들은 함께 귤밭에 갔다. 자연농 귤밭에서 귤을 따서 그 귤로 귤 주스와 귤 피자를 만들었다. 한 나무에 열리는 귤도 크기와 모양, 맛이 제각각임을 실감했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를 가졌다는 건, 오히려 농약 없이 건강하다는 증거였다.

 

“토양, 빛 조건,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 등에 따라, 또 한 나무 안에서도 다양한 맛과 모양으로 자라는 건 당연한 자연의 이치에요. 자연의 모습이 어떻게 공장에서 찍어 만든 공산품과 같겠어요?”(그린씨)

 

▲ 유기농 당근밭에서 직접 당근을 캐고 피클을 담그는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내가 캔 당근이 못 생겨서 상품이 될 수 없다는 말에 놀라고 분개했다. (콩쥐와파치 제공)

 

사람들을 모집해 유기농 당근밭에서 당근을 캐고 당근 파치로 피클을 담갔다. 당근은 바람과 강수량에 따라, 파종 시기에 따라, 자기 나름의 역사를 갖고 저마다의 모양으로 뿌리내렸다. 몇 시간 동안 입과 코로 (그리고 귀로) 흙을 들이마시며 힘들게 당근을 캤는데, 내가 캔 당근이 못 생겨서 상품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참가자들은 놀라고 분개했다. 이를 계기로 그들은 농산물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누가 만든 표준인가

 

매끈하고 흠 없는 농산물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표준’에 어긋난 농산물이 섞여 있으면 화가 난다. 농부의 노고와 자연의 변화를 헤아려 보기 전에 스마트폰을 열어 컴플레인을 남기기는 너무나 쉽다. 콩쥐들은 묻는다. “누가 파치를 쓸모없게 하는가?”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에코 페미니스트인 반다나 시바는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는 이는 누구인가』(책세상)에서 산업화된 농업 시스템과 장거리 푸드 체인이 농작물의 ‘가짜 표준’을 만들었다고 진단한다.

 

“장거리 푸드 체인은 생산의 차원에서나 유통의 차원에서나 식량을 파괴한다. 식량 재배 방식에서부터 이미 허비가 시작된다. (...) 중앙 집중화되고 세계화된 식량 공급은 획일성을 촉진한다. 사과와 배는 소매업자가 요구하는 모양과 크기에 딱 맞아야 하고, 양배추와 상추는 획일화된 모양이 갖춰져야만 수량 파악의 대상이 된다. 이로써 농장에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작물이 폐기된다. (...)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강제되고 있는 가짜 표준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보장하지 못한다. 과일, 채소의 모양과 크기의 획일성은 안전성과는 하등 관련이 없다.”(207~208쪽)

 

▲ 파치들의 속마음은 어떨까? 파치 모양의 인형을 직접 만들어 전시회를 열었다. (제공: 콩쥐와파치)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농업 시스템에서 농부는 한 가지 작물만 대량 생산한다. 생산된 작물이 자국은 물론 해외까지 유통되는 과정에서 유통업계의 입김은 세다. 한 상자에 들어가는 과일은 모양과 크기가 일정해야만 한다. 파치는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는다.

 

“농부들에게 파치는 돈이 되지 않으니 버리라고 하는 게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이에요. 사람들은 판매되는 상품 말고 그 과정에는 관심이 없어요. 사회에서 필요하지 않다면서 알려주지 않으니까요.”(선숙)

 

획일적인 모양과 크기의 농작물만 유통되다 보니 소비자들은 아예 파치를 접할 기회가 없다. 농민들은 파치를 식당에 헐값에 넘기거나 이웃에게 그냥 나눠준다. 파치를 분류하는 데에 시간과 노동력을 쓰느니 수확 단계에서 밭에 버리고 갈아엎는 게 더 이득일 때가 많다.

 

파치를 팔다

 

그래서 콩쥐들은 농부들을 설득해 지인들에게 파치를 팔아보기로 했다.

 

“계좌번호는 농부 걸 주지만 전화번호는 제 걸로 했어요. (소비자) 민원도 제가 받겠다고 했지요.”(선숙)

 

반응은 어땠을까?

 

“마트에서 사서 먹는 거랑 완전히 다르다고 해요. 진짜 맛있거든요. ‘후원하겠다’, ‘또 주문하겠다’, ‘사람들과 나눠 먹으면서 알리겠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어요.”(선숙)

 

▲ 함덕 콩쥐 선숙 (촬영: 나랑)

 

맛은 합격이어도 손질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면 소비자들이 꺼릴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의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손질에 들어가는 시간과 품을 아까워하지는 않는지 궁금했다.

 

“어떤 음식을 하느냐에 따라 손질은 다른 것 같아요. 감자 파치를 삶거나 구워 먹는다면 상품 손질과 차이 나지 않고, 당근도 생으로 먹거나 크게 잘라 사용하는 거면 크게 차이가 안 나요.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데. 정말 시간과 노동의 차이가 많이 발생할까요? 낯선 작물에 대한 편견 아닐까요?”(선숙)

 

‘파치만 따로’가 아니라 농작물을 선별 없이

 

콩쥐들은 파치만 따로 모아 싸게 파는 것에 반대한다. 아예 파치와 상품을 섞어서 팔아야 한다는 것. 파치가 더 싸게 팔릴 이유도 없거니와, 농부가 파치만 따로 분류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주변 농부들에게 ‘섞어서 팔아야 한다, 따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지 말고 밭에서 바로 섞어서 상자에 넣어야 한다’고 얘기해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감자가 섞여 있으면 (소비자들이) 우리 농산물이 실제로는 이렇게 난다는 걸 알 수 있고, 다양한 형태의 감자로 다양한 요리를 해 먹어볼 수 있잖아요.”(선숙)

 

하지만 섞어 파는 건 농부들에게 쉽지 않다. 반품이나 컴플레인이 예상될 때 “농부가 마음을 먹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농부들이) 파치를 (상자에) 못 넣으시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파치만 남는 거예요. 사주는 사람이 좀 모여야 농부들도 안심하고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콩쥐와파치처럼 ‘나한테 맡겨. 민원은 내가 받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이렇게 나서 주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선숙)

 

▲ “이상한 거 아니거든. 다양한 거지!” 콩쥐들이 만든 피켓들. (콩쥐와파치 제공)

 

지난 시즌에서 파치만 따로 모아서 팔았다면 올해는 “농부에게서 나온 다양한 모양의 농작물을 선별 없이 그대로 담아 보내면서 불편하고 재미있는 질문을 던지는 실험을 지속할 계획”(그린씨)이다.

 

콩쥐들이 꿈꾸는 세상은 상품/파치의 구분과 차별이 없어지는 세상이다. 농작물의 외모지상주의가 없어지는 그 날은 비로소 자연의 힘과 농부의 노고가 존중받는 날일 테다.

 

생존과 전환을 위해, 함께 ‘콩쥐’가 되자

 

기후위기 시대에 콩쥐와파치 활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함덕 콩쥐 선숙은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말한다. 농부의 생존과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한 일이라는 것.

 

“음식 쓰레기를 이야기할 때 다 먹지 않고 버리는 음식물 문제를 주로 얘기하지요. 하지만 수확을 했어도 모양 때문에 판매되지 않고 밭으로 돌아가는 농작물이 너무 많아요. (아이러니하게도) 한편에서는 지금도 누군가 굶어 죽고 있고요. 파치들이 판매된다면 농부의 소득은 늘어날 거고, 그래야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치지 않고) 자연을 지키는 농부들도 늘어날 거예요.”

 

선흘 콩쥐 그린씨는 단순히 파치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소규모 농사는 대규모 농업이 되고 ‘빨리 빨리’가 우리 삶의 언어가 되고 효율과 경쟁력이 쓸모와 쓸모없음을 나누게 되고... 그러다보면 에너지 팡팡 쓰고 모양은 다 같은 공장식 농사(스마트팜)에 길들여지고 말겠지요? ‘더 빨리, 효율적인, 스마트한, 저렴한’을 추구하는 스마트한 세상에서 파치를 바라보는 시선과 우리 삶을 비춰볼 수 있는 만남이 이어지길 바래요.”

 

콩쥐와파치는 매개자다. 농부를 존중하고 농부와 소비자를 연결한다. 농사를 업으로 하지는 않지만 농(農)의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에겐 더 많은 콩쥐가 필요하다. ‘자네, 나와 함께 콩쥐가 되어보지 않을텐가?’

 

[필자 소개] 나랑(김지현) 독립 인터뷰어. 글쓰기 안내자. 목소리가 되지 못한 목소리를 기록한다. 그런 목소리들이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게 안내한다. 지금은 제주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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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ly 2023/03/12 [17:05] 수정 | 삭제
  • 이상한 게 아니라 다양한 거. 이게 식물들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이라는 게 감탄스러우면서도 슬픈 현실이네요. 그래도 콩쥐들이 너무 힘차고 즐거워보여서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졌어요.
  • 포포 2023/02/28 [10:06] 수정 | 삭제
  • 세상 유쾌한 콩쥐들이네~ 나도 그 지인이고 싶다
  • 독자 2023/02/27 [21:34] 수정 | 삭제
  • 도시텃밭만 해봐도 정말 공감이 갑니다. 모양도 균질하지 않고 크기도 작고 때때로 흠도 있지만, 그런 농산물이 유기농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사먹습니다.
  • ㅇㅇ 2023/02/27 [16:37] 수정 | 삭제
  • 파치 판매대행에 파치인형 전시회, 콩그리기 워크숍!! 외모지상주의 반대 피켓팅... 콩쥐들이 능력자시네요!
  • 개비 2023/02/27 [16:29] 수정 | 삭제
  • 버려지는 밭작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는데... 너무 아깝더라고요. 맛과 영양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먹기 편하고 보기 좋으라고 표준을 만들고 파치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에 고새 많이 길들여졌다는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파치를 살리려는 콩쥐들 이야기가 너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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